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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64호]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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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힙스터의 성지, 윌리엄스버그의 숨은 예술가들

▲ 윌리엄스버그에서 벽화를 그리는 젊은이들. 윌리엄스버그의 벽화에는 화가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2019년을 대표하는 전 세계 최고의 예술무대는 어디일까. 여러 곳이 떠오르겠지만 뉴욕은 모두가 인정하는 공통분모일 듯하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돈’이다. 월스트리트라는 이름의 자본 공장터가 바로 뉴욕이다. 작품이 마음에 드느냐 마느냐와 관계없이 숱하게 창조된 예술 작품에 대한 비평과 거래가 활발하다. 상식이지만 예술은 품과 격에서 시작된다. 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20세기 초 파리가 전 세계 예술무대의 중심이 된 것도 ‘돈의 파워’에서 출발했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벌어들인 돈이 자유의 도시 파리에 몰려들면서 유럽 전역의 무명 예술가들이 파리로 왔다. 양은 질적 진화로 이어진다. 이탈리아 짝퉁 정도에 머물던 프랑스가 마침내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예술대국’으로 진화한다. 21세기 뉴욕은 전 세계 어떤 나라도 따라갈 수 없는 엄청난 자금력이 뒷받침하는 도시다. ‘부자=기부자’로 통하는 나라도 있지만 ‘금력=예술’로 해석하는 것이 뉴욕 기성 체제의 상식이다.
   
   
   카우스와 무라카미 다카시를 키운 곳
   
   당연하지만 뉴욕은 예술가들이 꿈꾸는 일확천금 대박의 도시이기도 하다. 인터넷 시대에 굳이 현장에 갈 필요 없이 원거리에서 필요한 것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아날로그 성향이 짙은 예술세계의 경우 장소의 이점을 무시할 수 없다. 전 세계 예술의 흐름을 비교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가려면 먼저 뉴욕의 예술 현장에 머물러야 한다. 사실 예술가란 타이틀을 갖는 사람치고 뉴욕행을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품을 원하는 부자들이 넘치기 때문에 한 방에 뜰 수 있다. 로또만이 일확천금 역전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물론 뉴욕에 머물 경우 예술가나 비평가와의 직접 대면도 가능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오페라하우스에서 자주 열리는 파티는 바로 공급자와 수요자, 비평가들을 묶어주는 연결고리다. 그러나 문제는 뉴욕의 물가다. 여러 가지로 돈이 ‘엄청’ 필요한 도시다. 무명 예술가 대부분이 그러하듯 돈과 인연이 멀다. 뉴욕 브루클린은 그 같은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오아시스다. 맨해튼과 다리 하나를 두고 떨어진 곳이지만 자전거를 이용할 경우 30분 정도면 맨해튼 중심가로 나갈 수 있다.
   
   그동안 틈틈이 브루클린에 들렀지만 특별히 윌리엄스버그에만 주목한 적은 없었다. 갑자기 윌리엄스버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맨해튼 5번가에서 접했던 팝아티스트 카우스(Kaws)의 열기 때문이다. 주간조선 2562호에서 소개했지만 유니클로(Uniqlo) 카우스 티셔츠 광풍이 지구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무려 14.99달러에 달하는 티셔츠이지만 카우스 이름 하나만으로도 출시와 동시에 ‘완판(Sold Out)’이다. 한 장도 구하지 못한 채 돌아왔지만 의외의 소득이 하나 있다. 카우스 열풍 속에서 ‘윌리엄스버그’란 키워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카우스 스튜디오, 카우스의 성장무대와 현재의 집이 윌리엄스버그란 사실이다. 그냥 스쳐갈 만한 사안이지만 필자는 특별하게 와닿았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세계 최정상 팝아티스트 자리에 오른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의 기반도 윌리엄스버그이기 때문이다.
   
