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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62호] 2019.06.17

뉴욕 유니클로 카우스 티셔츠에 숨은 키워드

뉴욕=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sikroad100@gmail.com

▲ 지난 6월 4일 ‘카우스 특별 한정판 티셔츠 판매’ 행사를 가진 뉴욕 유니클로 매장. 현대예술가 카우스의 작품이 새겨진 티셔츠 1만2000장이 판매 1시간 만에 다 팔렸다. photo 유민호
사소하고도 특별한 부탁을 하나 받았다. 일 때문에 자주 접하는 중국 베이징 거주 60대 중국인이 이메일을 보내 “뉴욕 유니클로(Uniqlo)에 가서 티셔츠를 사달라”는 부탁을 했다. 처음 들어보는 ‘카우스(KAWS) 특별 한정판 티셔츠’라고 했다. 성별·나이·크기 관계없이 살 수 있는 만큼 구입해 DHL 특급소포로 보내달라는 ‘절박한’ 부탁이다. 처음 읽었을 때 잘못 받은 편지인가 오해했다. 이 중국인 친구는, 크게 보면 태자당 계열에 속하는 부자에다 권력가다.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다. 손자용 선물이라지만 이메일을 통한 티셔츠 부탁이 다소 의아스러웠다.
   
   메일을 받은 지 3일 만인 일요일 오후 늦게, 뉴욕 5번가 유니클로 매장에 들렀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카우스 이벤트를 알리는 초대형 광고가 크게 걸려 있다. ‘아티스트 카우스와의 마지막 컬래버레이션 판매’라고 써 있다. 기모노 차림으로 정문 앞에 서 있는 흑인 여성 안내원에게 티셔츠 한정 판매점이 어딘지 물어봤다. 미묘한 웃음과 함께 높이 30m는 될 듯한 고층 에스컬레이터를 가리켰다. 위로 올라가자 티셔츠를 들고 있는 거대한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인형의 두 눈은 카우스 작품의 상징인 ‘XX’로 표현돼 있다. 한정판 매장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옷이 하나도 안 보인다. 자세히 보니까 텅 빈 매장 한가운데에 ‘Sold Out(다 팔렸음)’이란 안내판이 들어서 있다. “카우스 한정판 티셔츠 어디에서 살 수 있는냐?”고 지나가던 직원에게 물어봤다. “판매 당일인 6월 4일 전부 다 팔렸다. 오픈한 지 1시간 만에 1만2000장 전부가 동이 났다. 한정판 카우스 가방도 마찬가지다. 원한다면 지난해 카우스 한정판 티셔츠를 갖다줄 수 있다. 5살 어린이용이지만….”
   
   1층 흑인 여성 안내원과 비슷한 묘한 웃음과 함께 돌아온 답이다.
   
   
   세계가 15달러짜리 티셔츠 쟁탈전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뉴욕 한복판에서 벌어진 15달러짜리 티셔츠 쟁탈전도 눈치채지 못하고 매장을 찾은 ‘꼰대의 비애’라고나 할까. 더불어 중국인 친구가 왜 이메일을 보냈는지 이해하게 된 순간이기도 하다. 곧바로 구글에 들어가 상황을 살폈다. 카우스의 스펠링 KA를 치는 순간 ‘Kaws Uniqlo T-Shirts’란 단어가 자동적으로 나타났다. 구글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정보는 중국의 카우스 한정판매 유니클로 매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6월 3일, 중국 현지 유니클로 매장의 문이 열리자마자 인산인해를 이룬 중국인들의 티셔츠 쟁탈전이 시작된다. 매장 셔터문이 다 올라가기도 전에 밑으로 기어들어가 티셔츠 탈취에 나서는 것은 물론 선전용 마네킹이 입은 옷도 벗겨가는 판이다. 너무도 중국적인 장면이기도 하지만 기억에도 새로운 ‘얼리버드(Early Bird)’ 현상이 겹쳐진다. 그렇지만 애플 매장에서 벌어진 장사진과는 크게 다르다. 최신형 아이폰을 먼저 사려고 애플 매장 앞에서 고객들이 이전투구를 벌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카우스 티셔츠는 다르다. 바로 한정판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어 소비자들이 절박할 수밖에 없다. 애플의 아이폰은 새벽부터 줄을 서지 않는다고 해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유니클로의 카우스는 다르다. 한정판이기에 매장에서 구입에 실패할 경우 기회가 그대로 사라지게 된다.
   
