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왕좌의 게임’ 출연진. ⓒphoto Roxanne R.Johnson
드라마 ‘왕좌의 게임’ 출연진. ⓒphoto Roxanne R.Johnson

미국 유료방송채널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이 위대한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다. 지난 4월 14일(현지시각)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을 시즌 8의 첫 방송이 전파를 탄 것이다. 판타지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2011년 4월 17일 시즌 1의 포문을 연 이후 지난 8년간 전 세계 8000만명의 시청자들을 매료시켰고, 21세기 가장 강력한 드라마 프랜차이즈이자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북미에서의 인기는 대단해서 ‘왕좌의 게임을 보지 못한 사람(Never Throners)’이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였다. 북미만큼은 아니지만,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왕겜’(팬덤에서 ‘왕좌의 게임’을 줄여 부르는 애칭) 골수팬들 사이에서 ‘왕겜알못’은 괴롭다. “윈터 이즈 커밍”이니 “존 스노 유 노 낫싱” “호도르 호도르” 같은 영문 모를 대사부터가 난관이다. 겨우 마음을 먹고 따라잡아볼까 하니 발음조차 힘든 지명과 가문 이름에 진이 빠지고 ‘태정태세문단세’보다 복잡한 가상의 역사 탓에 머리가 아파온다.

하지만 불가능은 없다. 시즌 8이 끝나기 전에 철왕좌(Iron Throne)를 향한 대장정에 합류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핵심 사항을 요약 정리했다.

왕좌의 게임은 어떤 내용인가

두 개의 대륙, 웨스테로스와 에소스를 무대로 하는 이야기다. 웨스테로스 대륙은 칠왕국(Seven Kingdoms)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왕국이 지배하고 있다. 왕국의 이름은 과거 일곱 왕국을 정복·통합해 세운 데서 유래한 것으로, 각 지역은 대가문의 영주들이 다스리고 있다. 대륙의 최북단에는 왕국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야만의 동토가 자리 잡고 있으며, 왕국령과 북쪽 땅 사이에는 거대한 얼음 장벽이 있다. ‘장벽 너머’라 불리는 북쪽 땅에는 야만인 와이들링과 인간을 증오하는 초자연적인 존재 ‘백귀’가 살고 있다.

폭정을 일삼던 미친 왕이자 타르가리옌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아에리스 2세가 반란으로 목숨을 잃고, 반란의 주동자였던 로버트 바라테온이 왕위를 이어받은 후 십수년이 지난 시점이 드라마 시즌 1의 무대다. 몰락한 타르가리옌 가문의 마지막 후예이자 살해당한 왕의 자식인 비세리스·대너리스 남매는 숙청을 피해 에소스 대륙으로 도망친 후 왕권 회복을 위해 세를 모은다.

칠왕국의 철왕좌에 앉은 왕은 대륙을 지배한다. 수많은 검으로 만들어진 이 왕좌는 권력의 최정점을 상징한다. ‘왕좌의 게임’이란 드라마 제목 역시 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군상들의 충돌과 갈등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왕좌의 게임’은 얼마나 인기를 끌었나

‘왕좌의 게임’은 HBO의 최대 히트작이다. 시즌 1의 1화를 222만명이 시청했는데 시즌 7 마지막 에피소드의 경우 시청자 1630만명을 기록했다. 지난 4월 14일 방영된 시즌 8 1화의 경우 무려 1740만명이 시청했다. ‘왕좌의 게임’이 방영되는 HBO의 유료구독 회원수는 2017년 말 기준으로 1억4200만명이다. 이는 ‘왕좌의 게임’ 방영 전인 2010년 1억100만명보다 40.5% 늘어난 수치다. ‘왕좌의 게임’ 시즌 5는 전 세계 173개국에서 방송되며 최다 동시방송 부문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평단의 반응도 뜨겁다. ‘왕좌의 게임’은 2015년 열린 제67회 에미상에서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비롯한 총 12개 부문을 휩쓰는 대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열린 70회 에미상에서도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상을 포함해 모두 9관왕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왕좌의 게임’이 가져간 역대 에미상만 해도 47개에 이른다. 배우들도 상복이 터졌다.

