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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62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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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책]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pcsun21@daum.net

조현병자(일명 정신병자)의 범죄에 관한 뉴스가 유난히 빈번하다. 조현병의 증상은 단적으로 말해 심하게 ‘미친’ 것, 즉 심한 광기(狂氣·madness)다. 오늘날 광기는 심하든 약하든 명백한 질병으로 받아들여진다. 더구나 그것은 은연중에 우리에게 공포와 경멸을 불러일으킨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조현병자를 ‘가두어야’ 한다는 생각도 대수롭지 않게 한다.
   
   하지만 광기가 지금처럼 고약한 질병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도발적 주장이 있다. 바로 미셸 푸코(1926~1984)의 ‘고전시대 광기의 역사’(Histoire de la folie a l’age classique·1961)라는 책이다. 단순히 고전시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탓에, 우리말이나 영어로는 흔히 ‘광기(狂氣)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다.
   
   본래 광기는 고대로부터 인간 경험의 통상적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 뿐, 전혀 질병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광기는 신에게 좀 더 다가가서, 보다 근원적인 것을 계시하는 신령(神靈)한 증상으로 여겨졌다. 이런 인식이 14~16세기 르네상스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한편으로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광인은 별다른 제약 없이 일반인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었다. 기껏해야 배에 태워 이곳저곳을 떠돌게 하는 정도가 대책의 전부였다.
   
   심지어 지식인들은 광기와의 대화를 통해 좀 더 높은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실제로 예술가 중에는 광기를 통해 천재성을 발휘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차츰 인문주의가 대두함에 따라 광기의 몽상적·우주적 성격이 다소 퇴색되고, 그것을 차츰 인간의 이성과의 관계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처럼 광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미묘하게 변해가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르네상스시대까지는 여전히 혐오나 배제의 대상은 결코 아니었다.
   
   17세기 고전시대에 이르러 두 가지 측면에서 대변화가 일어났다. 첫째로, 이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가 대표적이다. 여기서 생각은 ‘이성적’ 사유다. 그동안 한데 엉켜 있던 이성과 비이성 또는 광기 사이에 경계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광기는 이성으로부터 날카롭게 분리되어 부정적인 낙인을 받기 시작했다.
   
   둘째로, 종교개혁의 결과로 근면한 노동윤리가 탄생했다. 이에 따라 근면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것을 구원의 증표로 여기는 부르주아 사회가 등장했다. 이런 변화를 정확하게 포착해낸 것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본지 제2538호 본란 참조> 이제 근면한 노동을 외면하고 가난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가차 없는 지탄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나태하고 열등하고 부도덕한 부적응자가 되었다.
   
   이런 변화로 인해 서구사회는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정상인’과 ‘비이성적이고 반사회적인 비정상인’으로 나뉘었다. 후자는 저절로 타자(他者)로 전락하여 배제 및 교정의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17세기 중반 유럽 각국은 대대적으로 구빈원을 설치하여, 이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가두었다. 이른바 ‘대감호(大監護)’가 벌어졌다. 한때 파리 시민의 1% 이상이 감금되었다.
   
   감금 대상에는 광인뿐만 아니라 극빈자, 거지, 부랑자, 방탕자, 매독환자, 무신앙자, 동성애자 등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당시에 그들은 모두 ‘같은’ 부류로 여겨졌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이런 자의적 감금이 비난받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노동력 부족 현상도 심화되었다. 그리하여 부류별로 감금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산업현장의 최하층 노동자로 편입되었고, 일부 병자는 의료시설로 옮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광인은 끝까지 남았다. 그들은 이성의 시대에 의해 실성(失性)한 위험분자로 낙인찍히고, 부르주아 윤리에 의해 부도덕한 타락자로 지목되었다. 여러 겹의 낙인을 받은 그들이 돌아갈 만한 자리나 위치는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와 끝내 함께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했다. 그들에 대한 비참한 격리와 감금은 대책 없이 지속되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일부 성직자와 의사들이 광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동정했다. 마침내 그들은 전원 속에 좀 더 쾌적한 시설을 만들어 광인들을 옮겨서 돌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전용시설은 도덕규범을 강제하고 생활규칙을 강요하는 또 다른 구속의 장(場)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성과 도덕에 대한 복종을 목표로 했다. 이로써 신체적 구속은 완화되었어도 정신적 구속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정신병원의 기원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광기는 이성으로부터 더욱 분리되어 면밀한 관찰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로부터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이 발전하였다. 아울러 새로운 과학으로 무장한 의료인이 절대적 권위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과학은 광기를 광인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성의 입장에서 광기를 철저히 질병으로 규정하고 이성으로 돌려놓으려는 것이었다.
   
   광기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고전주의 이전의 광기는 몽환적·우주적 신령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질병으로 인식하고 있는 광기와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이성이 절대적 지위를 갖게 된 고전시대라는 특수한 사회적 문맥 속에서 광기는 권력에 의해 ‘비정상’으로 낙인찍힌 다음, 19세기 정신의학에 의해 질병으로 확정된 것이다.
   
   역사학은 흔히 현재를 역사의 필연적 결과로 규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과거를 소급적으로 재구성하려고 한다. 반면 푸코는 현대가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그것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된 이면에는 반드시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현대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역사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며 그 이면을 폭로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푸코가 이런 지적 여정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 바로 ‘광기’다. 광기의 역사는 단순히 광기만의 역사가 아니라, 이성이 승리한 근대역사 그 자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우리가 당연하고 보편적이라고 여기는 개념들의 이면에 차례로 분석의 칼날을 들이댔다. 거기에는 지식, 자유, 권력, 신체, 섹스 등이 망라되었다. 이런 연속적 작업을 통해 그는 우리가 사는 현대의 특징을 역사적 문맥 속에서 다각적으로 드러내 보였다.
   
   그의 또 다른 문제작 ‘감시와 처벌’에서 그는 감옥, 병원, 학교 등의 시설이 구조나 기능 면에서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리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장(場)에서 은연중에 권력으로부터 감시와 처벌을 받으며 규율을 내면화해왔다. 한마디로 현대는 바로 그런 과정의 우연적 결과물인 것이다. 이처럼 그는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여기는 현실이 실은 특수한 역사적 조건화에 의해 정치적으로 생성된 결과물이라는 점을 끈질기게 추적했다.
   
   요즘도 아주 긍정적인 의미로 ‘미쳤다’는 표현이 간혹 쓰이기도 한다. 그것은 광기에 대해 편견이 없었던 시대의 흔적이다. 하지만 오늘날 광기에 대한 인식은 극도로 부정적이다. 심지어 국가가 조현병자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조현병자들은 대체로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다. 실제로 조현병자 집단의 범죄율은 일반인 집단보다 훨씬 낮다.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관리’ 운운할 일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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