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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69호]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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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특집]남태평양 쿡아일랜드의 유혹

▲ 쿡아일랜드의 아이투타키섬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라군’을 가졌다. photo 셔터스톡
미크로네시아, 솔로몬, 투발루란 나라가 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이다.
   
   미크로네시아(Micronesia)에서 온 누군가가 말했다. “미크로네시아에서는 스톤머니(stone money)를 써요. 수레바퀴처럼 둥글고 가운데엔 구멍이 뚫려 있어요. 부족마다 스톤머니 은행이 있는데 거기 가보면 양편으로 스톤머니를 쭉 세워 놓았어요. 가장 큰 스톤머니는 지름이 2m 정도 해요. 세상에서 가장 큰 돈이죠. 음, 당신보다 크겠군요.”
   
   솔로몬제도(Solomon Islands)에서 온 누군가가 말했다. “솔로몬제도의 말레이타(Malaita)에선 셸머니(shell money)를 써요. 보기 드문 조개껍데기로 만든 셸머니는 당신이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귀해요. 옛날 이야기가 아녜요. 지금도 쓴다니까요.”
   
   투발루(Tuvalu)에서 온 누군가가 말했다. “투발루에 밀리언스타 호텔이 있는 거 알아요? 5성급이니 6성급이니 하는 호텔에 비할 바가 아녜요. 밀리언스타 호텔에선 활주로에 텐트를 치고 자요. 머리 위로 100만개의 별이 빛나죠.”
   
   남태평양의 작은 섬들 얘기다. 1831년 프랑스 해군이자 탐험가인 뒤몽 도르빌(Dumont d’Urville)은 남태평양을 세 지역으로 분류했다. ‘검은 섬들’이란 의미의 멜라네시아, ‘많은 섬들’이란 의미의 폴리네시아, ‘작은 섬들’이란 의미의 미크로네시아다. 남태평양에 오기 전 ‘태평양’ 하면 하와이만 떠올랐다. 얼마나 무지했던가? 그 넓은 바다에 하와이, 괌, 사이판만 있을까?
   
   눈을 감고 아득한 시간을 떠올려본다. 기원전 5000년 남동아시아의 브라운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카누를 타고 고향을 등졌다. 기원전 1500년 이들은 솔로몬제도, 바누아투, 미크로네시아, 피지를 지나 통가와 사모아로 향했다. 기원전 500년 어떤 이들은 사모아를 떠나 멀리 떨어진 마르케사스(Marquesas)와 타히티로 항해를 이어갔다. 타히티조차 마지막 정박지가 아니었다. 마르케사스 사람들은 6세기경 다시 이스터섬과 북쪽의 하와이로 향했고, 9세기경에는 서쪽의 쿡아일랜드, 그 다음에는 머나먼 뉴질랜드로 향했다. 천생 항해자(航海者)들의 카누 안에는 이들의 종교, 문화, 의약품, 언어가 함께했다. 이들의 카누가 도착한 곳에서 ‘폴리네시아’란 신세계가 열렸다.
   
   
   쿡아일랜드는 어디인가
   
   폴리네시아의 나라 중 하나가 쿡아일랜드다.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쿡아일랜드가 나라 이름인지도 몰랐다. 쿡아일랜드에 가게 되었을 때 막연히 영국 군인이자 탐험가인 캡틴 쿡, 제임스 쿡(James Cook)이 떠올랐을 뿐이다. 1728년 영국 요크셔 촌구석에서 태어난 그는 어떻게 태평양 전역을 항해하고 태평양 지도를 그렸을까?
   
