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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57호] 2019.05.13

이탈리아 부활절 행사의 정수 시칠리아 파스카 참관기

3000명이 짊어진 ‘예수 부활’을 마주한 순간

▲ 지난 4월 21일 부활절날 시칠리아 엔나에서 벌어진 ‘파스카’ 행렬. 500㎏에 달하는 거대한 예수상을 30명이 메고 행진한다. photo 유민호
4월의 시칠리아는 난생처음이다. 그동안 항상 겨울에 찾았다. 관광객이 드물고, 여행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선택권이 넓어진다는 의미다. 워낙 한산하기에 팔레르모의 막시모(Teatro Massimo) 오페라하우스 1층석도 50유로 이하로 잡을 수 있다.
   
   부활절은 4월의 시칠리아를 여행하기로 한 이유다. 거창한 얘기 같지만, 생애 한 번쯤은 시칠리아 부활절을 경험하고 싶었다. 이탈리아 전체를 통틀어 아주 특별한 행사이기 때문이다. 4월 부활절은 기독교 문화권의 최대 행사 중 하나다. 개신교의 경우 예수 탄생인 크리스마스에 주목하지만 가톨릭과 정교(正敎)는 부활절을 한층 더 중시한다. 탄생 그 자체보다 고통 속에서 세상을 뜬 뒤 보여준 ‘부활의 기적’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시칠리아 부활절은 그 같은 ‘부활의 기적’을 극적으로 표현한 의식으로 평가된다. 그 유명한 ‘시칠리아 파스카(Pascha)’다. 파스카는 라틴어 ‘파스쿠아(Pascua)’에서 유래된 말로, 유월절 축제란 의미로 통한다.
   
   유월절은 고대 이스라엘의 광복절에 해당한다. 노예로 팔려갔던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시기다. 신이 내린 운명이겠지만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시기는 바로 이스라엘 광복절 축제기간 중이었다.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 내부의 적은 외부보다 한층 더 잔인하고 교활하다. 이스라엘 광복을 축하하던 시기에 같은 유대인인 예수를 살해했다. 독일 나치가 유대인 학살에 나선 명분이기도 하다. 부활절, 즉 파스카는 춘분이 지난 뒤 닥친 만월(滿月) 직후의 일요일로 정해진다. 가톨릭 달력에 따른 춘분은 3월 21일이다. 올해는 4월 21일이 파스카다.
   
   시칠리아 파스카는 가톨릭 원조국가인 이탈리아에서도 부활절의 간판 행사다. 밀라노, 베네치아의 파스카는 몰라도 시칠리아 파스카는 이탈리아인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다. 강렬하고도 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본다면 미국 인종차별주의단체 KKK(Ku Klux Klan)의 상징인 고깔모자를 쓴 무리로 기억될 듯하다. 파스카 의식의 예복이 바로 흰옷에다 고깔모자이기 때문이다. KKK를 연상시키는 복장 탓에 흑인 교수형과 같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지만, 기원을 살펴보면 전혀 다르다. 고깔모자와 흰옷은 원래 기독교 순리에 어긋난 종교적 죄인의 상징이다. 신에 어긋난 언행을 한 죄인이, 얼굴을 가린 삼각형 고깔모자를 쓴다. 파스카 행사에 고깔모자가 등장한 이유는 예수 처형을 방조한 죄인이란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인간의 무지와 죄를 용서해달라는 의미에서 입는 ‘성스러운’ 의복이다. 미국의 KKK는 이런 의미와 정반대다. 흑인과 비기독교인을 처형, 처벌하는 ‘심판자’로서 흰옷을 입는다.
   
   
▲ 시칠리아의 파스카 행사는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유명한 볼거리다. 시칠리아 엔나와 트라파니·칼타니세타 3곳이 파스카 성지로 꼽힌다. photo sicilydaybyday.com

   파스카 역사 300년
   
   파스카를 지켜보기 위해 찾아간 곳은 시칠리아의 엔나(Enna)라는 도시다. 300년 이상 된 파스카 역사를 자랑한다. 부활절 당일인 4월 21일 찾아갔다. 엔나는 카타니아에서 서쪽 내륙으로 약 100㎞ 떨어진, 시칠리아 파스카의 대표 도시다. 엔나와 더불어 트라파니(Trapani), 칼타니세타(Caltanissetta) 3군데가 시칠리아, 아니 이탈리아 전체를 대표하는 파스카 성지다. 시칠리아의 도로는 내륙이 아닌 해안가를 중심으로 개발돼 있다. 바다를 통해 들어온 카르타고와 그리스의 지배를 거치면서 시칠리아의 큰 도시는 전부 바다에 인접해 있다. 따라서 보통 내륙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협소하다. 그렇지만 예상과 달리 엔나로 향하는 길은 고속도로로 이어져 있다. 고대 이래 군사요충지로 자리 잡은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 카타니아에서 불과 1시간30분 만에 엔나에 도착했다.
   
