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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59호] 2019.05.27

다빈치 사망 500주기 유럽은 지금 다빈치 열풍

로마=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sikroad100@gmail.com

▲ 다빈치의 ‘인체비례도’.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으로도 불린다. 다빈치 사망 500주기를 맞아 현재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2019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사후 500주기가 되는 해다. 정확히 1519년 5월 2일이 다빈치가 세상을 뜬 날이다. 67세의 삶이다. 현재 유럽 전체는 ‘다빈치 열풍’에 빠져 있다. 다빈치의 명화 ‘모나리자’가 걸려 있는 파리 루브르박물관, ‘최후의 만찬’이 있는 밀라노 교회를 비롯해 유럽의 최고 미술관에서부터 소도시의 작은 규모 전시관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다빈치로 채워져 있다.
   
   로마의 경우 아예 피우미치노 국제공항 안에다 전시관을 마련해 다빈치가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인임을 과시하고 있다. 다빈치 행적과 전혀 무관한 영국에서도 무려 114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열리는 전시만 따져도 이렇다. 전시회만이 아니라 학술토론회, 좌담회, 탐방기행도 넘쳐난다. 다빈치가 태어난 이탈리아에서는 다빈치 머리카락 DNA 검사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크고 작은 유럽의 전시관을 전부 합칠 경우 적어도 1000군데에서 다빈치를 기념하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세상을 뜬 지 500년이나 된 인물을 잊지 못하고 수많은 작품은 물론 세세한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관심사가 되니 말이다. 다빈치가 21세기 시대정신이자 글로벌 화두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추모 열기다. 예술 애호가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 나서서 관찰하고 논의하는, 유럽 공통의 문화 테마가 바로 다빈치다. 사실 다빈치 특별전은 올해만이 아니라 유럽 대도시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는 일상적 풍경이기도 하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예수를 제외할 경우 유럽과 미국 전체를 통틀어 다빈치만큼 ‘꾸준히’ 주목받는 인물도 드물 듯하다.
   
   
▲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다빈치 ‘최후의 만찬’ 스케치. photo 유민호

   다빈치 열풍의 실체
   
   왜일까. 고향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에서 객사한 르네상스 예술가에 대한 추모와 기억이 21세기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증폭 심화되는 이유가 뭘까. 그의 작품은 물론 그가 남긴 수많은 스케치와 메모, 67세 일생 속의 작은 얘기조차 글로벌 시대 인류의 뜨거운 관심 대상이 된 이유가 뭘까.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과 같은 다빈치의 걸작들보다 수그러들지 않는 ‘다빈치 열풍’이 더 궁금하다.
   
   당초 계획에 없었지만 최근 한 달 가까이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무려 다섯 군데의 다빈치 특별전과 조우했다. 로마의 퀴리날레 뮤지엄과 포폴로 광장, 베네치아와 트레비소(Treviso), 피우미치노 국제공항 등이었다. 피우미치노를 제외할 경우 각 전시회의 입장료만도 15유로 전후다. 그렇지만 가는 곳마다 사람들도 미어터졌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지만 이탈리아 현지인도 필수코스처럼 다녀간다. 필자가 가장 주목한 곳은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갤러리(www.gallerieaccademia.it)다. 올해 ‘다빈치 열풍’이 유럽 전역에 넘쳐날지 예상을 못 했지만 아카데미아 갤러리의 특별전은 개최 일정이 알려진 직후부터 손꼽아 기다렸다. 사후 500주기 이벤트 때문이 아니라 전시물 내용 자체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4월 17일부터 7월 14일까지 이어질 ‘세계 모두의 모델로서의 인간(L’Uomo Modello del Mondo)’이란 제목의 전시회다. 다빈치가 남긴 35개 진품 스케치들이 특별전의 내용이다. 유럽 내 1000여군데 다빈치 특별전의 대부분은 다빈치가 남긴 작품이나 흔적이 ‘단 하나’도 없는, 이름만 다빈치를 단 이벤트다. 베네치아와 같은 다빈치 진품 전시회는 전체를 통틀어 5% 미만이다.
   
