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교육감발(發) ‘특목고·자사고 폐지’ 발언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문재인 정부는 특목고·자사고를 ‘고교 서열화의 주범’으로 몰고 있지만 특목고·자사고를 죽인다고 교육의 미래가 살아날지, 기승전 입시인 기형적인 교육이 바뀔지는 의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누더기가 되도록 대입제도를 개편했지만 입시경쟁의 무한질주는 속도를 더하고 있다. 공교육의 붕괴와 함께 일반고는 입시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하소연이 쏟아진다. 자사고·특목고를 없애기 전에 일반고부터 살리는 것이 먼저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지방에 있는 한 작은 학교의 특별한 실험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실험의 현장은 경기도 화성시 조암읍 삼괴고등학교이다. 이 학교는 ‘학생들의 행복한 성장’이 교육의 본질이라는 것을 새삼 돌아보게 해준다. 밖에서 헐뜯고 싸우든 말든, 제도가 바뀌든 말든 ‘닥치고 교육의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가르쳐준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
삼괴고는 60년 된 사립학교다. 특성화과가 포함된 종합고에서 2015년 일반고로 전환했다. 삼괴고는 일반고 전환과 함께 새롭게 ‘기업가정신’ 교육을 학교 곳곳에 접목했다.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문제해결을 통해 사회적 가치와 수익창출을 만들어내는 것이 기업가정신, 즉 앙트십(앙트프뢰너십·Entrepreneurship)이다. 아직까지 교육계에서 일반화된 단어는 아니다. 일부 실업계고에서 창업에 초점을 맞춰 도입하고 있는 정도다. 삼괴고는 ‘앙트십 교육’을 창업이 아니라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했다. 사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에게 필수요소는 인공지능이 따라올 수 없는 창의적 문제해결과 협업 능력이다. 리더십의 시대가 아니라 앙트십의 시대인 것이다. 교육의 역할은 시대에 맞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앙트십 교육이 바꾼 삼괴고의 변화는 신선하고 흥미롭다. 가장 큰 변화는 학생 스스로 주변의 문제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간 것이다. 한 명 한 명의 변화는 학교 전체에 엄청난 변화의 시너지를 불러일으켰다. 학생들은 학교뿐만 아니라 마을도 바꿨다. 학교 근처 횡단보도에 신호등을 설치하게 하고, 어두운 지역에 가로등을 요구했다. 노선버스 운행경로를 바꿔 학교 앞에 정류장도 유치했다. 그를 위해 학생들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시청에 정책 제안을 냈다. 조암읍내 시장 개선, 으슥한 하천을 산책로로 바꾸기 등도 학생들이 제안한 프로젝트들이다.
삼괴고는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단적인 예가 학생회이다. 학생회는 삼권분립 체제이다. 입법·행정·사법이 분리돼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학교의 모든 결정은 학생회를 거치지 않고는 안 된다. 뜨거운 학생회, 일명 ‘뜨학’ 간부들은 매주 금요일 교장과 마주 앉아 회의를 한다. 학년별로 취합한 문제나 제안들을 회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의견을 나누고 결정을 내린다. 아주 중요한 안건의 경우는 학생, 교사, 학부모까지 참여해 대토론회를 연다. 예를 들면 복장 규정을 정하는 문제 같은 것들이다. 화장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귀걸이는 해도 되는지, 파마·염색은 허용할 것인지 등을 놓고 전교생이 참여해 2시간 토론을 벌였다. ‘학생다움’에 대한 격론이 오간 끝에 ‘본인의 콤플렉스를 감출 수 있는 정도로 비비크림, 선크림 정도로 한정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복장 규정을 만들었다.
축제, 체육대회 등 학교 행사나 대회들도 학생들 담당이다. 계획부터 진행, 뒷정리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동아리 활동도 학생이 주도한다. 현재 개설된 동아리는 50개가 넘는다. 동물관련 활동을 하는 ‘주토피아’, 사회문제 토론을 내세운 ‘#해시태그’, 생물 다양성을 연구하는 ‘그린오너’, 기계전자공학을 연구하는 ‘M.E.T’ 등 스스로 제안하고 이끌고 있다. 삼괴고에서 “안 돼!”라는 단어는 없다. 어떤 의견을 내든 교사들은 “한번 해봐!”라는 말로 학생들을 격려한다. 교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이 뭔가를 하려고 할 때 학교 측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