   엔나는 안개와 폭설로 유명하다. 인구 2만7000여명의 도시인데 시칠리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해발 931m에 위치한 힐타운(Hill Town), 즉 고산도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도시가 들어서 있다. 군사요충지가 된 이유다. 4월의 시칠리아 날씨는 한국의 6월 초와 비슷하다. 맑지만 뜨거운 태양으로 달궈져 더위를 느낄 정도다. 그러나 해안가 도시에만 이 같은 날씨가 해당될 뿐 내륙의 엔나는 전혀 다르다. 엔나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추위가 느껴진다. 절벽 위에 달랑 들어선 도시 전체가 안개로 덮여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강풍과 비구름이 강해지더니 기온도 섭씨 3도 이하로 떨어진다.
   
   오후 4시쯤 도착한 뒤 곧바로 엔나 파스카 중심 무대인 두오모(Duomo)교회로 향했다. 좁은 골목길들이 전부 산 정상으로 이어져 있다. 대부분 중세 때 지어진 돌로 된 집들이 가득하다. 신기하게도 두오모로 가는 도중 단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안내하는 경찰 한 명만 서 있을 뿐, 엄청 몰릴 것으로 예상됐던 관광객은 제로 상태다. 짙은 안개와 더불어 유령도시에 온 느낌이다. 악천후 속에서 파스카가 과연 열릴 수 있을지 경찰에게 물어봤다. 웃음과 함께 ‘오후 6시’란 답이 돌아왔다. 일단 안심은 했지만 모두 어디에 ‘꽁꽁’ 숨어 있는지 궁금했다.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한 것은 파스카가 열리기 10분 전부터다. 어디에서 나왔는지 한두 명씩 몰리더니, 순식간에 두오모를 중심으로 수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동안 시계 10m 안개와 구름 속에 숨어 있었다고나 할까? 비바람, 강풍에다 눈과 작은 우박까지 날리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경험한 최악의 날씨다. 엔나의 파스카는 악천후 속에서 치러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1782년 폭설과 강풍으로 인해 파스카가 도중에 중단된 것을 비롯해, 사고로 사망자가 나온 해도 있었다고 한다.
   
   
▲ 파스카 참가자들의 복장은 미국의 인종차별 극우단체 KKK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인간의 무지와 죄를 용서해달라는 의미에서 고깔모자를 쓰고 흰옷을 입는다. photo 뉴시스

▲ 파스카에 참가하는 남성들은 서로 형제로 통한다. 직접 참가자들이 3000여명에 이른다. photo visitsicily.info

   파스카의 하이라이트는 ‘미스터리’
   
   파스카의 하이라이트는 ‘미스터리(Misteri)’에 있다. 비밀, 신비라는 의미가 아니라 ‘성극(聖劇)’이란 의미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이후 십자가에서 처형된 뒤 부활하기까지의 과정을 입체적 조형물로 구성해 보여주는 것이 파스카 의식의 핵심이다. 미스터리는 거의 500㎏에 달하는 상(像)들을 통해 표현된다.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중심이다.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예수, 유대인과 로마군인으로부터 학대받은 뒤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 절규하는 어머니 마리아, 이후 다시 부활한 예수, 아들과 재회하는 마리아가 성극의 주된 장면들이다. 전부 다르게 표현된 상들을 가마처럼 어깨에 메고 행진한다.
   
   보통 하나의 미스터리에 남성 30명이 달라붙어 행진에 나선다. 이들은 ‘형제(Brotherhood)’로 표현되는 기독교도들로, 고깔모자와 흰옷을 입고 있다. 직업이나 배경에 따라 형제들의 장식물도 전부 다르다. 미스터리는 전부 25개에 달한다. 따라서 들고 가야 할 인력 750명이 항상 필요하다. 워낙 무겁기에 도중에 교대를 위한 지원인력도 필요하다. 미스터리 앞뒤를 따르는 100여명 남성들의 몫이다. 따라서 파스카에 직접 참가하는 사람들은 대략 3000여명에 달한다. 엔나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참가하는 셈이다. 파스카의 명성은 미스터리가 얼마나 크고, 오랫동안 계속되며, 극적인가에 달려 있다.
   
