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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74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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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육의 그림 속 시간여행]‘인간의 다리’ 건너 이 땅에서 저 땅으로

조정육  미술칼럼니스트 

▲ 유영호 작가의 작품 ‘브릿지 오브 휴먼’ 스케치. 남북을 연결하는 다리를 제안한 작품이다.
평행하는 두 선은 만날 수 있을까. 사상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이념, 성별, 피부색이 다른 두 사람은 영원히 화합할 수 없을까. 이런 고민에 해답을 주는 작품이 중국 베이징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 명대(明代) 화가 정운붕(丁雲鵬)이 그린 ‘삼교도(三敎圖)’다. 삼교는 동양을 대표하는 종교로 불교·유교·도교를 말한다. 그림에는 불교의 석가, 유교의 공자, 도교의 노자가 사이좋게 앉아 있다. 세 인물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는 최고로 높은 분들이라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한데 정반대다. 거만함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공손하게 자기 진영의 예법을 갖춘 자세다. 보기에 아주 좋다. ‘삼교도’를 ‘삼성도(三聖圖)’라고도 부른 이유다. ‘삼교도’는 명대의 삼교합일(三敎合一) 혹은 삼교회통(三敎會通)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삼교합일은 당대(唐代)부터 시작되었으며 송대(宋代)에는 ‘불교로 마음을 수양하고, 도교로 양생하고, 유교로 세상을 다스린다(以佛修心, 以道養身, 以儒治世)’는 사상으로 심화되었다. 중국 역사는 ‘이불수심, 이도양신, 이유치세’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개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혹 군주에 따라 불교를 더 숭상하거나 도교에 더 탐닉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느 한쪽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도 중국의 사원에는 삼교의 신상(神像)이 사이좋게 모셔져 있다.
   
   종교만큼 치열한 논리 싸움의 전쟁터도 없을 것이다. 그 전쟁터의 수장들이 칼을 내려놓고 융숭한 예로 상대방을 공경하니 다른 분야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삼교도’는 평행하는 두 선을 넘어 세 줄의 선이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에 최치원(崔致遠)이 쓴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삼교합일의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도 통합과 화합의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는 뜻이다.
   
   
▲ 경기도 연천군 옥녀봉에 있는 유영호 작가의 작품 ‘그리팅맨’.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영국의 타워브리지, 미국의 금문교, 이탈리아의 폰테베키오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다리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미라보다리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때문에 유명해졌고, 미국의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는 영화 때문에 소문이 났다. 우리나라에는 어떤 다리가 있을까. 원효대교? 한강대교? 마포대교? 한강 위에 세워진 수많은 다리 모습이 뇌리를 스쳐가지만 한국을 대표할 만한 다리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차가 지나가는 구조물로서의 다리일 뿐이다. 그런 착잡한 생각을 하며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막 전시를 시작한(11월 7일까지) 유영호 작가의 작품 ‘브릿지 오브 휴먼(Bridge of Human)’을 보았다. 작품을 보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은 것 같았다. 작품은 ‘인간의 다리’라는 뜻이 의미하듯 거인이 강 한가운데 서서 양쪽 강변에 있는 사람들이 건너갈 수 있게 팔을 길게 뻗은 모습이다. 거인은 힘에 겨운 듯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는데 머리 정수리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사람들은 거인의 팔과 어깨 위를 밟고 물을 건너다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서 잠시 쉴 수 있다.
   
   거인의 몸은 강물이 차오르고 빠질 때마다 다르게 보인다. 장마가 져서 물이 불어나면 몸체가 물에 잠겨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쓰럽게 한다. 그때 사람들은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내 발에 물 묻히지 않고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이 뒷받침되었다는 것을. 그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쪽 땅과 저쪽 땅의 사람들은 자유롭게 오가며 만날 수 있다. 누군가는 저 다리를 보면서 아버지의 등에 업혀 시냇물을 건넜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누군가는 피안의 세계로 가는 뗏목으로서의 다리로도 읽을 것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다리의 역할은 사람을 건너게 해주고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유영호는 ‘브릿지 오브 휴먼’을 만들면서 그 소회를 이렇게 적고 있다.
   
