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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72호]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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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책]강준만 ‘강남좌파’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pcsun21@daum.net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자와 장하성 전(前) 청와대 정책실장은 상당한 재력가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역설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외고·자사고 폐지를 외친다. 그럼에도 자식들은 한결같이 외고나 외국 명문교에 보낸다.
   
   한때 이런 사람들은 다소 냉소적 의미로 ‘강남좌파’라고 불렸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에서는 이들이 구석구석 요직에 포진해 있다. 특히 조국 지명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 강남좌파다. 그런 인물이 ‘대통령의 남자’라고 회자되며, 좌파 정권의 스타 정치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처럼 강남좌파는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대세다.
   
   이런 흐름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강남좌파에 대해 본격적으로 분석의 칼을 들이댄 기념비적인 정치비평서가 있다. 바로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강남좌파’(2011)다. 강남좌파란 한마디로 ‘생각은 좌파적이지만 생활은 강남사람처럼 하는 이들’을 의미한다. 여기서 ‘강남’은 특정지역이라기보다, 그것으로 상징되는 경제사회적 지위나 생활양식을 가리킨다.
   
   물론 기득권층이 무조건 자기 욕망에만 충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성자(聖者)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 역시 자기 욕망을 충족하면서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며 살아갈 수 있다. 실제로 생활과 생각 간의 괴리는 적든 크든 누구에게나 존재하며, 또한 그것이 어느 정도 바람직한 것일 수도 있다.
   
   심지어 아예 ‘우파처럼 살며 좌파처럼 생각하는(live right, think left)’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미국에는 ‘리무진 진보주의’, 영국에는 ‘샴페인 사회주의’, 프랑스에는 ‘캐비어 좌파’ 등이 있다. 특히 대학교수의 절대다수는 어느 나라에서나 생활적 우파, 사상적 좌파다. 심지어 자본주의의 축복을 한껏 누리면서도 체 게바라를 좋아하는 고학력·고소득자들도 적지 않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다. 그런 부류들의 특징 또한 다르다. 따라서 강남좌파에 대해서도 우리만의 독특한 역사성과 특수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강남좌파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무렵이었다. 왜 하필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을까. 그 시점이 강남좌파 담론에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돌이켜보면, 일제에 대한 저항의 일환으로 좌파운동을 벌인 것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부잣집 자식들이었다. 또한 광복 이후 기나긴 민주화 운동에 매진한 것도 명망가와 대학생들이었다. 단적으로 말해 그들은 속성상 대체로 강남좌파적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오로지 독립이나 민주화가 지상명제였다. 이런 분위기는 대체로 김영삼, 김대중 집권시대까지 이어졌다.
   
   노무현 정권은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정권이었다. 이제 엘리트들은 더 이상 민주화 투사가 아니다. 그 점을 빼고 보니, 그들의 행태는 기존 엘리트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수뢰사건도 터지고 골프 스캔들도 터졌다. 급기야 그들은 생각만 좌파일 뿐, 생활은 우파라는 빈축을 샀다. 이로 인해 다소 냉소적인 의미로 강남좌파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노무현 정권은 민심이반 속에 막을 내렸다. 퇴임 대통령 자신도 수뢰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심지어 폐족(廢族) 선언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그의 충격적 죽음을 둘러싸고 대중의 한(恨)이 폭발했다. ‘서러운’ 대중은 실패한 ‘대통령’ 노무현보다 역경으로 점철된 ‘인간’ 노무현의 비극에 강렬하게 반응했다. 이런 정서적 분출은 폐족이 부활하는 기반이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된 배경은 역시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실망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은 ‘고소영’이니 ‘강부자’니 하는 유행어를 만든 폐쇄적 인사로 대중의 공분을 샀다. 이명박 사람들은 누가 보아도 탐욕스러운 강남 특권층이었다. 이로 인해 “나는 강남사람처럼 살지만 그들과는 다르다”라는 목소리가 나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 단초는 다소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2007년 문국현의 등장이었다. 그의 ‘반듯한’ 이미지는 ‘있는’ 자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상당히 누그러뜨렸다. 그의 실험은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실망과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은 강남좌파의 본격적 등장을 불러왔다. 드디어 2011년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는 “강남좌파가 더 많아져야 한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지도자가 되려면 좌우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명문대 출신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고시 합격이라는 ‘신분증명서’라도 있어야 한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는 서양식의 좌우, 진보·보수의 구도가 설정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일단은 모든 사람이 ‘각개약진’으로 신분증명서를 획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은 다름 아닌 입시전쟁인 것이다. 이것이 강남좌파도 자식 교육에 결사적으로 목을 매는 이유다.
   
   실제로 우리나라 좌파는 ‘세계적으로 가방끈이 길다’. 진영 내에서 학벌주의와 간판주의가 강고하다. 어느 대학 몇 학번으로 대충 조직 내의 서열이 정리된다. 고졸 출신은 아예 얼씬도 할 수 없다. 특히 586세대는 누구보다 학벌의 혜택을 누리기만 하고, 정작 교육개혁, 특히 대학개혁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짝이 없다. 그것이 그들의 민낯이요, 한계다.
   
   특히 우리 정치는 이념이나 가치보다 인물 중심이다. 대선을 통한 권력독식 체제가 이를 강화한다. 이로 인해 학맥이나 인맥에 얽힌 줄서기 문화가 횡행한다. 결국 우리 정치는 좌우를 막론하고 대중과 괴리된 엘리트들만의 쟁투가 되고 있다. 강남좌파도 예외가 아니다. 이리하여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에서 이념보다 엘리트주의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저자는 강남좌파 담론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문국현, 조국, 박근혜,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오세훈을 각각 살펴본다. 우파 정치인이 포함된 것은 그들도 강남좌파적 언어와 전술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날 우파 정치인 중에 유독 ‘경제민주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대부분 막대한 부와 정치적 기반을 물려받은 2세 정치인들이다.
   
   저자가 살펴본 인물들 가운데 문국현은 사라졌지만 두 명은 대통령이 되었고 나머지 인물들도 여전히 주요 정치인으로 활약 중이다. 시간을 조금 확장한다면 안철수, 유승민 등이 추가될 것이다. 이런 면면을 보면, 좌우를 막론하고 강남좌파는 엘리트 주도세력이 되었다.
   
   강남좌파의 진정성을 악의적으로 의심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첫째로, 그들에게는 생활의 절박성이 없다. 이로 인해 사회적 의제 설정이 왜곡될 수 있다. 둘째로, 생활이 우파적일수록 사상적 강경파 행세를 하기 쉽다. 이것은 권력의 자기 성찰 및 교정 기능을 위협한다. 셋째로, 사상과 생활의 괴리가 불가피한 것일지언정 거기에는 임계점이 있다. 그것을 넘지 말아야 한다. 넷째로, 정작 ‘생활좌파’의 등장을 가로막고 오히려 학벌 중심의 폐쇄적 엘리트 정치를 강화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이 강남좌파에 대한 점검 항목이자 또한 자가진단 항목이다. 그들이 ‘강남’ 좌파인지, 강남 ‘좌파’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들의 진정성과 역량은 지금 차가운 시험대에 올라 있다. 어느 경우든 우리 정치가 엘리트들만의 리그로 점점 고착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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