   지도를 보니 쿡아일랜드는 뉴질랜드와 하와이 사이에 있다. 쿡아일랜드 동쪽에 우리에겐 ‘타히티섬’으로 익숙한 ‘프렌치 폴리네시아’가 보인다. 그런데 쿡아일랜드는 열다섯 개 섬으로 이루어졌다는데 지도를 아무리 살펴봐도 열다섯 개는커녕 두세 개도 찾기 어렵다. 구글맵을 최대한 확대하고 나서야 그나마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태평양의 점 같은 섬들이다. 쿡아일랜드 수도가 있는 라로통가(Rarotonga)에서 다른 섬으로 가는 데는 30분이면 된다는데, 단 비행기를 탔을 때 얘기다. 여행자로선 이런저런 비치에 가기 위해 이 비행기, 저 비행기를 타야 할 판이다. 마치 시외버스를 타듯.
   
   쿡아일랜드는 흔히 노던(northern)그룹과 서던(southern)그룹으로 나뉜다. 수도 아바루아(Avarua)가 있는 라로통가와 아이투타키는 서던그룹에 속한다. 알고 보니 쿡아일랜드의 북동쪽에서 남서쪽 끝까지 거리는 1000㎞가 넘는다. 라로통가 해안도로의 길이가 32㎞밖에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아주 작은 나라인 줄 알았는데 제법 큰 나라인 셈이다.
   
   쿡아일랜드 사람들, 즉 쿡아일랜더(Cook Islanders)는 폴리네시아 마오리족이다. 최근 이루어진 DNA 검사에서 쿡아일랜더들의 선조인 폴리네시안들은 지금부터 대략 7000년 전의 파푸아뉴기니 원주민들과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서던그룹에 속한 섬 원주민들은 소사이어티 아일랜드(Society Islands)와 마르케사스제도에서 온 항해자, 여행자들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18세기 유럽인들이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라로통가에만 8000여명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이들에게 재앙이었다. 이들이 가져온 갖가지 질병은 19세기 중반 라로통가의 인구를 2000명도 안 되게 만들었다. 유럽인이 오기 전 번성하던 섬은 파괴되고 황폐해졌다. 그 후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곳을 찾은 외지인들에 의해 인구는 점점 더 늘어나 지금에 이르렀다.
   
   쿡아일랜더들은 문화와 언어의 측면에서 뉴질랜드 마오리(Maori), 프렌치 폴리네시아의 마호히(Maohi), 라퍼뉴이(Rapa nui)로 알려진 이스터섬의 마오리, 하와이의 카나카 마오리(Kanaka Maoli)와 유사하다. 마오리어와 영어뿐만 아니라 푸칸푸칸(Pukapukan)어도 사용한다.
   
   쿡아일랜드에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1350년 라로통가의 항구를 떠난 쿡아일랜드 원주민의 배인 바카(Vaka)가 긴 항해 끝에 3000㎞ 떨어진 뉴질랜드에 도착했다는 얘기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쿡아일랜드의 인사말은 ‘키아 오라나(Kia Orana)’, 뉴질랜드 인사는 ‘키아 오라(Kia Ora)’다. 현재 3만여명의 쿡아일랜더들이 본국을 떠나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1만5000명의 쿡아일랜드 인구보다 더 많은 수다.
   
   쿡에 도착한 첫날 밤, 춤추는 여인들을 보았다. 쿡아일랜드 예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장르라곤 해도 외국인 관광객만 모아놓고 하는 쇼는 대개 불편하고 싱거운데 이번엔 괜스레 흥이 난다. 풍년의 신과 바다의 신을 위해 추었다는 현란하고 강렬한 드럼댄스(Drum Dance)가 관능을 자극한다. 지난 100년 동안 하와이의 훌라(hula)는 전 세계에 알려졌지만 쿡아일랜드의 춤 후라(hura)는 낯설다. 하지만 후라는 하와이의 훌라, 타히티의 춤 오리 타히티(Ori Tahiti)보다 격렬하고 관능적이다. 남자의 춤이건 여자의 춤이건 리드미컬한 드럼과 함께 하는데 야성적이며 감각적이란 점은 같다. 남자들의 춤은 격렬하고 사납게도 느껴진다. 식인풍습은 피지나 파푸아뉴기니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여기에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남자들 춤이 살짝 오싹댄다. 현란하고 성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춤을 추는 여인들을 만난 그 밤에 활을 엎어놓은 듯한 달을 보았다. 채 절반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표면에 흩어진 달 분화구는 맨눈으로도 선명하다. 내가 달을 바라보던 그 자리는 이곳 사람들이 성지로 여기는 ‘머라이(marae)’ 옆이었다. 외국인은 물론 외부인은 누구라도 출입할 수 없는 땅, 머라이 옆에서 바라본 달은 멀지 않았다. 쿡아일랜드에서 달은 유난히 가깝기라도 한 것처럼.
   
