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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72호] 2019.08.26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의 양대 강자 베로나와 브레겐츠

베로나·브레겐츠= 김기철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kichul@chosun.com

▲ 인구 2만의 오스트리아 소도시 브레겐츠 호반에서 올린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페스티벌이 열리는 매년 여름 한 달 20만명의 관람객이 몰린다. photo Bregenzer Festspiele/Karl Forster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밤 9시, 옛 이탈리아 로마 원형경기장 객석 곳곳에 하나둘씩 촛불이 켜졌다. 2000년 전 돌계단에 걸터앉은 관객들이 막이 오르길 기다리며 밝힌 촛불이다. 높이 31m, 최대 3만명이 들어가는 이 공간에 촛불을 켜든 관객이 가득 차면 그 자체가 장관이다. 흰 옷 입은 여성 안내원이 무대에 올라 징을 치면 공연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서곡(序曲)이 흘러나오기 전부터 마음은 벌써 감동할 준비가 돼 있다. 올해 97회를 맞은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정식 명칭은 Arena di Verona Opera Festival) 얘기다.
   
   인구 2만의 소도시 오스트리아 브레겐츠는 매년 여름 한 달 오페라로 관광객 20만명을 불러들인다.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가 접한 콘스탄스(독일명 보덴) 호수를 배경 삼아 야외무대에서 열리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매일 밤 6980석의 객석이 매진될 만큼 인기를 누린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기차로 1시간 반, 독일 뮌헨서 3시간쯤 걸리는 브레겐츠는 여름이면 숙소 구하기가 로또 당첨만큼이나 어렵다. 10㎞ 넘게 떨어진 독일 린다우, 오스트리아 도른비른 같은 인근 도시까지 숙소를 찾아야 한다.
   
   이번 여름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 강자(强者)인 베로나와 브레겐츠를 찾았다. 역사나 규모는 베로나가 한 수 위지만 브레겐츠는 호수 위에 무대를 만들고 자연과 함께 즐긴다는 강점이 있다. 두 곳 모두 인생 버킷리스트에 추천할 만큼 매력 넘치는 도시다.
   
   
   도밍고와 네트렙코가 빛낸 베로나 페스티벌
   
   베로나 중앙역에서 포르타 누오보 거리를 따라 브라(Bra) 광장에 들어서면, 2000년 전 검투사들이 혈투(血鬪)를 벌였을 원형경기장이 나타난다. 괴테가 200여년 전 베로나를 찾았을 때도 이 경기장이 유난히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괴테는 고대 유적을 잘 보존한 베로나 시민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붉은빛이 도는 경기장을 바라보며 식당에서 파스타와 와인을 즐기는 관광객들의 표정이 느긋하다. 올여름 35도를 웃도는 유럽 폭염은 베로나도 마찬가지였다. 한낮의 열기를 젤라토로 달래며 휴식을 취하던 관광객들은 저녁 8시가 넘으면 다시 원형경기장 주변에 모여든다.
   
   올해 베로나 페스티벌(6월 21일~9월 7일)이 준비한 오페라는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트레’ ‘아이다’ ‘카르멘’ ‘토스카’다. 오페라 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1923~2019)가 새로 무대·연출을 손본 신작 ‘라 트라비아타’는 개막 엿새 전인 지난 6월 15일 제피렐리가 타계하면서 그의 유작(遺作)이자 추모작이 됐다.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의 아내이기도 한 폴란드 소프라노 알렉산드라 쿠르작이 비올레타, 명(名)바리톤 레오 누치가 제르몽을 맡은 ‘라 트라비아타’는 이번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주목받았다. 8월 1일 하루는 플라시도 도밍고와 비토리오 그리골로가 제르몽과 알프레도로 나섰다.
   
   스타 경연장이 된 축제 하이라이트는 당대 최고 소프라노로 꼽히는 안나 네트렙코였다. 네트렙코는 지난 6월 29일부터 세 차례 ‘일 트로바트레’ 레오노라 역으로 나섰다. 빈과 런던, 뉴욕 등 메이저 오페라극장이 앞다퉈 모시는 네트렙코가 야외 오페라인 베로나 무대에 서는 건 처음이었다. 네트렙코의 남편인 유시프 에이바조프가 남자 주인공 만리코를 맡고 메조소프라노 돌로라 자직(아주체나), 바리톤 루카 살시(루나 백작) 등 내로라하는 성악가들이 개막 무대에 출연했다.
   