   필자가 지난해부터 이 전시회를 기다린 이유는 ‘L’Uomo Vitruviano’란 스케치 때문이다. 영어로 ‘Vitruvian Man’, 한국어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혹은 ‘인체비례도’로 번역되는, 연필로 종이 위에 그린 작품이다. 명화와는 무관하고 자연과학 설명화쯤에 해당하는,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갤러리를 대표하는 특급 보물이다. 누구나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봤겠지만, 벌거벗은 남성이 양팔과 다리를 돌리면서 원형 속에서 비례대칭점을 이루는 형상의 스케치다. 루브르 ‘모나리자’처럼 상설전시 작품이 아니어서 외부에 공개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베네치아 특별전 타이틀인 ‘세계 모두의 모델로서의 인간’은 다빈치라는 인물인 동시에, 다빈치가 남긴 스케치 속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이하 비트루비우스)을 의미하는 말이라 볼 수 있다.
   
   
▲ 로마의 다빈치 특별전에 전시 중인 다빈치 초상화. photo 뉴시스

   비트루비우스의 비밀
   
   아카데미아 갤러리의 다빈치 특별전은 세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참관할 수 있었다. 첫날과 둘째 날은 때마침 비엔날레 오프닝에 몰린 엄청난 인파로 인해 입구에서부터 줄을 서야만 했다. 비트루비우스는 크기가 가로 34.6㎝ 세로 25.5㎝에 불과하다. 작은 A4 용지 크기 스케치에 몰릴 인파를 생각하면 밀착 관람이 불가능하다. 루브르 ‘모나리자’ 앞에 시장 바닥처럼 사람이 북적이는 열악한 관람 환경이 떠올랐다. 운이 좋게 3일째 되던 날은 아침부터 강풍에다 폭우가 몰아쳤다. 사람들이 드문 틈을 타 아침 일찍 찾아갔다. 집단지성 지지파들이 보면 화를 내겠지만 필자는 ‘우리 모두가 아니라 혼자 가꾸고 키워가는 고독(Solitude)의 결정체가 예술의 본질’이라 믿고 있다.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각자 35점의 다빈치 스케치에 ‘바짝’ 밀착해 500년 전 예술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명화일수록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독점적으로 지켜보는 것이 좋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또한 작품이 제작될 당시 예술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觀) 것이 좋다. 미신처럼 보이겠지만, 오감 아니 육감 속 어딘가에 예술가의 영혼이 투영될 수 있다.
   
   전시장 내부는 전체적으로 조명이 어둡다. 베네치아 특유의 대리석 조각들을 갈아 만든 돌바닥이 인상 깊다. 나무로 만든 루브르 바닥과 달리 걸을 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안 난다. 비트루비우스는 전시장의 한가운데에 특별히 ‘모셔져’ 있다. 단독 전시대로 들어가는 입구의 반원형 문이 인상 깊다. 이슬람 영향인지 전시장 원형의 끝이 뾰쪽한 구조다. 전시장 전체 분위기가 마치 종교 사원에 온 느낌이다. 문화 컬트(Cult)로서의 다빈치라고나 할까.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비트루비우스가 모셔진 사원에 올랐다. 높이 4m 정도의 흰 사각형 박스 안에 보관된 비트루비우스가 눈에 들어온다. 유리보호막을 통한 관람이지만, 그래도 밀착하면 40㎝ 이내에서 ‘이 잡듯이’ 볼 수 있다. 비트루비우스를 그릴 당시 다빈치의 섬세하고도 강렬한 눈빛이 느껴진다. 다빈치 특유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거꾸로 쓰는 이른바 ‘거울작법(Mirror Writing)’에 따른 문장이 깨알만 하게 새겨져 있다.
   
   추측건대 다빈치는 엄청난 시력을 갖고 있었을 듯하다. 글자 하나의 크기도 엄청 작지만, 스케치로 표현된 물결을 보면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 정밀하다. 원형 속 비트루비우스의 무게중심은 배꼽이다. 체지방 10% 미만의 몸에다 시선을 위로 한 다소 근엄한 표정의 인물이다. 머리스타일이 만년의 다빈치가 그린 자화상 속 모습과 비슷하다. 다빈치 그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첫눈에 다빈치 진품이라 외칠 듯하다.
   
