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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41호] 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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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듣는 책’이 출판시장 살릴까

제작비 비싸 대형 포털들 시장 잠식 우려도

김경민  코인와이즈 기자 

photo 셔터스톡
“여러 번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 아니라면 아예 읽을 필요도 없다.(If one cannot enjoy reading a book over and over again, there is no use in reading it at all.)”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이 말은 이제 조금 수정돼야 할 것 같다. “여러 번 들어도 재미있는 책이 아니라면 아예 들을 필요도 없다.”
   
   2018년 글로벌 출판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듣는 책, ‘오디오북’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로 시작했던 오디오북 시장은 하락세를 걷던 출판계의 돌파구로 각광받고 있다. 여기에 음성인식 스마트스피커 시장과 자율주행차 기술의 발달이 활력을 더하고 있다. 인기 저자의 책은 제작 단계부터 전자책(e-book)과 오디오북으로 동시 제작된다. 지난해 11월 자서전을 내면서 직접 내레이터로 나섰던 미셸 오바마처럼,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유명인들이 앞다퉈 ‘책 읽기’에 나섰다. 스마트스피커 플랫폼 운영사들은 양질의 오디오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출판사와 손잡고 직접 제작에 뛰어들기도 했다. 눈으로 읽는 게 ‘당연한 것’이었던 책은 귀로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됐다.
   
   중국의 오디오북 시장도 다르지 않다. ‘책으로부터 두 눈을 해방시켜 세상을 듣는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중국의 오디오북 플랫폼 란런팅수(懶人聽書)의 회원수는 2억명이다. 중국 오디오북 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2018년 시장규모는 44억3000만위안(약 7600억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오디오북 플랫폼 란런팅수는 2012년 설립 후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간편한 오디오북으로 중국 신세대 직장인들을 집중 공략해 성공을 거뒀다. 이 업체는 2017년 12월 상하이 증시 상장사 시대출판(時代出版)으로부터 2억위안의 투자를 유치한 것을 포함해 설립 이후 지금까지 총 4차례에 걸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란런팅수는 중국 전역의 500여 출판사와 협력, 고전부터 동화, 인터넷 소설 등 10여개 장르에서 총 100만시간이 넘는 분량의 음성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란런팅수의 월평균 유료 콘텐츠 구매 회원은 50만명에 달하고, 1인당 평균 월 30위안 이상의 콘텐츠를 구매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18세에서 25세 사이의 신세대들이 오디오북의 주력 소비계층으로 꼽힌다.
   
   오디오북 시장은 한국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출판업계는 지난해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한 오디오북 시장이 2019년 ‘빅뱅 원년’을 맞이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내 오디오북 시장은 이미 지난해 월간 판매량 1만권을 돌파했다. 2018년 11월 중순부터 오디오북 서비스를 시작한 팟캐스트 업체 팟빵은 12월 한 달 사이 오디오북 코너에서 1만권 이상 판매기록(유료결제 기준)을 달성했다. 이 기간 동안 200여개 종류 오디오북 1만3000권이 팔렸다. 앞서 9월부터 유료 오디오북 서비스를 시작한 네이버는 오픈 약 한 달 만에 5000권 판매를 기록했다. 임석영 팟빵 이사는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오디오북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며 “오디오북 콘텐츠가 다양해지는 동시에 저변도 확대돼 국내 오디오북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네이버는 지난해 9월부터 유료 오디오북 서비스를 시작하며 국내 오디오북 시장으로의 본격 진출을 선언했다. photo 네이버 오디오클립 캡처

   네이버 오디오북 플랫폼 전폭 지원
   
   오디오북 수요가 증가하면서 오디오북 서비스 플랫폼들은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존의 오디오 기반 포털은 물론 중소 콘텐츠 업체도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밀리의 서재, 윌라, 오디언 등 전자책 플랫폼에 오디오북이 결합한 서비스와 오디오북 전용 앱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지역 도서관들도 오디오북 제공을 늘리고 있는 추세이며 이미 일부 언론사에선 음성인식 시장을 겨냥해 관련 콘텐츠 개발에 돌입했다.
   
   특히 지난해 7월 오디오서비스 플랫폼 오디오클립을 베타오픈하면서 이 시장으로의 진출을 본격화한 네이버는 이 분야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베타서비스에 앞서 조성하기 시작한 오디오콘텐츠 펀드를 통해 오디오북 제작비 일부 또는 전액을 지원하고 녹음 스튜디오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오디오북은 ‘듣는’ 문화의 발달 속에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인공지능(AI) 기반의 스마트스피커의 상용화가 있다. “오디오북 제작기술 자체가 발전하기도 했지만 최근의 스마트디바이스 등 기술 발전으로 인해 오디오북의 소비가 매우 편리해졌다.” 글로벌 오디오북 시장 점유율 2위 업체 스크리브드(Scribd)의 트립 애들러 최고경영자(CEO)의 말은 오디오북 시장의 폭발적 성장 기반에 관련 기술의 고도화가 있음을 시사한다. 에코, 구글홈 등 AI가 가능한 홈기기가 계속 발전하면서 청각 콘텐츠 소비에 시너지 효과를 더했다. 여기에 음악을 들으며 스마트폰 작업을 하고, 집안 청소를 하면서 팟캐스트를 듣는 젊은 세대들의 생활 방식이 결합되면서 오디오 시장은 더욱 확대됐다. 네이버가 적극적으로 오디오북 시장에 뛰어든 배경에도 자사의 스마트스피커 클로바가 탑재된 음성 기반 하드웨어에 콘텐츠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전자책 시장 넘어설 것” 전망도
   
