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의 시장 풍경. 바다·산·평야를 모두 품은 나폴리는 신선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한 음식 천국이다. ⓒphoto 유튜브
나폴리의 시장 풍경. 바다·산·평야를 모두 품은 나폴리는 신선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한 음식 천국이다. ⓒphoto 유튜브

‘인 시추(In Situ)’.

라틴어로 ‘현장에서’ ‘바로 그 장소에서’라는 의미다. 형이상학, 형이하학 모든 분야에 통용되는 말이다. 특정 동물이나 식물을 연구할 때, 생식하는 현장 생태계를 기반으로 한 ‘인 시추’가 필수적이다. 백두산 호랑이에 관한 연구는 백두산 주변에서 이뤄져야 한다.

나폴리는 ‘인 시추’의 총집산지처럼 느껴진다. 나폴리에 직접 가서 경험해야만 참맛을 알 수 있는 것들이 넘치고 넘친다. 흔히들 떠올리는 나폴리의 상징, 피자만 해도 그렇다. 이탈리아 다른 도시나 유럽 어디에 가도 나폴리 피자를 만날 수 있다. 사실 나폴리 밖의 도시에서 나폴리타노가 직접 경영하는 피자집도 많다. 그러나 맛이 전혀 다르다. 나폴리를 벗어나는 순간, 아무리 솜씨가 뛰어난 나폴리타노가 만들었다 해도 맛이 ‘확’ 떨어진다. 나폴리산 재료를 100% 쓴다 해도 전혀 다르다. 태양·바다·바람·물·땅을 포함한 나폴리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의 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폴리 피자는 ‘인 시추’로 접근할 때만 알 수 있는, 나폴리 안에서만 통하는 음식이다.

2월 초 다시 나폴리로 향했다. 지난 1월의 여행을 포함해 최근 2년 동안 전부 5번이나 나폴리를 방문한 셈이다. 왜 나폴리에 자꾸 끌리는 것일까. 왜 유럽 여행에 나서면 나폴리가 머릿속 어딘가를 꼭 차지하고 들어서는 것일까. 예술 분야에 관한 ‘인 시추’가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박물관이 아니라 원래 존재하던 곳에서의 예술이다. 특히 교회 내 성화나 조각이 그렇다. 나폴리는 교회의 숫자 측면에서 유럽 최정상에 서 있다. 유럽 박물관 어디에 가도 볼 수 있지만 나폴리 교회에서 접하는 ‘인 시추’ 성화는 차원이 다르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걸린 최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보다 나폴리에서 만나는 빛바랜 무명의 성화가 한층 더 고결하고 인상 깊게 와닿는다. 그게 그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유럽 박물관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는 그림 ‘마리아와 어린 예수(Madonna con Bambino)’를 예로 들어보자. 미래에 닥칠 예수의 죽음을 알고 있는 듯, 마리아의 슬픈 표정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어린 예수가 아니라 어머니 마리아가 그림 속의 주인공이다. 자식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신의 아들 예수가 겪을 미래의 비극을 동시에 표현해내야만 하는, 화가의 ‘진짜 실력’을 가늠하는 성화다. 모두 비슷한 듯해도, 자세히 보면 백인백색이다.

인 시추, 바로 그곳에서

나폴리 ‘인 시추’로서의 성화, ‘마리아와 어린 예수’는 어떨까. 박물관과는 차원이 다르다. 원래 걸려 있던 교회의 바로 그 장소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밝고 화려한 루브르가 아니라 교회 특유의 유황 냄새와 더불어 어두운 촛불에 의존한 춥고도 낡은 공간 속에서 접하는 성화다. 속(俗)의 박물관, 성(聖)의 교회에서 접하는 성화의 차이다. 상식이자 예의지만, 필자의 경우 박물관에서 성화를 접할 때 ‘반드시’ 무릎을 접고 거의 바닥에 앉은 상태에서 본다. 밑에서 위로 쳐다보는 관람법이다. 가톨릭이 아니라 그리스정교에 기초한 비잔틴 성화는 낮은 자세에서 45도 측면 관람이 기본이다. 왜일까. 21세기 현대인이라면 궁금해하겠지만, 불과 2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인 모두가 알고 있던 상식적인 이유 때문이다. 신은 인간과 동일선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답이다. ‘감히’ 인간의 눈높이로 신을 봐서는 안 된다. 교회의 성화는 최하 2m, 높으면 10m 정도 되는 곳에 걸려 있다. 기도를 하며 아래에서 쳐다보는 것이 기본이다. 박물관은 눈높이 수준이거나 높다 해도 1m 높이가 전부다. 그림만이 아니라 조각도 마찬가지다.