   ‘카우스 유니클로 한정판 티셔츠 이벤트’는 뉴욕만이 아니라 미국 다른 대도시는 물론 중국, 유럽, 일본의 유니클로 매장에서도 열렸다. 중국 외 매장의 경우 중국과 같은 고객들의 이전투구는 없었지만 예외 없이 개장 후 1~2시간 만에 완판을 기록했다. 주된 손님은 2030세대다. 왜일까. 얼리버드라는 말도 시들해져가는 상황에서 왜 티셔츠 하나에 전 세계 청년들이 매달리게 됐을까. 의문과 함께 떠오른 장면은 최근 한국에서도 나타난 커피전문점 ‘블루보틀(Blue Bottle) 열기’다. 꼰대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6000원대 커피, 3000원대 쿠키’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필자가 주목한 블루보틀 현상의 핵심은 ‘줄’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1호 매장 앞에 늘어선 장사진이 흥미로웠다.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 1~2시간 기다리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청년문화가 마침내 서울에 등장했다는 것이 포인트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커피이기에 짜장면 주문 후 5분도 못 참는 한국인의 인내를 키웠을까?’ 블루보틀 매장 앞 장사진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세상 물정 모르는 ‘앙시앙 레짐 세대의 궁금증’ 정도로 비친다. 마네킹의 옷도 벗기는 중국인을 논외로 한다 해도 ‘과연 얼마나 대단한 예술적 감각의 티셔츠이기에 모두 동이 났을까?’라는 식의 질문과 비슷한 수준의 세계관이라 볼 수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얼마나 대단한 맛, 얼마나 대단한 예술 작품’이 의문을 풀어줄 열쇠의 전부가 아니다. 카우스 티셔츠와 블루보틀 커피는 한 시대의 종언, 더불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는 단서라는 측면에서 풀어볼 수 있다.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20세기 말부터 최근까지 풍미했던 글로벌 시대의 상식과 세계관에 대한 반란이자 역습이다. 조감도, 즉 3차원의 눈으로 이 현상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크게 세 가지 부분에 주목하게 된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길라잡이 같은 분석이다.
   
   
▲ 카우스 특별 한정판 티셔츠는 14.90달러에 팔렸다.

   1. 서브컬처(Sub Culture)의 대승리
   
   카우스는 1974년생 뉴욕 브루클린 출신 전방위 현대예술가다. 그래픽 디자인, 조각, 패션, 문학, 벽화, 캐릭터에 이르는 팝아트(Pop Art) 전반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2030세대가 볼 때 ‘21세기 피카소’쯤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실제로 2019년 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아트 분야 사진 가운데 그의 작품은 최고에 올라서 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21세기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지만 한국에서는 특히 지난해 7월 서울 석촌호수 이벤트를 통해 한층 더 유명해졌을 듯하다. 당시 그는 석촌호수에 ‘컴패니언’이라는 캐릭터 작품을 띄워 주목을 받았다.
   
   필자의 경우 카우스라는 인물을 처음 만난 것은 대략 4년 전이다. 뉴욕 모마(Moma)뮤지엄에 갔다 300달러짜리 미키마우스 인형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략 90% 미키마우스를 빼닮은 인형에다 ‘XX’로 표현된 눈과 손, 팔이 전부다. 조잡하지만 비싼 짝퉁이란 것이 첫인상이었다. 저작권 같은 것은 어떻게 피해가는지가 궁금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카우스는 이미 30대 때 일본에다 ‘오리지널 페이크(Original Fake)’라는 상호의 의류를 제작, 판매한 경험이 있다. ‘진짜 짝퉁’이 자신의 특허인 셈이다. 공공연히 짝퉁을 찬미하는 식의 발상을 이미 21세기 초부터 시작했다는 의미다. 글로벌 시대의 인류는 진품 짝퉁 구별 능력은 물론 구별할 의사조차 갖고 있지 않다.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에서 보듯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싸고 편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두 눈을 XX로 표현한 카우스의 예술 세계는 ‘눈 뜬 봉사’로서의 글로벌 하향 평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일지 모르겠다.
   
   서브컬처(Sub Culture)는 카우스를 이해하는 최적의 키워드다. 한국어로 하위문화로 풀이되지만 원래는 상하 고저가 아닌 메인컬처(Main Culture)에 대한 대칭어이다. 따라서 비주류 문화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대학이나 언론에서 다루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주류 문화가 아니라 개별적·독자적 차원의 매니아 수준에 머문 문화다. 오페라나 초대형 극장에서의 클래식 콘서트가 아니라 언더그라운드 가수나 스트리트 뮤지션에 관한 얘기가 서브컬처의 범주에 들어간다. 정통 전통 역사와 무관한 것은 물론 기존의 주류 문화를 적대시하면서 확대해가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메인컬처에 대한 ‘카운터컬처(Counter Culture)’라는 의미로도 통한다.
   
