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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76호] 20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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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천국의 산책, 알프스 제2고봉 몬테로사 트레킹

글·사진 한필석  전 월간산 편집장 

▲ 알프스 몬테로사 트레킹의 즐거움 중 하나가 예쁜 집들이 자리한 산마을에서 만년설산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유로파베그 휘테에서 바라본 바이스호른(가운데) 산군.
해외 트레킹 매니아들 사이에도 몬테로사(Monte Rosa·4634m)가 몽블랑(4810m) 뒤를 이은 알프스 제2의 고봉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스위스와 이탈리아에 걸쳐 솟아 있는 몬테로사는 15세기 말 이탈리아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밀라노 회고록(Milanese memoirs)’에 ‘구름을 압도할 만큼 거대한 산’이라 묘사했을 만큼 덩치가 큰 산이다.
   
   장밋빛 노을에 비친 모습이 아름답다 하여 ‘장미의 산’이라 불리는 몬테로사는 정상부를 구성한 4000m급 봉우리만 해도 10개에 이른다. 산군 전체로는 북으로 디루호른(Dirruhorn·4036m)에서 동쪽 마테호른(Matterhorn·4478m)에 이르기까지 봉우리가 수십 개에 이른다. 이렇게 거대한 산군을 형성한 몬테로사는 클라이머들에게는 매력적인 등반 대상이다. 트레킹 매니아들에게는 버킷리스트로 삼을 만큼 인기 있는 라운드 트레킹 대상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필자가 경험한 8일간의 몬테로사 일주 트레킹(Tour of Monte Rosa·이하 TMR)은 오래전부터 스위스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자리 잡은 체르마트(Zermatt·1620m)를 기점으로 그래헨(Grachen)~사스페(Saas Fee·이상 스위스)~마쿠냐가(Macugnaga)~알라냐 발세시아(Alagna Valsesia)~스타팔(Staffal·이상 이탈리아)을 거쳐 다시 체르마트로 이어지는 코스다. 이 트레킹 코스는 숲길, 오솔길, 절벽 허리길, 빙하 등을 걸으며 알프스 최고의 미봉(美峰) 마테호른과 바이스호른(Weisshorn·4505m)을 비롯해 몬테로사 산군과 주변의 명봉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 하루하루 트레킹을 끝낼 때마다 16세기 고성이나 바로크 양식의 예배당, 문화의 거리, 다양한 액티비티 시설 등을 갖춘 마을들이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접할 기회도 준다.
   
   8월 말 체르마트는 이미 가을에 접어들어 있었다. 푸니쿨라(funicular·밧줄의 힘으로 궤도를 오르내리는 산악교통수단)를 타고 수네가 터미널(2288m)에 올라서는 순간 삼각뿔 형상의 마테호른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주할 때마다 감동을 주는 멋진 봉우리다.
   
   앞으로 이틀간 걷는 구간은 TMR, 마테호른 라운드 트레일(Tour of Matterhorn), 유로파베그(Europaweg·weg= trail) 3개 코스가 중첩되는 길이다. 그만큼 멋진 구간이다. 등 뒤로 마테호른은 든든하게 지켜주고, 체르마트 계곡 건너편으로는 오버가벨호른, 지날로트호른, 바이스호른 등 4000m급 설산들이 어깨를 맞댄 채 거대한 장벽을 펼치고 있다.
   
   
   4000m급 설산들의 거대한 장벽
   
   대자연이 빚어낸 명풍경 속에 빠져든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칠순을 넘긴 김상일 선배나 알프스가 초행인 윤경미씨 모두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광에 사로잡혀 감탄사를 연발하고, 수시로 멈춰 서서 사진촬영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유로파베그 휘테를 거쳐 알프스에서 가장 길다는 494m 길이의 현수교(Charles kuonen suspension bridge)를 건너 첫날 숙소인 유로파휘테(2265m·Europa Hutte)에 도착했을 때 투숙객 대부분은 발코니에 앉아 붉은 빛깔 와인을 마시며 알프스의 그윽한 정취에 빠져 있었다. 모두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같이 맑디맑은 표정들이었다.
   
   트레킹 2일 차, 멋진 풍광에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산길을 걷다가 돌무더기로 들머리를 막아놓은 갈림목에서 더 가면 뭐가 있나 궁금증이 일어 유로파베그 폐쇄구간으로 들어섰다. 스릴과 장쾌한 조망을 누릴 수 있기는 했으나 김상일 선배가 “베트남전 이후 가장 긴장한 날이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을 만큼 위험한 구간이었다. 체르마트와 그래헨을 잇는 유로파베그는 엄청난 시설 투자를 거쳐 1997년 개통했지만, 해동기나 여름철 폭우 때면 일어나는 산사태로 트레일이 훼손되고 사고 위험이 높아 유로파휘테에서 2시간쯤 떨어진 갈림목 이후부터는 폐쇄된 상태다.
   