음식은 예술과 더불어 나폴리 ‘인 시추’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다. 피자만이 전부가 아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음식의 질적 수준도 양적 기반에서 시작된다. 인구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나폴리는 중세 이래 항상 인구에서 수위에 선 도시다. 17세기 중반에는 파리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 18세기에는 파리, 런던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항상 50만이 넘었다. 바다에 인접한 탓에 주기적인 전염병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유럽에서 손꼽히는 인구밀집 도시로 성장해왔다. 21세기 들어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밀려났지만 도시 면적당 인구밀도로 치자면 아직도 유럽 1위다.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 속에 채워진 입체형 미로 같은 도시가 나폴리다.

나폴리 음식은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밀집형 도시의 부산물이다. 바다·산·평야 모두를 품은 지리적·지형적 장점을 되살린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나폴리에 있다. 참고로 ‘나폴리=피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시칠리아를 거쳐 나폴리에 상륙한 미군을 통해 유명해진 음식이 피자다. 카우보이 문화에 걸맞게, 간단·신속·편리라는 장점으로 인해 곧바로 미국에 상륙했다. 뉴욕의 얇은 피자, 시카고의 두꺼운 피자도 전부 나폴리 피자를 모방한 음식이다. 전후(戰後) 탄생된 짝퉁 음식에 불과하다. 토마토나 치즈 대신 시푸드를 올리는 ‘마레(Mare)’ 피자도 미국인에 의해 개발된 퓨전음식이다.

값비싼 강남의 기사식당?

이번에 나폴리에 들른 이유가 바로 나폴리 음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였다. 음식 ‘인 시추’인 셈이다. 찾아간 곳은 나폴리의 강남에 해당하는 키아이아(Chiaia)의 ‘오스테리아 다 토니노(Osteria da Tonino)’. 보통 한국 관광객이 나폴리에 들를 경우 주된 무대는 동쪽 지역 구도심지다. 나폴리 전체가 구도심지이지만, 서쪽 키아이아는 고급문화에 익숙한 부자들의 영토다. 서쪽 관광지에 비해 물가가 거의 두 배 정도 높다. 밀라노에서 볼 수 있는 고급 브랜드 가게가 밀집된 곳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나폴리는 유럽 정치무대에서 ‘딜(Deal)’의 도시로 통해왔다.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고받는 전리품 취급을 받아 주기적으로 새로운 주인이 나타났다. 1503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프랑스를 물리치고 나폴리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른바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주인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나폴리의 황금기에 해당하던 시기로, 키아이아는 당시 개발된 계획도시다.

당시 점령군 스페인은 나폴리 서쪽 해안선을 따라 스페인풍의 바로크 건물들을 세웠다. 지금은 고급 호텔로 활용되고 있지만, 모나코나 니스와 같은 해변도시의 원조가 키아이아다. 토니노는 그 같은 ‘나폴리 강남’의 한가운데 들어선 음식점이다. 그러나 레스토랑이 아닌 오스테리아다. 와인이나 간단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간이식당으로, 정장 차림으로만 입장이 가능한 고급화된 레스토랑이 아니다. 흙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금수저를 위한 음식점이 아니다. 비싼 강남지역에 기사식당이 들어선 격이다.

‘Dal 1880’이라는 상호가 힌트가 될 수 있다. 토니노라는 음식점 이름 뒤에 붙은 단어로, ‘1880년 이래’라는 의미다. 역사가 139년이나 되는 노포라는 의미다. Dal은 ‘인 시추’로서의 나폴리를 상징하는 단어다. 영어의 Since로, 창립연도를 알려주는 말이다. 이탈리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특히 나폴리에 가면 곳곳에 새겨져 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나폴리타노를 위한 재래시장에서 발견한 키오스크 노점조차 ‘Dal 1935’를 달고 있다. 오렌지주스와 에스프레소를 파는 단 한 명이 일하는 좁은 공간이지만 84년 동안 3대가 지킨 나폴리의 유물 유적이라는 자랑이다.

토니노는 나폴리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점이다. 피자만 고려할 경우 ‘Dal 1830’이 새겨진 포트 알바(Antica Pizzeria Port’Alba)라는 레스토랑이 있지만, 앉아서 와인과 함께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는 토리노가 가장 역사가 오래됐다. 나폴리에서 일반인을 위한 음식점이 처음 생긴 것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다. 18세기까지만 해도 귀족은 집에 요리사를 뒀고, 서민들은 피자나 빵처럼 길에서 때우는 서민용 음식을 즐겼다. 보통 사람이 돈을 주고 식사를 할 정도의 금전적 여유가 없었다. 토니노도 원래 음식 전문이 아니라 와인 거래를 주로 하는 간이음식점에서 출발했다. 부자 지역의 음식점이지만 레스토랑이 아니라 오스테리아란 상호를 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1대 주인인 안토니오(Antonio)가 영업을 시작한 이래 현재 6대 주인인 시모네(Simone)로 이어져왔다.