   
▲ (위부터) 쿡아일랜드의 수도 아바루아가 있는 라로통가섬. photo 쿡아일랜드 관광청
라로통가와 아이투타키 구간을 운항하는 라로통가 에어웨이 비행기. photo 박준
라로통가의 거리는 대개 한적하고 고요하다. 한 나라의 수도가 이럴 수도 있다. photo 박준

   시계방향 버스의 섬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라로통가섬은 감자 모양이다. 한가운데에는 큰 산이 있어 삼림이 울창하다. 동서 길이는 10㎞, 폭은 6㎞ 정도다. 라로통가는 산호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을 가진 비치에 둘러싸였다. 섬 주위는 다 산호인데 특히 남쪽은 산호바다의 길이가 1㎞에 달한다. 내가 묵었던 ‘퍼시픽 리조트 라로통가’ 앞 무리(Muri) 비치는 파도를 찾아보기 어려운 호수 같다. 하지만 산호바다 너머는 깊은 대양이다. 고리 모양의 산호초인 환초(環礁) 안쪽은 얕고 고요한 바다이지만 바깥쪽은 깊은 바다와 닿아 있다. 왠지 무섭다. 바닷속에서 난데없이 절벽이 나타난단 말 아닌가.
   
   라로통가에는 맥도날드도 없고, 신호등도 없고, 코코넛 나무보다 큰 건물도 없다. 고개를 돌리면 패션푸르츠 나무, 코코넛 나무가 보인다. 스쿠터로 섬 한 바퀴를 도는 데 1시간이면 족하다니 라로통가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스쿠터 같다. 희한하게도 스쿠터를 빌리려면 면허시험을 봐야 한다. 어려운 것 같진 않다. 경찰서에서 100m 정도 앞으로 갔다 지그재그로 돌아오면 끝이다. 운전 자격은 엄격한데 정착 도로에서 헬멧을 쓴 이는 없는 것도 쿡 스타일이다.
   
   쿡아일랜드 수도는 ‘아바루아(Avarua)’라고 한다. 아바루아는 라로통가섬 북쪽에 있는데, 라로통가에 사는 이에게 “아바루아가 쿡아일랜드의 수도라고요?” 하고 물으니 그녀는 맞다, 틀리다 말하는 대신에 “아바루아가 수도냐고요? 음… 우리는 그냥 ‘타운’이라고 불러요”라고 동문서답이다. 여기에 어떤 이들은 쿡아일랜드 수도를 아바루아 아닌 라로통가라고 하니 혼란이 더해진다. 쿡아일랜드 수도는 도대체 어디지? 쿡아일랜드 사람들은 아무 관심 없는 나만의 수수께끼다.
   
   라로통가는 쿡아일랜드의 허브 같은 섬이지만 카페, 레스토랑을 합쳐도 50여개가 전부다. 그만큼 고요하다. 내 명함을 받은 이가 말했다.
   
   “쿡의 전화번호는 다섯 자리가 전부예요. 당신 나라는 열한 자리군요! 어떻게 이걸 다 외우죠?”
   
   라로통가에는 해안을 따라 두 개의 도로가 나 있다. 버스 노선이 재밌다.
   
   “나 시계방향 탔어.” “난 시계반대방향 탔어.”
   