   비트루비우스는 수많은 해석과 의미를 가진 인문미학적 작품이다. 자연과학적 설명화가 아닌 하늘·인간·땅을 하나로 엮는, 우주 속 조화와 평화를 상징하는 스케치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르네상스 인본주의 정신을 실천해간 다빈치 본인의 아바타가 비트루비우스라 볼 수 있다. 다빈치의 정신, 마음 그리고 몸도 포함된 은유적 작품이란 의미다. 사실 나체의 비트루비우스 모델 얼굴은 30대 말 다빈치 모습으로 느껴진다. 비트루비우스는 1490년 작품이다. 다빈치가 38살 때로, 밀라노에서 비교적 안정적 생활을 이어가던 시기다. 인체해부학과 군사학에 관심을 가졌던 때로, 나이로 볼 때 체력·정신 면에서 인생 절정기에 해당한다.
   
   
▲ 지난 5월 2일 다빈치가 안장된 프랑스 생위베르 예배당에서 에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헌화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베네치아 특별전의 ‘최후의 만찬’
   
   스케치는 역사 속의 실제인물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Pollio)를 모델로 했다. 다빈치가 존경한 1세기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에 관한 메모장에서 발췌된 것이다. 참고로 서양에서 말하는 건축물은 건물이나 성(城), 다리와 같은 구조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무대장치, 무기, 농기구, 기계, 가구, 마차 같은 것들도 건축가의 영역이다. 로마 하급 군인 출신 비트루비우스는 군사용 무기를 직접 만들어 전투에서 활용한 기술자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나중에 건물이나 다리 건설 등에도 주목한다.
   
   실제 경험에 기초한 확신이겠지만, 그는 ‘인간의 신체야말로 건축물의 완벽성을 보장하는 근거’라고 단언했다. 비트루비우스가 남긴 저서 ‘건축에 대하여(De architectura)’는 건축 관련 고전 중의 고전으로 통한다. 비트루비우스가 말한 ‘인간 신체=건축의 완벽성’에 기초한 회화적 표현이 다빈치의 스케치인 셈이다. 추측건대 다빈치는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를 자신과 동일시했을지 모르겠다. 하급 군인 출신에서 대건축가로 이름을 떨친 비트루비우스를 밀라노 권력자 스포르차가(家) 오락무대 감독 정도였던 자신의 미래로 풀이했다고나 할까. 인체비례도 스케치 속 남성이 다빈치 자신일 것이라 믿는 필자의 근거이기도 하다.
   
   특별전에는 비트루비우스와 더불어 흥미로운 스케치 몇 점이 더 있다. ‘최후의 만찬’ 스케치도 그중 하나다. A4 크기로 밀라노의 프레스코화인 ‘최후의 만찬’을 위한 구상 차원의 데생이다. 자세히 보면 밀라노 프레스코와 많이 다르다. 필자의 관점이지만, 교회에 걸린 수많은 ‘최후의 만찬’ 그림은 크게 볼 때 두 가지 패턴으로 나뉜다. 첫째 예수가 “이 자리에 나를 배신한 인물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의 그림이다. 두 번째는 예수가 자신의 피와 살을 포도주와 빵에 비유하는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후자를 좋아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자의 장면에 빠져든다. 피를 부르는 배신은 인간을 흥분상태로 몰아넣기 쉽다. 다빈치 역시 그 같은 사람들의 ‘본능적 요구’에 맞춰 배신의 무대를 모두에게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베네치아 스케치에서는 밀라노 프레스코와 같은 극적 장면이 드물다. 손가락과 손동작으로 표현된 “누구인지 당장 나서라”라는 식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구상 단계 스케치에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식탁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서로 쳐다보는 식의 구도로 표현돼 있다. 손은 제2의 심장이라고 했던가. 다빈치는 어떤 계기로 손을 통한 극적인 표현에 주목하게 됐을까. 나중에 필자의 이탈리아 친구에게 스케치 얘기를 하자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아마 구상 단계에서 나폴리 사람을 만났을지 모르겠다. 나폴리타노는 말이 아니라 손, 손가락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현란하다. 농담으로 들릴 듯하지만, 실제 그런 얘기가 있다.”
   
