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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42호]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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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로마 3대 노포의 주방

글·사진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3대째 이어가는 로마의 노포 ‘라 타베르나 데이 포리 임페리알리’ 내부.
‘Rome in Ruins(폐허 속의 로마).’
   
   로마에 도착하는 날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역사적 유물·유적이란 의미의 ‘Ruins’가 아니다. 실제 더럽게 변해가는 쓰레기 도시라는 것이 기사의 내용이다. ‘불결한 오물도시 로마’라고나 할까? 지저분한 현장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기사에 따르면 로마의 공유자전거는 안장과 핸들을 하도 많이 훔쳐가 아예 서비스 자체를 폐지했다고 한다. 공공질서에 무관심한 이탈리아 정부와,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관광객과 난민들이 엉망진창 로마의 배경일 듯하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로마를 쓰레기 도시로 만드는 일등공신 중 하나가 거지다. 로마는 거지 천국이다. 파리, 런던, 베를린에도 거지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로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다국적 거지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거지도 많다. 프랑스 파리가 혁명정신에 불타는 시위대로 넘쳐나는 동안, 세계 가톨릭의 중심 로마는 거지들이 넘실댄다. 뉴욕타임스가 다룬 21세기 로마의 ‘불편한’ 현실이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로마 종말’이나 ‘난민 차별’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결론은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더더욱 로마를 사랑한다’는 것이 기사의 진짜 핵심이다. ‘쓰레기더미 속으로 빨려가는 카오스 도시지만, 쓰레기를 포함한 인류의 모든 숨소리를 보듬은 곳이기에 한층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사 행간에 배어 있다. 뉴욕타임스 기사와 전 세계 대부분이 그러하듯, 필자 역시 로마를 사랑한다. 쓰레기조차 사랑할 정도의 고차원은 아니지만 로마만이 갖는 매력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 어떤 불편함도 감수해낼 수 있다는 생각은 한다. 고대 로마 시대의 유물·유적만이 전부가 아니다. 작은 세계를 압축한 나라, 이탈리아의 수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과 신비함이 매력의 핵심이다.
   
   수많은 로마의 매력 가운데 가장 손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로마의 맛, 즉 음식이다. 로마는 ‘장화의 나라’ 이탈리아 중간에 위치해 있다. 이탈리아 전역의 음식이 전부 몰려 있는 곳이 로마다. 예외야 있겠지만, 지방 곳곳의 토속음식들도 로마에서 즐길 수가 있다. 남부의 시칠리아와 나폴리, 중부의 토스카나, 북부의 밀라노, 팔마, 베네치아 음식도 로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장년 이탈리아인의 경우 냉장고가 없는 생활에 익숙해 있다. 냉장고가 있기는 하지만, 인스턴트 냉동음식은 관심 밖이다. 추운 북부 이탈리아권을 제외할 경우, 신선한 재료에다 허브와 올리브오일에 기초한 음식이 주류다. 밀라노의 고급 브랜드로 인해 오해하기 쉬운데, 원래 이탈리아는 전형적인 농업국가다. 싸구려 슈퍼마켓에 가도 신선한 재료가 넘친다. 하늘·평야·산·바다·강·지하를 포함하는 지중해권 전역을 아우르는 채소, 육류가 깔려 있다. 베네치아에서 장기 체류하면서 체감한 것이지만, 가격은 서울 농산물의 거의 절반 이하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2유로 정도하는 와인 한 병을 포함해 전부 10유로 정도면 간단한 4인용 한 끼를 차릴 수 있다.
   
▲ ‘임페리알리’의 단골 손님들. 할리우드의 이탈리아계 배우들이 많다.

