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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66호]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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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기행]한 방 맞은 듯! 시칠리아 에스프레소의 추억

▲ 시칠리아는 로컬 커피 브랜드의 천국이다. 동네마다 자랑하는 커피 브랜드들이 있다. 사진은 시칠리아 팔레르모 한 카페에 걸려 있는 에스프레소 잔들.
‘조금씩’ ‘약하게’ ‘천천히’를 삶의 모토로 삼은 지 오래다. ‘대박’ ‘배수진’ ‘올인’ 같은 극단적인 처방은 멀리한다. 일확천금을 추구하는 인생들이 보여주는 어두운 교훈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렇지만 예외적으로 ‘왕창’ ‘강하고’ ‘빨리’를 선호하는 영역도 있다. 커피가 그중 하나다. 물론 그냥 커피가 아니라 에스프레소 얘기다. 여류작가의 낭만적 에세이에 ‘반드시’ 등장하는 머그컵 속의 드립형 커피가 아니라 한 방에 입에 털어넣고 뇌 활동을 일시 정지시키는 압력 커피의 정수가 에스프레소다. 준비하는 데 1분 마시는 데 1분 걸리는, 찰나(刹那)의 인생에 바치는 고농도 가솔린이라고나 할까? 전투에 나서기 1분 전에 마시는 최후의 성찬 같은 것이 에스프레소라고 평소 생각해왔다.
   
   
   1유로로 이탈리아 속살 읽기
   
   이탈리아를 후각으로 표현할 때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피자 타는 냄새, 와인 향, 곰팡이 투성이 치즈, 올리브 오일에 튀긴 해산물, 파스타 위의 송로버섯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 에스프레소 향이 가장 우선한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강열하게 떠오르는 추억이자 기억이다. 와인의 맛은 잊을 수 있지만 에스프레소 한 잔은 영원하다.
   
   상식이지만, 에스프레소의 원조는 이탈리아다. 한국은 물론 프랑스, 오스트리아, 미국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와는 질적, 양적으로 다르다. 진짜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인에 의해, 이탈리아 커피와 기기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 외는 전부 짝퉁에다 페이크다. 에스프레소 한 잔 가격은 이탈리아에서 대략 1유로 전후다. 카페에서 가장 싼 음료다. 이탈리아 여행 중 보통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갈 겸 카페에 들르는데 카페에서 가장 많이 파는 음료가 바로 에스프레소다. 진짜 이탈리아의 얼굴은 1유로만으로도 충분히 즐기고 확인할 수 있다.
   
   에스프레소 순례는 이탈리아의 속살을 읽게 도와준다. 싸고 쉽게, 가장 이탈리아적인 풍경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로컬 음료’가 에스프레소이기 때문이다. 와인도 이탈리아 곳곳이 유명 산지지만, 에스프레소야말로 곳곳이 자기네가 최고라고 주장하는 진짜 로컬 음료다. 전국 브랜드가 강세인 북부와 달리, 로마 아래 남부지방으로 가면 백인백색 다른 브랜드의 에스프레소를 만날 수 있다. 카페에 들르기 전 반드시 로컬 에스프레소 판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카페 종업원에게 확인하지 않아도 간단히 알 수 있다. 이탈리아 카페는 어떤 브랜드의 원두커피를 사용하는지 밝힌다. 입구에 걸린 간판 어딘가에 커피 브랜드 이름이 적혀 있다. 라바자(Lavazza), 일리(illy), 세가프레도(Segafredo)와 같은 전국망 브랜드가 아닌, 눈에 익지 않은 브랜드가 적혀 있는 카페가 에스프레소 순례의 제1 표적이다. 이런 카페에 들어가면 에스프레소를 후딱 마시고 나오기 전에 로컬 브랜드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 브랜드에 얽힌 역사적 배경, 다른 브랜드와의 비교, 로컬 브랜드 상표의 미적 감각 등을 살펴야 한다. 여러가지 얘기를 들을 수 있지만 이탈리아 카페 어디에 가서도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여기 내가 파는 에스프레소가 이탈리아, 아니 전 세계에서 최고다.”
   
   주간조선 2563호에 기고했듯이 지난 4월부터 한 달 가까이 시칠리아에서 보냈다. 여러 기억이 남아 있지만 에스프레소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새롭게 와 닿은 체험이다. 시칠리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동안 100여 군데가 넘는 카페에 들러 마시고 떠들었다. 가끔씩 와인도 마셨지만 에스프레소는 빠지지 않았다. 최고 하루 8잔까지 마신 적도 있다.
   