   필자는 지난 7월 20일 오후 늦게야 베로나에 도착했다. 낮 12시15분 로마 테르미니역을 출발한 고속열차 ‘이탈로’는 3시간10분 만에 베로나 중앙역인 포르타 누오바역에 도착했다. 우리 SRT처럼 이탈리아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이탈로는 국영 ‘트랜이탈리아’ 못잖게 신형 열차를 운행하는 데다 할인 티켓이 많이 나와 외국인 여행자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날 저녁 ‘일 트로바트레’로 베로나 페스티벌을 시작했다. 스타들이 지나간 뒤라서 그랬을까. 주말 밤인데도 자리가 듬성듬성 비었다. 베로나 페스티벌 무대는 4년 전 마지막 찾았던 때 그대로였다. 무대 양쪽 스크린에 영어 자막이 나오는 게 달라졌다.
   
   ‘일 트로바트레’는 15세기 내전이 한창인 스페인이 무대다. 어릴 때 헤어진 루나 백작과 만리코 형제의 대결과, 형제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레오노라, 그리고 루나 백작 집안에 어머니를 잃은 집시여인 아주체나, 이렇게 4명의 갈등이 축을 이룬다. 뛰어난 주역 넷이 필요한 작품이지만 이 작품의 성패를 결정하는 또 하나의 배역이 바로 베이스가 부르는 페란도다. 굵은 저음(低音)의 아리아로 백작 가문의 비밀을 알려주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베이스 리카르도 파시(Fassi)는 대형 무대임에도 흡인력 있는 목소리로 주목을 끌었다. 네트렙코와 더블캐스팅된 레오노라 역 소프라노 안나 피로치(Pirozzi)와 루나 백작 역 알베르토 가잘레(Gazale), 만리코 역 무라트 카라한(Karahan)의 호흡도 좋았다. 하지만 주인공은 리투아니아 메조소프라노 비올레타 우르마나(Urmana·58)였다. 우르마나는 ‘일 트로바트레’의 열쇠를 쥔 아주체나를 완벽하게 노래했다. 어머니를 앗아간 루나 백작 집안에 복수를 꿈꾸는 비극의 집시여인이었다. ‘대장간의 합창’과 집시·투우사의 춤 등 화려한 의상의 스펙터클한 무대도 볼 거리였다.
   
   
▲ 지난 6월 21일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 옛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열린 베로나 페스티벌 개막공연 ‘라 트라비아타’. photo Ph Ennevi/Courtesy of Fondazione Arena di Verona

   베르디 탄생 100년 맞아 시작
   
   다음 날은 베로나 페스티벌의 심벌 격인 ‘아이다’였다. 1913년 처음 올린 이 작품을 시작으로 페스티벌이 시작됐다. 올 축제 개막 다음 날인 6월 22일 ‘아이다’는 공연 700회를 맞았다. ‘아이다’는 이번 여름 시즌에만 16회 무대에 오른다. 고대 이집트를 무대로 거대한 신전과 피라미드가 등장하는 ‘아이다’는 코끼리까지 등장하는 장대한 스케일로 인기를 누렸다. 이번 ‘아이다’엔 코끼리는 나오지 않지만 말 4마리가 올라 무대를 누볐다.
   
   젊은 지휘자 프란체스코 이반 치암파(Ciampa·37)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서곡을 연주하자 갈매기 너덧 마리가 꾹꾹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라다메스 역의 조지아 테너 미하일 쉐샤베리제는 첫 아리아 ‘청아한 아이다’부터 역부족이었다. 고음은 시원하게 뻗지 못했다. 미국 소프라노 타마라 윌슨(Wilson)은 적국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와 조국 에티오피아 사이에서 고뇌하는 아이다의 내면을 섬세하게 노래했다.
   
   올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는 플라시도 도밍고의 아레나 데뷔 50주년 기념 주간 이벤트였다. 도밍고는 1969년 7월 16일 ‘투란도트’와 ‘돈 카를로’로 아레나에 데뷔했다. 당대 최고 소프라노 비르기트 닐손, 몽세라 카바예와 함께였다. 8월 4일 열린 아레나 리사이틀에서 도밍고는 ‘나부코’ ‘시몬 보카네그라’ ‘맥베스’의 주요 아리아로 무대를 채웠다. 앞서 ‘아이다’(7월 28일) 지휘,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제르몽(8월 1일)으로 출연해 ‘도밍고 주간’을 채웠다. 하지만 ‘오페라의 제왕’ 도밍고의 명성도 최근 성추행 의혹이 보도되면서 빛이 바랬다.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은 1913년 베로나 출신 테너 조반니 제나텔로(Zenatello), 공연기획자 오토네 로바토(Ottone Rovato)가 손잡고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아이다’를 올리면서 시작됐다. 1·2차 세계대전 때를 제외하고 매년 여름 빠짐없이 열렸다. 티켓값은 최고가 230유로지만 100유로 안팎이면 괜찮은 자리에서 볼 수 있다. 25유로짜리 꼭대기 자유석에서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오페라를 즐기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성악가와 오케스트라는 마이크를 쓰지 않는다. 브레겐츠와 로마 카라칼라 무대와는 다른 점이다.
   
