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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43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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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바흐 탄생 333년 전곡 연주 대장정이 뜻하는 것

글·사진 정준호  음악칼럼니스트 

▲ 바흐가 봉직했던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앞의 바흐 동상.
주간조선 2540호에서 2019년에 주목할 클래식 무대를 조명하며, 네덜란드바흐협회(Netherlands Bach Society)가 진행 중인 ‘올 오브 바흐 (All of Bach)’라는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오는 2021년까지 바흐의 전곡을 연주하고, 그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하는 대장정이다. 주위에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네덜란드에서 한다면 믿을 만한 수준인가? 전곡이라면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왜 바흐인가?
   
   작년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탄생 333주년이었다. 특별한 숫자긴 하지만 딱히 전례는 없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는 중요 인물이나 이벤트를 따질 때 매 100년이나 50년뿐만 아니라 111주년, 222주기도 살펴야 하는 걸까? 일단 ‘333’이라는 숫자는 세계적인 음반사 유니버설뮤직의 마케팅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회사가 탄생 333주년까지 헤아려 바흐의 전집을 내놓은 데서 음반업계의 조급한 심경을 읽을 수 있다.
   
   1980년대 초에 탄생한 콤팩트디스크는 30여년 만인 2014년에 디지털 음원에 수익을 추월당했다. 그에 앞서 20세기 초 SP가 LP로 바뀐 것이나, LP에서 CD로 넘어간 것도 비슷한 30년주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원반의 크기나 소리를 읽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방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는 점에서 전과 달랐다. 음원 유통에서 물성(物性)이 사라진 것이다. 머지않아 음반(音盤)이라는 말도 역사 속으로 흘러갈 것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클래식 음반 업계의 전집물 출시이다. 대중음악에 비해 그래도 실물 소장 가치가 컸던 클래식 시장마저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고, 음반 시장의 토대가 사라질 것을 의식한 주요 회사들이 앞다퉈 카탈로그를 염가 박스로 정리한 것이다. 그러니 바흐의 탄생 350주년이나 타계 300주기는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맞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음반 업계가 맞을 특수(特需)는 사실상 내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333’이라는 숫자라도 끄집어내서 CD 시대 마지막 바흐 전집을 내놓게 된 이유이다.
   
   
   왜 바흐인가
   
   19세기 후반 내내 바흐의 전집을 정리해 악보를 출판하는 사업이 이어졌고, 20세기 전반에는 주요 작품이 음반으로 처음 녹음되었다. 그러나 작품목록으로 1000개가 넘는 방대한 카탈로그를 모두 녹음하는 것은 20세기 내내 쉽지 않은 일이었고, 2000년 바흐 서거 250주기를 맞아서야 나란히 세 개의 전집이 첫선을 보였다.
   
   먼저 텔덱(현재 워너뮤직)의 전집은 1960년대에 시작해 1985년 바흐 탄생 300주년에 즈음해 완성된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두 사람의 칸타타 전집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1080곡에 달하는 바흐의 작품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것이 220여곡에 달하는 칸타타이고, 총 154장의 CD 가운데 60여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헨슬러의 전집은 그보다 단기간에 완성한 기획이라 텔덱에 비해 가치가 컸다. 이쪽도 헬무트 릴링이 이끄는 슈투트가르트 바흐 아카데미의 칸타타 전집 녹음을 토대로,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당대 스타일 연주 방식의 앞선 성과를 집대성한 것이었다. CD 172장 구성에 연주의 완성도와 녹음 상태도 LP 시대보다 훨씬 우수했다.
   
   끝으로 네덜란드의 브릴리언트라는 독립 음반회사가 155장으로 된 바흐 전집을 파격가에 내놓았는데, 이때 칸타타 파트를 비롯해 많은 부분을 바로 네덜란드바흐협회가 맡았다. 작년에 나온 유니버설의 ‘바흐 333’(222장의 CD)은 사실상 마지막 CD 전집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독립 기획이라기보다는 자사 카탈로그에 없는 곡을 작은 음반사들의 음원을 가져와 짜깁기한 점이 아쉽다.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메이저 자동차 회사가 전기나 수소를 연료로 하는 자율자동차 시대를 앞두고 마련한 디젤차 고별전을 위해 자사 라인업에 없는 모델을 타사에서 꾸어와 카탈로그를 마련한 격이다.
   
   그래서 브릴리언트의 전집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전곡 연주에 도전한 네덜란드의 장인들이 더욱 돋보인다. 아니 사실 세대가 교체되었다. 지난 세대를 이끌었던 합창 지휘자 요스 판 벨트호벤이 작년에 물러나고 1984년 일본에서 태어난 바이올리니스트 사토 슌 스케가 새롭게 네덜란드바흐협회를 이끈다. 30여년 전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일본의 소니가 힘을 합쳐 콤팩트디스크를 만들었던 것이 떠오른다.
   