139년 노포 ‘토니노’의 메뉴. 윗쪽부터 라구와 멸치튀김. 맨아래는 토니노 입구. ⓒphoto 유민호
139년 노포 ‘토니노’의 메뉴. 윗쪽부터 라구와 멸치튀김. 맨아래는 토니노 입구. ⓒphoto 유민호

매일 달라지는 메뉴

토니노에 들른 것은 저녁이다. 필자의 경우 음식점에서의 저녁은 가급적이면 피하지만 초등학생 2명을 포함한, 나폴리타노 친구 가족을 초대한 자리였기에 할 수 없이 저녁으로 결정했다. 평소에 손님으로 터져나가는 곳이라고 들었기에 저녁이 시작되는 7시에 맞춰 약속을 잡았다. 스페인 북부 아프리카처럼 나폴리의 저녁식사는 보통 9시부터 시작된다. ‘인 시추’로서의 음식을 만끽하기 위해 약속 1시간 전에 들러 토니노 주변을 샅샅이 살펴봤다. 해안선에 세워진 초대형 건물들을 통해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영광과 번영을 실감할 수 있다. 크고 높고 깊고 넓다. 나폴리와 시칠리아는 신대륙 발견 이후 세계 최강 부국으로 등장한 스페인이 만든 신도시다. 그러나 토니노는 그 같은 16~17세기의 추억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키아이아 지역이기는 하지만, 해변가가 아니라 육지로 100m 정도 안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지배층이 아니라 당시의 나폴리타노 흙수저를 위한 ‘싸구려 밥집’으로 출발했다는 의미다.

안으로 들어서자 ‘인 시추’의 분위기가 와닿는다. 19세기 말 설립 이래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분위기로 유지돼온 곳이다. 장구한 역사에 걸맞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조망할 수 있다. 1대부터 6대에 이르는 토니노 가족사가 사진으로 표현돼 벽에 걸려 있다. 사보이가(家)의 왕손, 노벨문학상 수상자, 영화배우 알랭 들롱 등 단골 손님들의 사진도 보인다. 로마나 북부 이탈리아와 달리 단골 손님에 유명 미국인이 없다.

레스토랑 안을 둘러보는데 친구 부부와 초등학생 두 딸이 도착했다. 이탈리아인의 특징이지만 손님과 음식점 주인과의 대화가 길고도 길다. 보통 생활에 관한 얘기가 주류이고 축구 관련 대화는 빠지지 않는다.

메뉴가 왔다. A4종이 위에 만년필로 쓰인 메뉴판이다. 매일 다르고, 점심과 저녁의 메뉴도 다르다고 한다. 진짜 노포가 그러하듯 가격이 저렴하다. 주문은 친구에게 부탁했다. 1880년 창립 당시 나폴리타노가 먹었던 대로 음식을 주문해 달라고 했다. 레스토랑이 아니라 나폴리 오스테리아에서만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음식’을 원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그렇지만 와인은 토니노에서 최고로 비싼 20유로짜리 ‘명품’ 화이트 와인으로 주문했다. 1차로 멸치와 오징어튀김을 중심으로 한 시푸드가 등장했다. 무 줄기와 시금치를 섞은 듯한 치커리(Chicory)도 따라나왔다. 메인 요리는 나폴리의 명물인 나폴리타노 라구(Ragu)다. 라구는 소고기·토마토·양파를 기반으로 한 소스 요리다. 이탈리아에서 라구는 크게 2개로 나뉜다. 북부 볼로냐 스타일과 나폴리타노 라구다. 비슷하지만, 나폴리타노 라구는 고기를 통째로 썰어 그 위에 소스를 덮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볼로냐는 고기를 얇게 썰어 보통 파스타 위에 덮어서 먹는다. 나폴리타노가 고기를 위한 라구인데 비해 볼로냐는 파스타나 다른 음식을 위한 소스로서의 라구다.

‘Dal 1880’에서의 식사는 2시간 만에 끝났다. 아쉽게도 친구 두 딸의 아침 등교를 감안해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성인 나폴리타노도 놀랍지만, 나폴리타노 어린이들의 식성도 상상 밖이었다. 튀김요리는 물론 파스타, 라구에 이어 케이크, 디저트와 아이스크림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이게 아마 나폴리타노 밤비노(Bambino·어린이) 스타일인가 보다. 5인 식사비는 ‘명품’ 와인 2병을 포함해 전부 120유로에 불과했다. 조만간 다시 나폴리에 올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를 찾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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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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