   여기선 버스를 타고 친구에게 전화라도 하면 이런 식이 되겠다. 라로통가에선 몇 번 버스를 타는 게 아니라 ‘시계방향’ 또는 ‘시계반대방향’ 버스를 탄다.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버스 앞에 ‘시계방향(clockwise)’ ‘시계반대방향(anticlockwise)’이라 쓰여 있다. 동화책에나 나올 것 같은 버스지만 한 시간에 꼬박꼬박 두 대가 다닌다.
   
   쿡아일랜드 사람들 옷차림은 유난히 화려하다. 나는 여기서 받은 분홍색 가방에 펠트 모자를 쓰고 다녔다. 한국에선 분홍색 가방을 들고 다닐 일은 거의 없겠지만 쿡에선 매우 자연스럽다. 사진을 찍어 보면 안다. 여기서 무채색 옷차림으로 사진을 찍으면 그야말로 볼품없다는 걸.
   
   라로통가 방문 이틀째, ‘위크앤드 마켓(주말 시장)’이 열렸다.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마켓을 보게 됐으니 운이 좋다. 아바루아의 ‘푸난가 누이 마켓(Punanga Nui Market)’이다. 여기서 우연히 도라(Dora) 할머니를 만났다. 쿡아일랜드 여인들이 그렇듯 면류관 또는 화관 같은 ‘라우티(Rauti)’를 썼다. 여든에 가까울 그녀는 바느질해 만든 천가방과 티테이블보를 팔고 있었다. 천가방에 그림도 직접 그렸다. 엽서도 만드는데, 꽃모양으로 천을 오려 엽서에 붙였다. 그녀가 명함으로 쓰는 종이에는 천으로 만든 꽃잎뿐만 아니라 아이 손톱만 한 조개껍데기를 붙여놓았다. 눈이 어두울 나이에 이렇게 손수 그리고, 오리고, 칠하고 바느질해 무엇인가를 만든다. 어쩌다 남편 얘기가 나왔다.
   
   “남편은 나이가 여든인데 아직도 오토바이를 타요. 그 나이에 오토바이를 다루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상관없대요. 언젠가 죽을 때가 되면 오토바이를 타다 죽고 싶대요.”
   
   이름도 몰랐던 남태평양의 낯선 섬나라에 와 도라 할머니와 잠시 얘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좀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쿡아일랜드의 외국 할머니가 아니라 TV를 보며 바느질하는 우리 할머니 같다.
   
   라로통가섬에서 국내선을 타고 아이투타키(Aitutaki)섬으로 왔다. 인구는 1800명. 라로통가에서 220㎞ 떨어졌는데 비행기로 40분 정도 걸린다. 역시나 프로펠러 비행기이고, 승객은 33명이 전부다. 아이투타키 한가운데에는 고대 해저화산의 흔적인 마운가푸(Maunga Pu) 언덕이 있다.
   
   “아이투타키는 과거에 단조롭고 평평한 지형이었어요. 아이투타키 원주민과 라로통가 원주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전쟁에서 이긴 아이투타키 전사들이 라로통가섬의 최고봉 테 망아(Te Manga)의 정상을 싹둑 베어 가져온 게 마운가푸예요.”
   
   마운가푸나 전설보다 내 관심을 끈 건 풍문으로 들었던 아이투타키의 ‘곰발바닥 스탬프’다. 아이투타키에 가면 여권에 ‘곰발바닥’ 스탬프를 찍어준다나 뭐라나? 나는 믿었다. 미지의 세상에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니까. 실제로 아이투타키에서 여권에 곰발바닥 스탬프를 찍어줬다. 타푸아에타이(Tapuaetai)라는 곳의 ‘원 풋 아일랜드(One Foot Island)’ 우체국에 가면 찍어준다. 알고 보니 라군 투어를 운영하는 회사에서 라군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에게 기념품처럼 찍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 (왼쪽) 쿡아일랜드의 춤 후라(hura)는 하와이의 훌라보다 격렬하고 관능적이다. photo 박준
(오른쪽) 쿡아일랜드의 바다는 에메랄드 빛을 띠는 ‘폴리네시안 블루 워터’ 컬러다. photo 쿡아일랜드 관광청

