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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40호]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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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새해 클래식 무대가 기다리고 있는 것들

베를리오즈 150주기, 오펜바흐 탄생 200주년…

정준호  음악칼럼니스트 

▲ 베를리오즈 권위자인 영국의 지휘자 존 엘리엇 가드너. photo 가드너 홈페이지
몇 년 전 한 일간지 기자가 내게 문의한 적이 있다. 음악계에서 작곡가의 생몰연도를 헤아려 기념하는 관습이 언제 시작되었냐는 것이다.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당장 생각난 것은 모차르트를 숭배했던 신학자 카를 바르트가 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1956년에 쓴 편지였다. 바르트는 자신이 천국에 간다면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나 칼뱅, 슐라이어마허보다 먼저 모차르트를 만나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열렬한 모차르트 예찬자였다. 그보다 앞서 1927년 베토벤 사후 100주기 때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각종 공연과 출판, 영화 제작이 이뤄졌다. 알버트 슈바이처는 1885년 바흐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방대한 바흐 작품 전집이 출판되었음을 상기시킨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는 1870년에 나온 베토벤 탄생 100주년 기념주화를 내놓은 사람도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음악계의 ‘애니버서리 셀러브레이팅’이 매우 뿌리 깊음을 알 수 있다.
   
   좀 더 가까이는 지난 2000년 바흐 서거 250주기,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2010년 슈만과 쇼팽 탄생 200주년 그리고 말러 탄생 150주년, 2013년 바그너와 베르디의 탄생 200주년 등이 기념비적이었다. 20세기 중후반까지 유럽 현지에서 국지적으로 이뤄지던 많은 행사가 21세기 지구촌 시대를 맞아 세계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음반 시장의 축소와 유튜브 등 온라인 음원 서비스의 확대, 그리고 해외여행의 증가로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의 마케팅이 이뤄지고 있다.
   
   당장 2019년 올해에 기릴 만한 인물과 사건을 찾아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프랑스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가 1869년 세상을 떠난 지 150주기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게 누군데?” 또는 “베를리오즈도 기념해야 하나?”라고 묻는 분이라면 이 지면을 잘 만나셨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베를리오즈에 대해 가장 열광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 베를리오즈 두상 photo 정준호

   비운의 천재, 베를리오즈
   
   1803년에 태어나 1869년에 세상을 떠난 이 프랑스 작곡가는 아마 독일 사람이었다면 베토벤 다음으로 바그너나 브람스와 명성을 다투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프랑스는 이상하게도 자기 음악에 자존감이 덜한 나라이다. 프랑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술만큼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프랑스 청중이 제일로 쳤던 것은 늘 이탈리아나 독일, 심지어 뒤에는 러시아 음악이었다. 오죽하면 그런 점을 못마땅하게 여긴 벨에포크(1870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 이후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문화적 황금기)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는 자신의 악보에 ‘프랑스 작곡가’라고 적어 출판했다.
   
   베를리오즈 또한 파리가 이탈리아 작곡가 도니체티에 끝없는 찬사를 보내는 것을 두고 한탄했다. 도니체티조차 그런 불만이 당연하달 만큼 그를 딱하게 여겼을 정도였다.
   
   베를리오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여러 곳을 돌며 그곳의 숙련된 악단 수준과 운영 방식을 매우 부러워했다. 오늘날까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가 베를리오즈의 대표작 ‘환상 교향곡’을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로 삼고 있지만, 사실상 베를리오즈의 곡으로 자주 연주되는 것은 거의 그뿐이다. 물론 ‘환상 교향곡’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지 불과 3년 뒤에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이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다. 베를리오즈는 바이런의 시에 붙인 ‘이탈리아의 헤롤드’,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붙인 ‘로미오와 줄리엣’,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조각가의 삶을 그린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 등을 통해 낭만주의의 시야를 획기적으로 넓혔다. 나는 그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다음 위치에 놓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촌부의 과찬이라고?
   
   영국 지휘자 존 엘리엇 가드너는 이 시대 최고의 베를리오즈 권위자이다. 그는 낭만주의 음악을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 1989년에 새로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는데, 그 이름이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Orchestre Rvolutionnaire et Romantique)’이다. 굳이 프랑스어로 작명한 이 악단의 첫 프로젝트가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과 베를리오즈의 주요작 녹음이었다. 사실 나의 베를리오즈 예찬도 가드너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렇게 베를리오즈는 가드너에 빚진 바가 크다.
   
   가드너에 앞서 ‘영국의 카라얀’이라고 불렸던 콜린 데이비스는 베를리오즈의 관현악을 전곡 녹음했던 첫 지휘자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해준 사람이 음악학자 데이비드 케언스였다. 케언스는 현재 영국 베를리오즈협회 회장이다.
   
   베를리오즈가 태어난 리옹 인근의 작은 마을 라 코트 생탕드레에서는 해마다 8월 하순에 음악제를 연다. 올해 150주기를 맞아서는 더욱 성대한 자리가 될 것이다. 해마다 라 코트 생탕드레를 찾아 주요작을 지휘하는 가드너가 올해 또 어떤 무대를 선보일지 기대된다. 축제 홈페이지(www.festivalberlioz.com)에 가면 숙박부터 교통까지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발맞춰 음반사의 베를리오즈 전집 발매도 잇따른다. 데카와 도이치그라모폰, 그리고 프랑스의 에라토는 모두 자신들이 가진 이 작곡가의 소중한 기록을 하나로 모을 예정이다. 올해는 베를리오즈가 얼마나 홀대받았던 사람인지 그 진가가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샹젤리제의 모차르트, 오펜바흐
   
   베를리오즈만큼이나 인정받지 못해온 또 다른 작곡가가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다. 오스트리아 태생이지만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자크 오펜바흐이다. 오펜바흐의 경우는 베를리오즈와는 좀 다르다. 베를리오즈가 생전에도 사후에도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한 반면, 오펜바흐의 명성은 사실 대단하다. 물랭루주, 아니 파리를 대표하는 음악 가운데 하나라고 할 ‘캉캉’이 바로 그의 곡이다. 오페라 ‘지옥의 오르페오’ 가운데 주인공들이 저승을 빠져나올 때 흘렀던 이 곡이 벨에포크를 상징하는 것이다. 툴루즈로베르토 베니니가 주연·감독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는 또 다른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가운데 ‘뱃노래’가 심금을 적신다.
   
