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트푸드’ 전문인 뉴욕 키친네트의 비스킷.
‘컴퍼트푸드’ 전문인 뉴욕 키친네트의 비스킷.

‘키친네트(Kitchenette)’는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와 할렘을 이어주는 암스테르담로(Amsterdam Avenue)와 웨스트 123번가가 만나는 꼭짓점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에 티처스칼리지, 유니온신학교, 버나드칼리지와 맨해튼 음대 등이 위치해 있고 록펠러가 지어준 대학생 및 대학원생을 위한 기숙사인 인터내셔널하우스가 있어서 고층빌딩 가득한 맨해튼의 분위기와는 좀 거리가 있는 영락없는 대학가이다. 서울로 치면 고려대, 성신여대, 경희대, 외국어대와 카이스트경영대학원 등이 몰려 있는 성북구와 동대문구가 만나는 지역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이들 학교에서 키친네트까지는 걸어서 5~10분쯤 걸린다. 얼마 안 되는 짧은 거리는 맞지만 뉴욕의 추운 겨울에 이 정도 거리를 가려면 귀마개까지 단단히 무장을 해야 한다. 추운 겨울날 허드슨강에서 부는 강바람과 높은 건물을 휘휘 돌아 뻥 뚫린 도로 위로 불어대는 칼바람을 지나 이곳에 오면 자연스럽게 식욕을 느끼게 된다. 방풍용 비닐문을 지나 한 사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훈훈한 실내가 따듯하게 반겨준다. 히터가 아니라 수증기 새는 소리가 나는 라디에이터 난방으로 데워졌을 것 같은 실내의 온기가 식당이 아니라 미국의 가정집에 온 것 같다. 진열장을 가득 채운 조각케이크와 쿠키들이 식욕을 더욱 자극한다. 집에 갈 때 한두 개는 꼭 사가야 할 것 같은 생김새이다. 주방에서 풍겨나오는 음식 냄새를 가르며 미소를 얼굴 가득 보여주는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우회전을 두 번 하고 식탁이 다닥다닥 붙은 통로를 지나 자리에 앉는다. 좁은 공간을 활용하다 보니 가게를 반으로 나누어 활용도를 높였다. 한쪽은 통로 겸 진열장이고 나머지 한쪽은 식사 공간이다. 식사하는 공간이 스티커와 장식이 붙어 있는 통유리를 통해 바깥에서 보인다.

뉴욕 컬럼비아대학 인근에 있는 키친네트 외관.
뉴욕 컬럼비아대학 인근에 있는 키친네트 외관.

11석의 작은 식당에서 출발

키친네트는 1994년 리사 홀(Lisa Hall)과 앤 니킨슨(Ann Nickinson)이 맨해튼 남쪽 트라이베카(Tribeca)에 11석의 작은 식당으로 출범했다. 당시에는 아침과 점심에만 영업을 했다. 현재는 맨해튼 북쪽인 모닝사이드 하이츠(Morningside Heights)와 뉴욕시 북쪽 뉴욕주 허드슨밸리(Hudson Valley) 지역의 작은 마을인 하이폴스(High Falls) 두 곳에도 있다. 설립자인 홀과 니킨슨은 여러 가지 면에서 사뭇 다르다. 홀은 뉴욕시 출생이고 뉴욕에 있는 유명 요리학교인 ‘프렌치컬리너리인스티튜트(French Culinary Institute)’를 졸업했다. 학교 졸업 후 프랑스 파리에서 살면서 일한 경험도 있다. 현재 뉴욕시의 키친네트를 맡고 있다. 이에 비해 니킨슨은 보스턴 출신이고 요리 관련 학교를 다니지 않고 독학을 했다. 어릴 적부터 요리를 좋아했단다. 뉴욕시 농산물장터(farmers market)에서 빵을 만들고 팔면서 식당 일을 시작하였다. 홀과 함께 맨해튼 키친네트에서 일하다 지금은 이사하여 하이폴스점을 책임지고 있다. 모닝사이드 하이츠점은 2000년대 중반에 열어서 15년 정도 되었다. 규모는 작지만 단단하게 성장했다.

