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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70호]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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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매운맛의 사회학, 마라·불닭에 숨은 코드

photo 게티이미지
지금 요식업계에서 가장 유행하는 것 하나를 말하라면 단연 꼽힐 만한 것이 있다. 중국에서 건너온 ‘마라(麻辣)’다. 서울에서도 제일 번화한 거리 중 하나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을 가보자. 홍대입구역 8번출구와 9번출구 사이 음식점이 몰려 있는 ‘걷고 싶은 거리’ 300m 내에서 ‘마라탕’을 파는 가게만 8개다. 홍대입구역에서 한 정거장만 더 가서 2호선 신촌역 앞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신촌역에서 연세대를 잇는 직선거리상에 마라탕을 파는 전문점만 7개가 있다. 식품업계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마라탕면’이나 ‘마라 치킨’ 같은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소비자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종종 이 마라 열풍이 한동안 한국 거리를 흔들었던 ‘대만 카스테라’나 ‘벌집 아이스크림’처럼 반짝하고 사라질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조금 더 시야를 넓혀 보면 마라 같은 매운맛에 대한 선호가 하루이틀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대도시 번화가마다 문전성시를 이루던 것은 불닭 전문점이었다. 기름에 튀기거나 육수에 삶는 것이 아니라 소스에 비벼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매운맛을 내던 불닭 전문점은 2004년과 2005년 사이 전성기를 누렸다. 불닭 전문점의 원조 격이었던 ‘홍초불닭’은 한때 전국 160여개의 지점을 거느리던 성공한 프랜차이즈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2~3년 사이 불닭 전문점은 자취를 감추었다.
   
   수그러든 것 같던 매운맛은 2010년대 들어서 다시 활발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입이 화끈거릴 정도로 매운 ‘엽기떡볶이’가 전국적으로 유행했다. 엽기떡볶이는 매운맛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원조다. 지금은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신전떡볶이’가 가장 많은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데 전국적으로 600개가 넘는다.
   
   2012년 처음 출시된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매운맛에 대한 선호를 확실히 문화적 현상으로까지 확대시켰다. 처음 출시됐을 때만 하더라도 불닭볶음면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매운맛에 이끌린 매니아층의 입소문을 타고 해마다 매출액이 증가했다. 2014년에는 한국에서만 687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더니 2018년에는 1000억원이 넘었다. 아예 유튜브에서는 불닭볶음면을 먹는 영상이 유행처럼 번진 지 오래다.
   
   매운맛은 한때의 유행이 아니었다. 엽기떡볶이가 2002년 문을 연 음식점 ‘땡초불닭발’의 뒤를 이은 것이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엽기떡볶이는 당시 땡초불닭발의 사이드 메뉴였는데 주력 메뉴인 불닭발의 인기를 넘어서게 되면서 아예 주인공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불닭발은 유행의 흐름에 따라 점차 사라졌지만 매운맛에 대한 선호는 여전히 남아 있어 떡볶이라는 음식 메뉴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핫소스와 카레가루, 옛날과는 다른 매운맛
   
   ‘왜 우리는 매운맛을 선호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올 법하다. 흔히 소비자들이 매운맛을 선호하는 이유를 ‘스트레스 해소 차원’이라고 간단하게만 결론 짓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설명으로는 매운맛에 대한 선호를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한다. 불닭볶음면의 매운맛은 김치찌개의 매운맛과 다른 것일까. 매운맛을 내세운 음식점들의 유행은 서로 관련이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2000년대 중반부터 유행한 불닭, 불닭볶음면, 엽기떡볶이 등의 매운맛은 김치찌개 같은 ‘전통적’인 음식의 매운맛과는 다소 다르다. 음식인문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보자.
   
   우리가 고춧가루와 고추장에서 우러나오는 매콤한 맛을 즐긴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다. ‘맵다’라는 단어도 지금 쓰이는 것과 상당 기간 의미가 달랐다. 근대 국어에서 ‘맵다’는 농도가 진하다는 의미로 주로 쓰였다. 또는 겨자처럼 알싸한 맛이 돌아 혀가 알알하다는 말 대신 쓰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고추의 대표적 속성이 ‘맵다’로 받아들여지고, ‘맵다’가 매콤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와 확산되기 시작한 18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다.
   
   주영하 교수는 ‘한식=매운 음식’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은 1960~1970년대의 산업화 시기 이후라고 설명한다. 고추의 생산량이 늘면서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간 음식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 음식이 전국적으로 전파되면서 매운맛에 대한 선호도가 점차 강해졌다는 것이다.
   
   이때의 매운맛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칼칼하다’ ‘얼큰하다’이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의 매운맛은 표현 자체가 좀 다르다. ‘얼얼하다’ ‘화끈하다’란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주영하 교수는 이 흐름이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불닭부터 시작된 ‘얼얼한 매운맛’은 한국 고추에서 나오는 매운맛과 확연히 다릅니다. 고추 양념에 이국적인 핫소스(hot sauce)가 덧붙여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 핫소스를 첨가하는 건 미국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미국 식품업계와 패스트푸드 업계가 시작한 세계적인 핫소스 붐에 한국의 매운맛이 더해진 결과입니다.”
   