   
▲ 올해 베로나 페스티벌 ‘일 트로바트레’엔 스타 안나 네트렙코 부부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왼쪽) 베로나 페스티벌의 상징인 베르디 ‘아이다’. photo Ph Ennevi/Courtesy of Fondazione Arena di Verona

   표정 변화가 다채로운 리골레토
   
   지난 7월 24일 뮌헨공항에서 차를 빌려 브레겐츠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은 2시간 남짓 걸린다고 알려주지만 그대로 믿었다간 큰코다친다. 뮌헨 주변 고속도로는 속도제한이 있는 데다 차량도 많아 올림픽대로처럼 붐빈다. 독일 국경도시 린다우 출구로 빠지면 낯익은 호수가 나타난다.
   
   공연 당일 운 좋게 브레겐츠 페스티벌 극장 바로 앞 숙소를 구했다. 공연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이니 횡재한 것 같다. 극장에 잠시 들렀더니 관광객들이 무대세트를 배경 삼아 기념촬영에 한창이다. 밤 9시15분 개막까지 시간이 남아 공연장 옆 야외수영장에 드러누웠다. 호수에 뛰어들어 더위를 식히거나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여유를 즐기는 주민과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올해 브레겐츠 페스티벌(7월 17일~8월 18일) 메인 오페라는 베르디의 ‘리골레토’. 광대가 14m 높이 거대한 머리 위에 불쑥 등장했다. 광대는 공연 중 휴대폰 촬영 금지, 출연진 소개 등 가이드 역할을 했다. ‘리골레토’는 만토바 공작의 어릿광대인 리골레토가 딸 질다를 농락한 주인에게 복수하려다 도리어 딸을 잃는 비극이다. 빅토르 위고의 연극 ‘환락의 왕’을 베르디가 대본가 피아베와 함께 오페라로 만들었다. ‘라 트라비아타’ ‘나부코’ ‘시몬 보카네그라’처럼 바리톤에 아버지 역할을 맡긴 베르디의 대표적 작품이다. 브레겐츠 페스티벌 ‘리골레토’의 주역은 단연 독일 연출가 필립 슈톨츨이 디자인한 무대세트였다. 거대한 머리와 손을 형상화한 무대는 이렇게 다양한 표정이 가능한가 싶을 만큼 천변만화(千變萬化)의 마술을 부렸다. 눈을 감거나 눈동자를 돌리면서 입을 벌리고 머리 방향을 바꾸면서 가면(마스크)이나 인형으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 변화를 담았다.
   
   앞선 프로덕션에 비해 출연진들의 기량도 뛰어났다. 만토바 공작 역의 러시아 테너 세르게이 로마노프스키는 볼쇼이극장 출신으로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에도 선 신예. 거대한 머리의 입속에서 부른 첫 아리아 ‘이것도 저것도’부터 깨끗한 미성을 안정적으로 냈다. 고음을 시원시원하게 소화하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3막 스파라푸칠레의 여인숙에서 부르는 아리아는 음이 고르지 않았다. 지상 20m 넘는 높이에서 안전띠에 의지한 채 드러누워 부른 탓이지 싶다. 질다 역을 맡은 호주 소프라노 스테이시 알리움도 좋았다. 열기구를 타고 공중에서 노래하는 등 유달리 고공(高空) 연주 장면이 많았다. 호수와 하늘이 배경이 됐다. 리골레토 역의 스콧 헨드릭스는 딸을 향한 아버지의 갈등을 잘 담아냈다. 한 달(27회) 공연하는 ‘리골레토’ 주역 캐스팅은 세 팀이 번갈아 무대에 선다. 이름을 알 만한 성악가는 만토바 역 테너 스테판 코스텔로 정도였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마이크와 스피커를 사용한다. 사방이 트인 호반(湖畔) 무대에서 올리는 만큼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베로나와 확실히 구별되는 점이다. 출연진은 뺨에 마이크를 붙이고 소리를 냈지만 자연스러우면서도 깨끗하게 전달됐다. 페스티벌 측은 2007년 호반 공연을 위해 독자적으로 개발한 사운드 시스템을 올해 34억원을 들여 업그레이드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올린 프로덕션(‘마술피리’ ‘투란도트’ ‘카르멘’) 중 가장 자연스럽고 깨끗한 소리였다. 2014년 본 ‘마술피리’는 야외에서 고급 오디오로 듣는 것 같은 부조화가 못내 걸렸었다.
   
