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브레너의 ‘초콜릿 퐁듀 타워’.
맥스 브레너의 ‘초콜릿 퐁듀 타워’.

맥스 브레너(Max Brenner)는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가고 싶어하는 초콜릿 바 겸 레스토랑이다. 뉴욕 맨해튼 유니언스퀘어의 번화가에 위치하여 뉴요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한번 들러보고 싶어하는 명소이다. 대머리인 창업자 오데드 브레너(Oded Brenner)의 외모를 십분 활용하여 가게 간판에 ‘대머리 남자의 초콜릿, 맥스 브레너(Chocolate by the Bald Man, MAX BRENNER)’라고 쓰여 있다. 오데드 브레너의 두상 스케치 위에 MB(독자들이 생각하는 그분이 아닌 Max Brenner의 약자)라고 사인한 그림은 이 집의 상징이다. 그런데 현재 맥스 브레너에는 창업자의 이름과 얼굴 문양만 남아 있지 정작 창업자는 없다. 오데드 브레너가 최근 블루 스트라이프라는 다른 초콜릿 가게를 차렸기 때문이다.

오데드 브레너는 동료 맥스 픽트만(Max Fichtman)과 함께 1995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 맥스 브래너를 최초로 설립했다. 브레너가 ‘맥스’라는 픽트만의 이름까지 인수하여 맥스 브레너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이 가게는 2001년 이스라엘의 대기업인 스트라우스그룹(Strauss Group)에 매각되었다. 매각 이후에도 프랜차이즈 체인점의 확장을 위해서 브레너는 전략적 파트너로 남아 있다.

전 세계에 체인점을 두고 있는 맥스 브레너 중에는 뉴욕의 맥스 브레너가 가장 유명하여 맥스 브레너를 마치 뉴욕 소재 초콜릿 바로 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40개의 호주 매장을 위시해 맥스 브레너는 전 세계에 50개가 넘는 매장을 갖고 있다. 미국은 주로 동부에 위치해 있고,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 싱가포르에 지점이 있다. 러시아에도 지점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초콜릿 제품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초콜릿이 들어간 다양한 디저트가 이 집의 주 메뉴다. 초콜릿이 단순한 식품이 아니라 인생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새로운 초콜릿 문화를 창조한다는 목표까지 갖고 있다.

이스라엘 출신 회사답게 모든 초콜릿은 코셔(유대교 율법에 따라 조리한 음식) 인증을 획득한 제품이다. 과일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녹인 초콜릿에 찍어 먹는 퐁듀, 얇게 구운 달달한 케이크 위에 초콜릿을 입힌 크레페, 밀크셰이크, 와플, 핫초콜릿 등이 주요 메뉴이다.

새로운 초콜릿 문화라는 말에 어울리게 맛과 멋을 모두 신경 쓴다. 핫초콜릿은 ‘허그머그(Hug Mug)’라고 불리는 잔에 담겨 나온다. 허그머그는 계란 모양으로 디자인되었는데, 달콤하고 따끈한 핫초콜릿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마실 수 있다. 편안함과 따듯함, 그리고 초콜릿향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이런 모양새를 가졌다고 한다. 밀크셰이크는 ‘나를 마셔주세요(Drink Me)’라는 주황식 글씨가 크게 적혀 있는 구부러진 흰색 컵에 담겨 나온다. ‘궁극의 밀크셰이크컵(The Ultimate Milkshake Cup)’이라고 불리는 이 컵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테두리에 주황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구멍으로 빨대를 넣고 밀크셰이크에 접근하는데 마치 앨리스가 토끼굴로 들어가는 모험 같다는 것이다. 컵 위로 수북하게 쌓인 휘핑크림과 그 위에 얹어진 너트와 초콜릿 소스는 가히 그 칼로리를 짐작하기도 어렵게 한다. 칼로리의 압권은 대표 메뉴인 ‘초콜릿 퐁듀 타워(Chocolate Fondue Tower)’다. 납작한 녹찻잔처럼 생긴 흰 그릇을 세 층으로 쌓아 타워를 만들었다. 설탕, 버터와 물을 함께 끓여 만든 후식인 토피(Toffee) 소스는 기본이고, 세 가지 초콜릿(밀크·다크·화이트) 중 두 가지를 골라 타워의 속을 채웠다. 거기에 바나나, 딸기, 초콜릿 쿠키, 마시멜로, 초콜릿 케이크 등을 찍어 먹는다. 눈과 입 그리고 마음까지 달콤함으로 감싸준다.