   3대에 걸쳐 가족이 주방을 이어오는 곳
   
   노포(老鋪)는 로마의 맛과 멋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다. 수십 년 수백 년 한 우물만 판 식당에서 먹는 로마와 로마인의 정취다. 노포의 개념은 보는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필자가 생각하는 노포는 두 가지 조건에서 출발한다. 첫째 최소한 3대에 걸친 로컬푸드, 둘째 가족들이 총동원된 패밀리 비즈니스. 주방의 주인공 역시 가족 중 한 명이어야 한다. 언뜻 보면 흔할 듯 보이지만 실제 찾아보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사람의 입맛이 그러하듯 음식 업계처럼 변동이 심한 곳도 없다. 장사가 안 되면 곧바로 사라진다. 잘된다고 해도 초심으로 유지하기 어렵다. 고가로 뛰는 임대료 때문에 살인극까지 벌어지는 판이다. 크게 키우고 체인화하는 과정에서 대량생산 푸드 비즈니스로 변질된다. 주방업무는 물론 재료 구입이나 설거지와 같은 3D 일을 자식에게 넘겨주고 싶은 부모도 극히 드물다.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 ‘의식주’ 공간으로서의 노포는 살아남기 어렵다.
   
   이런저런 정보를 근거로 알아본 결과, 로마에는 필자가 생각하는 노포 레스토랑 리스트에 9곳이 올라왔다. 로마 외곽에 주로 있지만, 고맙게도 로마 시내에도 4곳이 들어서 있다. 필자가 머문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라 타베르나 데이 포리 임페리알리(La Taverna dei Fori Imperiali·이하 임페리알리)’라는 노포였다. 로마 중앙역 테르미니에서 도보로 15분 거리다. 레스토랑의 역사나 수준에 앞서, 모순된 상호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타베르나는 영미권의 간이식당이나 술집인 ‘태번(Tavern)’의 원조로, 원래 고대 그리스 식당을 의미한다. 고대 폴리스의 장사 공간이나 아고라(Agora) 주변 식당을 뜻하는 말로, 시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린 장소다. 음식을 기준으로 한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현장인 셈이다. ‘포리 임페리알리’는 황제의 포럼이란 의미다. 고대 로마의 최고 중심지인 현재의 콜로세움에서 베네치아 광장에 이르는, 약 500m의 도로 주변이 포리 임페리알리다. 황제의 치적과 승전보로 장식됐던 대제국 로마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곳이다. 고대 그리스 시민과 로마 황제가 공유하는 ‘계급장을 뗀’ 레스토랑인 셈이다. 곧바로 달려갔다.
   
   최근 한국에서 이른바 먹방용 레스토랑 방문이 유행이라고 들었지만, 세대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듯해 아쉽다. ‘먹거리 방송’이란 말부터 거슬린다. 50대인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레스토랑은 먹는 곳에 한정되지 않는다. 보통 40대 중반부터 드는 생각이지만 먹지 않고도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곳, 즉 ‘머리로 느끼는’ 음식점에 주목하게 된다. 건강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저녁 늦게 먹을 경우 소화가 어렵다. 음식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이 삶의 끝이라고 들었다. 금욕주의자처럼 식욕 자체를 죄악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먹방에서 보듯, 다양한 음식을 위장에 쑤셔넣을 자신이 없다. 먹는 과정이 아니라 먹은 뒤에 나타날 결과와 레스토랑 주변 환경에 대한 관찰도 중요하다. 2030세대에게는 ‘꼰대의 식생활’로 비쳐지겠지만, 위가 아닌 머리로 즐기는 식욕이 장년의 특징이자 지혜다. 5060세대로 먹방에 데뷔할 만한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나이에 맞춰 식욕 다운사이징에 성공한 사람일수록 건강하게 사는 듯하다. 레스토랑에 갈 경우 저녁이 아닌 점심으로 한정한 것도 그같은 맥락에서 내린 결론이다. 왕성한 식욕으로 만찬을 즐길 경우 심야와 다음 날이 불편해진다.
   