   엔리케 마졸라가 이끈 빈 심포니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브레겐츠에선 관객들이 오케스트라를 직접 볼 순 없다. 오케스트라는 야외 객석과 맞닿은 실내 페스티벌 극장에서 연주하고, 무대 양쪽 스크린과 스피커를 통해 연주가 중계되는 식이다. 마졸라는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을 이어주는 조정자 역을 매끄럽게 소화했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2차대전 직후인 1946년 시작됐다. 1985년부터 여름 한 달간 2년 연속 한 작품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돼왔다. 2017~2018년 ‘카르멘’을 올렸고, 2015~2016년은 ‘투란도트’, 2013~2014년은 ‘마술피리’였다. 2007~2008년 올린 ‘토스카’는 007영화 ‘퀀텀 오브 솔라스’에 주요 장면으로 등장하면서 화제가 됐다.
   
   페스티벌 측이 밝힌 관객 구성을 보면 독일(62%), 오스트리아(23%), 스위스·리히텐슈타인(13%)으로 전체 98%를 차지한다.(2014년 관객조사) 그래서인지 독일어 자막만 제공한다. 독일어에 능숙하지 않다면 오페라 예습에 신경 써야 한다. 내년은 ‘리골레토’가 이어지고 2021~2022년 시즌엔 ‘나비부인’이 예정돼 있다. 올 페스티벌이 끝나는 8월 18일부터 내년 시즌 ‘리골레토’ 예매가 시작된다. 최저 30유로부터지만 개막 한 달 전쯤엔 티켓이 거의 동난다.
   
   4년 전 브레겐츠에서 ‘투란도트’를 보던 때를 잊을 수 없다. 칼라프 왕자와 투란도트 공주의 이중창이 흘러나올 때 오리 일가족이 꽥꽥거리며 끼어들었다. 호숫가를 헤엄치다 ‘깜짝 출연’한 셈이다. 이 오리 일가는 무대 주변을 오가며 틈틈이 ‘출연’했다. 눈 쌓인 알프스봉과 호수를 배경 삼아 자연 속에 녹아든 오페라를 즐기던 여름밤은 여행 최고의 순간이었다.
   

   로마 카라칼라욕장의 오페라극장
   1만6000명 수용 공중 목욕탕
   스리 테너의 무대로 유명

   
▲ 로마 카라칼라 오페라 ‘아이다’. 소프라노 여지원과 테너 김재형이 주역을 맡았다. photo 김기철

   1800년 전 고대 유적(遺跡) 로마 카라칼라욕장은 매년 여름 야외 오페라극장으로 바뀐다. 카라칼라 황제가 216년에 완공한 이곳은 1만6000명이 한꺼번에 목욕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중목욕탕이었다. 도서관과 운동시설까지 갖춰 고대 로마의 ‘도심 레저타운’이었던 셈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카라칼라욕장을 배경 삼아 열리는 오페라는 그 자체가 볼거리다.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고도(古都)의 유적에서 시간의 흔적을 되새기며 야외에서 보는 오페라는 ‘불멸의 도시’ 로마를 느끼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카라칼라욕장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세 성악가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전야 행사로 ‘스리 테너’ 공연을 시작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로마 오페라극장은 올해 여름 시즌 카라칼라욕장에서 ‘아이다’와 ‘라 트라비아타’를 올렸다. 한국 소프라노 여지원(Vittoria Yeo·39)과 테너 김재형(Alfred Kim·46)이 개막작 ‘아이다’ 남녀 주연을 맡아 4차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오페라 본고장인 이탈리아의 주요 무대에서 한국 남녀 성악가가 남녀 주연을 동시에 맡은 건 극히 이례적이다. 지난 7월 18일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밤 9시, 로마 카라칼라욕장 4000석 야외무대에 오른 소프라노 여지원과 테너 김재형이 각각 아이다와 라다메스로 나섰다.
   
   김재형은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유럽 메이저 극장에 자주 오른 경험을 자산 삼아 고비를 넘긴 후 후반에 접어들수록 안정적인 소리를 냈다. 여지원은 조국 에티오피아와 싸우러 떠나는 라다메스와 이집트 군대를 응원하는 ‘이기고 돌아오라’로 아리아를 시작했다.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조국과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여인의 내밀한 고뇌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1937년 시작한 카라칼라 오페라는 로마 오페라극장이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을 겨냥한 여름 프로그램이다. ‘아이다’는 올여름 야심 차게 준비한 신작. 7월 4일부터 8월 3일까지 10차례의 공연 중 김재형·여지원 커플은 개막 공연을 비롯, 4차례를 책임졌다. 카라칼라 ‘아이다’는 기대를 모은 신작답지 않게 무대세트가 단순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출연진에겐 호평이 많았다. 다음 날 올린 ‘라 트라비아타’는 무대와 연출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막이 바뀔 때마다 스크린을 활용해 변화를 줬고 카라칼라욕장 유적에 조명을 쏴 배경으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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