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관 | 오늘은 코미디가 가미된 드라마 ‘카모메 식당’(かもめ食堂·감독 오기가미 나오코·2006)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오랜만에 다루는 일본 영화입니다.

배종옥 | 제목이 식당이기도 하고 음식 만드는 장면이 잦습니다. 덕분에 제27회 하와이국제영화제에서 ‘음식영화’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지요.

신용관 | 공간적 배경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입니다. 일본어 ‘카모메(かもめ)’가 ‘갈매기’를 뜻하는데, 바다에 면한 헬싱키에 갈매기가 많아 식당 이름으로 삼았지요.

배종옥 | 그 식당은 일본인 여성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가 운영하는 조그만 일식당입니다. 주먹밥인 오니기리를 대표메뉴로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지만 한 달째 전혀 손님이 없습니다. 그래도 손님을 대비해 매일 아침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지요.

신용관 | 드디어 첫 손님이 찾아오는데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핀란드 청년 토미입니다. 사치에는 첫 손님인 기념으로 평생 커피를 공짜로 주기로 하지요.

배종옥 | 토미는 사치에에게 애니메이션 ‘갓차맨’의 주제곡 가사를 물어보는데 그녀는 오래전에 불렀던 노래라 가사가 기억나지 않습니다.

신용관 | ‘갓차맨’은 1972년 텔레비전에 선보인 ‘과학닌자대 갓차맨(科学忍者隊ガッチャマン)’을 말합니다. 극장판으로 나오고 2013년엔 실사 영화로도 만들어졌지요. 우리나라에는 ‘지구방위대’ ‘독수리 오형제’로 소개됐습니다.

배종옥 | 어느날 도서관에 들른 사치에는 일본인 여행객 미도리(가타기리 하이리)를 우연히 만나는데, 다짜고짜 갓차맨 주제가를 물어봤고 미도리는 막힘없이 노트에 가사를 술술 적어 건네줍니다. 이 일로 미도리는 식당 일을 도우며 사치에 집에 머물게 됩니다. 그녀는 “만화영화 가사를 다 외우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거든요”라며 낯선 이를 받아들이지요.

신용관 | 여전히 손님이라곤 공짜 커피를 얻어먹는 토미밖에 없던 때 두 번째 손님이 찾아오고 그는 커피 맛을 더 좋게 만드는 방법을 일러줍니다. 사치에가 시나몬롤을 메뉴에 추가하자 하나둘 손님들이 들기 시작하지요.

배종옥 | 새로운 일본 여성 마사코(모타이 마사코)도 식당 일에 합류합니다. 여행차 방문한 헬싱키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려 트렁크를 찾을 때까지 체류하기로 한 거지요.

신용관 | 이렇듯 영화 ‘카모메 식당’엔 이렇다 할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딱히 없는 거지요. 대신 소소한 일상의 모습들이 잔잔히 그려지고 있습니다.

배종옥 | 굳이 그 틀에 맞추자면, 노려보듯 가게 안을 종종 들여다보던 어느 핀란드 아주머니가 가게로 들어오고 독주를 마신 뒤 실신하자 토미를 비롯한 등장인물 모두가 그녀를 집까지 업고 간 일을 들 수는 있겠지요.

신용관 | 하지만 그 에피소드 또한 이 영화가 담고자 한 메시지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 주된 갈등이나 플롯은 아니었지요.

배종옥 | 모든 영화가 심각한 갈등이나 위기를 다룰 이유도,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가령 이 영화에서 “요즘은 퓨전이 대세”라며 모두 둘러앉아 오니기리에 순록 고기와 가재 같은 현지 재료를 속으로 넣어보지만 영 아닌 것으로 결론 나는 그런 장면은 저 같은 관객에게는 굉장히 흡인력 있게 다가오거든요.

신용관 | 별다른 사건이 없으니 영화는 보기에 따라 꽤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작 놀라운 건 클라이맥스도 없는 소품인데 네이버 영화 코너의 네티즌 평점이 8.36(1359명 참가)으로 상당히 높다는 거죠.

배종옥 | 사실 도입부는 지루하지요. 긴장감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카모메 식당’은 러닝타임 100분 내내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는 묘한 요소들이 적절하게 배치돼 있다고 할까요.

신용관 | 헝가리의 미학자 게오르그 루카치(1885~1971)의 유명한 글로 ‘서사냐 묘사냐?(Narrate or Describe)’가 있습니다. ‘서사’란 작품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이 서로 긴밀히 연관되게 형상화하는 창작 방법인 반면, ‘묘사’는 작품에서 개개 사건들이 뚜렷한 인과성 없이 서로 병치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겁니다.

배종옥 | 아마도 ‘카모메 식당’이 묘사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을 하고 싶은 듯한데, 영화는 감성에 호소하는 매체잖아요. 영화는 시청각, 특히 시각에 절대적인 방점을 두는 미디어이기에 사람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방식이 소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 영화에서 식당 주인 사치에가 연어를 굽고, 식재료를 다듬는 장면들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그래, 삶의 기쁨은 저런 거지” 싶게 만들고 있거든요.

신용관 | 하긴 염치도 없이(웃음) 매일 공짜 커피를 얻어먹으려 들르는 토미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는 빤한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는데, 그의 인사말 “곤니치와(こんにちは·안녕하세요)”와 사치에의 “이랏샤이(いらっしゃい·어서 오세요)”가 영화 내내 반복되면서 뜻밖에 마치 아침 햇살처럼 작은 행복감을 주긴 하더군요.

배종옥 | 식당 안을 째려보던 아주머니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이었고, 얼떨결에 그녀와 독주를 나눠 마신 마사코는 그녀의 사연을 위로하며 들어주지요. 미도리가 “그런데 마사코씨, 핀란드어도 할 줄 아세요?”라고 묻자, 마사코는 “아뇨, 전혀”라며 관객을 웃기지요. 얼마나 기분 좋은 장면인가요.

신용관 | 어느덧 식당은 손님들로 만석이 될 정도로 활기가 넘칩니다. 어째서 작품의 배경을 뉴욕이나 파리, 상하이로 하지 않고 헬싱키로 했을까요?

배종옥 |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이지 않습니까. 이른바 슬로 라이프가 가능한 나라이고요. 영화의 기본 색채가 아등바등 먹고살려고 애쓰는 거대 도시의 삶과는 거리가 멀기에 그랬을 듯하네요.

신용관 | 사치에가 식당을 운영하는 일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게 해준다”고 말할 땐 꽤 공감이 되긴 하더군요.

배종옥 | 나는 “만약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오늘 소중한 사람들과 가장 맛있는 요리를 해먹겠다”라는 대사가 참 좋았습니다. 우리가 잊고 사는 ‘온기(溫氣)’가 느껴지잖아요.

신용관 | 사람에 따라서는 가볍디 가벼운 소재를 적당히 얼버무린 고만고만한 일본 드라마로 치부할 수 있을 듯합니다만.

배종옥 | 영화라는 장르가 특히 감상자에 따라 천차만별로 받아들이게 마련이지만 이만한 영화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짜임새를 제대로 갖춘 시나리오라는 얘기지요. 우리나라도 이 작품처럼 보고 나서 “세상은 역시 살 만한 곳이군”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영화 좀 많이 만들었으면 해요.

신용관 | 제 별점은 ★★★. 한 줄 정리는 “갓 만들어낸 오니기리가 확 당기는군”.

배종옥 | 저는 ★★★★☆. “다시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영화.”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배종옥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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