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인회
일러스트 허인회

36살 박현아씨는 10월 딸을 출산할 예정이다. 박씨는 미혼이다. 딸의 아버지가 되는 박씨의 전 남자친구는 ‘출산을 지켜보고 싶다’고 전해왔지만 거절했다. 딸을 가진 것을 알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결정한 일이었다.

“3살 연하인 남자친구는 그때도 지금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백수’였어요. 마땅히 모아둔 돈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었지요. 저는 다행히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고 저의 부모님도 충분히 제 아이를 돌봐줄 만한 상황이었어요. 아이를 낳고 싶었는데 결혼은 하기 싫었죠.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주변에서는 심하게 반대했지만 밀어붙였어요.”

박현아씨는 출산 후 당분간은 부모님과 함께 거주할 예정이다. 그러니까 박씨의 가족 구성원은 부모와 딸, 딸이 낳은 손녀 4인 가족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주변에 보면 아이를 기른다고 친정 부모님과 같이 사는 친구들도 많아요. 아이 낳자마자 이혼한 사람도 있고, 그러다 다시 재혼한 사람도 있으니, 제가 꼭 특이하게 보이지만은 않을 거예요.”

박씨의 장담처럼 요즘 가족 형태는 확실히 다양해졌다. ‘엄마·아빠·아들·딸’ 4인 핵가족이 기본이었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많다.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부모가족 가구 수는 해마다 늘어나 2018년을 기준으로 전국 150만가구에 달한다. 아버지와 미혼자녀만 사는 가정도 28만가구가 넘는다. 어머니와 자녀가 함께 사는 게 일반적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아버지와 미혼자녀가 함께 사는 경우도 18.4%에 달한다. 이혼이나 사별로 한부모가족이 된 경우가 대다수지만 처음부터 미혼이었던 한부모가족도 4%가 있다. 결혼은 안 했지만 자식을 낳아 키워온 남녀가 이 정도 된다는 얘기다.

1인가구는 이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가구 형태가 됐다. 2000만가구 중 585만여가구가 1인가구다. 3년 전에 비해 60만가구 넘게 늘어난 수치다. 더욱 빠르게 늘어난 가구 형태도 있다.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로 이뤄진 가구다. 비혼 동거가족이나 친구끼리 모여 사는 비친족 가구는 2018년을 기준으로 34만가구가 넘었다. 2015년 21만가구였던 것과 비교하면 3년 새 60% 늘어난 셈이다.

전통가족의 해체가 아닌 변화다

겉으로 보이는 가구원의 수나 가구 형태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가구 구성원의 모습도 달라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30.4세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28.32세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 사이 신혼부부 가구의 평균 연령대가 확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신혼부부 가구라고 하면 30대 부부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재혼가정도 늘었다. 2018년 전체 혼인건수 26만여건 중 재혼이 5만7000여건으로 22% 넘는 비중을 차지했다. 다문화가족도 33만5000가구에 이른다. 다문화가족의 증가 속도도 매우 빠른데 2015년에는 29만9000가구였던 것이 3년 동안 50% 가까이 증가했다.

다시 말하자면 ‘다양한 가족’으로의 변화는 가구원 수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가족 내에서도 다양한 가족 모습이 생겨난다. 예전에는 생계를 담당하던 부(夫), 가사노동을 하는 모(母), 부모에게 의지하는 자녀로만 이뤄진 가족이었다면 지금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아버지와 생계를 담당하는 어머니가 있을 수 있다. 또는 한국어를 못 하는 외국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로 이뤄진 가정도 심심찮게 보인다. 겉보기에는 전통적인 가족처럼 보이지만 각자 가치관대로 다양하게 살아가는 게 요즘 가족들이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 형태의 변화를 ‘전통가족의 해체’라는 단어로 표현해왔다. 주로 부정적 시각에서 가족 형태의 다양화 현상을 살펴왔는데 그러다 보니 자칫 ‘골든 타임’을 놓칠 뻔했다. 변화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정부의 가족정책에서 주된 흐름은 사각지대에 있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최대한 지원하는 것으로 변해왔다. 이를테면 비혼 동거가족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것 등이다.

