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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2541호] 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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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태양왕 루이 14세가 평생 간직한 그림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푸생의 ‘알카디안의 양치기들’.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와 굵은 시가를 문 처칠 총리, 그리고 돋보기로 구석구석 관찰하는 셜록 홈스.
   
   영국 신사(British Gentleman)의 이미지는 세 경우 모두에서 발견되는 공통분모다. 우산, 지팡이, 구두, 모자, 양복, 헤어스타일 등 신사가 지켜야 할 품격과 이미지가 떠오른다. 17세기 처음 등장한 ‘영국 신사’라는 개념은 전 세계 남성이 흠모하는 영국 ‘소프트파워’의 출발점이라 볼 수도 있다. 오해하기 쉬운데, 정장 양복에 관한 한 최고의 장인들은 프랑스가 아닌 영국인이다. 영국제 옷감과 영국인 특유의 수제 봉제기술을 동원해 최고의 명품 양복을 만든다.
   
   원래 섬나라 영국은 유럽 문명권의 오지였다. 그리스인이 항상 얘기하듯, 아테네에서 신과 철학, 과학을 연구할 당시 영국인은 동굴 속 원시인 수준이었다. 영국이 글로벌 대제국으로 부상한 것은, 신대륙 발견 이후 대항해 시대부터다. 4차에 걸친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제국으로 부상했다. 1805년 트라팔가해전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을 격파하면서 세계 최강 대영제국에 올랐다. 영국 신사는 이 같은 국력 상승의 원인이자 결과물이다.
   
   영국 신사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지만 영국인 스스로 유럽 문명권을 따라잡으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본다. 잘해봤자 2류에 그친다는 식의 냉철한 현실인식이 이러한 노력의 바탕이 됐을 것이다. 유럽과 전 세계를 철저히 관찰하고 공부하면서 자신들의 약점을 극복해나갔을 것이다. 이탈리아·프랑스·독일이 후발 섬나라를 비웃는 동안, 영국인은 세계 역사와 고대 문화를 파고들었다. 유럽 귀족들이 고대 로마를 예술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동안, 영국인은 로마 흥망성쇠사를 통한 교훈에 주목했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예술에 관한 체계적 연구와 응용도 영국인이 주도했다. 대영제국 박물관 1층이 아테네 파르테논신전의 유물과 유적으로 채워진 이유도 거기에 있다. 화가가 아니라 인문 미학의 최고봉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재발견해낸 것도 영국인이다. 영국 신사는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자 동력이었다.
   
   영국인이 유럽의 문명을 열심히 따라갔다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의식주와 관련한 고품위 문화는 결코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다. 외모로서의 신사라는 이미지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내면이 깃든 ‘젠틀맨십(Gentlemanship)’까지 체득해야 한다. 외모에 신경을 쓰기 앞서, 내면을 꽉꽉 채우는 것이 영국 신사의 기본인 것이다. 바바리코트를 입는다고 해서 신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젠틀맨십은 광범위한 교양과 인문, 자연 지식을 요구한다. 요즘 식으로 말한다면 ‘리버럴 아츠(Liberal Arts)’, 즉 습득과 실천이 영국 신사의 필수요건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 즉 심미안(審美眼)은 리버럴 아츠를 습득한 결과물이다. 진(眞)과 선(善)을 체득하면 미(美)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고고학, 음악, 여행, 조각에 관한 영국 신사의 남다른 정열은 진선미 합일체의 증거다.
   
▲ 푸생의 자화상.

   성화만 그린 고전주의 화가
   
   필자는 진선미를 하나의 작품에 압축적으로 표현한 최고의 화가로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을 꼽는다. 프랑스인이지만 리버럴 아츠에 기초한 영국 신사 같은 이미지의 화가다. 17세기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다. ‘푸생=진선미 화가의 대표주자’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생 동안 다룬 그림들의 주제에서 비롯된다. 1594년생 푸생이 71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반세기 이상 전념한 그림의 주된 테마는 성화(聖畵)와 고대 그리스 역사나 신화이다. 흥미롭게도 푸생은 자화상을 제외할 경우 돈이 되는 초상화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종교, 역사, 신화에 관한 그림이 주된 테마였다. 푸생은 46세 때부터 2년간 프랑스 루이 13세를 위한 궁중화가로 일하기도 했다. 불과 2년 일한 뒤 스스로 그만두지만, 궁중화가 재임 중에도 개인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속세에서나 통하는 돈과 명예, 아부가 아니라 진선미에 기초한 리버럴 아츠로서의 예술을 추구했다.
   