   “양쪽 땅으로 간절히 팔을 늘려 기어코 잇는다. 땅이 이어지면 사람들이 만나고 사람들이 만나면 언젠가는, 경계가 없는 세상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리라. 이 땅에서 저 땅으로, 저 땅에서 이 땅으로.”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만난다는 뜻이다. 종교가 다르고 이념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뜻이다. 피부색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사는 지역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만나 격의 없이 마음을 열고 소통한다는 뜻이다.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선결조건이 필요하다. 뻣뻣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상대를 무시하는 대신 진심으로 상대를 높이고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유영호는 ‘브릿지 오브 휴먼’에 앞서 ‘그리팅맨(Greetingman)’을 먼저 선보였다.
   
   ‘그리팅맨’은 인사하는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장 먼저 하는 행위가 인사다. 인사는 서양 사람들의 악수에 해당한다. 악수는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처음 만난 사람의 적의를 누그러뜨린다. 유영호는 악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고개를 숙여 인사함으로써 공경심과 겸손을 더했다. 인사는 하심(下心)의 표현이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사람을 외면하고 돌아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게가 3t에 가까운 6m 거인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 그 앞에 선 사람은 십중팔구 마주 보고 인사를 한다. 한국식 인사를 모르는 서양 사람도 똑같이 따라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상대방과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불이(不二)를 경험하게 된다. 결국 좋은 행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유영호는 자기 돈을 들여 세상 곳곳에 ‘그리팅맨’을 세우고 있다. 서울, 제주, 연천, 양구에는 청자빛 ‘그리팅맨’이 세워져 있다. 특히 대한민국 국토의 중간에 해당하는 연천의 ‘그리팅맨’은 눈물겨울 정도로 감동적이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의 철조망 앞에서 북쪽을 향해 15도 각도로 인사를 하는 거인의 동상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깊은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반대편 북쪽 땅에 맞절하는 ‘그리팅맨’이 세워지는 날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미래일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남북이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겸손하게 서로 인사해본 적이 있는가”라고. 그는 연천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분단 현장과 경계선에 ‘그리팅맨’을 세우고 싶어한다. 이미 지구 북반부와 남반부의 경계선인 에콰도르 키토에 ‘그리팅맨’을 세웠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파나마 파나마시티, 브라질 상파울루 한가운데에도 초대형 ‘그리팅맨’이 서 있다. 베트남 후에와 프랑스 노르망디, 멕시코 메리다에도 곧 세워진다. 그는 “세계의 의미 있는 장소에 1000개의 그리팅맨을 세우겠다”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다.
   
   이렇게 인사를 하며 손을 내밀어도 썰렁한 관계가 개선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상대를 탓하며 삿대질하는 대신 자신의 행위를 되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성찰이다.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통해 유명세를 탄 ‘미러맨(Mirror Man)’은 자기성찰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다. 사각의 틀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선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똑같다.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하다. 내가 웃으면 상대방도 웃는다. 내가 화를 내면 상대방도 화를 내고, 내가 칼을 들면 상대방도 칼을 든다. 상대방은 곧 나의 자화상이다. 나의 행위를 그대로 반영하는 상대방의 행동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다.
   
   유영호는 2017년 에콰도르 키토에 ‘World Mirror’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미러맨’을 세우려는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그리팅맨’과 ‘미러맨’을 통해 겸손, 화해, 평화, 소통을 전하고자 한다. ‘브릿지 오브 휴먼’은 자기성찰과 하심을 통해 상대방과 대화하고 화해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유사 이래 한국인 중에서 유영호처럼 세계인을 상대로 이런 ‘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한 작가가 있었던가. 더구나 그 시도는 가장 동양적이면서 가장 한국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가장 한국적이지만 세계인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녔다.
   