   2019년 카우스는 이미 메인컬처의 최고봉에 올라선 상태다. 그러나 무명시절의 카우스는 서브컬처의 전위병이었다. 저작권을 무시한 채 XX로 표현된 캐릭터 사진들을 뉴욕 공중전화기에 대량살포하면서 지명도를 높였다고 한다. 글로벌 시대는 모든 것을 초고속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서브컬처에서 한순간 메인컬처 무대로 진입한다. 따라서 유니클로 카우스 한정판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서브컬처의 출세를 축하하고 찬미하는 기념행사라 해석할 수도 있다. 메인컬처에 대한 선망도 있겠지만, 적어도 카우스의 성장과정을 이해한다면 서브컬처가 갖는 이단, 이방, 반항의 승리라는 측면에 한층 더 열광하는 듯하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문화가 아니라 마침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문화가 글로벌 차원에서 실현됐다고 볼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의 금수저를 상대로 한 20세기 초 피카소와는 다른 예술가의 탄생이다. 2030세대가 주축이 된 흙수저 서브컬처의 대변인이자 성공모델이 카우스인 셈이다.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앞으로도 카우스 같은 수많은 서브컬처 기수들의 탄생이 한층 더 가속화할 것이다. 따라서 메인컬처의 개념도 재정립돼야 할 시간이 코앞에 다가섰다.
   
   
▲ ‘아티스트 카우스와의 마지막 컬래버레이션 판매’를 내걸고 진행된 유니클로 특별 판매전의 물건이 다 팔렸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내걸려 있다. photo 유민호

   2. 한정판(Limited Edition)의 매력
   
   카우스 티셔츠나 블루보틀 커피는 무한정 모두에게 열린, 갭(Gap) 티셔츠나 스타벅스 커피와는 다르다. 유니클로 전 세계 매장의 얼굴 격인 뉴욕 매장 티셔츠는 1만2000장이 아니라 12만장 한정판을 찍어내도 언젠가 전부 완판될 수 있을 것이다. 블루보틀의 경우도 스타벅스 매장처럼 서울 곳곳에 여기저기 판매망을 넓히면서 고객층을 확대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판매량을 늘리는 과정에서 가격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나 카우스 티셔츠, 블루보틀 매장은 기존의 확장 일변도인 비즈니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한 병의 와인보다, 족보 있는 와인 한 잔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판이 갖는 ‘나만의 특별함’에 주목하는 사람들을 노리는 비즈니스다. 따라서 예술적 감각이나 맛은 차후의 문제다. 가격은 어떨까. 비슷한 제품에 비해 결코 싸지 않은, 그러나 부자들의 기호품에 비해 저가인 선에서 결정된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보다 대략 1000원 정도 더 비싼 곳이 블루보틀이다.
   
   
▲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예술가 카우스(왼쪽)와 그의 작품 ‘카우스: 홀리데이 코리아(KAWS: HOLIDAY KOREA)’. 카우스의 이 작품은 지난해 7월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하나로 전시됐다. photo 뉴시스

   3. ‘나만의 컬러’를 찾자
   
   결과적으로 볼 때 한정판의 매력은 전 세계 소비자 모두에게 통하는 글로벌 논리와 상품에 대한 반발로 풀이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글로벌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종·국가·성별 차별 없이 ‘모두 함께’ 나누며 싸게 구입해 즐기자는 것이 아니다. 조금 비싸더라도 ‘나만의 취향’에 맞는 상품에 주목한다. 글로벌 시대의 상징인 스타벅스에서 만난다고 할 경우 뭔가 도매금으로 싸게 넘겨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페이스북·트위터로 소통하는 사람들을 ‘무개성 구세대’로 보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최신형 아이폰조차도 ‘그 나물의 그 밥’으로 보기 시작했다. 미국 동부와 서부 지식인의 상징 중 하나로 요즘 재래식 전화기가 뜨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렇지만 글로벌 논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아마존 밀림이나 티베트불교와 같은 세계는 더더욱 아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통도 하지만, 성형미인처럼 ‘그 나물의 그 밥’으로 분류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피난소가 카우스 티셔츠, 블루보틀 커피다. 전 세계 모두가 즐기는 아이폰, 스타벅스, 페이스북의 가치 추락과 함께, 이제 대세는 ‘나만의 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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