   다빈치를 생각하면 두 명의 ‘큰 인물’이 떠오른다. 사후 500주기에 즈음한 다빈치 열풍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로서의 비교 대상이다. 첫 번째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이자 로마 가톨릭 초대 교황 베드로(Saint Peter)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다빈치는 무신주의자, 아니 가톨릭에 환멸을 느낀 인본주의자다. 동성애자로 알려진 다빈치는 가톨릭의 마녀사냥을 피해 다른 도시를 전전하다 결국 이탈리아를 완전히 벗어나 프랑스에서 일생을 마감한다. 무신론자·동성애자를 감히 가톨릭 초대 교황과 비교한다는 것이 억지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종교를 떠나 인간으로서의 두 사람을 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여러 가지가 떠오르지만 둘 다 원래 자기 일에 잘 안 맞는 캐릭터란 것이 공통점이다. 근본이나 배경을 보면 성직자로서의 베드로, 예술가로서의 다빈치가 아니란 말이다.
   
   잘 알려졌듯이 베드로는 예수 체포 후 첫 닭이 울기 전 자신의 메시아를 세 번이나 부인한 ‘배신자’다. 가롯 유다만이 아닌 베드로도 배신자에 들어간다. 이후 예수 부활을 목격한 뒤부터 로마에 가서 선교에 매진한다. 그러나 기독교도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자 곧바로 시골로 도망간다. 비겁한 베드로 앞에 예수가 홀연히 나타난다. “네가 로마에 안 간다면 내가 다시 로마에 가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겠다.” 예수의 말을 들은 베드로는 용서를 빌며 다시 로마로 되돌아간다. 메시아로 받들던 예수를 부인한 것도 모자라 선교 도중 도망친 겁쟁이가 초대 교황에 올라 로마 바티칸의 주인공이 된다. 실수한 말 한마디에 ‘훅’ 날아가는 한국적 상식에서 본다면 실현 불가능한 기적에 가깝다.
   
   그러나 예수는 배신자에다 비겁자인 베드로에게 천국문 열쇠를 선물로 안겼다. 한국이라면 3대가 멸족될 만한 엄청난 죄인이지만, 베드로는 지금도 가톨릭의 얼굴이자 수호신으로 추앙되고 있다. 왜일까. 인간 모두가 공유하는 약하고 어두운 한계보다 베드로만이 갖고 있는 예수에 대한 믿음과 정열이 한층 더 평가됐기 때문이다. 거짓말과 배신에 익숙한 가장 낮은 인간조차도 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한 천국문을 열 수 있다는 의미다. 특별한 베드로가 아니라 가장 평범하고 일반적인 기독교도가 가톨릭 초대 교황이다.
   
   
▲ 다빈치 사망 500주기를 맞아 영국에서도 114개의 다빈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런던 퀸즈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다빈치 스케치들. photo 뉴시스

   문제아 사회부적응자
   
   다빈치는 어떨까. 한국에서 다빈치는 르네상스의 대부(代父), 만능 예술가, 파란만장한 인생과 같은, 뭔가 특별하고 극적인 천재로 묘사된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소 ‘불편한 진실’이 추가될 부분이 적지 않다. 이런저런 슬픈 얘기가 있다. 먼저 출생의 비밀이 떠오른다. 다빈치는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로부터도 사실상 버림을 받은 고아에 준하는 인물이다. 혼외관계에서 태어난 인물이기 때문이다. 혼외자식을 둘러싼, 과거 가톨릭 원리주의자들의 상식이나 인식은 어땠을까. 21세기인 현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하고 잔인했을 것이다. 그 같은 환경에서 자란 다빈치는 과연 무엇을 생각하며 어떤 미래를 꿈꿨을까. 부모의 손에서 벗어난 탓일 듯하지만, 일을 맡겨도 뭐 하나 제대로 시간에 맞춰 끝내지 못하는 인물로 성장한다.
   
   다빈치 캐릭터의 하나지만, ‘최후의 만찬’ 정도가 5년이나 걸려 겨우 끝낸 작품일 뿐 수주받은 작품들 거의 대부분은 어정쩡하게 중간에 끝난다.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다. 다빈치가 이탈리아 도시 전체를 전전하며 직업 구하기에 나선 것은 실력 유무를 떠나 일에 대한 느슨한 자세가 이유였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예술가의 위치는 노동자에 준하는, 중하류계층에 속한다. 창조 미(美)보다 일단 노동으로서의 예술이다. 권력자나 부자의 생각에 맞추는 것이 성패의 열쇠다. 시간과 돈에 철저한 프로정신과 무관한, 아마추어 몽상가로서의 삶이 다빈치의 일상이었다.
   