   
   나폴리 에스프레소와의 차이
   
   시칠리아까지 가서 에스프레소에 집착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바로 이웃인 나폴리 커피와의 비교다. 보통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동일 문화권으로 취급하기 십상이지만 전혀 다르다. 둘은 비슷한 듯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르다. 나폴리니타노와 시칠리아노를 동일하게 취급할 경우 난리가 난다. 커피 역시 비슷한 듯 보이지만 다르다. 시칠리아 에스프레소 맛이 어떤지, 이미 경험한 나폴리 커피와 비교하면서 체험하자는 것이 카페순례에 나선 이유다.
   
   둘째는, 시칠리아라는 지리적·역사적 배경에서 커피를 이해하고 싶었다. 시칠리아는 반도가 아니라 이탈리아 바깥쪽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온 곳이다. 역사적으로 페니키아·카르타고·그리스·게르만·아랍·노르만·스페인·프랑스·오스트리아에 이르는 긴 식민지 역사가 시칠리아의 어제다. 기원전 3세기 스키피오 장군에 의해 로마의 첫 해외식민지로 편입되지만 진짜 뿌리는 북부아프리카와 그리스 쪽에 있다. 종교적으로 이슬람과 그리스정교가 한층 더 강하다. 그리스어가 시칠리아 방언의 배경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시칠리아가 이탈리아에 완전 편입된 것은 19세기 가리발디 장군이 통일하면서다. 불과 150여년 전의 일이다. 따라서 반도 이탈리아와의 심리적 유대감이 별로 없다. 여러 측면에서 이탈리아 반도와 다른 곳이 시칠리아다. 일상음료인 커피도 그중 하나다. 와인도 그렇지만, 특히 시칠리아의 지리적·역사적 차이를 드러내는 최적의 예가 커피다.
   
   시칠리아 커피는 시골 작은 카페에서 마시는 것이 제맛이다. 영어가 잘 안 통하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면 기억도 오래 남는다. 그렇지만 에스프레소 순례는 시칠리아노 모두가 알고 있는 유명카페에서 시작해야 한다. 시칠리아주의 주도 팔레르모에 있는 ‘스피나토(Antico Caffe Spinnato)’가 대표적이다. 마시모(Massimo) 오페라하우스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카페로, 커피와 더불어 돌체(Dolce), 즉 디저트와 젤라토가 유명한 곳이다. 5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이탈리아 전체를 통틀어 ‘최고’에 속하는 카페다. 입구 간판에 ‘1860년 창업’이란 큰 글씨가 새겨져 있다. 종업원들이 모두 세련된 예복을 입고 있다. 고급호텔에 들어선 느낌이다. 남부 이탈리아의 특징 중 하나지만 유명한 카페일수록 가성비가 높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 90센트다. 스피나토에서 디저트와 에스프레소를 즐긴다고 해도 1인당 5유로 정도면 충분하다. 이탈리아는 광장만이 아닌, 카페를 통한 민주주의 공화국이기도 하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했다. 테이블에 앉는 게 아니라 그냥 서서 마시는 커피다. 테이블에 앉아서 마실 경우 한 잔에 2유로 정도로 비싸진다. 바텐더와 마주 서서 ‘벌컥’ 마시는 것이 에스프레소이기도 하다. 에스프레소에 앞서 물부터 한 잔 나온다. 커피를 마시기 전후의 입가심용 물이다. 1분도 안 돼 에스프레소가 나왔다. 평소에는 멀리하지만 시칠리아 에스프레스에 한해 큐빅설탕 두 개를 넣었다. 표면의 커피크림 막이 엄청 두껍다. 10초 정도 저은 뒤 한입에 털어 넣었다. 전체적으로는 쓰지만 부분적으로는 달콤하다. 그렇지만 머리를 거의 마비시킬 듯한 자극성 강한 음료다. 커피 브랜드는 카페에서 직접 만든 ‘스피나토’다.
   
   
▲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스피나토’의 종업원이 에스프레소를 서빙하고 있다.