   국내 오디오북 시장은 2018년부터 본격화됐지만, 세계 오디오북 시장은 이미 무르익었다. 전자책 분석 사이트 굿이리더닷컴은 2016년 말 기준 세계 오디오북 시장 규모를 35억달러(약 3조9000억원) 규모로 추산했다. 2013년 20억달러에서 연평균 20.5%씩 성장한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출판도서 시장이 1.9% 성장한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무섭다. 오디오북 시장은 미국이 가장 규모가 크다. 미국 오디오북 시장은 2010년 초반부터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왔다. 미국 통계 전문 사이트 스태티스티카에 따르면 2017년 미국의 오디오북 시장은 전년 대비 약 19% 성장한 25억달러(약 2조8000억원)를 기록했다. 2010년의 10억달러 대비 2.5배 증가한 것으로, 미국 전체 출판시장의 10%를 넘는 규모다. 매출액은 2010년과 2016년 사이에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 출판된 오디오북의 수는 약 6000권에서 5만권 이상으로 증가했다.
   
오디오북이 조만간 전자책 시장의 규모를 넘어설 것이란 업계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퍼콜린스, 펭귄랜덤하우스, 아셰트 등 대형 출판사들의 지난해 전자책 판매량은 5% 정도 감소했다. 오디오북은 최근 몇 년 새 출판업계에서 수익을 보는 유일한 디지털 콘텐츠가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통의 출판사들과 온라인 유통강자들이 모두 오디오북 시장에 뛰어들었다. 미국 최대 출판사 중 하나인 펭귄랜덤하우스는 2019년 새롭게 출간하는 모든 서적을 오디오북으로 동시에 제작할 계획이다. 아마존은 더 적극적이다. 2008년 오디오북 제작업체 오더블(Audible)을 인수해 오디오북 서비스 ‘아마존 오더블’을 운영하고 있다. 아마존에선 이미 전자책 버전은 건너뛰고 오디오북으로만 나오는 책들도 등장했다. 구글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45개국에 오디오북 서비스를 출시하며 음성 플랫폼 사업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구글은 직접 오디오북을 제작하지 않지만 머신러닝 기술을 접목해 이용자가 골라 듣도록 별도 세부 목차를 제공하고 있다.
   
   
   대형 포털 주도에 대한 우려도
   
   국내는 네이버를 비롯해 여러 사업자가 오디오북 생태계 조성에 첫발을 들여놓은 단계다. 한국 출판 시장에서 오디오북은 종이책 혹은 전자책의 대체가 아니라 새로운 시장으로 인식되면서, 출판업계에 새로운 부가 수익처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조성되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각에선 국내 오디오북의 제작 행태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일단 높은 제작비가 진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출판사에서 자체적으로 오디오북을 제작하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실제로 오디오북은 하나의 상품으로서, 품질이 담보되어야 독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 때문에 한 권 제작을 위해 투입되는 노동력도 적지 않다. 내레이션부터 편집, 마스터링 작업을 비롯해 전체를 아우르는 프로듀싱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300쪽짜리 책 한 권당 대략 800만~1000만원이 소요된다. 종이책보다 제작 단가가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는 대형 플랫폼업체가 초기 투자 형식으로 높은 제작비를 들인 오디오북을 저가에 판매하는 모양새다. 이 문제는 나아가 네이버와 같은 대형 오디오 플랫폼이 오디오북 시장을 주도하게 될 우려를 낳는다. 네이버에서 공급되는 오디오북의 저작권은 출판사가 갖되, 일정 기간 네이버에서만 독점 공급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네이버가 판매 수수료로 최대 30%를 가져갈 수 있는 수익구조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콘텐츠를 보유한 출판사와 플랫폼의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며 “한국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어느 출판사도 네이버와 맞붙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출판계에 부는 오디오북 ‘붐’이 유명 배우 등을 앞세운 ‘유명인 마케팅’의 일환으로 전락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팟빵은 최민식, 문소리, 송일국, 안재욱 등 국내 유명 배우 100인이 읽은 한국 대표문학작품 오디오북을, 네이버는 배우 정해인을 내세워 ‘오 헨리 단편선’ 오디오북을 제작했다. 스타를 앞세운 경우 제작비는 일반적 제작비를 훌쩍 넘는다. 한 인문학 출판사 관계자는 “영세 출판업계에선 이렇게 형성된 제작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오디오북 제작 시장의 주도권이 대형 업체들에 넘어가 버릴지도 모른다”며 위기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베스트셀러로 제작이 쏠리거나 콘텐츠 전체의 질적 하락 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오디오북 시장의 건강한 정착을 위해 공공의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산하 전자출판지원센터 이중호 센터장은 “아직 초기 단계이므로 정부가 제작비 일부를 지원하면 오디오북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오디오북 우수 콘텐츠를 지원하는 정부 프로그램이 늘면 출판사들도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오디오북 제작을 지원해달라는 출판계의 요구에 부응해, 2019년 20종 내외의 책에 최대 500만원을 지원하고 제작지원센터를 상반기 중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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