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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2호]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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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넷플릭스 ‘밴더스내치’와 게임을 닮은 영화들

게임인지 영화인지

홍성윤  매일경제신문 기자 

▲ 넷플릭스 영화 ‘밴더스내치’(가운데)와 영화 ‘트론’ ‘엣지 오브 투모로우’ ‘써커펀치’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넷플릭스 영화 ‘블랙미러: 밴더스내치’(이하 ‘밴더스내치’)를 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을 하는 일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의 손은 바쁘다. 손에서 리모컨을 뗄 수 없고 때론 수첩에 무언가를 적거나 영화를 잠시 멈춰둔 채 스마트폰을 들어 인터넷 검색을 한다.
   
   지난해 12월 28일 공개된 밴더스내치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상호작용) 영화다.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그려낸 옴니버스 드라마 ‘블랙미러’의 특별편인 이 영화의 줄거리는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시청자는 영화를 보는 동안 주인공 스테판을 대신해 여러 선택을 하고, 그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는 물론 결말까지 바뀐다.
   
   관객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주인공의 아침식사 메뉴부터 듣고자 하는 음악처럼 사소한 것도 있지만, 주인공의 운명과 영화의 결말을 송두리째 바꾸는 중요한 결단도 있다. 1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선택지를 고르다 보면 여느 영화에서는 느끼기 힘든 긴장감이 느껴진다.
   
   넷플릭스의 실험은 성공적이다. 시청자들은 낯설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터랙티브 영화에 매료됐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는 5개에 달하는 모든 결말을 보기 위한 공략법이 공유되기도 했다. 평단과 언론 역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밴더스내치’가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바라보면 영화가 게임을 닮아가는 요즘 트렌드가 보인다. 게임과 영화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게임은 화면 속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면서 즐거움과 성취감을 얻는다. 영화는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에 몰입하게 한다. 그런데 게임이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이 되고 게임의 문법에 익숙한 세대들이 주요 콘텐츠 생산자로 성장하면서 두 영역은 교차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작 기법, 장르적 특징과 문법, 스토리텔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게임의 DNA’가 영화에 이식됐다. 게임과 영화는 이제 이리저리 얽힌다. 그 면면을 살펴보자.
   
   
   영화, 게임을 이식하다
   
   우선 ‘밴더스내치’는 어드벤처(adventure) 장르 게임을 꼭 닮았다. 어드벤처 장르란 이름 그대로 모험에 대한 게임이다. 어드벤처라는 장르명은 1976년에 공개된 최초의 어드벤처 게임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Colossal Cave Adventure)’에서 유래했다. 이름 그대로 주인공이 겪는 여러 가지 모험을 다루는 장르로, 게임 곳곳을 탐험하며 전투 대신 퍼즐을 풀거나 대화를 하며 진행한다.
   
   2012년에 나온 게임 ‘워킹데드’나 지난해 출시된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같이 인터랙티브성이 강조된 어드벤처 게임은 ‘밴더스내치’와 매우 유사한 외향을 가졌다. 제한된 시간 내에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고 선택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말로 이어진다는 점이 그렇다.
   
   1982년 개봉한 SF영화 ‘트론’은 실사배우와 CG 배경을 합성한 최초의 영화로 유명하다. 지금이야 이렇게 찍지 않는 영화가 드물다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배경을 따로 합성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트론’은 컴퓨터 속 가상현실에 빨려들어간 주인공이 모험을 펼치는 줄거리를 담았다. 인물과 배경을 설정하면서 당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비디오게임 산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인간처럼 변해버린 컴퓨터 프로그램에 맞서 하이퍼볼, 라이트사이클 같은 비디오 게임으로 대결한다. 2003년에는 이 영화를 바탕으로 일인칭슈팅(FPS) 게임 ‘트론 2.0’이 출시됐다. 영화 원작 제작진이 대거 참여한 이 게임은 2010년 영화 ‘트론: 새로운 시작’이라는 후속편이 개봉하기 전까지 1982년 작품의 공식 후속작으로 인정받았다. 게임이 영화의 후속편이 된 것이다.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라는 2010년작 영화는 만화 원작을 영상으로 만든 작품이다. 백수인 록밴드 멤버 스콧 필그림이 이상형의 여자를 사귀기 위해 그녀의 전 애인 7명과 결투를 벌이는 내용을 담았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황당하다’는 감상을 먼저 내놓았는데 그건 아마 영화 연출 때문일 것이다. 꼭 게임을 연상시키는 화면이 등장하는데 영화 속에서 격투를 벌이는 인물들 옆으로 게임처럼 그래픽이 나온다. 연속 공격에 성공하면 게임처럼 ‘콤보’ 표시가 뜨는 식이다. 적을 물리치면 아이템을 얻는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2011년 영화 ‘써커펀치’도 비슷하다. 정신병동에 갇힌 소녀들이 탈출에 필요한 다섯 가지 물건을 얻기 위해 상상 속 세계에서 싸운다는 설정이다. 독일 나치, 용, 사무라이 로봇 등 다양한 적들과 싸우는 영화 속 무대는 액션게임의 ‘스테이지’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애석하게도 영화는 형편없는 완성도로 혹평을 받았다.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일본의 라이트노벨 소설 ‘All You Need Is Kill’을 원작으로 하는 SF영화다. 특정한 시간대를 수없이 반복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외계인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주인공이 죽기 하루 전 상황으로 끊임없이 돌아간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끝없이 죽고 살아나고 전투하는 과정을 되풀이하게 되는데 이는 세이브(저장)와 로드(불러오기)라는 게임의 구조와 꼭 닮아 있다. 플레이를 반복하며 게임에 능숙해지는 게이머처럼 영화 주인공 역시 어리바리한 신병에서 베테랑 용사로 거듭난다.
   