   주 교수는 이것을 ‘지구화된 맛’이라고 표현한다. 이국적인 향신료를 과감하게 사용한다는 점, 이 향신료를 사용할 수 있었던 배경이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진 글로벌 사회에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요즘 닭갈비에는 카레가루를 넣어 매운맛을 강화시킨다. 온라인상에서 엽기떡볶이나 신전떡볶이를 흉내 낸 레시피를 찾아보자. 엽기떡볶이의 핵심은 굴소스, 신전떡볶이는 후추다.
   
   얼얼한 매운맛을 즐기는 연령층이 예나 지금이나 젊은층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2004년 10월 한 언론의 기사를 보면 “요즘 신촌과 홍대, 종로 일대에는 저녁 무렵 이면 ‘홍초불닭’ 간판 아래 20〜30대 젊은 남녀들이 길게 줄을 서서 몇십 분씩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이 중 70% 정도는 20대 젊은 여성들”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엽기떡볶이는 10대의 전폭적인 호응에 힘입어 주류 요식 브랜드로 성장했다. 불닭볶음면을 먹는 장면을 직접 촬영하면서 독자를 모으는 유튜버들 역시 10~20대가 주를 이룬다. 어쩌면 낯설 수도 있는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맵고 화끈하다”고 표현하는 ‘맛 수용력’ 높은 젊은 소비자들이 있어 매운맛의 유행이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젊은 소비자들은 전통적인 맛을 넘어서 더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다가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보고 자란 만큼 향신료에 대한 포용력도 넓다. 얼얼한 매운맛을 본 보수적인 중장년층 소비자는 “이게 맵다고? 아프기만 한데”라고 반응할지 모르지만 젊은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매운맛을 통해 얻는 심리적·정서적 만족감이 뒷받침돼 있기 때문에 매운맛에 대한 선호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기본이다. 매운맛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주 교수 역시 “매우 경쟁적인 환경에 놓여 있지만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마땅히 찾지 못하는 젊은 소비자들이 더 자극적인 매운맛을 찾는 것 역시 맞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 유튜버 ‘삼대장’ 화면 캡처. photo 유튜브

   사람 따라 이동하는 매운맛
   
   요즘 유행하는 마라 역시 이 맥락에서 보면 전형적으로 지구화된 매운맛이다. 다만 마라는 조금 더 복잡하다. 우선 중국에서 마라는 2000년대부터 노동자, 도시 중하층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마라는 쓰촨성(四川省)에서 칭다오로, 베이징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노동자들과 함께 이동한 음식이다. 그들과 같이 일하던 조선족 노동자들을 통해 한국에도 마라가 수입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에도 조선족 주거지를 중심으로 마라 전문점이 꽤 여러 곳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게 최근 1~2년 사이에 급격히 주목받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마라는 ‘맛의 이동’뿐 아니라 ‘사람의 이동’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지구화된 매운맛이다. 마라 고유의 향과 맛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난 20년 동안 중국 문화와 음식을 경험한 한국인들이 수없이 많을 겁니다. 마라 고유의 맛을 만드는 산초 같은 향신료에 익숙한 사람이 많다는 얘기죠. 핫소스처럼 조리법과 음식 재료에 영향을 준 것을 넘어서 사람과 문화의 교류 중에 탄생한 유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라 같은 사례는 외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 멕시코 출신 칠리 소스는 마치 미국 음식인 것처럼 자리 잡았다. 커리 가루는 인도의 커리 요리를 쉽게 맛보려고 하는 영국인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자극적인 향신료의 이동은 문화와 사람의 이동을 나타낸다.
   
   마라가 유독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이유도 글로벌한 배경에 있다. 매운맛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 늘 새로운 매운맛을 찾아다니는 젊은층에 마라는 신선한 즐거움을 주는 음식이다. 향신료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낯선 식재료와 조리·주문 방법에도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연령대가 젊은층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제적인 능력도 빼놓을 수 없다.
   
   엽기떡볶이가 떡볶이치고는 다소 비싸지만 친구들과 나눠 먹기에 적당한 가격이었다는 점도 떠올려봐야 한다. 지금 유행하는 마라 전문점의 가격대 역시 그다지 높지 않다. 불닭도 마찬가지다. 유행하는 매운맛은 마음만 먹으면 지갑을 열 수 있을 만한 가격대의 음식들이다. 주성하 교수는 “자극적인 음식은 수입이 적고 스트레스가 많은 계층에서 특히 유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설명에 따르자면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는 젊은층에게 매운맛 유행은 매우 적절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즐긴다는 ‘소확행’의 한 사례로도 설명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2000년대 이후 유행하는 매운맛은 고추와 갖은 양념으로만 내던 ‘전통적’인 매운맛에 이국적인 것이 첨가된 매운맛이다. 그 ‘지구화된 맛’은 문화와 사람의 이동에 따라 더 새롭고 신선한 음식을 유행시킨다. 마라탕이 유행하는 것은 단지 ‘매운맛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멕시코의 타코나 인도의 커리가 그랬듯 이동하는 맛의 한 흐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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