초콜릿과 피자가 만나다

이 정도의 당도는 우리나라에서도 맛볼 수 있지만 ‘초콜릿 피자’는 말 그대로 새로 창조된 초콜릿 문화다. 그래서 이 피자의 명칭도 ‘스위트 아이콘(Sweet Icons·달달함의 우상)’이다. 초콜릿을 비롯한 설탕 가족으로 토핑 재료를 올린다. ‘초콜릿 덩어리 피자(Chocolate Chunks Pizza)’의 경우 살짝 녹인 밀크초콜릿과 화이트초콜릿 덩어리를 기본으로 올리고 헤이즐넛 가루, 바나나, 땅콩잼, 마시멜로가 얹힌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2인용 피자 ‘Max’s Famous Chocolate Mess Party for Two’는 토핑으로 밀크초콜릿에 담근 따듯한 초콜릿 케이크가 얹히고, 그 위에 휘핑크림, 바닐라 아이스크림, 초콜릿 덩어리 그리고 토피 소스가 둘러진다. 여기에 딸기, 바나나, 초코볼이 곁들여진다. 이를 맛보면 달달하게 만들어진 멋진 초콜릿 문화를 경험한다기보다는 문화 충격으로 다가온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금상첨화(錦上添花)의 파라다이스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빵을 마주한 지옥의 설상가상(雪上加霜)과 같은 디저트다. 이런 음식을 먹으면 뉴욕 마라톤을 완주해도 섭취한 칼로리가 다 소모되지 않을 것 같은 공포감이 다가온다.

그런데 창업자 브레너는 이런 초콜릿과 초콜릿 디저트를 이제 만들 수가 없다. 맥스 브레너를 스트라우스그룹에 넘기고 독자적으로 커피 가게를 열었다가 스트라우스그룹에 소송을 당했기 때문이다. 경쟁금지 계약(non-compete contract)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커피 가게를 접고 멕시칸 레스토랑을 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브레너가 운영, 소유한다는 사실을 밝힐 수도 없고 메뉴에 초콜릿을 포함시킬 수도 없다. 대머리 두상 스케치도 맥스 브레너의 상징이기에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자기 얼굴을 자기가 못 쓰는 것이다. 얼굴을 판 대가로 그는 초콜릿 업계에서 사라져야 했다. 2012년 판결로 5년 동안 초콜릿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했고, 인생 바닥을 경험했다.

그러던 그가 2018년 여름에 초콜릿이 아니라 카카오 가게로 돌아왔다. ‘블루 스트라이프 카카오 숍(Blue Stripes Cacao Shop)’이라는 점잖은 이름으로 말이다. 맥스 브레너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아직 남았는지 새 가게는 자기 얼굴이 걸린 맥스 브레너에서 불과 10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 가게는 오데드 브레너가 초콜릿과 관련하여 어떠한 공개 활동도 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던 시절에 구상된 것이다. 혹시 모를 추가적인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하여 초콜릿 대신 카카오를 콘셉트로 삼았다. 초콜릿을 만드는 주재료가 카카오다. 브레너는 한 인터뷰에서 “카카오와 관련된 이야기는 매우 다양하다. 카카오 열매를 아이스크림, 초콜릿칩 쿠키 등 다양한 형태로 매일 소비하지만 카카오 열매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하였다. 카카오라는 재료를 소재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브레너의 결심은 실제로 요리에 반영되었다. 카카오 열매의 씨를 감싸고 있는 펄프를 요리에 쓴 것이다. 초콜릿은 카카오 씨로 만드는데 브레너는 그동안 관심받지 못한 펄프에 눈길을 준 것이다. 자연상태의 카카오 펄프는 딱딱함이 망고와 호박 사이이고, 맛은 리치나 구아바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초콜릿과는 비슷한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는 이제 커피처럼 보통사람의 일상에 가까운 카카오 문화를 만들려는 꿈을 꾸고 있다.