   ‘샹젤리제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오펜바흐는 이렇게 대중적 인기가 워낙 높아 오히려 진지한 주제의식과 그것을 다룬 선구적인 감각이 가린 경우이다. 그러나 오펜바흐가 만든 환상과 무의식의 세계는 향후 다가올 세기말 예술사조나 프로이트를 예고한다. 간단히 말해 이런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르페오가 아내를 걱정해 뒤를 돌아보는 설정을 오펜바흐는 이렇게 바꾼다. ‘권태기에 빠진 오르페오가 평판을 생각해 억지로 아내를 데려오다가 일부러 뒤를 돌아보았다’는 것이다. 아내 에우리디체 또한 좋아라 저승으로 돌아갔다. 현대의 시작이 아닌가!
   
   베를리오즈가 세상을 떠난 1869년 무렵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제국에서는 수도 빈의 정비 사업이 한창이었다. 구도심을 에워싸는 링슈트라세라는 환상(環狀)도로에 시의 랜드마크가 속속 새로 들어섰다. 1869년 궁정 오페라 극장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로 개관해 올해 150주년을 맞았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문을 닫았던 빈 국립오페라는 1955년 베토벤의 ‘피델리오’로 재개관했다. 지난 2005년 50주년을 성대하게 경축한 이래 올해가 가장 기념할 만한 해이다. 유럽 오페라 극장의 시즌은 가을에 시작해 이듬해 초여름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빈 국립오페라 역시 지난 가을부터 설립 150주년 기념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그 정점은 개관일인 올 5월 25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그림자 없는 여인’을 상연하는 것이다. 역시 누구나를 위한 작품이라기보다는 황금귀의 소유자만을 위한 오페라이지만, 우리나라의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도 아무때나 들을 수 없는 이 무대를 홍보하기에 바쁠 것이다.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개관으로부터 50년이 지난 1919년, 대양을 너머 반대쪽 대양 연안에 새 오케스트라가 창단했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이다. 지역 유지였던 윌리엄 앤드루스 클라크 주니어는 악단을 설립하면서 인근에 살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를 지휘자로 모실 생각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사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유명한 만큼 뛰어난 지휘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라흐마니노프는 막 태평양 연안을 떠나 뉴욕에 새로 정착한 터라 수락할 수 없었고, 그 대신 한때 구스타프 말러를 보좌했던 영국 지휘자 월터 헨리 로스웰과 함께 첫 음악회를 가졌다. 100년을 지내는 동안 주빈 메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에사 페카 살로넨이라는 지휘자와 황금기를 다진 이 악단에는 10년 전부터 베네수엘라 태생의 거장 구스타보 두다멜(불과 37세이다)이 음악감독으로 와 있다.
   
▲ 올해 창단 100년을 맞는 LA 필하모닉의 안방 월트디즈니홀. photo 위키피디아

   세계적인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LA 필하모닉은 바로 3월에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 왕과 우리나라를 찾는다.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해외 오케스트라의 내한 무대가 될 것이다. 시즌의 피날레는 자신들의 안방인 월트디즈니홀에서 말러의 ‘천인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세계 최고의 음악당으로 꼽히는 이 콘서트홀에서 이 곡이 처음 연주된다.
   
   노르웨이의 오슬로 필하모닉도 LA 필하모닉과 같은 해에 창단했다. 이 또한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마리스 얀손스 등이 거쳐간 북유럽의 강자이다. 그보다 50년 전인 1869년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이 초연되었다. 우리로 치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것쯤에 해당한다. 오슬로 필하모닉은 3월 영국 순회 공연 때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와 그리그의 협주곡을 협연할 예정이다.
   
   그밖에도 여러 인물과 사건들이 2019년을 기다린다. 작곡가 슈만을 기념하는 곳이라면 그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던 아내 클라라가 태어난 지 200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다룰 것이다. 세계 최고(最古)의 음악출판사인 ‘브라이트코프와 헤르텔’도 300년 전 라이프치히에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연도를 헤아릴 때마다 되묻곤 한다. “100주년이거나 99주년이거나 한 번뿐인 것은 매한가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소개하고픈 멋진 일이 있다. 네덜란드 바흐협회(Netherlands Bach Society)는 ‘Bach 2019-2021’이라는 프로젝트를 이미 작년부터 시작했다. 2021년까지 바흐의 모든 작품(CD로 대략 150장이 넘는다)을 연주해 유튜브에 올리는 것이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마다 네덜란드의 소박한 교회나 유서 깊은 고건물에서 연주한 바흐 음악의 정수가 업로드된다. 이미 상당수가 풀HD 화질로 제공 중이다.
   
   바흐를 기릴 특별한 시기가 아니지만, 그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에 인생을 건 사람들이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이 바흐의 초연과 경쟁하는 셈이다. 네덜란드 바흐협회가 프로젝트를 마치기 위해 바라는 것은 그저 많은 사람이 유튜브를 구독해줄 것과 좀 더 뜻있는 사람의 기부뿐이다. 무한한 감사와 갈채를 보내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을 기다려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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