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가 1년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선거는 어떤 선거든 예외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내년 선거는 더욱 특별하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사회는 좌우로 극단적인 분열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야말로 선거가 나라의 향방을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는 나라마다, 또한 시기에 따라 그 양상이 각각 다르다. 그럼에도 어디서나 선거를 앞두고 선거전문가들 사이에서 반드시 회자되는 책이 있다. 바로 토마스 프랭크의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What’s the Matter with Kansas·2004)다. 우리말로는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2012)라는 제목으로 옮겨졌다.

미국의 공화당은 작은 정부, 감세, 자유시장, 사회복지 제한 등을 강조한다. 반면 민주당은 큰 정부, 증세, 시장개입, 사회복지 확대 등을 추구한다. 단순히 이런 차이만 놓고 보면,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은 주로 공화당을 지지하고, 비교적 가난한 사람들은 민주당을 지지해야 마땅하다. 이처럼 우리는 투표가 사회경제적 요인에 근거해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부시는 ‘가난한’ 사람들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그들은 대륙 중앙부에 널리 분포한 바이블벨트(Bible Belt)의 거주자들이다. 이 지역은 종교적 신앙심은 깊지만 경제는 낙후된 곳이다. 그들은 2016년에도 도널드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어처구니없게도’ 공화당, 즉 부자들을 위한 당을 지지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곳이 바로 캔자스다. 캔자스는 전통적으로 진보적인 색채가 강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공화당, 그것도 공화당 우파의 아성으로 돌변했다.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그곳이 고향인 저자는 개인적으로 열렬한 진보주의자다. 그는 상세한 정보와 체험을 바탕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날카롭게 추적한다.

캔자스는 미 대륙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실제로 주민들도 평균적인 미국인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캔자스는 유명 관광지는 아닐지라도 각종 신상품의 테스트베드(test bed)로 유명했다. 이런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이곳은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시대에도 실용적 중도주의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원의원 두 명은 민주당 소속이고, 나머지 두 명은 공화당 중도파 소속이었다. 주(洲)의회도 공화당 중도파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 지역은 한때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힘입어 번영을 이루는 듯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지역경제가 피폐해졌고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그런 와중에 주의회에서 사사건건 충돌을 일삼던 일부 공화당 강경파가 1991년에 주의회를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저자가 보기에 신자유주의는 파탄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열광적 지지 세력이 오히려 득세한 것이다.

그렇게 된 결정적 계기는 극렬한 낙태반대 운동이었다. 그해(1991년) 여름, 보수세력의 주도로 벌어진 대대적인 낙태반대 운동이 캔자스 전체를 휩쓸었다. 전국 각지에서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기독교 보수세력도 적극 참여했다. ‘자비의 여름(Summer of Mercy)’이라고 불린 이 운동을 이끈 공화당 강경파가 공화당의 중심세력이 되고, 중도파를 한쪽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심지어 민주당은 제3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낙태반대 운동은 사람들의 신앙심과 도덕 감정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감정이 고조된 시위자들은 소리 높여 외쳤다. “나는 정치를 혐오한다. 하지만 태어나지 못한 아기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섰다.” 이 운동은 점차 대중선동적인 보수주의 운동으로 발전했다. 1992년에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캔자스는 오히려 공화당 우파의 세상이 되었다.

그들은 낙태 문제뿐만 아니라 애국심, 가족, 동성애 등 도덕적·문화적 의제들을 전면에 들고나왔다. 이를 통해 그들은 가난이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영적’ 또는 ‘도덕적’ 문제라고 외쳤다. 이에 공감한 사람들은 생활이 피폐해질수록 오히려 ‘오른쪽으로, 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이처럼 보수우파는 경제적 의제를 감추고 문화적 의제를 앞세워, 바이블벨트의 ‘가난한’ 사람들을 자신들의 지지자로 만들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한편 1990년대에 빌 클린턴의 민주당은 대도시의 부유한 화이트칼라를 지지층으로 끌어들이는 중도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했다. 보수우파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민주당을 “가방 끈이 길고 라테나 마시는 대도시의 잘난 체하는 집단”으로 몰아붙였다. 가뜩이나 상실감에 빠져 있던 바이블벨트의 주민들은 더욱 민주당을 외면했다. 따라서 저자는 민주당의 중도화 전략이 일시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결국에는 실책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캔자스 주민들은 낙태반대를 위해 투표하지만, 결국 그 투표가 부자들에게 유리한 과세제도를 만드는 데 이용된다. 이처럼 오늘날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해 투표한다. 더구나 이런 현상이 캔자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 전체가 이런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보수우파는 교묘하게 지지층의 도덕적·문화적 분노를 자극하여 나라 전체를 둘로 나눈다. 이런 분열이 그들의 존재기반이고, 사람들의 분노가 그들의 에너지다.

열렬한 진보주의자인 저자는 레이건의 신자유주의나 보수우파의 문화 캠페인을 극단적으로 혐오한다. 그리하여 보수우파 세력을 ‘반동’ 세력이라고 맹비난한다. 동시에 그는 민주당이 경제적 의제를 강화하여, 중도화 전략보다 사회경제적 지지기반을 공고화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한마디로 미국판 ‘집토끼 산토끼’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는 투표 행태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선거에서 경제적 요인이 핵심적이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도덕적·문화적 가치들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전략적 시사점이다. 이로 말미암아 저자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 책은 선거전문가들의 주요 참고서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 보수세력도 반공·애국심·선진조국 등의 비경제적 의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실질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구체적인 성과도 내놓았다.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한때 장기집권을 구가했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 좋은 시절(good old days)에 매몰된 채 진화를 외면했다. 진화를 멈추면 도태로 내몰린다. 이것이 지금 보수가 처한 곤경이다.

반면 현재 집권 중인 진보세력은 문화적·도덕적 기획 및 전략에 아주 능하다. 그들은 아예 적폐 캠페인, 반일 캠페인, 민족주의 캠페인 등을 집권기반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치명적인 결점은 구체적인 정책 성과를 내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들은 부동산 폭등, 양극화 심화 등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오히려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내년 선거도 다양한 관제 문화 캠페인으로 돌파하려는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문화 캠페인은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진보의 전략이다. 보수든 진보든 막론하고 국민의 눈을 가리고 마음을 훔쳐가려는 시도는 저지되어야 한다. 지금부터 1년은 나라의 미래를 위한 결정적 시간이다.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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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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