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긴자에 있는 레스토랑 ‘오레노’의 공연 무대. 저녁 때 4차례 재즈 공연이 열린다.
도쿄 긴자에 있는 레스토랑 ‘오레노’의 공연 무대. 저녁 때 4차례 재즈 공연이 열린다.

‘3500만명’. 올해 일본을 찾을 외국인 관광객 규모 전망치다. 이 수치를 4000만명, 5000만명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일본의 관광자원은 유형문화재에 국한되지 않는다. 첨단 공연 이벤트와 엔터테인먼트도 풍부한 관광자원이다. 신주쿠 가부키초(新宿歌舞伎町)에 있는 ‘로봇레스토랑’은 요즘 도쿄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쇼다. 2012년 개장 이래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도쿄의 새로운 명물이다. 도쿄 내 인기 순위로 따지자면 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남녀노소 관계없이 넘버 1이다. 아사쿠사(浅草), 도쿄타워보다 로봇레스토랑이 우선이다.

입장료만 최하 60달러로 음식 종류에 따라 1인당 비용이 200달러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로봇레스토랑에서는 음식보다 최첨단 ‘메이드 인 재팬’ 쇼가 주인공이다. 3차원 전자장비를 앞세워 1시간30분 동안 입장객 모두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초대형 로봇들이 레이저와 불을 뿜으며 눈앞에서 싸우는데, 공룡에서부터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남미 카니발, 심지어 우주인까지 등장한다. 미국인의 경우 3대에 걸친 가족 단위 관람객도 많다. 만족도 90%를 넘어선다는 일본 엔터테인먼트의 결정판이다.

도쿄의 새 명물 ‘로봇레스토랑’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도쿄의 로봇레스토랑은 미국인 기호에 가장 잘 맞는 공간인 듯하다. 미국인 관광객들은 쇼의 흥겨움에 온몸을 맡긴 채 웃고 박수치며 떠든다. 미국인에게 ‘펀(fun)’, 즉 재미는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 재미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자 가치로 보인다. 재미가 있으면 돈이 되고 명분도 될 수 있다. 외관상 아무리 대단해도 ‘펀’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미국 대통령 명연설에 ‘반드시’ 유머가 들어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영화 ‘스타워즈’, 최근의 수퍼히로어 시리즈나 드라마 ‘왕좌의 게임’ 등을 보면 출발점은 전부 ‘펀’이다. 교훈은 나중이다. 재미만 있다면 육체적·정신적으로도 감당해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들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혼을 뺄 정도의 초고강도 쇼여서 너무 정신없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현란한 조명과 전자음악도 좋지만 1시간30분 내내 어지러운 이벤트가 지속될 경우 감당하기 쉽지 않다. 클럽문화에 익숙한 2030세대라면 감당해낼지 모르겠지만 40대 이상 한국인이라면 카오스 현장으로 비칠지도 모르는 곳이 로봇레스토랑이다.

“50대가 감당할 만한 공연 무대가 있는 괜찮은 레스토랑이 도쿄에 없을까?” ‘오레노(俺の)’는 필자의 이런 질문을 들은 50대 일본인 친구가 권한 곳이다. “로봇레스토랑이 미국인·유럽인의 흥미를 고려한 푸드 쇼라면 ‘오레노’는 일본인을 위한 레스토랑 쇼가 있는 곳이다.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으니 한번 가보길 바란다.”

‘오레노’는 ‘나의, 나만의’라는 의미의 일본어다. 일본인 친구가 추천한 ‘오레노’는 일본은 물론 전 세계로 확장 중인 체인점이다. 원래 프랑스·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빵과 일본식 라멘에 이르는 모든 먹거리를 다루는 푸드백화점으로 진화하고 있다. 2015년 한국에도 진출해 이태원을 시작으로 라멘 가게를 집중적으로 확장해가고 있다. 필자는 체인 음식점에 대해 관심이 없다. 맥도날드가 그러하듯 체인점은 싸다. 주로 냉동재료를 쓰기 때문에 전자레인지에서 빨리 데운 음식이 나오지만 나머지는 전부 부정적이다. 비만을 부르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오레노’는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결코’ 음식 때문만이 아니다. 그동안 도쿄를 오가며 ‘오레노’ 체인점 앞에 나붙은 초대형 전신사진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모든 ‘오레노’ 체인점은 주방장 혹은 매니저의 전신사진을 밖에 걸어둔다. 한 명이 아니라 많게는 10명이 등장하는 집단 전신사진이다. 사진의 의미도 궁금해 도쿄 긴자 한복판에 있는 ‘오레노’를 찾아갔다.