   임페리알리에 들른 것은 오후 1시45분쯤이다. 손님이 가장 없는 시간으로, 마지막 오더를 받기 직전이다. 글로벌 시대의 특징이지만, 로마는 물론 세계 어디에서든 조금 괜찮다 싶은 레스토랑은 사람들로 터져나간다. 와인도 곁들이지 않은 한 끼 가격이 최소 100달러에서 시작되는 별 두 개 미쉐린 레스토랑을 제외할 경우, 어디 하나 예외가 없다. 그러나 혼자서 평일 낮에 늦게 찾아갈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별 하나 미쉐린에 들른다 해도 넉넉히 자리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식사도 천천히 즐길 수 있다. 임페리알리로 가는 길은 로마 도로의 특징인 작은 돌로 메워진 길이다. 키오톨리(Ciottoli)라 불리는 가로 세로 15㎝ 크기의 돌로 메워진 길이다. 로마는 물론 이탈리아 어디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고대 로마의 유물이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이지만, 로마 주민에게는 정반대다. 굴곡 때문에 자동차로 달리면 진동이 심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미끄러지기 쉽다. 로마 주민이 아스팔트나 시멘트 길로 바꿔줄 것을 요구하지만 관광객용 ‘미끼’인지 아직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는데, 멋지게 나이 든 60대 요리사의 사진과 함께 ‘100년 패밀리 레스토랑’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이미 절반 정도 테이블이 빈 상태로, 자리를 뜨려는 손님도 더러 눈에 띈다. 안으로 들어가자 노포만의 특별함이 와닿는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장년 손님이 많다는 점이 일단 특징이다. 편안하고 서두르지 않는 분위기라는 점도 중요하다. 한국인이 보면 참기 어려운 장면이겠지만, 주문 하나 받더라도 서로 대화를 하면서 천천히 진행해나간다. 미리 주문할 것을 결정할 상태라도 그날의 요리에 관한 얘기를 전부 들어주는 것이 노포에서의 예의다.
   
▲ 임페리알리의 카르보나라(왼쪽 위)와 가지를 곁들인 소고기요리(왼쪽 아래). 오른쪽은 임페리알리 입구.

   40유로의 호사
   
   이런저런 궁리 끝에 로마 음식의 대명사인 카르보나라(Carbonara)를 시켰다. 카르보나라는 파스타다. 혼동하기 쉬운데,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나 피자는 식전 음식에 해당한다. 보통은 파스타로 시작한 뒤, 고기·생선과 같은 메인 요리로 들어간다. 카르보나라는 치즈·계란·후추·베이컨·콩을 섞은 강하고 진한 맛의 요리다. 따라서 원시적인 레드와인이 어울린다. 흥미롭게도 로마가 자랑하는 카르보나라의 유행 시점은 1950년대였다. 2차 대전 후 연합군이 로마에 진주하면서 본격화된 음식으로, 특히 미군이 즐겼다고 한다. 짠맛의 돼지고기는 당시 미군용 음식인 베이컨이나 소시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크게 보면 한국의 부대찌개 같은 배경을 가진 퓨전푸드가 카르보나라인 셈이다. 카르보나라에 이어, 메인으로 소고기요리를 시켰다. 시푸드보다 육류를 권하기에 ‘고기가 적은 육류요리’를 주문하자, 찐 가지로 가득 찬 소고기요리를 추천했다. 와인은 가장 싸고 쉽게 마실 수 있는 15유로짜리 메를로(Merlot)다. 와인 반 병 정도 주량이지만, 한 잔에 6유로임을 감안해 아예 병째로 시켰다. 와인은 막 딴 새 병으로 마셔야 제맛이다.
   