   
▲ 조석진 외. ‘영조대왕어진’. 1900년 이모. 비단에 채색. 110×68㎝. 국립고궁박물관

   탕평책을 펼친 성군 영조
   
   조선 역사에서 가장 균형감각을 가진 왕을 찾는다면 영조대왕을 들 수 있다. ‘영조대왕어진’은 영조의 51세 때(1744)의 모습이다.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의 상단에는 ‘광무 4년 경자년(庚子·1900)에 이모(移摹)했다’고 적혀 있다. 작가는 조석진(1853~1920)과 채용신(1850~1941) 등으로 전해진다. 어진은 머리에 익선관을 쓰고 좌안(左顔) 칠분면(七分面)을 한 반신상이다.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어진은 창덕궁 선원전에 봉안했는데 화재로 거의 소실되었다. 현재 태조·영조·고종·순종 등을 그린 어진만 남아 있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다행히 영조는 ‘영조대왕어진’과 함께 그가 왕이 되기 이전 연잉군 시절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도 남아 있다.
   
   영정조 시대는 흔히 우리 역사의 르네상스로 평가된다. 영조는 탕평책(蕩平策)을 시행한 왕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탕평은 싸움이나 시비, 논쟁 따위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음을 뜻한다. 원래 탕평이란 말은 고대 중국의 정치를 기록한 ‘서경’에서 나왔다. ‘서경’의 ‘주서(周書)-홍범(洪範)’에는 “치우침이 없고 당파가 없으면 왕도(王道)가 탕탕하고 평평하다”라고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숙종 때 소론의 중심인물인 박세채(朴世采·1631~1695)의 건의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수많은 비판과 반대에 부딪혀 흐지부지되다가 영조 때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그 탕평책을 영조가 단행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다 이유가 있다. 영조는 숙종과 숙빈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에게는 이복형인 경종이 있었다. 경종은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태어난 세자였다. 경종은 왕위에 올랐으나 병약해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영조가 왕위에 올랐다. ‘팩트’로만 보면 영조는 세상 떠난 이복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무수하게 얽힌 당쟁의 실타래를 발견할 수 있다. 영조는 노론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고 경종은 소론의 지지를 받았다. 영조는 자신이 왕이 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당쟁을 겪으면서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탕평책만이 유일한 길임을 절절하게 느꼈다. 조선시대 때의 당파싸움은 목숨을 내걸어야 했다. 정쟁에서 밀려 역적이라도 되는 날에는 삼대가 망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에 비하면 현재 국회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은 어린애들 장난에 불과하다. 첨예한 권력이 대립되는 정치판에서 최고권력자의 중심잡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영조는 당쟁의 해결을 위해 탕평책을 선택했고 그 결과 정치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영조의 손자 정조도 마찬가지였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갇혀 죽은 원인이 당쟁 때문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침실에 ‘탕탕평평(蕩蕩平平)’이라는 액자와 ‘정구팔황호월일가(庭衢八荒 胡越一家)’라는 글자를 걸어두었다. ‘정구팔황 호월일가’는 ‘먼 변방도 뜰처럼 가까이 하고, 오랑캐도 한집안처럼 본다’는 뜻으로 거리가 먼 곳도 가깝게 여기겠다는 다짐이다.
   
   
   우리 이제 그만 화해하고 만날까요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주먹질이 벌어지고, 한편에선 화해의 방법을 찾는다. 조선시대의 당쟁은 ‘색깔’이 다르면 무조건 밀어내기 위해 사생결단하듯 덤비는 행위다.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은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세력을 불러 칼을 내려놓고 대화와 타협을 하게 만든 중요한 정책이다. 유영호는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탕평이 당색이라는 단순한 ‘프레임’ 안에서의 고민이었다면, 유영호의 작품은 한국을 뛰어넘고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어 인류 보편의 문제로 끌어가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탕평책보다도, 중국의 삼교합일보다도 더 어렵고 힘든, 그러나 훨씬 더 값지고 의미 있는 작업이다.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반드시 해줘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는 ‘인간의 다리’가 있다”라고. 그 다리 위에 서서 우리는 마음과 영토가 분단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외칠 것이다. “We must connected(우리는 반드시 연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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