▲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와 더불어 음악을 책임졌던 성 니콜라이 교회. 장대하고 화려한 바로크 장식이 그의 음악과 일맥상통한다.

   250여곡 바흐 칸타타를 담는다
   
   네덜란드바흐협회는 왜 이 시기에 바흐의 전곡을 연주하는 것일까? 바로 완성을 목표로 한 2021년이 창단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은 단순하고도 원대했다. 바흐가 남긴 최고의 걸작인 ‘마태수난곡’을 연주하기 위한 것이었다. 창단 이듬해 4월 그리스도 수난일에 이들의 첫 ‘마태수난곡’이 봉헌되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역사상 첫 ‘마태 수난곡’ 녹음이 네덜란드 거장 빌럼 멩엘베르흐의 지휘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때는 무려 450명의 합창단이 동원되어, 바흐 당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네덜란드는 벨기에와 더불어 바로크 양식 부활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프란스 브뤼헨, 톤 코프만과 같은 선구자들이 바흐 당대의 연주 방식을 복원하는 연구에 매진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마태수난곡’을 연주하는 데 필요한 기악과 성악의 훈련이 각급 학교 교양 교육의 주요 과정이 되었다.
   
   요스 판 벨트호벤은 1983년 31세의 나이로 네덜란드바흐협회 감독이 된 이래, 40년 넘게 자리를 지키다가 자신이 처음 부임했던 나이의 일본 연주자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사토 스케의 어깨에 새 술을 빚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새 부대에 담는 중책까지 맡겨진 것이다. 물론 사명감과 긍지로 똘똘 뭉친 동지들이 일당백의 기세로 든든히 곁을 지킨다.
   
   ‘바흐’라는 이름으로 작년에 시작한 이들의 새로운 유튜브 바흐 전집도 칸타타 녹음이 주를 이룬다. 칸타타란 개신교 예배를 위한 음악이며, 오케스트라와 합창에 독창자가 가세하는 대규모 음악이다. 대개 매주 있는 예배를 위해 시의적절한 가사에 곡을 붙였고, 교회나 공동체의 중요한 기념일을 위한 곡도 있다. 바흐는 생애 중반 이후 라이프치히에 자리 잡고 첫 5년 동안 매주 교회력에 따른 칸타타를 썼다. 어림셈으로만 250곡인 것이다. 칸타타는 그가 쓴 여러 악기를 위한 독주곡과 합주곡, 성악의 성과를 하나로 집약한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익히 아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나 ‘G선상의 아리아’, ‘러버스 콘체르토’ 같은 선율이 칸타타의 뼈대인 것이다.
   
▲ 바흐의 유해를 안장한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바흐가 아니라 바다이다”
   
   그렇다면 왜 바흐인가? 1685년에 태어나 1750년에 세상을 떠난 바흐의 업적을 압축해 보여주는 여러 언급이 있다. ‘바흐(Bach)가 아니라 바다(Meer)이다’라는 베토벤의 말이 가장 유명하다. 독일어로 바흐는 시냇물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그의 업적으로 보자면 ‘바다’라고 불러야 한다는 뜻이다. ‘적도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처는 오르가니스트와 전기의 저자로 이름난 바흐 전문가였다. 그는 바흐를 이렇게 평가했다. ‘바흐는 시작이자 끝이다. 모든 것이 그로부터 나왔으며, 그에게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없다.” 그들만큼 주목받을 리는 없지만 나는 바흐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고 너무나 뿌듯했다. “바흐는 다른 어느 작곡가보다 위대한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작곡가를 합친 것보다 위대하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것을 어떻게 이런 한정된 지면에 일반 독자들을 위해 설명하겠는가마는 짧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다른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음악도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더불어 만개했다. 소나타, 콘체르토, 신포니아, 오페라와 같은 음악의 형태가 모두 이탈리아의 교회와 궁정에서 비롯되었다. 연주자가 따라야 할 템포와 셈여림의 지시어도 이탈리아 말이었다.
   