‘왕좌의 게임’은 원작 소설과 얼마나 다를까

드라마 제목인 ‘왕좌의 게임’은 미국 작가 조지 R.R. 마틴이 1996년 내놓은 판타지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A Song of Ice and Fire)’의 1부 제목이다. 총 7부작으로 예정된 원작은 현재까지 2부 ‘왕들의 전쟁’, 3부 ‘검의 폭풍’, 4부 ‘까마귀의 향연’, 5부 ‘용들과의 춤’이 출간됐고 6부 ‘겨울의 바람’과 7부 ‘봄의 꿈’은 아직 출판되지 않은 상태다.

드라마 제목은 소설 1부에서 따왔지만 이야기는 원작 소설 전체를 각색해 진행된다. 소설가이자 각본가인 데이비드 베니오프가 친구 D.B. 웨이스와 함께 ‘왕겜’ 시리즈 기획, 각본을 담당하고 있는데, 드라마의 전개가 이미 소설을 앞질렀다. 시즌 6부터는 본격적으로 출간되지 않은 소설 6부 및 7부의 내용과 오리지널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어 평가가 엇갈린다. ‘얼불노(얼음과 불의 노래)’ 팬들은 마뜩지 않아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드라마의 전개가 앞으로 나올 원작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아도, 조지 R.R. 마틴이 귀띔해준 줄거리와 엔딩에 기반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작과 드라마의 다른 점을 찾아내는 것도 ‘얼불노-왕겜’ 팬의 각별한 재미다. 원작 소설의 국내 정식발매본은 무수한 오역으로 악명이 높았으나 전면 개정판이 3부까지 출간된 상태다.

‘왕좌의 게임’은 왜 매력적인가

‘왕좌의 게임’은 화려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에 견줄 만한 영상미에 한 편당 100억원, 시즌 8의 경우 17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덕이다. 중세 유럽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현실적인 묘사와 ‘반지의 제왕’을 연상케 하는 환상적인 풍광, 상상 속 괴물들이 교차한다. 근친상간과 살인,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 이르기까지 금기를 넘나드는 잔혹한 묘사도 성인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화려하고 원초적인 외형을 벗겨내면 적나라한 권력다툼과 욕망이 드러난다. 선이 이기고 악은 패배하는 동화의 세계가 아니라, 승자는 번영하고 패자는 바닥에 처박히는 무자비한 세계다. 누구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누구는 살아남기 위해 온갖 술수를 동원하고 다른 세력과 합종연횡한다. ‘왕겜’을 두고 ‘판타지의 탈을 쓴 정치 드라마’라는 평가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현실의 정치 세계는 웨스트 윙이 아닌 ‘왕좌의 게임’과 닮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더 깊게 들어가 보자.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극중 가상의 언어인 발리리아어(語) 금언 ‘발라 모르굴리스’의 뜻풀이이자, ‘왕겜’의 매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가장 위대한 인간도 결국은 죽어 없어진다는 사실을 되새김질이라도 하듯 조지 R.R. 마틴의 공평하고 냉정한 펜 끝에서 주요 인물들은 목숨을 잃는다. ‘왕겜’ 출연자들이 각본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혹시 이번 편에서 내 배역이 죽는 건 아닌가 확인하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드라마 시즌 7까지 총 2339명이 죽었다고 분석했는데 이 중 세르세이 라니스터가 199명을 죽여 ‘살인 기록’ 1위에 올랐다.

‘왕좌의 게임’의 의의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가 판타지를 대중적인 콘텐츠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왕좌의 게임’은 어둡고 축축하고 잔혹한, 즉 성인 취향의 현실적인 판타지가 지닌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판타지 세계는 단순히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다. 잘 만들어진 환상적인 세계는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불안과 두려움, 시대의 그림자와 모순을 반영한다. 왕좌를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군상들의 이야기, 사람들은 그 불온한 매력에 홀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홍성윤 매일경제신문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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