   푸생의 진가는 세속적 가치를 초월했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종교·역사·신화에 관한 그림의 표현방법이 기존의 화가들과 전혀 다르다는 점도 눈에 띈다. 간단히 말해 독창성에 기초한 상상력의 진수로서의 그림이다. 진과 선을 철저히 터득한 뒤에야 나올 수 있는 신비한 그림이 푸생만의 개성 중 하나다. 리버럴 아츠에 기초한 심미안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화가라 할 수 있다. 단군신화를 예로 들어보자. 환웅과 웅녀 그리고 자식인 단군에 관한 그림을 그린다고 할 때 어떤 구도와 모습, 자세, 색상으로 나타낼까. 각자 강조하고 싶은 부분,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다를 것이다. 환웅의 위엄, 웅녀의 애정, 단군의 총명함, 가족의 단란함 같은 것이 기본이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는 각자의 진선미 세계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개개인의 모습을 얼마나 아름답게 그려낼지만이 아니라 뒷배경이나 주변 환경을 통해 고조선의 미래와 모습에 대해 주목할 수도 있다.
   
   푸생이 활동했던 17세기 초는 다른 화가들을 참고하거나 다양한 정보에 기초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극히 제한된 텍스트 속의 몇몇 구절을 기반으로 한 상상 속의 세계가 그림의 기반이었다. 푸생은 독학으로 라틴어를 습득했다. 그림 역시 거의 독학으로 익힌 화가다. 라틴어를 통해 종교·역사·신화를 익히고 혼자서 그림의 내용을 구상하고 심지어 색상까지 직접 구입해 사용한 알티자노(Artizano·장인) 화가였다. 성모 마리아가 천국으로 승천한다고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까. 헤라클레스가 사자를 죽인 뒤 가죽을 뒤집어쓸 때 어떤 표정이었을까.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할 당시 주변 사람들의 슬픔이 어느 정도였을까. 이 모든 구체적인 구상은 화가 스스로가 창조해내는, 무(無)에서 유(有)로 연결되는 작업이다.
   
   
   루브르가 가장 많은 작품을 간직한 화가
   
▲ 아마존 여전사를 살해하는 아킬레스. 고대 그리스 조각상을 베끼던 수준의 고전주의 미술을 메타포를 동원한 철학의 세계로 바꾼 화가가 푸생이다.
사실 푸생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 진선미에 기초한 무에서 유로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종교·역사·신화에 관한 상상력은 초상화·풍경화·정물화와 전혀 다르다. 기적을 행하는 예수의 얼굴 표정이 어떠했을지에 대한 해석이나 느낌이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푸생은 그 같은 상황을 독창적으로 표현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선보였다. 전례가 없는 선구자의 길을 걸은 화가다. 라틴어로 읽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신화, 성경 속 예수의 행적, 로마 역사서 속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를 유화로 제작해냈다. 17세기 당시 그림은 아주 특별한 1% 미만 소수의 전유물에 불과했다. 이들은 리버럴 아츠 세계관으로 무장한 지식인이기도 했다. 이들의 호기심과 지적욕구를 만족시켜주고 더불어 계몽에 나선 인물이 푸생이다.
   
   푸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파리 루브르박물관 리슐리외(Richelieu)관 2층 갤러리 14호다. 푸생은 루브르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화가 중 한 명이다. 갤러리 14호를 포함해 무려 6개 갤러리에 40여점의 작품이 걸려 있다. 푸생 이전에 프랑스인으로 유럽 전체에 이름을 떨친 화가는 거의 없었다. 프랑스가 국가적 차원에서 예술에 주목한 것은 17세기, 즉 300여년 전에 불과하다. 프랑스 미술을 세계에 널리 알린 것은 몽마르트 언덕의 다국적 예술가들이었다. 대략 20세기부터다. 2000여년 전 고대 로마에 뿌리를 둔 이탈리아 예술과 비교할 때 ‘새 발의 피’ 같은 존재가 프랑스다. 푸생은 그 같은 프랑스 예술의 한계를 잊게해줄 좋은 모델이다.
   