키친네트는 ‘컴퍼트푸드(Comfort Food)’를 전문으로 한다.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하거나 감상에 빠지게 하는 음식을 말한다. 보통 칼로리가 높고 탄수화물의 비중이 높으며 만들기 쉬운 게 특징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콤퍼트푸드는 치킨수프, 닭튀김, 비스킷, 으깬 감자, 마카로니와 치즈 등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라면이나 떡볶이, 어묵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닭튀김은 두 나라 공통이다. 미국의 경우 고향집을 연상시키며 시골 농가의 음식, 또는 남부 음식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수다 떨면서 편하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는 음식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키친네트는 아침·점심·저녁 메뉴가 나뉜다. 오전에는 비스킷, 오믈렛 등 달걀 요리, 베이컨, 소시지 등이 주요리인데 오후 4시 반까지 판매한다. 점심은 각종 샌드위치, 버거류, 샐러드 등을 판다. 오후 5시까지 파는 메뉴이기 때문에 아침 메뉴와 판매시간이 대부분 겹친다. 저녁 메뉴는 ‘디너 메뉴(Dinner Menu)’가 아니라 ‘서퍼 메뉴(Supper Menu)’라고 쓰여 있다. 즉 밥 먹을 때와 상관없이 잘 차려진 음식을 뜻하기에 보통 저녁에 먹는 디너(Dinner·만찬)가 아니라 저녁에 먹지만 잘 차려지지는 않았다는 의미로 Supper(석식)를 사용한다. 그래서 많은 메뉴가 아침·점심 메뉴와 겹친다.

아무래도 아침에 문 열자마자부터 저녁식사 직전까지 파는 아침식사를 찾는 손님이 가장 많다. 비스킷이 특히 맛있고 메뉴도 다양하다. 비스킷 코너라는 분류하에 비스킷과 달걀은 기본이고 선택은 취향껏 하면 된다. 인근 학교와 이웃의 이름을 딴 메뉴 구성이 이채롭다. 시금치와 케일, 염소 치즈를 올린 비스킷의 이름은 인근의 아이비리그 대학명인 컬럼비아(Columbia)이다. 칠면조 소시지와 스위스 치즈, 고추를 더한 것은 동네 이름을 따서 모닝사이드(Morningside)이다. 왠지 이 집의 대표 메뉴일 것 같은 키친네트는 베이컨과 체다치즈가 곁들여진다. 이 외에도 인근 여대인 버나드(Barnard), 맨해튼 윗동네 사람이라는 뜻의 업타우너(Uptowner), 가게 앞을 지나는 큰길 이름인 암스테르담(Amsterdam), 두 블록 지나서 시작되는 동네인 할렘(Harlem) 등의 이름을 붙인 비스킷들이 있다. 할렘은 남부식 닭가슴살튀김이 미국 치즈 및 달달한 버터와 함께 제공되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식인 소울푸드(soul food) 느낌이 제대로 난다.

이 중 키친네트는 미국인들이 아침으로 가장 많이 먹는 베이컨과 함께 나와 인기가 높다. 키친네트에서 쓰이는 베이컨은 슈가큐어드베이컨(sugar-cured bacon)이다. 베이컨을 가공할 때 저민 돼지뱃살에 소금, 설탕, 허브와 향신료를 첨가한다. 바싹 구워져서 나오는데 밋밋한 일반 베이컨에 비해서 풍미가 깊고 맛이 실하다. 칼로 썰어서 우아하게 먹기보다는 맨손으로 집어서 육포처럼 질겅질겅 씹어먹는 사람들이 많다. 한 조각은 그냥 먹고 나머지 한 조각은 달걀 오믈렛 위에 적당히 녹아 있는 체다치즈 위에 올려서 먹는다.

한 손에 쥐어지는 키친네트를 베어 물면 마치 안타를 펑펑 쳐대는 야구의 클린업 트리오가 생각난다. 1번 타자는 기름에 튀긴 비스킷의 고소한 맛, 2번 타자는 바사삭 소리가 나는 베이컨, 3번 타자와 4번 타자는 치즈와 달걀이 범벅이 되어 동시에 타석에 들어선다. 고칼로리를 섭취하지만 컴퍼트푸드라는 말에 ‘편안한 음식’이라며 즐거워할 따름이다. ‘맛있다’라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되뇌기 전에 이미 한입을 더 베어 먹게 된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지만 아무래도 열량이 높다 보니 먹는 양이 그리 많지는 않다. 커다란 주전자에서 하염없이 따라주는 커피를 마시면 기름기가 좀 가신다. ‘커피는 그래도 블랙으로 마시잖아!’ 하며 점심 분량까지 섭취한 칼로리를 스스로 위안하게 된다. 비스킷에서 흘러나온 기름에 범벅이 된 베이컨과 치즈 속에서 퍼덕거리는 달걀 덩어리를 씹으면서 말이다.