   주문한 지 20분쯤 지나 카르보나라가 나왔다. 흥미로운 것은 파스타 색깔이 전체적으로 초록색이다.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완두콩의 사촌 격인 비그나로라(Vignarola)가 밴, 채식주의자가 즐거워할 파스타이다. 한입 베어 물자 너무 맛이 순해서 놀랐다. 미국인의 입맛을 충족시켜줄, 후추와 돼지고기로 범벅이 된 강한 맛이 아니다. 간간이 밴 치즈가 소금 역할을 하면서 입맛을 돋운다. 해물을 빼고, 바다의 맛만 살린 우동 격이라고나 할까. 강하지 않은 맛에 맞춰 와인도 메를로가 아닌 토스카나산 약한 걸로 시켰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고기요리 역시 필자의 주문 탓인지 고기가 아닌 가지가 주인공처럼 나왔다. 고기는 조연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둘 다 불에 잠깐 그을렸다가 올리브오일로 처리한 뒤 허브로 맛을 돋웠다. 지중해에서 수천 년간 지속된 가장 간단한 요리법이다. 로마의 육류요리는 피렌체 스타일의 두꺼운 고기가 아니다. 한입에 즐길 수 있도록 얇게 썬다. 야채를 먼저 먹은 뒤 고기를 즐겼다. 특유의 섬유질 맛과 함께 가지가 혀끝에서 녹는다. 연한 고기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옅은 허브 향으로 후각을 자극한다. 혀가 아니라 코로 먹는 고기요리다. 하나로 뒤섞인 게 아니라 재료 각각의 개성을 살린 ‘따로국밥’ 요리다.
   
   무례하게도 “100년 노포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싶다”고 웨이터에게 전했다. 일어서서 직접 찾아가려는데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 둘이 다가왔다. 60대 셰프의 아들과 딸이다. 2년 전 아버지가 급성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홀로 남은 어머니와 함께 두 자식이 레스토랑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 속의 셰프는 이미 저세상 사람으로 사라진 상태다. 주방은 어머니가, 테이블은 두 자식이 책임지는 식이다. “어릴 때부터 레스토랑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갑자기 시작했지만 별로 어렵지 않다”는 말도 들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노포의 어제와 오늘 나아가 내일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경제용어인지 유행어인지 모르겠지만, ‘가성비’라는 개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바로 노포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진짜’ 노포는 결코 비싸지 않다. 비싸다면 노포로서 자격미달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족 경영에 따른 인건비 절감과 건물 임대료가 없다는 점이 배경에 있다. 3대 이상 끌어왔다는 것은 이미 3대 이전의 건물이란 얘기다. 장사가 잘된다고 해서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릴 상황과 무관한 곳이 노포다. 오랫동안 해오던 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현란한 거품도 없다.
   
   필자가 앉아 있는 테이블 바로 뒤는 생전의 셰프 아버지와 함께한 단골 유명인들의 사진으로 뒤덮여 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다운 풍경이지만 결코 싫지 않았다. 필자가 알고 좋아하는 유명인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한순간이지만 그들의 흔적과 함께한다는 추억을 만들 수도 있다.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더스틴 호프먼, 우디 앨런, 브루스 스프링스턴…. 이탈리아계 미국인이 주류다. 어떻게 해서 할리우드까지 알려졌는지 모르겠지만 이탈리아계 배우들이 주로 찾아온다는 설명이다. 좀 덜떨어진 질문이지만, 영화 ‘대부’에 대한 평소의 궁금증을 아들에게 물어봤다. 영화 속 돈콜레오네 집안의 이탈리아어가 너무 엉망이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의 이탈리아어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알 파치노는 말도 하지만 로버트 드니로는 알아듣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둘 다 요리 주문은 이탈리아인보다 더 잘했다. 식욕은 또 얼마나 왕성하던지….”
   
   임페리알리에서의 대낮 식사는 2시간 만에 끝났다. 마지막 손님이기에 식후 알코올인 레몬 첼로와 디저트도 서비스로 제공됐다. 세상을 뜬 셰프의 부인이자 두 자식의 어머니도 주방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취침 전 군대 점호처럼, 레스토랑 구석구석을 조용히 관찰한다. 식사비는 전부 합쳐 40유로 정도다. 서울에서 와인 한 병 값도 안 되는 비용이다. 흐뭇하고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쓰레기와 거지로 뒤덮인 도시라고 하지만, 로마와 로마인의 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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