   오후 6시가 되자 교회 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비바람, 강풍만 몰아칠 뿐 두오모 주변에 모인 수천여 명의 관람객 모두가 침묵 속에 빠져든다. 사람들이 어디론가 몰려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부활 예수의 미스터리가 출발하는 산 요셉(St. Josep)교회로 간다.” 옆사람에게 물어봐 얻어낸 답이다. 두오모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산 요셉교회로 달려갔다. 요셉은 예수의 아버지다. 당연하지만 파스카의 클라이맥스는 예수 부활 미스터리에 있다. 예수는 일요일날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간다. 5일 뒤 금요일, 같은 유대인의 요구에 의해 산 채로 처형된다(Venerdi Santo·성스러운 금요일). 이후 3일 뒤 일요일 다시 부활한다. 엔나의 파스카는 부활절 당일만이 아니라 유대인 광복절인 유월절에서부터 부활 40일 뒤 승천한 날을 포함해 전부 114일간에 걸친 상황을 미스터리로 보여준다. 따라서 의식도 114일간 지속된다. 수많은 의식이 엔나 곳곳에 흩어진 교회를 통해 이뤄지지만, 미스터리를 어깨에 지고 행진하는 것은 부활절을 포함해 직전의 1주일간이다. 필자의 경우 부활절 당일에만 들렀지만, 대부분의 이탈리아인은 1주일 내내 전부 참관한다.
   
   산 요셉교회로 가자 부활한 예수 입상을 모신 미스터리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고깔모자와 흰옷을 입은 형제들만이 아니라 약 50여명의 악단도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미스터리 제일 앞에 선 남성이 절규에 가까운 큰 소리로 계속해서 외쳤다. “예수가 살아났다. 예수가 살아났다.” 핏빛 감동이라고 할까? 뭔가 뜨거운 기운이 가슴속으로 밀려왔다. 장중한 음악과 함께 금빛 찬란한 예수 입상이 서서히 앞으로 나아간다. 시칠리아에 올 때마다 느끼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애수가 도시 곳곳에 넘친다. 안갯속을 헤치며 나아가는 파스카는 엄숙함과 비장함이 혼재된, ‘성(聖)’ 그 자체다. 모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예수 미스터리에 시간을 보내느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같은 시간 성모 마리아 미스터리도 다른 교회에서 출발했다. 예수의 죽음을 슬퍼한, 검은 베일에 가려진 마리아 입상이다. 두 미스터리는 서로 떨어진 채 약 1시간 정도 엔나 전체를 ‘천천히’ 행진한다.
   
   
▲ 시칠리아 엔나의 어린이들도 십자가를 앞세운 채 파스카에 참가했다. photo 유민호

   예수가 부활했다
   
   오후 7시쯤 예수 미스터리가 먼저 두오모 앞 마치니(Mazzini)광장에 도착했다. 동시에 반대편에 마리아 미스터리가 들어왔다. 수천여 관람객 모두 숨을 죽이며 지켜본다. 순간 형제 중 한 명이 마리아 미스터리 쪽으로 뛰어가면서 소리친다. “예수가 부활했다.”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검은 베일을 벗는다. 두 미스터리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10여분 뒤다. 두오모 앞에서 나란히 합쳐진 뒤, 교회 정문을 통해 들어온다. 예수가 들어온 뒤 마리아가 뒤따르는 식이다. 두 미스터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은 눈물과 환희의 무대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감정을 억누르기 어려울 듯하다. 곳곳에서 ‘할렐루야(신을 찬양하라)’란 축복소리가 들렸다. 파스카에 참가한 형제들 모두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참가자들의 자식인 듯한 초등학생 어린이들도 십자가를 앞세운 채, 고깔모자와 흰옷 차림으로 입장했다. 예수와 마리아의 최종 도착점은 교회 제단 바로 옆이다. 교회 내 모든 사람들이 두 입상 앞에 몰려가 축복의 키스와 기도를 올렸다. 교회 음악이 울려퍼지면서 곧바로 미사가 시작됐다.
   
   필자가 갖고 있던 부활절관(?)은 예수 부활을 통한 ‘선(善)의 승리’로 집약된다. 엔나에서 접한 부활절의 의미는 다르게 와 닿았다. 아들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죽음을 넘어선 재회다. 신의 아들에 앞서, 어머니의 아들로서의 예수가 한층 더 와 닿는다. 어머니 마리아와의 만남이 엔나 부활절의 핵심 주제라고나 할까? 종교를 넘어서 기독교 신자만이 아니라 인간 모두의 가슴에 와 닿는 ‘애틋한’ 모습이다. 1년 뒤 엔나의 파스카에 다시 들를 생각이다. 기간은 엔나에서만 최소 1주일이다. 부활절 당일만이 아니라 이전 1주일 동안 치러질 파스카 행사 전부를 지켜보고 싶다. 부활 예수와 더불어, 어머니 마리아의 사랑을 체득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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