미국식 달걀말이인 오믈렛도 특색이 있다. 우리는 점심 도시락이나 밤에 술안주로 주로 먹지만 미국인은 달걀말이를 꼭 아침식사로 고집한다. 여성을 겨냥한 카우걸(Cowgirl)과 남성용으로 여겨지는 카우보이(Cowboy)가 주로 학생들 눈에 띈다. 카우걸은 오믈렛에 구운 토마토와 양파, 고추가 첨가되어 채식주의자의 한 종류인 오보 베지테리언(Ovo vegeterain)을 위한 음식 같다. 카우보이는 쇠고기로 만든 햄의 일종인 패스트라미(Pastrami), 양파, 고추에 스위스 치즈가 더해진다. 달걀 세 개로 만들어진 오믈렛으로 단백질 섭취는 하지만 절대로 육류를 포기할 수 없는 상남자스러운 오믈렛이다. 짭짤한 패스트라미와 불에 그을린 스위스 치즈가 그 맛을 더한다.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이 어울린 든든한 아침식사다.

집밥이 그리울 때

카페테리아 메뉴에 질린 근처 대학교의 교수들도 이곳에서 늦은 아침이나 점심시간에 모여 앉아 커피와 함께 아침 메뉴를 먹는 게 다반사다. 카페테리아보다는 아무래도 비싸기 때문에 무한정 제공되는 커피를 계속 리필해 마시면서 말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때문에 학부생보다는 대학원생이 많이 보인다. 창문 바깥에서 보면 아이비리그 대학교 학생들의 학구열에 가득 찬 진지한 토론으로 보이지만 옆에서 들어보면 쓸데없는 잡담들이 대부분이다. 친구 및 동료들과 잠깐 밥 먹는데 뭐 그리 대단한 이야기를 하겠는가. 세계에서 레스토랑 물가가 14번째로 높은 도시이다 보니 가격은 부담이 된다.(도쿄는 208위, 서울은 215위. 전체 물가는 각각 10위, 18위, 24위) 비스킷과 달걀 위에 소시지, 햄, 베이컨, 양파 등을 선택하면 10.50달러에 이른다. 여기에 감자나 샐러드를 추가하면 4.50달러가 더해져 15달러(약 1만7000원)이다. 소비세 8.875%(1.33달러)가 더해지고 팁 15% 내외(2.50달러 정도)를 더하면 훌쩍 19달러에 달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2만1000원이 넘는다. 오믈렛은 이보다 50센트가 더 비싸다. 커피는 제외하고 말이다. L제과에서 나오는 빠다코코넛 비스킷이 아니라 KFC에서 파는 작은 주먹 크기의 튀긴 빵이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출입구로 가는 통로에는 들어오는 길에 보았던 맛있는 케이크와 과자들이 달콤한 향과 현란한 색깔로 유혹을 한다. 배고프면 먹으려고 컵케이크 하나 사고, 점심 건너뛰는 대신에 먹으려고 스콘 하나 사고 하다 보면 이것저것 사게 된다. 이 집의 파이는 미국에서 엄마들이 간식으로 만들어주는 파이의 분위기와 맛을 그대로 전한다고 미국 친구들이 이야기했다. 투박한 파이크러스트에 블랙베리, 체리, 복숭아, 사과 등이 부족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속을 채우고 있다. 떠나온 집 생각을 나게 만든다고 했다. 설탕에 절인 과일로 채워져 달기는 했지만 과일의 향과 맛을 해치지는 않는다. 설탕에 오래 담아놓아서 과일의 맛과 향이 강해졌고, 오븐에서 구웠기에 더 달콤했다. 그러나 설탕이 과해서 나는 역한 맛은 전혀 나지 않았다.

키친네트의 사전적 의미는 ‘주방으로 쓰이는 작은 방 또는 공간’이다. ‘Kitchen’은 요리에 필요한 주방시설이 모두 갖추어져서 요리의 준비부터 조리까지 모두 할 수 있는 넓은 독립된 공간을 부르는 데 비해 ‘Kitchenette’는 보통 오븐과 전자레인지만을 갖춘 간이주방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의 오피스텔이나 원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싱크대와 레인지 등이 붙어 있는 조리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주방도 아니고 간이주방에서 무슨 제대로 된 요리를 내겠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이 집의 상호일 뿐이다. 진열장이 놓여 있는 통로와 식사 공간이 맞닿는 면 안쪽으로 요리사 여러 명이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있는 제대로 된 주방이 놓여 있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그리며 기숙사 한쪽에서 음식을 데워 먹는 인근 대학생, 대학원생들의 마음이나마 데워주려고 그런 이름을 썼을 것 같다.

고향에 있는 엄마가 해주는 단출하고 소박한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나 미국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마치 설을 맞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듯한 떡국 한 그릇을 떠올리는 귀향객들의 마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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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권 명지대학교 청소년지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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