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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72호]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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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육의 그림 속 시간여행]에너지 충전소 금강산에 든 부처를 소환하다

조정육  미술칼럼니스트 

▲ 이선복. ‘만물상 정토’. 28×48㎝. 소나무판에 아크릴. 2013
몇 해 전에 중국 황산(黃山)을 다녀왔다. 동네 뒷산도 오르지 못할 정도로 저질 체력인 필자가 느닷없이 황산에 오르게 된 계기는 순전히 동양학자 조용헌 선생의 글 때문이었다. 그는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자석(磁石)으로 이 자석 에너지가 많이 흐르는 물질이 돌과 바위’라고 주장했다. 바위에는 광물질이 함유되어 있고 우리 인체의 혈액 속에도 광물질이 있어 돌 위에 앉거나 누워 있으면 바위 속에 든 자석 에너지가 혈액을 통해 우리 몸속으로 유입된다는 논리였다. 바위 속의 자석 에너지가 우리 몸을 충전시켜 활력을 되찾게 해주는 것도 그 때문이란다. 그 에너지가 뇌에 들어가면 종교 체험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세계의 모든 종교 성지가 ‘기도발’과 ‘영발(靈發)’이 잘 받는 바위산에 있는 이유도 우연이 아니란다. 필자는 ‘기도발’과 ‘영발’을 확인해볼 만큼 영성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거대한 바위가 치료 효과가 있다는 ‘글발’에 혹해 황산에 오르기로 했다. 수많은 산 중에서 하필 황산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중국에는 5대 명산이라고 하는 오악(五岳)이 있다. 동쪽의 태산(泰山), 남쪽은 형산(衡山), 서쪽의 화산(华山), 북쪽의 항산(恒山), 중앙의 숭산(嵩山)이다. 그런데 중국을 대표하는 오악이 감히 그 앞에서 명함을 못 내미는 산이 황산이라고 했다. 그 거대한 바위의 자석 에너지에 접지를 하면 우주의 기운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에 부풀어 겁도 없이 무작정 황산을 선택했다. 당시 뇌종양 수술을 받은 직후라 재발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황산에 가 보니 그야말로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윗덩어리였다. 그런 단단한 바위산에서 평생 써도 모자랄 만큼의 에너지를 충전 받은 덕분일까. 암 재발 마지노선인 5년을 넘기고 7년째 살고 있으니 말이다.
   
   
   1만2000봉에 펼쳐진 정토의 세계
   
   이선복 역시 다른 금강산 작가들처럼 금강산에 다녀왔다. 그런데 그가 금강산에서 본 것은 화려한 풍경이 아니었다. 대신 그는 영험한 바위산에서 불보살님과 나한(羅漢)을 만났다. 나한은 부처님의 제자 중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뜻한다. ‘만물상 정토’는 그가 느낀 종교적 체험을 풀어낸 작품이다. 화면은 아래쪽 부드러운 야산 위에 뾰족뾰족한 바위산을 올려놓은 듯 그렸다. 그 모습이 마치 한 송이 연꽃 같다. 밥을 밥그릇에 수북하게 담아놓은 모습 같기도 하고 팽이버섯을 컵에 가득 담아놓은 것 같기도 하다. 부드러운 미점의 야산과 날카로운 수직준의 바위산을 대비되게 그리는 구도는 정선(鄭敾) 이래로 금강산을 그리는 수학공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전통을 이선복도 이어받았다.
   
   그런데 그는 정말 눈에 보인 바위의 모습만을 그린 것일까. 바위의 형상을 자세히 보니 마치 사람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화면 중간에는 광배(光背)를 한 부처가 대좌에 앉아 있고 그 앞에 여러 보살들이 협시해 있다. 그 뒤로는 바위산 곳곳에 승복을 입은 나한들이 서 있는데 바위인지 사람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의인(擬人), 의물화(擬物化)되어 있다. 왼쪽 화면에서는 위에 있는 보살이 호리병을 기울여 아래쪽에 운집한 중생들에게 감로수(甘露水)를 쏟아부어준다. 그 물길이 계곡물처럼 풍부하다. 감로수는 도리천에 있는 신령스러운 물로 한 방울만 마셔도 번뇌와 괴로움을 없애준다고 한다. 무명을 벗어나게 하는 부처의 교법(敎法)을 감로수에 비유하기도 한다. 보살이 부어준 감로수는 중생들 사이를 흐르고 흘러 바다에까지 가 닿았다. 왼쪽 하단에 민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도안적인 파도가 그려져 있다.
   