   육지 같은 바다, 바다 같은 육지
   
   아이투타키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이란 식의 책에 종종 등장하는 섬이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라군(lagoon)’을 가졌다는 곳이다. 이런 말은 참 상투적인데, 라군 투어를 하며 이 상투적인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경황도 없이 신비로운 바다색에 빠져들었다. 때로는 투명하고 때로는 에메랄드 빛을 띠는 ‘폴리네시안 블루 워터’ 컬러다. 바다의 모양 또한 특별하다.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바다가 이리 얕을 수 있나? 육지 같은 바다, 바다 같은 육지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가 희미하다.
   
   때로 바다 위로 길이 나 있다.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걸어가면 그만일 길을 따라 저 멀리 구름을 향해 걷는다. 바다를 걸어간다. 무릎 아래서 출렁거리는 바다를 따라 수평선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바다의 끝, 수평선 위로 바짝 붙은 길고 긴 구름이 펼쳐진다. 고개를 숙이자 수면에 비친 내 모습이 선명하다. 서울에서 1만㎞ 떨어진 바다의 풍경이다.
   
   실제 바다의 모습만큼이나 아이투타키의 위성사진은 비현실적이다. 기다란 아이투타키섬을 삼각형 모양으로 산호초가 둘러싸고 있다. 아이투타키 바다에서 제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이투타키는 여러 면에서 비현실적이다. 보트를 타고 인근의 섬을 둘러보다 인적 드문 섬에 내리기라도 하면 무인도에 상륙한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 모래사장에서 몇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바닷속에선 커다란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친다. 내가 다가가도 녀석은 관심조차 없다. 배를 타고 가다 바닷속을 헤엄치는 거북도 보았다. 내가 탄 배는 고속보트였는데 거북은 더 빨리 쏜살같이 사라졌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파충류, 거북은 바닷속을 헤엄치는 게 아니라 날아간다.
   
   아이투타키를 얘기할 때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게 영국 해군 바운티호의 윌리엄 블라이(William Bligh) 함장이다. 그는 1789년 4월 11일 통가로 가는 길에 아이투타키를 발견했는데 그로부터 17일 후 선원들의 반란으로 축출되었다.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진 그 유명한 ‘바운티호의 반란’ 사건이다. 블라이 함장은 몇 개월의 항해 끝에 동인도제도 티모르섬에서 구조되어 영국에 귀환해 영웅이 되었고, 3년 후 다시 아이투타키로 돌아왔는데 그때 가져온 게 파파야다. 현재 파파야는 쿡아일랜드의 주요 수출품이다.
   
   아이투타키 주변 섬을 둘러보는 라군 투어 보트에서 열한 살 아이, 알라나를 만났다. 내가 탔던 보트 운전사의 딸이다. 처음에는 무표정했다. 내가 과장된 몸짓으로 한 손을 내밀자 그제야 웃으며 자기 손을 내민다. 아이투타키의 아름다운 바다처럼 싱그러운 미소를 가진 아이다. 알라나가 물속에서 내게 다가와 손짓할 때 나는 아이투타키의 인어를 만난 줄 알았다. 알라나는 머나먼 남태평양 같다. 남태평양이란 막막하고, 고요하고,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세상에서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바다다.
   
   
1 쿡아일랜드의 환상적인 석양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노를 젓고 있다. photo 쿡아일랜드 관광청
2 낯설기 때문일까. 레스토랑에 앉아 있을 뿐인데 한국을 떠나 아주 먼 곳에 와 있는 것 같다. photo 박준
3 바다의 신, 탕가로아는 험상궂다. 하지만 쿡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존재다. photo 박준
4 쿡아일랜드의 묘지 또는 무덤은 터부가 아니다. 종종 집 바로 앞에 위치한다. photo 박준

   바다의 정령, 탕가로아
   
   쿡아일랜더들 같은 마오리와 이들의 폴리네시안 선조는 바다에 가까이 살며 음식 등 모든 것을 바다에 의지하며 살았다. 바다는 생명의 원천이자 토대다. 이들은 바다에서 영적인 구원을 기원했다. 오래전 마오리의 전통 조각은 그들의 선조를 손가락 세 개와 큰 머리를 가진 뱀 같은 몸에,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살 수 있는 양서류처럼 그렸다. 마오리들은 이렇게 말한다.
   
