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4일 칠곡경북대병원 암생존자 통합지지센터에서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암생존자들의 모습.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7월 24일 칠곡경북대병원 암생존자 통합지지센터에서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암생존자들의 모습.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41살 이혜연씨는 ‘암생존자’다. 암생존자란 일반적으로 암을 진단받고 나서 수술이나 항암치료 같은 초기 치료를 마친 사람을 말한다. 2016년 봄,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수술까지 마친 이씨에게 암 이후의 ‘생존’은 다소 암울한 것이었다. 원래 어린이집 교사였던 이씨는 치료를 위해 일을 그만뒀다. 어린이집 원장도 넌지시 퇴직을 권했다.

“‘일하다 보면 스트레스 많이 받을 텐데 쉬면서 치료받는 게 낫지 않느냐’고 말하더군요. 치료비와 생활비 걱정 때문에 가급적이면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겠죠.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오로지 치료에만 매달렸어요.”

다행히 2016년 여름 즈음에 ‘관해(완화)’ 판정을 받았다. 암세포를 제거했고 증상이 나아졌으니 1차 치료는 마친 셈이었다.

“저는 암 치료만 마치면 모든 게 잘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의 생존이 더 큰 문제일 줄은 몰랐습니다.”

다시 어린이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반년이 지나도 좀처럼 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암 투병 사실을 밝히면 열이면 열 모두 ‘안 되겠다’고 하더군요. 나중에는 아예 암 경험을 숨겼어요. 병원에 가야 하는 문제나 재발 가능성 같은 걱정보다도 취직이 우선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취업 후 마음을 놓고 암 경험을 얘기했다가 더 큰일을 겪었다.

“자궁경부암에 걸린 적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한 학부모가 원장 선생님께 매우 강하게 항의를 했어요. 자궁경부암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더군요. 워낙 강경한 태도였던지라 제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씨는 지난해 겨울 다니던 어린이집을 그만뒀다. 그리고 나서는 아직까지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어린이집 교사 이외의 다른 직업을 가지려고 직업교육을 받고 있지만 성과가 좋지는 않다.

암 유병자 174만명, 암 생존율 70.6%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에 따르면 암 확진판정을 받고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암 환자의 수는 약 174만명이다. 만약 우리나라 국민 중 한 사람이 기대수명인 82세까지 살게 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2%다. 그만큼 암이 찾아보기 쉬운 병이라는 얘기다.

다행히 암 생존율은 날이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5년간 암을 진단받은 환자의 상대생존율은 70.6%나 됐다. 상대생존율이란 일반인과 비교해 암 환자가 5년간 생존할 확률이다. 갑상선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100.2%인데 갑상선암을 진단받은 환자가 5년 동안 생존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일반인보다 더 높다는 의미다. 한국의 암 생존율은 국제적으로 비교해봐도 훨씬 높은 편이다. 특히 한국인이 많이 걸리는 위암이나 간암 환자의 생존율이 높다. 미국 위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32.1%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75.8%다. 미국의 간암 환자는 5년 동안 18.8% 생존율을 기록하지만 한국에서는 34.3%나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암은 불치병의 하나로 여겨졌지만 통계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93년에서 1995년 사이 암을 진단받은 환자의 상대생존율은 41.2%에 불과했다. 이제는 암을 두고 ‘만성질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을 만큼 암은 이제 한국인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질병이다.

그간 암과 암 환자를 둘러싼 논의의 상당수는 의학적인 것이었다. 전국 단위의 암 통계를 산출하기 시작한 것이 겨우 20년 전인 1999년의 일이다. 20년 사이 국가 암 정복 계획은 암을 예방하고 암 발생을 줄이고 사망률을 낮추는 데 있었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암 발생률은 2011년 이후 3.0%씩 감소하고 있다. 암 환자 3명 중 2명 이상은 5년 이상 생존한다. 권태균 칠곡경북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그동안 사회적 논의나 의료·복지제도는 암 환자의 치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암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암 환자를 잘 치료해서 살려낼까가 아니라 잘 치료된 암생존자의 건강을 어떻게 관리할까가 새로운 화두가 된 겁니다. 암 생존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치료가 끝나면 더 이상 관리가 필요하지 않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면 안 됩니다.”