   무라카미가 뉴욕에 처음 온 것은 1990년대 초다. 윌리엄스버그 로리머 스트리트(Lorimer Street)가 당시 첫 정착지다. 당시 브루클린은 대낮에도 총성이 들리는 무법천지였다. 덕분에 임대료가 엄청 저렴했다. 무라카미의 숙소 겸 스튜디오의 한 달 임대료가 80달러였다고 한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불과 20여년 만에 이뤄낸 팝아티스트 무라카미의 성공담은 시대정신에 동참한 능력과 운(運)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무라카미가 청운의 꿈을 안고 뉴욕에 온 것은 글로벌시대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이었다. 더불어 맨해튼 소호(Soho) 거주 예술가들이 급등하는 맨해튼 임대료를 피해 싼 브루클린으로 옮겨오던 시기다.
   
   
▲ 윌리엄스버그의 벽화는 뉴욕 다른 곳의 벽화와 달리 독특한 상상력에 기초해 아주 부드럽게 표현돼 있다. 흑인의 우수성과 자신감을 영웅 무하마드 알리로 대신 표현하는 식이다.

   작가의 이름이 새겨진 벽화들
   
   혼자 묵묵히 예술혼을 불태우는 것을 예술세계라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교회와 귀족과 같은 금수저만이 예술의 수요자일 때의 얘기에 불과하다. 부르주아지가 예술의 수요자로 등장한 19세기 말부터 상황이 달라진다. 공급자로서의 예술가, 수요자로서의 일반시민들이 함께 모여 서로 비교하고 토론하면서 창조해내는 것이 예술세계다. 수요에 맞추는 공급이라고 할 수 있다. ‘유일무이 나만의 색깔’에 기초한 공감과 네트워킹이 예술의 한복판을 차지했다. 무라카미의 예술세계는 그 같은 배경 속에서 탄생한, 윌리엄스버그발 시대정신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시대정신을 공유하듯 카우스와 무라카미 두 사람의 작품 성향은 비슷하다. 미키마우스나 일본의 요괴(妖怪) 같은 기존의 캐릭터를 변형시킨 남녀노소, 인종, 빈부 관계없이 모두가 쉽고도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예술세계다.
   
   윌리엄스버그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첫 번째 인상은 ‘청춘’ 그 자체다. 모두 젊다. 비만형도 극히 드물다. 남자의 경우 반바지에다 티셔츠 한 장이 주된 패션이다. 꼰대 눈으로 보면 전부 게이처럼 느껴진다. 여성은 긴 드레스 차림에다 화장기를 지운 얼굴이 대세다. 남에게 예쁘게 보이려는 의사가 전혀 없는 듯하다. 개와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수백 수천달러에 달한다는 문신은 기본이다. 윌리엄스버그 풍경의 특징으로 수많은 커피점을 빼놓을 수 없다. 전 세계 커피점을 석권한 스타벅스는 윌리엄스버그에서는 관심 밖이다. 원두를 직접 수입해 파는 무명의 작은 커피점들이 주류다. 윌리엄스버그는 ‘블루보틀’ 커피점이 미국 동부 지역에 첫 번째로 진출한 곳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주를 맴돌던 지방권 커피였지만 브루클린 진출과 함께 전국화에 성공했다. 따지고 보면 블루보틀 역시 무명의 작은 커피점을 조금 늘린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윌리엄스버그 커피점의 특징은 자가 커피에 국한되지 않는다. 직접 만든 쿠키나 케이크가 손님을 끈다. 쿠키의 경우 보통 하나에 2~3달러 수준으로, 유기농 재료에 기초한 핸드메이드란 점이 강조된다.
   
   벽화는 윌리엄스버그를 뉴욕, 나아가 다른 도시와 구별 짓는 큰 차이 중 하나다. 뉴욕 전체가 벽화의 천국이기는 하지만 윌리엄스버그는 최근 뜨는 글로벌 벽화의 중심무대다. 카우스 팝아트가 그러하듯 윌리엄스버그에서 뜰 경우 곧바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윌리엄스 벽화의 가장 큰 특징은 벽화의 테마에 있다. 뉴욕 다른 곳과 비교해보면 너무도 다르다. 간단히 말해 국가, 사회, 기득권을 겨냥하는 ‘피의 메시지’가 거의 없다. 자유·평화가 주된 테마이지만 표현 방법이 ‘아주’ 부드럽다.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에 기초한 표현력이다. 동성애나 이민 문제에 관한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으로 말해 심미적, 예술지상주의에 기초한 벽화라고나 할까. 할렘 스타일처럼 절규나 고통으로 채워진 벽화가 아니다. 흑인의 우수성과 자신감을 영웅 무하마드 알리로 대신 표현하는 식이다. 과거의 어두운 모습을 후벼 파는 것이 아니라 자유·평화를 만끽할 때의 즐거움에 주목한다.
   