   “바다에서 모든 생명이 시작되었고, 물고기에서 진화해온 존재가 사람이에요.”
   
   2011년 라로통가에 태평양 11개국 선원들이 모였다. 쿡아일랜드, 피지, 사모아, 프렌치 폴리네시아, 뉴질랜드, 통가, 키리바시, 솔로몬제도, 파푸아뉴기니, 바누아투와 이스터섬에서 온 이들은 뉴질랜드에서 제작된 길이 22m의 바카(Vaka·카누) ‘마루마루 아툭(Marumaru Atuk)’ 등 7척의 배를 타고 15개 태평양 국가를 거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가 라로통가로 돌아왔다. 7개 바카 선단의 항해 거리를 합치면 21만마일(33만4000㎞)이다. 이들은 폴리네시아 대양을 누볐던 위대한 선조들의 항해를 이렇게 재현했다. 선단의 이름은 ‘대양의 정령(Spirit of the Ocean)’이다.
   
   ‘대양의 정령’의 다른 이름은 ‘탕가로아(Tangaroa)’다. 탕가로아는 언제나 마오리들과 함께한다. 대개의 태평양 섬나라에서 탕가로아가 창조주 같은 신이라면 쿡아일랜드에서는 오직 ‘바다의 신’이다. 탕가로아는 쿡아일랜드에 기독교가 전파되기 이전부터 추앙된 ‘바다의 신’ 또는 ‘풍요의 신’이다. 탕가로아는 곧 ‘바다’로 여겨진다. 바다 또는 물에도 한 가지 종류만 있는 게 아니듯 때로는 무섭고 파괴적이다. 마오리의 전설은 호의를 잃은 사람들에게 바다가 보여주는 무서운 복수에 관해 얘기한다. 마오리 사람들에게 바다는 ‘에너지’다. 그것도 여러 가지 무드를 가진 에너지다. 때로는 생명, 생기를 주는 정숙한 에너지이고 때로는 위험하고, 파괴적인 에너지다. 이 에너지도 탕가로아다.
   
   라로통가를 오가며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깜짝 놀라곤 했다. 이게 뭔가? 머리에 두 팔은 달렸어도 영락없는 괴물이 위로 찢어진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노려본다. 한낮인 게 다행이다. 어둠 속에서라면 놀라 뒷걸음치다 바닥에 나동그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라로통가에선 이런 녀석이 도처에서 출몰한다. 그것도 멀쩡한 마켓에서, 바(Bar)에서, 호텔 입구에서, 건물 위에서. 대개 뾰족한 턱과 불룩 나온 배를 내민다. 눈은 부리부리하고 입술은 두툼하다. 배꼽은 꽃 또는 태양의 형상이다. 쿡아일랜드의 탕가로아다. 어떤 탕가로아는 거대한 남근을 드러낸 채 험상궂다. 입을 다물고,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길을 가로막는 탕가로아도 있다. 나이트클럽의 ‘어깨’들 같다. 탕가로아는 쿡아일랜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데, 나무로 새겨진 탕가로아, 돌로 만든 탕가로아, 비누 모양의 탕가로아, 쿡의 1달러 동전에 새겨진 탕가로아, 티셔츠에 그려진 탕가로아, 오일 버너의 탕가로아 등 쿡아일랜드를 여행하다 보면 각양각색의 탕가로아와 만난다. 매주 새로운 탕가로아의 형상이 생겨난다. 쿡 사람들은 말한다.
   
   “만약 당신이 탕(Tang)을 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쿡에 왔던 게 아녜요.”
   