권 교수의 말에 따르면 암 생존율이 증가하면서 암 관리사업에 대한 관심도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암생존자에 대한 지원은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말이다. 암생존자의 ‘암 이후 삶’이 결코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암협회는 지난 4월과 5월 두 달에 걸쳐 ‘암생존자 사회 복귀 지원을 위한 실태조사’를 펼쳤다. 이 중 암생존자가 느끼는 편견과 차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 남은 과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암생존자 중 암 투병 경험을 주변에 알렸거나 알리겠다는 사람은 73.6%였다. 투병 경험을 아예 감추겠다는 사람이 10명 중 3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연령이 낮을수록 암 투병 경험을 알리지 않았거나 그럴 계획이라는 사람이 많았다. 20~30대의 40.7%가 그랬다. 암 투병을 전후로 직장이 달라진 경우에도 비공개 의사가 높았다. 다른 직장에서는 암 투병 경험을 알리지 않겠다는 사람이 38.3%나 됐다.

이유는 암생존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 때문이다. 실제로 암생존자가 느끼는 편견의 종류도 다양했다. 가장 많은 것이 업무능력을 평가절하당하거나 암생존자라면 휴가를 더 자주 쓸 것이라고 간주되는 일이다. 1차 치료가 끝나고 관해 판정을 받은 암생존자가 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것은 짧게는 한두 달에 한 번, 길게는 반년에 한 번 정도다. 일반인에 비해 눈에 띄게 많은 횟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으레 암생존자라면 진료 때문에 자주 자리를 비울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더러는 아예 업무능력을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지난 2015년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수술 후 업무에 복귀한 30대 후반 변호사 송지연(가명)씨가 겪은 바도 그렇다.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대형 로펌에 다니는 송씨에게 암 투병 경험은 절망적인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 암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야 놀랐지만 워낙 갑상선암은 예후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전이도 되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암 투병 전에는 워낙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한 터라 휴가를 얻은 기분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직장에 복귀한 송씨에게 돌아온 것은 보이지 않는 불이익이었다. 송씨가 맡고 있던 업무가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것을 시작으로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들만이 그에게 주어졌다.

“처음에는 배려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제가 몸이 약해서 암에 걸린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재발할까봐 걱정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일할 수 있는데 주변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한암협회의 조사에서도 암생존자의 주변에서 ‘암을 불치병이라 생각해 동정받아본 적 있다’는 응답이 35.5%에 달했다. 심리가 불안정해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것 같다는 편견을 느낀 적 있다는 답도 28.9%였다.

암은 끝이 아니다

젊은 암생존자일수록 암에 대한 편견에 많이 시달린다. 통계청의 통계를 보면 20~30대 암생존자는 6만명이 훌쩍 넘어 전체 인구의 7.5%나 차지한다. 다른 어떤 질환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만성질환’이 암이지만 또한 그만한 편견에 시달리는 것도 사실이다. 업무에서 능력 발휘를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암생존자가 64.5%나 됐다.

40대가 넘어서면 아예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직·간접적으로 퇴직 압박을 받기도 하고, 채용을 거절당하는 경우도 많다. 암생존자에게 가장 필요한 제도 중 하나가 고용보장이라고 답한 40대 암생존자는 전체의 75.8%나 됐다. 지난해 43살의 나이로 위암을 앓았던 박천식(가명)씨 역시 강력하게 동의하는 바다. 정기검진에서 위암 발병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처음에 조기에 암을 발견한 것이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때가 부장으로 진급한 지 얼마되지 않던 애매한 나이였거든요. 그런데 암 진단을 받고 나서 ‘남들보다 빨리 은퇴하라’는 식으로 상황이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암이 곧 은퇴가 되더군요.”

임원 중에는 박씨에게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겠느냐”고 물어오던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치료 때문에 휴직을 하고 나서 돌아와보니 박씨가 있을 자리가 없었다.

“겨우 2개월이었는데 제 커리어가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에 사직서를 내고 퇴직금으로 창업을 했습니다.”

암생존자 스스로도 자신의 상태에 대해 편견을 가진 경우도 많다. 61살의 나이로 전립선암을 앓은 최병규씨는 암 투병을 기준으로 자신의 삶이 마무리되고 있다고 느낀다. 조기진단을 받아 무사히 완치 판정까지 받았지만 암이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대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아내와 함께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건강하고 자연적인 삶을 살면서 여생을 이어나가려고요.”

그런데 박호용 칠곡경북대병원 유방갑상선외과 교수에 따르면 이런 자세가 암의 치료는 물론 암생존자의 삶의 질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간혹 생존자들 중에는 아예 요양병원으로 들어가거나 자연으로 숨어 ‘나쁜 것’들과 단절해버리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환자들에게, 보호자들에게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강력히 말합니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음주 습관에 대해서도 그렇다.