직접 가봤지만 새로운 가게의 로고에서도 오데드 브레너의 모습을 전혀 떠올릴 수 없다. 그는 여전히 머리를 완전히 민 스타일을 고집하지만 블루 스트라이프의 로고는 머리에 가르마를 타고, 콧수염을 기르고, 나비넥타이까지 맨 신사의 모습이다. 여기에 물안경까지 착용하여 신원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스케치다. 여러 해 동안 초콜릿과 떨어져 살면서 겪었을 고단한 세월과 누군가에 대한 저항이 느껴진다.

연인들이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데이가 얼마 전이었다. 이날 주고받은 초콜릿은 연령대별로, 주머니 사정별로 천양지차였을 것이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비닐 포장을 한 평소 즐겨 먹는 초콜릿부터 유럽에서 건너온 최고급 초콜릿까지 다양한 초콜릿이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풍요로움 속에서 자라고 큰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는 백화점이나 고급 아케이드에 있는 해외 명품 초콜릿이 예사롭게 보일 것이다.

뉴욕 맥스 브레너 매장(오른쪽)과 초콜릿 피자.
뉴욕 맥스 브레너 매장(오른쪽)과 초콜릿 피자.

이것이 바로 인생의 쓴맛!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령대별로 초콜릿에 대한 추억이 다 다를 것이다. 지나가는 미군에게 ‘기브 미 초콜릿’을 외쳐가며 얻은 어른 세대의 초콜릿은 전쟁 후 어려웠던 시절의 ‘천상의 맛’으로 추억된다. 그 이후 세대는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특정회사의 알약 크기 색색깔 초콜릿이 당장 떠오르는 이미지일 것이다. 벌써 중년이 된 X세대는 바(bar)형 초콜릿을 한 조각 잘라 입에 넣는 당시 최고의 인기배우들을 바로 기억할 것이다. 그 배우 때문에 무수히 먹었던 초콜릿의 맛은 지금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초콜릿이 달다는 선입견이 강한데 혀 위에 놓고 오랫동안 음미하면서 먹으면 쓴맛도 난다. 다크초콜릿은 쓴맛이 더 강하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 씨는 원래 매우 쓴맛이 난다. 풍미를 나게 하기 위해서 카카오를 발효시킨 후 볶고 세척하고 건조하는 과정을 겪는다. 이후 카카오 닙을 만들기 위해서 껍질이 제거되고 남는 부분으로 카카오 매스를 만든다. 여기에 열이 가해지면 초콜릿 원액(chocolate liquor)이라는 초콜릿 직전의 상태가 된다. 여기에 각종 첨가물이 더해져 우리가 먹는 초콜릿이 된다. 한 조각의 초콜릿에서 느껴지는 달콤쌉쌀함에는 만들어지는 과정이 압축적으로 녹아 있다고 보면 된다. 성공한 사람의 달콤해 보이는 삶 속에도 한때 흘렸을 땀과 참았을 눈물이라는 쓴 상처가 녹아 있는 것과 같다. 오데드 브레너의 인생이나 우리의 인생도 비슷한 것 같다.

일반적으로 초콜릿이 편의점 입구 가까이에 껌과 함께 눈에 확 띄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초콜릿이 세대를 아울러 즐겨 먹는 평범한 간식이나 군것질거리가 된 듯싶다. 굳이 비싼 초콜릿이 아니어도 인생의 한 조각을 초콜릿을 통하여 음미할 수 있다면 매일이 밸런타인데이의 주인공일 것이다. 그러나 특별할 것도 없다. 초콜릿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밸런타인데이가 사랑을 고백하는 유일한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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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권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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