   다양한 관심사는 다빈치 신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생각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는 정서불안자(ADHD)로 비칠 정도다. 결과적으로 친구도 거의 없다. 친구라 말할 존재는 동성애 파트너로, 임종을 지켜본 청년 둘 정도에 그친다. 종교만이 아니라 사회, 심지어 음식에도 적응치 못한 채식주의 문제아가 바로 사후 500년에도 찬미되고 있는 다빈치다. 배신자 비겁자로서의 베드로, 문제아 사회부적응자로서의 다빈치가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공통분모인 셈이다. 한마디로 말해 당대의 ‘루저(Loser)’란 의미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다빈치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두 번째 인물이다. 흔히들 ‘아이폰=미(美)와 지(知)를 결합한 르네상스 정신의 아이콘’으로 풀이한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경계선을 무너뜨린 21세기 다빈치로, 음악·영상·통신을 하나로 묶어 전 세계에 전달한 21세기 ‘글로벌 문화’ 창조자가 잡스다. 다빈치 스스로가 르네상스의 창조자이자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듯이,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21세기 모바일 손가락 문화의 상징이 바로 잡스다. 500년을 뛰어넘은 시간이지만, 잡스의 업적이나 삶의 궤적을 언급할수록 주어를 다빈치로 바꾸도 문제가 없을 듯하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태생적 배경은 비슷하다. 잡스는 원래 시리아 출신 아버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생후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미국 블루칼라 가족에 입양된다. 시리아는 이슬람 저개발국가다. 미국인의 대부분은 입양아에게 출생의 배경에 관한 얘기를 미리 알려준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입양아도 있겠지만, 잡스는 달랐을 듯하다. 고독하게 보이는 성장 과정을 보면 입양 콤플렉스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다빈치가 그러했듯이 혼자 생각하고 혼자서 결론을 찾아내는 식의 삶에 익숙해진다.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고독한 삶이 잡스 인생의 출발이자 결론이다. 그 결과 아이폰에서 보듯 미 자체만이 아닌 과학을 접목한 잡스만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진화한다. 고독 속의 호기심이 낳은 결과물이다. 그림만이 아니라 전차·헬리콥터·자전거·비행기까지 구상한 다빈치와 비슷한 행적이다.
   
   
▲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다빈치는 불행했던 성장사와 함께 완벽한 미를 추구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photo 뉴시스

   다빈치와 스티브 잡스
   
   다빈치와 잡스, 두 사람 모두 완벽한 미를 추구한 인물이란 점도 동일하다. 매킨토시가 탄생할 때의 에피소드이지만, 잡스는 컴퓨터 내부 회로도를 보며 “너무 추하다”란 말을 연발했다고 한다. 컴퓨터를 사면서 내부 회로도를 열어 보는 사람이 없다고 말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내부 회로도조차 미적 차원에서 다시 정리한 뒤에야 매킨토시가 등장한다. 루브르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자신의 삶 마지막까지 들고 다닌 3점의 그림 중 하나다. ‘신비의 미소’로 통하는 모나리자의 얼굴은 한순간 천재가 창조해낸 작품이 아니다. 다빈치가 평생에 걸쳐 고치고 또 고친 결과물이 모나리자의 미소다. 항상 들고 다니면서, 어림잡아 30년 이상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고 한다. 다빈치·베드로·잡스는 인간이 가진 어두운 부분을 진작부터 드러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절대선 절대미를 죽을 때까지 추구하고 만들어갔다.
   
   어린이 관람객은 유럽 다빈치 특별전에서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다. 어디에 가도 어린이들이 넘쳐난다. 부모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온 어린이들이 대부분이다. 천재였던 다빈치를 어린이에게 보여주려고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상식이지만 결코 배우고 따라갈 수 없는 것이 천재다. 다빈치를 통해 어린이에게 보여주려고 하고, 어린이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한계와 그것을 극복하면서 자기 길을 추구한 ‘지극히’ 평범한 인간에 대한 스토리텔링일지 모르겠다. 30년 인생이 배인 모나리자가 그러하듯, 다빈치가 스케치 속에 구상한 헬리콥터와 비행기, 자전거는 결국 다빈치 사후에 현실화됐다. 모두 노력과 인내의 결과들이다. 고독 속에서 절대가치를 추구해나가는 강인한 자세가 사후 500년에도 살아숨쉬는 다빈치의 매력이자 교훈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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