   리슐리외관 갤러리 14호에 들른 가장 큰 이유는 루이 14세가 저세상에 갈 때까지 소중히 간직했던 명화 때문이다. ‘알카디안의 양치기들(The Arcadian Shepherds)’ 또는 ‘알카디안에도 내가 존재한다(Et In Arcadia Ego)’로도 불리는 유화다. 푸생이 40대 초반에 그린 메타포(Methpor·은유) 유화의 대표작으로 통한다. 알카디안은 현재의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지방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는 15세기 유럽 르네상스기의 중심테마이자 파라다이스로 풀이됐다. ‘알카디안에도 내가 존재한다’는 말 속에서 ‘나’는 죽음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완벽한 행복의 땅, 파라다이스에조차 죽음이 존재한다는 메시지가 이 그림에 담겨 있다. 행불행에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든지 죽음을 생각하라는 교훈적 명화다.
   
   그림 속에는 세 명의 양치기와 여성 한 명이 등장한다. 세 명의 양치기는 묘비명인 듯한 돌로 된 비문을 중심으로 역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다. 제일 왼쪽 양치기는 똑바로 선 상태에서 라틴어로 새겨진 비문, ‘Et In Arcadia Ego’를 읽고 있다. 중간은 무릎을 꿇은 채 손가락으로 비문을 가리키며 한 줄씩 곰곰이 읽는 중이다. 이미 내용을 파악한 듯한 오른쪽 양치기는 몸을 반쯤 숙인 채 바로 옆에 선 여성에게 비문의 내용이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평화로운 모습의 여성은 양치기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듯 비문을 응시한 채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답을 던질 듯 말 듯한 여성의 정체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일 듯하다. 인간이 가진 모든 의문에 대한 현명한 대안은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외로운 처녀 여신 아테네의 몫이다.
   
▲ 푸생이 64세 때 그린 ‘디오게네스의 풍경’.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시는 청년에게 자신의 전 재산인 물잔을 건네는 모습이다.

   세 명의 양치기와 아테네 여신
   
   ‘알카디안의 양치기들’은 언뜻 보면 특징을 잡아내기 어려운 ‘지극히’ 단순한 그림으로 와닿는다. 그러나 처음 접하는 순간, 누구나 쉽게 경험할 신비한 직감이 하나 있다. 그림 속에 드리워진 비밀스러운 코드(Code)다. 마치 숨은 그림찾기처럼, 뭔가 중요한 비밀이 그림 속에 묻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재차 관찰해 보면,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즐겨라)’에 비견될, 인류 모두의 슬픈 운명을 찾아낼 수 있다. 파라다이스에서조차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허망함이다. 메타포를 통한 간접적 표현은 푸생을 진선미 화가라 부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다. 평생 동안 그린 신·자연·신화에 관한 그림 대부분이 메타포 방식으로 표현돼 있다.
   
   1997년 캄보디아 방문 당시 교통안전 포스터를 프놈펜 시내 곳곳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섬뜩하게 표현된 교통안전 포스터의 내용이다. 붉은 피로 범벅이 된 것은 물론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신체도 절단된 채 나뒹굴고 있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예시로 들면서 사고의 위험성을 알리는 식이다. 푸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알카디안의 양치기들’처럼, 메타포를 통한 평화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나타냈을 듯하다. 피범벅 대신, 죽음을 뜻하는 꽃이나 동물 같은 것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했을 듯하다. 흥분 상태에서 세상을 흑백으로 나눠 살벌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평상심에 기초해 여유를 갖고 머리로 생각하면서 곱씹어보는 세계관이다. 보고 또 봐도 다른 해석이 가능한, 영원한 물음으로서의 메타포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궁전을 건립한 ‘태양왕’이다. 5세 때 왕에 올라 77세에 사망하기까지 무려 72년간 재임했다.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짐이 곧 국가다(L’tat, c’est moi)’라고 말한, 유럽 아니 세계사를 통틀어 최강의 절대군주였다. 그러나 태양왕조차 피해갈 수 없는, 아니 절대군주이기에 더더욱 절실히 느꼈을 문제가 죽음이다. 그가 푸생의 그림에 애착을 가진 이유일 듯하다. 죽음은 피나 땀, 거창한 슬로건에 가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순간에’ 끝나는 것도 아니다. 고독한 삶의 연장선 속에 있는 것이 죽음이다. 메타포로 표현된, 수많은 푸생의 그림에 죽음이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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