   이렇게 게임처럼 세이브·로드를 반복하며 시간을 거듭하는 영화 장르를 ‘루프(loop)물’이라고 부른다. 루프물의 역사는 꽤 길다. 로맨틱코미디영화 ‘사랑의 블랙홀’은 루프물 장르를 대중에 널리 알린 흥행작이다. 주인공은 반복되는 하루를 알차게 활용해 깨달음도 얻고 사랑도 쟁취한다. 이런 구조는 한국 스릴러영화 ‘하루’나 미국의 호러영화 ‘해피 데스데이’ 등 다양한 장르에서 차용되고 있다.
   
   
   거장도 뛰어든 게임과 영화의 융합
   
   지난해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작품 ‘레디 플레이어 원’은 20세기 비디오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속 캐릭터들이 모두 한데 얽혀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다. 가상현실 게임 ‘오아시스’를 무대로 하다 보니 이야기 전체가 게임 같다.
   
   영화 속에서 게임 ‘오아시스’는 일종의 가상현실 게임이다. 이 세계에서 오아시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할 정도로 강력하고 막강한 게임이다. 사람들은 직장에 출근하는 대신 게임 ‘오아시스’에 접속한다. 그곳에서 가상의 아바타를 만들고 적과 싸워 아이템을 얻고 아바타를 꾸미며 살아간다. 전 세계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오아시스’의 개발자 할리데이는 유언을 통해 영화 속에 ‘이스터에그’가 있다고 밝힌다. 그는 자신이 숨겨둔 임무를 완료하고 이스터에그를 찾아낸 플레이어에게 오아시스의 운영권과 5000억달러(약 560조원)가 넘는 할리데이 소유의 회사 지분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주인공 역시 이 도전에 합류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 설정에서부터 게임 용어가 등장한다. 이스터에그는 서구에서 부활절에 아아들이 부활절 토끼가 숨겨놓은 달걀을 찾게 하는 놀이에서 유래한 프로그래밍 용어다. 숨겨놓은 달걀을 찾아내듯 사용자가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면 숨겨진 요소가 나타난다. 프로그램의 원래 용도와 게임의 진행과는 무관하게 등장하는 깜짝 선물인 셈이다.
   
   게임에서 이스터에그는 프로그래밍 용어다. 게임의 결말과는 아무 상관없지만 게이머가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숨겨진 이스터에그를 찾을 수 있는 식이다. 게임에서 최초의 이스터에그는 1979년 발매된 아타리2600용 게임 ‘어드벤처’에서 등장했다. 이 게임은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도 주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게임을 통해 모은 가상현실 속 화폐로 유료 아이템을 결제한다. 주변 상황을 60초 전으로 되돌리고 사용자를 거대 로봇으로 변신시킬 때도 있다. 이스터에그를 찾으려면 3개의 열쇠를 먼저 찾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각각 레이싱 게임, 호러 게임, 어드벤처 게임을 그대로 영화 속에 이식시킨 것 같다. 특히 첫 번째 레이싱 게임에서 영화 주인공은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 변칙적인 방법으로 우승을 거머쥔다. 원래 게임에서는 ‘버그(오류)’를 이용한 편법 플레이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지금까지 소개한 영화들은 이야기의 구조가 게임의 문법과 닮은 사례다. 좀 다른 영화도 있다. 2015년 영화 ‘하드코어 헨리’는 게임의 외피를 입은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1인칭 시점에서 진행되는 영화는 1인칭 슈팅(FPS) 게임 장르를 꼭 닮았다. 슈팅 게임을 하는 게이머들은 게임 캐릭터의 눈높이에서 주변을 판단하고 적을 찾고 총을 쏴야 한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헨리는 기억을 잃은 채로 눈을 뜨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시청자들은 헨리의 시야 밖을 볼 수 없다.
   
   앵글만 게임을 닮은 것이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여자 주인공은 주인공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고 기계화된 신체의 기능을 설명해준다.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조작법을 알려주는 과정, 튜토리얼이 나오는 것과 꼭 닮았다. ‘어디로 가서 적을 처치하고 아이템을 가져오라’는 임무수행, 스마트폰에 표시된 지도를 보며 주인공이 이동하는 장면, 위기에 몰린 주인공이 아드레날린 주사를 맞고 전세를 뒤엎는 전개 역시 게임의 감각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그래서 게임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시도라는 호평을, 게임을 거의 접하지 않은 시청자에게는 낯선 감각만을 불러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와 게임이 얽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히 이뤄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원래 플레이(play)라는 영어 단어는 ‘놀다’ ‘하다’라는 동사와 ‘공연’ ‘연기’라는 명사를 아우른다. 전자는 게임이고 후자는 영화다. 영화와 게임이 하나의 단어로 묶이듯 두 장르는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뒤섞이고 배우고 있다. 보는 게임과 하는 영화의 교차점에서 앞으로 어떤 작품이 나올 수 있을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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