   더불어 다른 지역 벽화와의 차이점으로 ‘기명화(Tags ID)’도 중요하다. 누가 벽화를 그렸는지, 화가의 이름을 반드시 벽화 속 어딘가에 집어넣는다. 윌리엄스버그 벽화의 출발점 역시 무명의 거리예술가들이 행한 ‘반달리즘(Vandalism)’에서 시작됐다.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멋대로 남의 집 담벼락에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불법이다. 하지만 윌리엄스버그 행정 당국은 음지 속에 숨은 무명 예술가의 양지화에 주력했다. 과거 무법지대로 통하던 브루클린의 어두운 이미지를 쇄신하자는 의미에서 시행된 정책이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예술, 나아가 돈이 되는 작품으로서의 인증작업인 셈이다. 따라서 벽화 주인이 동의할 경우 마음껏 ‘전시’할 수 있다. 결국 윌리엄스버그 거리 곳곳이 벽화들로 채워졌다.
   
   
▲ 윌리엄스버그의 거리 풍경. 전 세계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보헤미안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자전거와 인디음악과 수제맥주
   
   힙스터(Hipster)는 미국인이 갖고 있는 브루클린의 주된 이미지다. 1960년대 탄생한 히피와 같은 뿌리를 갖는 단어로 아편을 의미하는 힙(Hip)에서 파생된 말이다. 저렴한 주택가에 ‘함께’ 몰려 살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갖고 살아가는 인간형이다. 환경, 팝아트, 요리, 그린(green), 리버럴, 자전거, 인디음악(Indi Music), LP레코드, 동물, 채식주의, 수제맥주, 요가 등이 힙스터 세계의 주된 관심사이자 특징이다. 수염을 기르고 반바지에다 뿔테안경, 나아가 최근 등장한 전자담배를 즐긴다는 공통점도 빼놓을 수 없다. 크게 보면, 하나에 정통한 매니아(Mania), 일본으로 치자면 오타쿠(オタク)에 비견될 수 있다. 맥주 한잔을 마시더라도 족보와 제조방법, 공급지에 대한 세세한 얘기로 이어진다. 1960년대 히피가 ‘직감과 노래’에 주력한 데 비해 21세기 힙스터들은 ‘머리와 방법(How to)에 기초한 스토리텔링’에 주목한다. 당연하지만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글로벌이 아닌 로컬리즘을 신봉한다.
   
   윌리엄스버그는 힙스터의 아지트로 통한다. 2010년 인구조사 결과 주민 수가 3만2000여명 수준이었다. 그러나 폭증하는 힙스터 숫자를 고려하면 이미 거주자가 10만명에 육박한 인구밀집 지역으로 올라섰을 듯하다.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가 그러했듯이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 젊은들이 몰려오는 보헤미안 공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원래 주민의 90% 가까이가 백인이었지만 최근에는 아시아인 특히 중국인의 진출이 엄청나다. 대륙에서 직접 건너온 ‘자칭’ 아티스트 중국인도 넘친다. 전 세계 청년들이 모여들면서 임대료도 수직상승 중이다. 무명 예술가는 발붙이기 어려운 금수저의 동네로 변해가고 있다.
   
   파리 몽마르트에 가면 피카소가 자주 갔던 카페, 모딜리아니가 머물렀던 숙소, 르누아르가 애용했던 레스토랑이란 식의 스토리텔링에 기초한 명소가 즐비하다. 찾아가면 가격도 거의 2배 수준이다. 윌리엄스버그 역시 앞으로 수십 년 뒤 비슷한 내용의 ‘전설’이 이어질 것이다. 힙스터, 팝아티스트, 벽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커피로 채워진, 미래의 글로벌 예술 명소 영순위 공간이 윌리엄스버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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