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8위 고봉(高峰) 마나슬루(Manaslu·8163m)는 네팔 히말라야의 여러 산군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고산이다. 최근 들어 산 깊숙이 찻길이 들어서고 있긴 하지만 티베트 부락 사마가온(3460m)을 거쳐 해발 5160m 높이의 고개인 라르캬라(Larkya La)를 넘는 트레일의 경우 어지간한 건각이 아니면 시도하기 쉽지 않은 트레킹 코스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덕분에 태고의 자연미가 잘 보존되어 있다. 또 현대문명이 변질시키지 않은 티베트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지역이다.
동서 약 800㎞ 길이의 네팔 히말라야산맥이 중국 티베트와 국경을 이루고 있음에도 마나슬루는 온전히 네팔에 속한 고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기슭 곳곳에 티베트인들의 마을이 있다. 티베트에서 히말라야산맥을 넘어온 네팔 거주 티베트인들은 셰르파(Sherpa), 타망(Tamang) 등의 부족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마나슬루 지역 주민들은 유독 티베트인(Tibetans)으로 불린다.
여기에는 1950년 중국의 티베트 점령이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59년 중국의 무자비한 탄압을 피해 달라이라마가 인도 다람살라로 망명할 당시 히말라야산맥을 넘어온 티베트인들이 정착한 지역이 바로 마나슬루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나슬루 지역 주민들은 히말라야산맥 너머 티베트인들과 교역을 하면서 서로 넘나들이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7년 동계 마나슬루 원정에 나섰던 고 박영석 대장이 히말라야산맥을 넘어온 티베트인들의 손발 동상이 심각한 것을 보고 카트만두의 항공사에 헬리콥터를 급히 요청해 구조해준 적도 있을 정도다. 이곳 사마가온 마을의 윗마을인 삼도(Samdo·3860m) 가까이에 티베트로 이어지는 계곡이 있는데 그 들머리에 라르캬바자르(Larkya Bazar)라는 장터가 있다. 여기서 히말라야산맥을 사이에 두고 교역이 이뤄진다. ‘바자르’는 ‘장터’를 뜻하는 말이다.
마나슬루는 1956년 봄 일본 원정대가 초등정의 영예를 차지했고, 우리나라는 동국산악회 원정대(대장 이인정)가 1980년 한국 첫 등정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한국 히말라야 등반사상 첫 인명사고와 최대 인명사고가 일어났던 악명 높은 고봉이기도 하다.
산스크리트어로 ‘영혼의 땅’ ‘정령의 산’이라는 의미를 지닌 마나슬루는 날카로운 쌍봉 모습 때문에 ‘악마의 이빨’이란 별칭도 지니고 있다. 1971년 김호섭 대장이 이끈 한국 원정대는 첫 도전에서 김 대장의 동생인 김기섭이 정상 공격을 앞둔 시점에 돌풍에 떠밀리면서 크레바스에 빠져 사망했고, 이듬해 1972년 맏형인 김정섭 대장이 이끈 두 번째 도전에서는 대원 3명을 포함, 무려 15명이 눈사태에 파묻혀 목숨을 잃는 대참사를 당했다. 당시 김호섭과 막내인 김예섭도 사고를 당했으나 김예섭은 눈사태에 무려 1000m 이상 휩쓸렸음에도 눈에 파묻히지 않아 살아날 수 있었다.
필자는 최근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출발해 마나슬루 트레킹에 도전했다. 카트만두에서 버스와 지프, 공사용 대형 트럭까지 타고 접근한 마차콜라(해발 825m)에서 시작한 트레킹은 9일째인 4월 5일 라르캬라를 넘기 전까지 불확실성의 연속이었다. 2월과 3월에 내린 폭설에 아직 덮여 있는 라르캬라를 넘어갔다는 트레커들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차콜라를 출발한 뒤 이틀간 부디간다키계곡을 지날 때는 바위벼랑에 길을 내기 위해 돌을 깨내는 착암기 소리로 어수선했으나 이후 고즈넉함 속에 골짜기를 거슬러 올랐다. 골 양옆으로 치솟은 고산준령의 웅장함과 태곳적 분위기는 일행 모두를 감동케 했고, V자를 이룬 골짜기 끄트머리에 솟구친 설산들은 영롱한 빛으로 신비감을 더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