   프랑스는 절대왕정기에 이탈리아의 앞선 양식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 그러나 독일은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300개가 넘는 작은 나라로 쪼개진 탓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와 같은 저변을 마련할 여력이 없었다. 당대 모든 예술의 집약인 오페라를 상연할 만한 극장도 없었다. 기껏해야 베르사유를 본떠 허세를 부린 작은 공국의 궁정마다 10여명 남짓한 악사들이 활동했을 뿐이다. 또는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합창단을 이끄는 음악가들이 고작이었다. 바흐도 처음에는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런 군소 악단이 난립한 것이 독일에 행운이었다. 음악가들이 더 나은 처우를 위해 이동하고, 경쟁하면서 자연히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또 마틴 루터 이래 모국어로 번역된 성서와 교리, 그것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부른 노래가 독일의 자산이 되었다. 앞선 인쇄술과 출판의 확대는 바흐가 이탈리아에 직접 가보지 않고도 그들의 성과를 악보로 접할 수 있게 했다. 바흐가 몸담았던 도시들은 여건이 안 되었기에 그는 오페라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칸타타와 수난곡은 당대 오페라의 일인자였던 비발디나 헨델의 작업과 가사만 달랐지 만듦새는 같았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부활시킨 찬란한 르네상스의 성과를, 그것을 미처 향유하지도 못한 독일의 작곡가가 집대성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야말로 단숨에 뛰어넘은 것이었다. 서양 음악의 최전성기라 할 19세기 들어 독일의 음악은 말 그대로 다른 나라를 압도했다.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오페라의 일인자였던 베르디가 한 말이 이를 보여준다.
   
   “독일이 여전히 바흐의 아들인 것은 행운이다. 팔레스트리나(16세기 르네상스 최고의 작곡가)의 후예인 우리도 위대한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그 수준이 낮아져 이제는 폐허가 될 위험에 처했다.”
   
   이탈리아 음악가로서 가진 긍지와 더불어 라이벌에 비해 열세인 현실도 인정한 것이다. 베르디는 또 다른 기회에 이렇게 말했다. “독일 음악은 교향악적이고 처음부터 구조와 화성에 주목한다. 반면에 이탈리아 음악의 핵심은 ‘선율’이다. 만일 바흐로부터 내려오는 독일이 바그너에 이르렀다면 그것은 잘된 일이다. 그렇다고 팔레스트리나의 후손인 우리가 바그너를 모방한다면 음악의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다.”
   
▲ 네덜란드바흐협회를 이끌고 있는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사토 스케. photo 사토 스케 홈페이지

   독일은 바흐에서 시작됐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차이를 예리하게 지적한 이 말들의 중심에 바흐가 자리한다. 바흐라는 천재를 통해 독일이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다. 일단 솟구친 다음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곧이어 모차르트는 하늘에서만 가능할 것 같던 바흐의 음악을 지상으로 가져왔다. 베토벤은 그 지상의 아름다움에 따뜻한 사람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바흐와 모차르트, 베토벤과 더불어 하늘이 땅 위에서 이루고자 한 뜻은 모두 이루어졌다.
   
   뒤따르는 슈베르트와 슈만, 브람스는 베토벤의 숭고한 가치를 더욱 깊이 뿌리내리게 했다. 그리고 바그너가 비로소 극장을 독일 예술의 새 터전으로 제시했다. 오페라 안에서라면 불가능한 것이 없어 보였다. 신화의 밑바닥부터 인간의 가장 깊은 속마음까지 음악은 파헤치고 또 파헤쳤다. 19세기 말 구스타프 말러는 교향곡이라는 형식에 종지부를 찍었고, 같은 시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무대음악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세기 쇤베르크에 이르러 바흐의 시스템이 수명이 다했다고 선언하고,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이것이 슈바이처가 말한 ‘시작과 끝’이요, 다른 나라가 인정하기 싫더라도 서양 음악사의 클라이맥스인 것이다. 뭇사람들이 비발디의 ‘사계’나 베르디의 ‘여자의 마음’을 흥얼거릴지언정, 유럽연합의 노래로 불리는 것은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고 그 내용과 형식의 뿌리는 바흐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바흐 음악의 본질은 무엇인가? 자신을 둘러싼 루터교 신앙을 바탕으로 했기에 모든 악보에 ‘오직 한 분이신 주님께 영광 (Soli Deo gloria)’이라고 적었지만 그것은 결국 공동체 전체의 선(善)을 지향하는 것이다. 네덜란드바흐협회의 한 공연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작년 3월 네덜란드는 하원 선거를 치렀다.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극우정당이 힘을 얻느냐 마느냐를 가름할 중요한 선거였다. 선거를 한 달쯤 앞두고 바흐협회는 바흐가 라이프치히 시의회의 개원을 축하하기 위해 연례적으로 작곡한 칸타타들을 연주했다. 시민의 선택을 받아 의원이 되는 것이 얼마나 막중한 임무인지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이 음악들은 18세기에나 21세기에나 그 의미가 매한가지이다.
   
   바흐의 음악이 진정 필요한 곳은 금배지 달고 기념사진 찍는 것이 특권이 되는 사회가 아닐까! 어려운 사람을 돕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기부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다음 세대가 새로운 플랫폼에서 바흐의 음악을 듣는 데 힘을 보태는 것 또한 뜻깊다. 굳이 돈을 내지 않더라도 많이 보면 도움이 되는 시대이다. 아시다시피 네덜란드가 유럽연합을 탈퇴한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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