실제 10월부터 비혼 동거가족, 다시 말해 사실혼 관계에 있는 부부도 난임시술을 할 때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해서다.

비혼출산율이 합계출산율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다. 합계출산율이란 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를 일컫는다. 프랑스가 비혼출산율과 합계출산율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프랑스는 1990년대 후반 합계출산율이 1.7명까지 떨어지는 상황을 맞았다. 이를 타개하고 출산율 제고를 위해 프랑스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바로 비혼 출산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당시 지금의 한국처럼 가족 형태에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었다. 결혼의 책임과 의무를 지고 싶지 않아 동거하는 청년들이 늘어났고 가족 구성원의 모습도 전통적인 가족과 멀어지고 있었다. 만약 ‘가족=결혼=출산’이라는 세 가지 고리가 굳건하게 맞물려 있었다면 프랑스의 출산율은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와 더불어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 비혼출산율이 합계출산율 끌어올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과감하게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기 시작했다. 1999년 도입된 PACS(팍스·시민연대협약)가 그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동거 커플이라도 세금이나 사회복지서비스 같은 사회보장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러면서 비혼출산율이 높아졌다. 아이가 생기면 으레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난 결과다.

합계출산율이 1.7명이었던 1998년 프랑스의 비혼출산율은 41.7%였다. 그 이후로 비혼출산율은 점점 증가했는데 출산율도 덩달아 증가했다. 처음으로 비혼출산율이 50%를 넘긴 2006년에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1.98명으로 치솟았고 55%를 넘긴 2010년에는 2.02명이 되었다. 분명 ‘부모·자식’으로 이뤄진 전통적인 가족은 사라지고 있는데 출산율은 증가하는 현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가족구조의 변화는 ‘위기’나 ‘해체’ 같은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부정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맞게 변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구조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제도적으로는 이런 변화의 흐름이 수용되고 있는 추세다. 한부모가족지원법이 제정된 것이 2007년의 일이다. 다문화가족지원법도 마련됐고 사실혼 관계의 부부도 연금이나 근로복지의 분야에서 의무와 권리를 갖게 되는 등 꾸준히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다. 인식이다. 대개는 가족구조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지만, 사실 제도만큼이나 부족한 것이 사회적 인식이다. 몇 가지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그렇다.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국민들의 다양한 가족구조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를 보자. ‘다양한 가족보다는 전통가족 중심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에 대해 ‘동의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51.8%였다. 여전히 절반 넘는 사람이 다양한 가족구조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응답에는 세대별 차이가 크다. 전통가족이 아니라 다양한 가족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즉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을 한 20대는 71.0%에 달했다. 그런데 60대 중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사람은 24.9%에 그쳤다. 그러니까 20대 10명 중 3명만이 전통가족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반면에 60대는 4명 중 3명이 전통가족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비혼출산에 대한 동의 30%대로 상승

조금 더 구체적으로 가족의 형태에 대해 알아보자. 비혼출산에 대한 인식이다. 통계청에서 2년마다 실시하는 사회조사에서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을 비교해 보았다. 해마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2008년에는 21.5%만이 비혼출산에 찬성했지만 10년 뒤에는 30%의 사람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세대별 차이가 있다. 2018년을 기준으로 20대는 36.7%가 비혼출산에 찬성했지만 60대 이상의 찬성 집단은 22.6%에 그쳤다.