   정토(淨土)는 서방극락세계(西方極樂世界)의 준말로 부처나 보살이 머무는 청정한 국토다. 그곳에는 아미타부처가 상주하는데 지구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佛國土)를 지나가면 도달한다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그런데 ‘만물상 정토’ 하늘에는 해와 달이 동시에 떴다. 정토가 10만억 거리가 아니라 지금 이곳, 우리가 살고 있는 금강산에 있다는 뜻이다. 마음이 청정하면 아무리 먼 극락정토라도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의 세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선복이 ‘만물상 정토’에서 그의 종교적 체험을 풀어냈다고 말했지만 그 체험은 비단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만물상에서 부처의 모습을 보기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은 그와 똑같은 시각으로 바위를 보았다. 이선복보다 100여년 전에 살았던 작가가 그린 민화 ‘금강산도 10폭 병풍’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에 그린 ‘금강산도 10폭 병풍’은 금강산의 전체 모습을 10폭의 병풍에 파노라마식으로 펼쳐놓은 작품이다. 기존의 전도(全圖)의 화면 구성을 병풍으로 길게 연결되게 그려 마치 금강산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니 금강산 1만2000봉이 온통 부처의 모습이다. 이것은 ‘화엄경(華嚴經)’에서 ‘동북쪽 바다 가운데에 금강산이 있는데, 그곳에서 담무갈보살(曇無竭菩薩)이 1만2000 보살과 함께 항상 반야(般若)를 설법하고 있다’고 한 내용과 상통한다. 담무갈보살은 법기보살(法起菩薩)로 많이 알려져 있다. 고려 태조는 금강산에 오르던 중 법기보살과 그 권속들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정양사를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이미 금강산은 부처가 살고 있는 인간 정토(人間淨土)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가장 ‘아카데믹’한 금강산도를 그린 정선 또한 그런 소문을 들었던지 ‘천불암(千佛岩)’에 나한 형상의 바위를 그려넣었다. 또한 김홍도의 ‘해산도권’을 모델 삼아 그린 19세기의 ‘금강산도권’의 ‘만물초(萬物草)’에도 역시 말을 탄 장군상과 나한을 묘사한 바위들이 나온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19세기 이후에 이런 병풍 그림이 유행하게 되었을까. 보통 먹물깨나 들었다는 식자층이나 선비들은 정선이나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스탠더드’한 정통 금강산도를 좋아했다. 그들이 그린 금강산도를 보면서 시 몇 줄 덧붙이는 것이 점잖은 품위를 유지하는 데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금강산도 10폭 병풍’같이 인간의 희로애락을 자연물에 의탁한 민화풍의 금강산 그림에 더 열광했다. 금강산에 투영된 전설과 설화가 훨씬 더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금강산 그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안에 기복적이고 길상적인 의미를 부여한 그림이라면 더욱 관심이 갈 것이다. 금강산 그림을 집에 펼쳐놓기만 해도 복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마다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18세기에는 상공업과 화폐경제의 발달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중인 계층과 요호(饒戶), 부상(富商), 부농(富農) 등의 신흥 계층이 문화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그들은 사대부지향적인 문화를 추구하는 한편 백자도(百子圖), 요지연도(瑤池宴圖),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십장생도(十長生圖), 모란도 등 장식적이고 화려한 그림을 선호했다. 그중에 금강산도가 들어 있었다. 능력은 있지만 신분상의 한계가 뚜렷했던 큰손들은 금강산도를 주문할 때도 단폭이나 낱장 대신 8폭이나 10폭 심지어는 12폭짜리 병풍 그림을 찾았다. 소위 ‘뽀대’ 있게 사는 모습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비록 신분은 낮지만 사는 것은 정승판서 못지않다. 이런 존재감의 표현이었다. 조선 말기에 유난히 크고 화려한 병풍이 많이 제작된 것은 큰손들의 ‘취향 저격’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 오랜 역사성을 보여주기 위해 이선복은 200여년도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소나무판에 정토세상을 그렸다. 철거된 한옥의 마룻바닥으로 사용되었던 소나무다.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녔을 마룻바닥은 그 자체로 숱한 사연과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저 마룻바닥을 12폭 금강산도를 주문했던 큰손이 밟고 다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 ‘금강산도 10폭 병풍’ 중 2폭 ‘장안사’ 부분. 19세기. 지본수묵. 10폭 전체 길이 236.7×616.5㎝, 개인

   부처 같고 신선 같고 칼 찬 장군 같고
   
   민화로 그린 금강산도에는 여러 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등장한다. 특이한 바위가 많으면 그만큼 많은 전설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가장 많이 등장한 형상은 불보살과 나한이다. 말을 탄 장수, 삿갓을 쓴 스님, 두 손을 맞잡고 절하는 관리, 관을 쓴 선비 등의 모습도 보인다. 말의 얼굴을 닮은 마면봉(馬面峰), 소의 머리를 닮은 우두봉(牛頭峰), 사자를 닮은 사자봉(獅子峰) 등도 있다. 금강산만큼 많은 ‘콘텐츠’를 보유한 산도 드물 것이다.
   
   금강산에 얽힌 전설과 설화는 크게 불교적인 것과 도교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지장봉, 석가봉, 관음봉, 보현봉, 비로봉으로 부르는 봉우리나 정양사, 장안사, 표훈사, 유점사 등의 가람은 불교적인 색채가 짙다. 신라 법흥왕(法興王) 때 불교를 위해 순교한 이차돈(異次頓)의 머리가 날아가 금강산 꼭대기에 떨어졌다고 전해진다.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다는 구룡연(九龍淵)의 전설도 불교와 관계가 있다. 내금강 명경대(明鏡臺) 구역은 염라국의 관직과 지명으로 불리며 그에 맞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명경대’라는 말 자체가 ‘업경대(業鏡臺)’와 동의어다. 업경대는 불교용어로 사람이 죽은 후에 생전의 선행과 악행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명경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인물을 그린 작품도 더러 보인다. 명경대 옆에는 황천강(黃泉江)이 흐른다. 황천강은 그리스신화 속 레테의 강처럼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흐르는 강인데 역시 불교적인 명칭이다.
   