300석의 좌석을 갖춘 오레노 내부와 입구. 오레노 체인점은 입구에 요리사와 매니저의 전신사진을 걸어둔다.
300석의 좌석을 갖춘 오레노 내부와 입구. 오레노 체인점은 입구에 요리사와 매니저의 전신사진을 걸어둔다.

오레노 장식하는 대형 전신사진의 의미

긴자의 ‘오레노’는 두 체인점이 맞붙어 있다. 프랑스·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지하에 나란히 들어서 있다. 지하 음식점은 보통 직장인들이 허기를 때우는 밥집의 성격이 강하다. 프랑스·이탈리아 요리를 지하에서 즐긴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통한다. 임대료 거품을 빼고 음식 자체에 주력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보다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할 듯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퇴근길 오후 6시30분 이후에는 만원이라고 들었기에, 오후 5시 개장과 함께 예약 없이 첫 손님으로 찾았다. 이탈리아 국기와 함께 ‘오레노 이탈리안(俺のイタリアン)’이란 간판이 크게 걸려 있다. 다른 ‘오레노’에서처럼 3명의 요리사와 3명의 매니저 전신사진이 걸려 있다. 모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로비 없이 곧바로 확 트인 극장식 공간으로 이어진다. 언뜻 봐서 300석은 넘을 듯하다.

‘오레노’는 음식 종류에 따라, 입주한 곳이 어디냐에 따라 전부 다르게 운영된다. 긴자는 도쿄, 아니 일본 전체의 간판 같은 곳이다. 긴자의 ‘오레노 이탈리안’이 대형 쇼비즈니스 무대로 운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운데 공간을 쇼무대로 삼아 양쪽 공간에서 손님을 받는 로봇레스토랑과 달리, 손님 모두가 정면무대를 향하는 오페라극장식 공간이다.

무대 바로 앞 좌석으로 안내됐다. 메뉴를 보니 이탈리아 전국의 요리들이 총망라돼 있다. 가격은 일반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거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와인이 저렴하다. 거품을 뺀, 중가 패밀리레스토랑 같은 느낌이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2유로 정도 하는 1200엔짜리 최저가 와인과 한국식 육회에 해당하는 칼파치오(Carpaccio)를 주문했다. 메인요리를 대신해 모차렐라 치즈로 장식된 파스타도 주문했다.

‘오레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오레(俺)’라는 말이다. 1인칭 대명사에 관한 한 일본은 아마 세계 최고로 많은 단어를 자랑할 듯하다. 한국의 경우 ‘나’ ‘저’ 정도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지방을 포함할 경우 수십 가지에 달한다. 진짜 마음인 ‘혼네(本音)’보다 형식적·관행적 자세인 ‘다테마에(建前)’에 무게중심을 두는 나라가 일본이다. 한국과 정반대지만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르고, 달라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낮추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숨기거나 다른 식으로 꾸미는 과정에서 수많은 1인칭 대명사가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오레’는 그중 하나다. 남성들이 사용하는 단어다. 듣기에 따라서는 튀고, 거만하게까지 느껴지는 말이다.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내가 말인데’라고 거들먹거리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자신 있게 말하고, 책임을 분명하게 하는 주체적 단어로도 통한다. ‘내가 하겠다’는 말의 주어로 ‘오레’를 사용할 경우, 진짜 사내 대장부로 통한다. 음식체인점 ‘오레노’는 다테마에 중심의 일본적 정서에 반하는, 자신감 넘치는 ‘정면 승부’ 비즈니스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요리사와 매니저의 자신만만한 자세와 표정에서 ‘오레’가 품은 결단과 책임이라는 말이 배어난다.

오레노의 이탈리아 요리. 가격이 일반 레스토랑의 절반 수준이다.
오레노의 이탈리아 요리. 가격이 일반 레스토랑의 절반 수준이다.

유학·외국 생활 경험 많은 5060세대 단골

주목할 점은 ‘오레’라는 단어를 즐기는 세대다. 1980년대 버블경제를 경험한 5060세대가 중심이다. ‘1개월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여자친구용 다이아몬드를 살 수 있었던’ 현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 세대다. 아베 세대의 특징이지만 젊을 때 경험했던 버블경제로 인해 만사에 자신만만하다. 아베가 그러했듯이 외국 생활이나 유학 경험도 풍부하다. 일본에서 대중적 차원의 프랑스·이탈리아 요리의 첫 소비자가 5060세대다. 자연히 ‘내가 말이야’라는 식으로 다소 바람이 들어간 상태에서 세상을 내려다본다.