유계숙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가 2001년과 2017년, 16년에 걸쳐 두 차례 조사한 청년들의 가족에 대한 개념 연구 결과를 보면 확실해진다. 유 교수는 청년들에게 어디까지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어봤다. 예를 들어 ‘부부와 그들이 낳은 자녀’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2001년이나 2017년이나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어릴 적 친구와 한집에서 같이 사는 노인’이 가족을 이루고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은 편이다.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자식 간의 혈연관계가 가족의 근간이 된다. 1인가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가족으로 인정받지 않으며 친구 집단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2001년에서보다 2017년에 눈에 띄는 변화는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포용력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가장 변화가 심한 범주는 ‘애완견을 키우는 노인’에 대한 인식이다. 2001년에는 이 노인과 애완견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적었는데 2017년에는 무척 높아졌다. 마찬가지로 동성애자 커플이나 재혼가정, 입양가정 같은 다양한 가구원으로 구성된 가족에 대한 포용력도 높아졌다.

“확실히 2017년 청년세대는 전통적 가족주의 이념에 거부감을 보이고 부계혈연 중심의 핵가족 이데올로기에도 부정적 경향을 보입니다. 이건 개인주의와 경쟁이 심화된 2010년 이후의 사회 분위기에서 자라난 청년세대가 가질 법한 가족 가치관입니다. 문제는 청년들의 이런 가족관은 부모세대와 가치관 측면에서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유계숙 교수의 지적처럼 가족구조의 변화는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청년세대에 가족이란 꼭 부모-자식 간의 혈연관계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 내에서도 전통적인 역할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청년들은 꼭 가부장적인 가치관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가족구조의 변화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세대 간의 차이에서 나온다. 기성세대로 갈수록 다양한 가족의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6살 난 딸을 혼자서 키우고 있는 김슬아씨는 주간조선에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제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은 제가 처음 미혼모의 몸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줄곧 저를 응원해줬습니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겪는 차별은 오히려 적은 편이었어요. 진짜 차별은 사람에게서 나왔습니다. 특히 친척 어른들, 동네 어르신들이 주는 상처가 많았어요. 여전히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단어를 쓰는 할아버지도 있었고 ‘그래도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기르냐’며 걱정하듯이 참견한 고모님도 계셨어요.”

자칫 가족구조의 변화가 세대 간 단절을 불러오는 것은 물론 세대 갈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과언은 아닌 셈이다. 이 상황에서 기성세대의 보수적인 인식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면 가족구조의 변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해가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유계숙 교수는 “다양한 가족이 늘어나는 것이 사회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가족은 사회 발전을 이끌어낸다

호주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증가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동성커플,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같은 형태는 물론 결혼도 동거도 하지 않는 ‘따로 또 같이(living apart together)’ 가족 형태도 10% 안팎이나 될 정도다. 그러나 가족구조의 변화가 어떻든 간에 호주의 합계출산율은 1.75~1.78명으로 10년 넘게 일정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OECD의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를 보면 사회적 지지망이 얼마나 잘 갖춰졌는지를 평가하는 공동체(community) 항목에서 OECD 가입국 중 6위를 차지했다. 시민들의 삶의 행복도를 나타내는 만족도(life satisfaction) 역시 열 손가락 안에 들었다.

공동체나 삶의 만족도가 높고 합계출산율이 안정적이며 일·가정 양립이 잘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을 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이들 국가들에서 비혼출산율은 기본적으로 50%를 넘나든다. 2016년을 기준으로 핀란드가 44.9%로 제일 낮은 정도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 지지망이나 안전망은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다양한 가족의 형성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오히려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면서 생기는 사회적 효용이, 변화로 인해 잃는 전통적 가치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점은 단지 몇 차례의 일회성 캠페인으로 생겨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한국이 가족정책에 들이는 예산은 OECD 국가 중에 최하위에 속한다. 가족 관련 공공지출 현황을 보면 한국은 멕시코, 미국, 터키와 더불어 공공지출 비중이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한다. 2015년에는 전체 예산의 1.12%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호주는 2.65%, 프랑스는 2.93%였다. 한국은 가족구조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만 생겨나고 있을 뿐 가족정책에 그만한 신경을 못 쏟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가족은 먼저 변하는데, 사회는 뒤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가족이 안팎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사회적 변화를 대비하는 일이 필요하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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