   도교적인 전설도 깃들어 있다. 삼선암(三仙岩)은 나란히 선 세 개의 바위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선유담(仙遊潭)은 신라의 사선(四仙)이 놀았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 수입된 이야기도 있다. ‘사기’에는 진시황과 한무제가 삼신산에 선인(仙人)과 불사약(不死藥)이 있다는 방술사의 말을 듣고 직접 동해까지 갔다가 돌아왔다고 적혀 있다. 여기에서 언급한 동해는 금강산이라고 추측된다. 조선 중기의 유명한 서예가 양사언(楊士彦)이 만폭동 바위 위에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岳元化洞天)’이란 8자를 새겨놓은 것도 도교적이다. 만폭동 안에 있는 금강대는 청학대(靑鶴臺)라고도 부르는데 푸른 학이 그 위에 둥지를 틀었다는 전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는 청학동, 청학정, 청학봉, 청학루 등 청학이 들어간 지명이나 명칭이 유난히 많다. 청학은 천하가 태평할 때만 운다고 해서 태평성세를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이외에도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담긴 상팔담, 회중이란 사람이 유혹을 물리치고 공부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는 보덕암, 네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깃든 만폭동 너럭바위 등도 유명하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의 근원지가 바로 만폭동 너럭바위다.
   
   금강산에 불보살이 살고 있고, 신선이 노니는 장소로 여기는 심리의 바탕에는 풍수지리설의 영향도 한몫했다. 풍수지리설에서는 산이나 강 등의 자연 자체가 주술적인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 생기(生氣)가 넘치는 명당지나 길지(吉地)에 집을 짓거나 묘를 쓰면 후손들에게 복을 준다는 발복지(發福地)의 개념도 바로 이런 신령한 힘 때문이다. 풍수에 대한 생각의 결정판은 ‘정감록’에 등장하는 십승지(十勝地)다. 십승지는 난리에도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10여곳의 피난처를 말하는데 땅에 대한 확신과 굳건한 믿음에서 나온 개념이다. 십승지나 명당지에 초월적인 힘이 있다는 믿음은 원시시대의 정령신앙(精靈信仰)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정령신앙은 애니미즘으로도 부른다. 해, 달, 별, 강과 같은 자연계와 천둥, 벼락, 태풍, 바람, 불, 지진, 홍수 등과 같은 자연현상에 생명이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이런 믿음이 곰, 호랑이, 새 등의 동식물로 향하면 토테미즘이 된다. 조상의 혼령이 후손들의 앞날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 샤머니즘도 같은 맥락이다. 모두 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전통이 지금도 남아 있어 큰 바위나 당산목 같은 고목에 절을 하거나 치성을 드린다.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신령스러운 얘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금강산에 갔는데 부처 같고 신선 같고 칼 찬 장군 같은 바위들이 사방팔방에 포진해 있었다고 생각해보라. 누구든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바위를 쳐다볼 것이다. 그때 바위는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달리 보일 것이다. 만약 내가 금강산에 가서 부처바위를 봤다면 무릎 꿇고 이렇게 빌었을 것이다. 어지러운 이 나라를 굽어 살펴주소서!
   
   
   바위산의 챔피언
   
   그렇다면 수많은 ‘금강산 병풍’에 등장하는 부처바위들은 진짜 부처의 발현인가, 신선이 내려앉은 것일까. 당연히 진짜 부처가 나투신 모습이고 신선들이 내려와 산책한 장소다. 불교에서는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 한다. 모든 존재는 다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내 눈이 어두워서 그 성품을 볼 수 없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자연물에 의지해 힘을 내서 살아가려는 민초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보는 것 같아 애잔하다.
   
   이런 내력과 기운을 품은 금강산이었으니 금강산 길이 막히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황산이 아니라 금강산행을 택했을 것이다. 조용헌 선생은 황산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금강산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했다. 바위는 단단해야 기가 강한 법인데 금강산이야말로 강한 바위 중에서 단연 ‘톱’이란다. 단단한 바위가 포진해있는 데다 기암괴석이 아름답기까지 하니 금강산이 유명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금강산이 아름다운 것은 바위 때문이 아니라 궁합이 잘 맞기 때문이란다. 금강산은 물이 없는 황산과 다르게 옆에 동해바다가 있다. 물이 없는 황산이 홀아비산인 것에 비해 금강산은 음양이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금강산은 ‘바위산의 챔피언’이라고 했다. 화가들이 금강산에만 다녀오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붓을 들어 명작들을 토해내니 금강산의 ‘영발’이 강하긴 강한 모양이다. 그 덕분에 이 여름을 그림 속에서나마 금강산 계곡에 발을 담그면서 보냈으니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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