“술은 나쁩니다. 그러나 주변에서나 생존자 본인도 ‘암 환자니까’라는 마음가짐으로 즐겁고 흥겨운 자리에서도 아예 술 한잔 입에 대지 않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직장에 돌아가서 회식 자리를 가질 수도 있지요. 그럼 주변 눈치 보지 말고 한잔씩 하라고 말합니다. 암생존자로 산다는 것은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암을 겪어냈다는 것은 ‘환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암생존자는 단지 암이라는 질병을 거친 사람일 뿐이다. 물론 암생존자의 재발 확률이나 2차 암 발병 확률이 다른 사람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암생존자의 삶을 다른 어떤 것에서 단절시켜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48살 임정희씨는 유방암 생존자다. 뒤늦에 암을 발견해 부분적으로 유방절제술까지 받았지만 그는 암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좌절을 겪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그냥 ‘치료받아보자’는 생각만 들었어요. 암담하다거나 슬프다거나 그런 감정이 아니라 ‘한번 치료해보자’는 생각이었죠. 병원에 자주 왔어야 했지만 그게 힘들다는 생각도 안 해봤어요. 동생이 늘 병원에 데려다줬는데 둘이서 주변의 맛집을 탐방하는 재미로 병원을 다녔지요.”

하던 일을 그만두기는 했다. 원래 영어강사였던 임씨는 암을 치료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그렇다고 해서 요양병원에 입원하거나 주변과 단절한 채로 치료에만 몰두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제가 암 판정을 받은 후 들었던 말 중에 당시에는 속상했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맞는 말이 있었어요. 암은 감기 같은 거라는 얘기였죠. 말을 들었을 때는 왜 그렇게 내 일을 하찮게 여기나 섭섭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맞아요. 암은 감기같이 지나가는 질병이에요. 조금 복잡하고 크긴 하지만 우리 삶에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일 뿐인 거죠.”

이 같은 마음가짐은 박호용 교수가 권하는 바이기도 하다.

“실제로 암생존자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심리적인 것입니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 치료 과정 중에 생긴 우울증 같은 문제가 암생존자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트리는 요인입니다. 이런 심리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현실적인 방법은 일상에 복귀하는 것입니다. 암이 끝이 아니라 삶의 과정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암생존자 스스로 이런 사실을 깨우치기가 쉽지 않다. 방법도 알 수 없다. 그동안 아무도 암생존자에게 ‘암은 끝이 아니다’라고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2년 전부터 전국 각지에 생겨나기 시작한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는 암생존자의 생존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생겨난 국가기구다. 2017년 중반 시범사업이 시작됐고 지금은 전국 12개 암센터에 지지센터가 만들어졌다. 대구·경북지역 암센터가 있는 대구 칠곡경북대병원에도 지난 6월 통합지지센터가 세워졌다. 센터장을 맡고 있는 권태균 교수의 설명이다.

“암 치료가 끝나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생존자들은 그동안 제각기 알아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정보에 노출되기도 하고 건강하지 않은 방향으로 삶을 재설정하기도 했죠. 지지센터에서는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를 알려줍니다.”

전국 12개 암센터에 암생존자 지지센터

센터에 방문한 생존자들은 다양한 검사를 거쳐 어떤 관리가 필요한지를 점검받는다. 기본적으로는 영양상담, 건강관리, 운동처방 같은 것들이 제공된다. 심리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생존자에게는 정신건강을 위한 의료지원 서비스가 제공되기도 한다. 직업교육이 필요하거나 복지 지원이 필요한 생존자를 위해 사회복지사도 자리 잡고 있다. “결국은 암생존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는 게 권 교수의 말이다.

실제로 지난 7월 24일 지지센터에서는 유방암 생존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생존자들에게 일상생활을 건강하게 영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자리였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수술을 받은 경우에도 1~2주 정도 후에는 곧바로 일상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강도를 높여가면서 운동도 해야 합니다.”

1시간 동안 이어진 프로그램에서 생존자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운동방법을 교육받았다. 유방암 생존자들이 특히 조심해야 하는 부작용, 림프부종을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질문 세례가 이어지기도 했다. 박호용 교수는 “종종 생존자들끼리만 교류하다 보면 잘못된 정보를 제공받고 잘못된 생활습관을 이어나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지지센터가 필요한 이유는 생존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치료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치료 이후에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정보를 제공할 기회가 부족했거든요. 지지센터를 통해서 일상생활로 올바르게 복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난 2017년 국립암센터가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암생존자라는 단어조차 못 들어본 사람이 전체의 36%가 넘었다. 암 이후의 건강한 삶이 화두에 오르기 시작했다. 암은 이제 삶의 과정이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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