   로컬 브랜드만 고집하는 곳
   
   시칠리아 에스프레소는 강하다. 그냥 강한 것이 아니라 카운터 펀치로 한 방 맞은 듯한 맛이다. 강하기로 소문난 나폴리 에스프레소도 시칠리아 것에 비하면 약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나폴리 맛은 벼락 맞은 뒤 머리가 텅 비는 감각 제로의 느낌이라면, 시칠리아 맛은 머리 전체가 주먹에 짓눌려 생각 자체가 소멸된 듯한 느낌이다. 이탈리아 커피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단 한 잔만 마셔봐도 금방 비교 가능하다. 필자의 경우 시칠리아 에스프레소는 강한 위스키를 마신 뒤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원두 배합은 강한 맛을 창조해내는 비법이다. 크게 볼 때 커피 원두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로브스타(Robusta)와 아라비카(Arabica)다. 둘 다 에티오피아와 예멘에서 시작된 원두지만 현재는 대륙별로 분리돼 재배되고 있다. 로브스타는 주로 아프리카, 아라비카는 카리브해·라틴아메리카·베트남·중국이 주 산지다.
   
   두 원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쓴맛과 산미에 있다. 로브스타는 강하고 쓴맛이 특징이다. 혀에 주목하는 것이 로브스타라면, 코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 아라비카다. 크림 막이 비교적 검고 두꺼우면 로브스타, 상대적으로 황금색이고 얇으면 아라비카다. 카페인의 경우 로브스타가 전체 원두 내 2~4%대인 데 비해, 아라비카는 1.1~1.7%에 그친다. 남성근육형 로브스타, 달콤하고 은은한 여성형 아라비카로 구별할 수도 있다. 보통 이탈리아에서의 커피 배합은 로브스타와 아라비카가 3 대 7 정도다. 나폴리도 4 대 6 정도다. 한국에서 마시는 커피의 대부분은 아라비카 100%이거나, 로브스타·아라비카 배합이 심해야 2 대 8 정도에 그친다. 시칠리아는 어떨까? 5 대 5는 기본이고, 필자가 체험한 시칠리아 내 최고기록으로 7 대 3인 곳도 있다. 스피나토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원두배합 비율은 로브스타 5.5, 아라비카 4.5다.
   
   원두의 맛은 어떤 온도와 습도에서 얼마나 오래 가공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로브스타 원두라도 가공하기에 따라 달콤한 산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로브스타는 강한 크림을 동반한 쓴맛이다. 따라서 설탕이 듬뿍 들어가야 제맛이다. 아라비카의 경우 설탕 없이도 즐길 수 있지만, 로브스타는 결코 쉽지 않다.
   
   시칠리아 카페를 헤매는 동안 발견한 것이지만 시칠리아 전체를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가 특별히 없다. 나폴리의 경우 모레노(Moreno), 킴보(Kimbo)처럼 나폴리 밖에서도 통하는 유명 브랜드가 있다.
   
   시칠리아발 유명 브랜드가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풀이될 수 있다. 먼저 넓은 공간이다. 시칠리아는 나폴리에 비해 거의 230배 큰 면적의 섬이다. 인구는 나폴리에 비해 5배 많은 500만명 정도다. 넓은 땅에 여기저기 흩어져 살기 때문에 브랜드 하나로 통일하기 어렵다. 인구가 밀집된 나폴리의 경우 하나가 뜰 경우 곧바로 인기 브랜드에 올라설 수 있다.
   
   시칠리아 커피 브랜드의 대부분이 영세중소상인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도 유명 브랜드가 없는 이유다. 지토(Zito), 모카우노(Mokauno), 벨카페(Bellcaffe), 토리시(Torrisi), 모크(Moak), 레지나(Regina), 로레(Lore), 오르조(Orzo), 킬리(Kili), 모레티노(Morettino) 등 시칠리아 로컬 브랜드 대부분은 현지를 뜨는 순간 아무도 모르는 커피로 전락한다. 현지 주민들은 오직 자신들의 지역에서 만든 커피만을 고집할 뿐, 다른 로컬 브랜드는 철저히 무시한다. 시칠리아 곳곳에서 봤지만 가는 곳마다 자가제조 커피가게가 즐비하다. 대략 원두커피 1㎏에 10유로 전후로 엄청 싸다.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원두를 직수입해 집에서 제조한다. 에티오피아 로브스타 원두의 대부분은 일단 시칠리아를 통해 이탈리아 전역으로 분산 판매된다고 한다. 시칠리아노가 ‘영원히’ 쓴맛의 에스프레소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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