이들은 전후 복구가 끝났을 때 태어나서 전쟁에 대한 기억이 없다. 따라서 전쟁에 대한 책임의식도 전혀 없다. 선배 세대인 반전평화주의 ‘단카이(団塊)’ 세대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한다. ‘입바른 소리만 하고 책임도 안 지는 위선자’ 정도로 치부한다. 흥미롭게도 단카이 세대가 즐기는 1인칭 대명사는 ‘보쿠(僕)’다. 단카이 세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도 항상 ‘보쿠’란 단어로 시작한다. 단수인 ‘보쿠’보다 복수인 ‘보쿠다치(僕達)’가 일상적이다. 개인보다 집단이다. ‘오레’나 ‘보쿠’나 다 ‘나’라는 의미지만 사용하는 법이나 내재된 의미가 많이 다르다. 보통 일본에서 ‘보쿠’는 10대 이전 어린이가 사용하는 말이다. 사회적·조직적 존재로 나아가기 전에 사용하는 유아용 대명사이지만, 단카이 세대는 이 단어를 평생 사용한다. 귀엽게 보이고 사랑받고 싶다는 의미인 동시에, 어린이처럼 책임과 무관한 삶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오레’ 중심의 5060세대가 혐오하는 단어임은 물론이다. ‘오레’의 아베 세대가 단카이 이념과는 정반대로 나아가는 이유도 바로 그 같은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레스토랑 ‘오레노’가 등장한 시기도 아베 총리가 재등장한 2012년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놀이터 로봇레스토랑도 2012년에 창립됐다. 레스토랑 ‘오레노’, 로봇레스토랑의 수직 성장세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식 재즈와 저렴한 이탈리아 요리

정확히 오후 5시50분, 쇼가 시작됐다. 재즈다. 오레노 무대의 주된 콘텐츠는 재즈다. 어울릴 듯 아닐 듯 판단하기 어렵지만, 재즈를 들으면서 서양 음식을 맛보는 것이 긴자 ‘오레노’의 주력 상품이다. 여성 가수를 포함해 3명으로 이뤄진 재즈그룹이 등장했다. 짧은 인사말과 함께 곧바로 연주와 노래에 들어갔다. 20분간 4차례 저녁 공연을 한다. 재즈 연주 실력도 상당하다. 하지만 깊이보다 재주다. 여성 가수의 노래 실력도 뛰어나다. 부담 없이 물 흐르듯 노래한다. 필자의 해석이지만, 일본은 재즈조차 일본식으로 재가공해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일본 재즈는 혼을 부르는 식의 깊고도 넓은 세계와 무관하다. 모두의 입맛에 맞춘 ‘팔방미인 재즈’라고나 할까? 땀, 감정, 정열이 넘쳐나지는 않지만 편하고도 쉽다. 모두에게 친절한, 성형미인과 AI 로봇의 목소리를 합친 듯한 음악이다. 연주기법, 노래, 리듬 전부 드라이(Dry)하다. 재즈라는 음악을 깊이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재즈라는 장르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는 최적의 본보기가 일본 재즈다. 일본스럽기도 하지만, 재즈 연주를 즐길 경우 음식값과는 별도로 300엔을 따로 지불해야 한다. 30여년 전 난생처음 뉴욕에 갔을 때 재즈바 블루노트(Blue Note)의 입장비가 70달러인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일본 경항공모함 제작비가 미국 항공모함의 20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작지만, 성능이나 기능이 20분의 1이란 것은 아니다. 300엔짜리 재즈지만, 결코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열심히 부르고, 연주시간도 철저히 지킨다.

어느 틈엔가 옆좌석 전부가 손님으로 채워져 있다. 서양인 관광객이 로봇레스토랑에서 ‘펀’에 빠져 있을 동안, 일본인들은 ‘오레노’로 몰려가 ‘자신에 찬’ 유럽 요리를 즐기고 있다. ‘오레노’에서 중요한 것은 음식 맛 자체가 아니라 분위기로 보인다. 아베 세대의 남녀들이 ‘내가 말이야’라면서 ‘오레’를 외친다. 선대 단카이 세대와는 달리 책임지고 결단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2019년 일본인들의 함성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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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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