   쿡아일랜드 사람들에겐 탕가로가 아닌 탕, 그저 탕이다. 어느 가게에선 탕가로아가 그려진 커피를 판다. 가만 보니 탕가로아의 가슴을 두 개의 커피콩 모양으로 그렸다. 사모아에는 쿡의 탕가로아와 철자가 약간 다른 탕가로아(Tagaloa), 하와이에는 카나로아(Kanaloa)에 관한 신화가 전해진다. 형태는 조금 달라도 이름들은 다 비슷하다. 탕가로아는 태평양의 폴리네시안 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다. 쿡아일랜드의 1달러 동전에는 탕가로아가, 12각형 모양의 5달러 동전에서 위대한 카누인 바카 마루마루 아툭이 새겨져 있다.
   
   
1 푸난가 누이 마켓은 주말에만 열린다. 평소 한적한 라로통가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볼 수 있다. photo 박준
2 여든이 훌쩍 넘었을 도라 할머니는 손수 바느질해 만든 천가방을 시장에서 판다. photo 박준
3 쿡아일랜드 1달러 동전에는 탕가로아, 5달러 동전에는 전통 카누인 바카, 2달러 삼각형 동전에는 전통의식 때 사용하는 물건이 새겨져 있다. photo 박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아이투타키에서 라로통가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유난히 작았다. 정원이라고 해야 15명, 좌석은 좌우로 한 줄뿐인 프로펠러 비행기다. 그날 짐은 호텔에서 공항으로 보내주기로 했고, 나는 호텔에서 나와 시간을 보내다 출발 시간에 맞춰 공항에 갔다. 그런데 체크인도 안 했는데 내 짐은 이미 비행기에 실렸단다. 나를 버려두고 비행기가 가버리진 않을까 허둥지둥 체크인을 하고 비행기에 타자마자 비행기는 후다닥 이륙했다. 출발 시간이 30분이나 남았을 때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바로 눈앞에서 조종석이 훤히 바라보이는 쪼그만 경비행기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도 모르겠다. 남태평양에서 경비행기는 버스 같다. 승객이 다 찼는데 뭐 비행기가 좀 빨리 출발할 수도 있지 않으냐고 말하려나? 가방만 싣고 가버리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물론 이 비행기에는 승무원도, 음료서비스도 없다. 라로통가에 도착한 비행기는 수하물을 조그마한 공항 건물 밖에 부려 놓았다. 수하물을 실어 나르는 차에서 내 가방을 뒤적뒤적 꺼내며 묘한 상념에 빠져들었다.
   
   라로통가 에어웨이의 15인승 프로펠러 비행기에 몸을 실을 날이 또 오려나? 1만㎞ 너머 바다에 사는 남태평양의 아이, 알라나를 또 볼 수 있으려나?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을 그저 바라만 보듯 쿡아일랜드를 떠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남태평양 아이투타키의 바다를 그리워한다.
   

   항공
   에어뉴질랜드, 버진오스트레일리아, 젯스타 그리고 에어타히티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라로통가 구간을 운항한다.
   
   화폐
   쿡아일랜드달러와 함께 뉴질랜드달러를 쓰는데 일대일로 환전된다. 1달러, 5달러 동전, 삼각형 모양의 2달러 동전은 꼭 챙겨야 할 기념품이다.
   
   시내 교통
   버스는 1시간에 2대가 다닌다. 하나는 시계방향으로, 다른 하나는 시계반대방향으로 운행한다. 도로는 좌측통행.
   
   아일랜드 나이트
   매주 화요일 밤, 드럼 연주와 관능적인 쿡아일랜드 댄싱 공연이다. 식사를 하며 즐길 수도 있고, 식사를 제외한 입장료만 낼 수도 있다.
   
   전기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쓰는 3핀짜리 플러그를 쓴다. 어댑터를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국기
   15개의 하얀 별은 15개의 섬을 의미한다. 파란색은 남태평양을 표현하는 색이자 쿡아일랜드 사람들의 평화로운 품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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