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관객석의 구분이 없는 연극 ‘슬립노모어’. ⓒphoto 펀치드렁크
무대와 관객석의 구분이 없는 연극 ‘슬립노모어’. ⓒphoto 펀치드렁크

미국 뉴욕 첼시 10번가와 11번가 사이 27번로. 어둠이 내리면 스산해지는 골목이다. 낮에는 ‘가고시안’ ‘메리 분’ 등 현대 미술을 좌우하는 갤러리들 사이로 돈이 흘러다니는 동네이기도 하다. 지난 4월 어느 저녁, 날이 저무니 한 호텔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선다. 입장 시간에 맞춰 왔는데 이미 줄이 길다. 기자도 재빨리 뒤에 섰다. 20대에서 40대까지 주로 젊은 사람들이다. 친구나 애인 사이들인지 쉴 틈 없이 떠든다. 이들의 수다에 귀를 기울였다. 맥베스가 어떻고, 왕이 어떻고…. 호텔 앞에서 어째 다들 셰익스피어 연극 얘기를 하고 있다.

밤에만 문을 여는 호텔, 매키트릭(Mckkitrick) 호텔은 숙박업소가 아니라 극장이다. ‘슬립노모어(sleep no more)’라는 일종의 실험극 무대다. 6층짜리 건물 전체를 쓴다. ‘슬립노모어’는 2011년 초연했다. 원래는 한 달 정도만 무대에 올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반응이 좋아 ‘오픈런(상설공연)’으로 전환했고, 9년째 공연 중이다. 2016년부턴 중국 상하이에서도 공연한다. 상하이에선 ‘맥키논 호텔’이 무대다. 일종의 글로벌 연극이 된 셈이다. 사실 기자는 이 연극을 볼 생각이 별로 없었다. 뉴욕에서 만난 동생뻘 여행객이 “어떻게 뉴욕에 왔으면서 ‘슬립노모어’를 안 보고 갈 수 있냐”며 심하게 다그치기에 엉겁결에 예약한 터였다. 예매도 쉽지 않았다. 올봄에 내년 1월 상연분까지 예약할 수 있는데, 주말 특정 시간대의 경우 올 연말 표까지 이미 매진됐다.

저녁 7시가 되면 입장이 시작된다. 흥미로운 게 신분증 검사를 한다. 19세 이상만 입장할 수 있다. 호텔, 아니 극장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짐을 맡기는 곳이 있다. 관객들은 어떤 가방도 지니고 들어갈 수 없다. 일종의 바(Bar)에 대기하고 있으려니 트럼프 카드를 나눠준다. 카드에 쓰여 있는 숫자가 불리면 상연장으로 입장한다.

눈앞에서 옷을 벗는 배우들

솔직히 문턱이 있는 연극이다. 사전에 공부하고 가지 않으면 ‘여긴 어디고 저 사람들은 뭘 하고 있나’ 고뇌하다 관람이 끝날 수 있다. 연극의 골격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다. 운명과 야망을 두 축으로 하는 비극이다.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가 세 마녀로부터 그가 장차 왕이 될 거란 예언을 듣는 것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맥베스와 그의 부인은 예언을 따라 왕 덩컨과 다른 신하 뱅코를 죽인다. 왕이 된 맥베스는 뱅코의 유령을 본다. ‘맥베스는 잠을 죽였다’는 환청도 듣는다. 맥베스 부부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슬립노모어’라는 극의 제목은 여기에서 따왔다.) 맥베스의 부인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살한다. 덩컨의 아들은 왕위를 되찾기 위해 맥베스를 공격하고 맥베스는 효수된다. 얼핏 간단한 전개다. 다른 셰익스피어 비극과 마찬가지로 여러 번 영화와 연극으로 옮겨졌다. 대개 맥베스를 어떤 인간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극의 톤을 변주했다.

‘슬립노모어’가 특별한 건 이 지점부터다. 연극이 시작하면 관객들은 원하는 인물을 골라 쫓아다니며 연극을 본다. 배우들은 여섯 개 층에 걸쳐 있는 100여개의 방을 오르락내리락 돌아다니며 연기를 한다. 만약 마녀 중 한 명을 골랐다면 그 마녀의 관점에서 구성된 연극을 본단 얘기다. 언제든 다른 인물로 바꿔서 쫓아다닐 수 있다.

이 연극엔 두 가지가 없다. 무대와 관람석이 따로 없다. 배우가 편지를 쓰는 연기를 할 때, 관객은 배우 바로 뒤에 붙어 뭐라고 쓰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연극이 ‘이머시브(immersive) 연극’, 즉 관객참여형 연극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관객들은 모두 입장할 때 받은 가면을 써야 한다. 영화 ‘브이포 벤데타’에 나오는 가면 같은 모양이다. 두 번째, 대사가 일절 없다. 동작으로 표현한다. 그 덕인지 비영어권 관람객도 많다.

기자는 일단 맥베스 뒤를 쫓아다녔다. 배우가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나중엔 관람을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주의사항에 왜 ‘편한 복장’이 언급되어 있는지 그때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그만 나를 내보내달라 얘기하려 하는데 맥베스와 그의 부인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전라의 배우들을 보며 놀라움에 고통을 잊을 때쯤 배우와 관객들이 후다닥 달리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기자도 다시 달렸다. 연극은 1시간씩 3번 반복된다. 3명의 관점에서 연극을 볼 수 있단 얘기다. 물론 체력이 받쳐줘야 가능하다. 중도 포기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세트에 앉아 있는 관객도 여럿 봤다.

기자가 생각한 ‘슬립노모어’의 성공비결은 3가지다. 첫째, 볼거리가 많다. 세트장의 소품 하나부터 의상, 배우들의 계산된 움직임까지 우아하고 세련됐다. 제일 저렴한 표도 100달러가 넘는데, 보고 난 후 돈이 아깝지 않다.

둘째, 놀랄거리가 많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갑자기 배우가 연기를 중단하고 관객 한 명을 골라 무대 한편에 있는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식이다. 그 관객만을 위한 연기를 보여준단다. 이 외에도 무대 6층엔 비밀 공간이 있다고 한다. 어떤 비밀인지 일부러 알아보지 않았다. 체력을 증진해 한번쯤 다시 관람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관객마다 모두 다른 연극

세 번째, 그러므로 연극 관람이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이 된다. 같은 연극을 봐도 각자 다른 경험을 한다. 어떤 인물을 조합해 봤느냐에 따라 다른 연극을 본 셈이다. 달리며 보다 보니 맥베스에 대한 심도 깊은 고뇌는 아무래도 힘들다. 수직적 몰입이라고 할까, 한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깊은 몰입은 잃어버렸지만 대신 다른 걸 얻었다. 다른 관점에 대한 주목이다. 자신이 내뱉은 예언을 현실로 바꾸는 맥베스를 보며 마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인간의 야망이 우스웠을까, 비극이 가련했을까. 왕이 된 맥베스를 보며 다른 신하들은 질투를 느꼈을까, 공포를 느꼈을까, 둘 다였을까. 의문은 이어지고 연극의 장면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봤다는 관객이 많다. 해외 인터넷 게시판에는 100번 가까이 봤다는 관객의 글도 올라온다. ‘슬립노모어’의 예술감독 펠릭스 배럿은 이 연극으로 영국국가공로훈장(MBE)도 받았다.

극장 문을 나서니 어느덧 밤 10시, 후들거리는 다리로 첼시의 밤거리에 섰다. 3시간 동안 건물 여섯 개 층을 달린 탓에 몸이 놀랐을까, 제목처럼 잠은 다 잔 것 같았다.

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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