   낙석과 추락의 공포에서 벗어나자 그림 같은 트레일이 다시 이어지고 그래헨(1619m)이 내려다보인다. 표고 600m의 된비알을 내려서고 포장도로를 따르느라 다리가 풀릴 즈음 그래헨 마을로 들어서자 교회 종소리가 환영의 박수처럼 울려 퍼진다.
   
   3일 차 트레킹은 곤돌라를 타고 한니알프(Hannigalp·2121m)에 오른 다음 시작한다. ‘회헨베그(Hohenweg·산등성이길)’라고 불리는 이 길은 ‘알프스의 진주(Pearl of Alps)’로 일컬어지는 사스페(1803m)까지 평균 2100~2200m 고도를 유지하며 16㎞ 길이로 이어지는 허리길이다. ‘발코니길’이라는 닉네임이 딱 맞다 싶을 만큼 조망이 멋진 이 구간은 간혹 맞은편 트레커를 피하는 게 조심스러울 정도로 좁은 산길이 낭떠러지를 가로질러 긴장되기도 하지만 때 묻지 않은 산길을 좇는 발걸음은 흥겹기만 했다.
   
   너덜지대를 지나 산양들의 족적으로 만들어졌을 법한 절벽 허리길 따라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거대한 빙하를 갑옷처럼 걸친 산봉들이 입을 벌어지게 한다. 사스 계곡(Saas Valley)이라 불리는 이 일원은 해발 4000m대 설봉 13개가 어깨를 맞댄 채 거대한 빙하를 형성하고 있는, 알프스를 대표하는 빙하 중 하나다.
   
   
▲ (위부터) 치메 비앙쉬 고개 아래 오르막길. 그란드 빙하호 뒤쪽 설봉이 일행이 피날레를 장식한 브라이트호른이다. 목가적인 분위기의 계곡. 테오둘산장 가는 날.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 그란드 토우르날린은 돌로미티풍의 몽환적인 풍광으로 가슴 설레게 했다.

   2984m 정상에 황금빛 마돈나상이
   
   4일 차는 몬테모로 고개(Monte Moro Pass·2868m)를 넘어 이탈리아 땅을 밟는 날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자연댐이라는 마트마르크댐(Mattmark·2200m)에서 몬테모로 고개로 가는 길은 호젓하다. 함지박형 능선이 포근하게 느껴져 더욱 그런 분위기다. 트레킹 기간 중 트레커를 가장 많이 만난 날이기도 하다.
   
   목가적인 풍광의 초원길을 지나 바윗길 따라 된비알을 오르는 사이 등 뒤로 마트마르크댐이 연못처럼 바라다보이고, 골짜기 멀찌감치 삼각뿔 형상의 비츠호른(3934m)과 그 양옆으로 3000m급 산봉과 산릉들이 물결인 듯 일렁인다.
   
   패스 바로 옆에 솟은 몬테모로(2984m) 정상에 황금빛 마돈나상이 세워져 있는데, 매년 성모 대성당 봉헌 기념일인 8월 5일에는 스위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쪽에서도 트레커들이 줄지어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쪽은 마쿠냐가(1317m)에서 곤돌라를 타고 정상 바로 아래까지 오를 수 있다.
   
   “저게 몬테로사예요? 체르마트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인데요.”
   
   정상에서 조망을 즐기는 사이 두꺼운 구름을 뚫고 거대한 설산이 솟구친다. 체르마트 이후 모습을 감추었던 몬테로사다. 체르마트에서 본 모습이 두루뭉술한 설봉이라면 동쪽은 위압감 넘치는 거벽이다.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은 푸른 숲을 적시고 마쿠냐가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고갯마루 아래 산장(Rifugio Oberto Maroli·2796m)에서 조망을 즐기며 점심식사를 마치고 케이블카로 마쿠냐가 마을로 내려왔다. 이 마을은 스위스의 일반적인 산마을과는 다른 분위기다. ‘이탈리아스럽다’고 해야 할까. 주민들 의상은 디자인과 색상이 매력적이고 몸짓에선 흥이 넘쳐 보였다. 주민들은 눈을 마주칠 때마다 미소를 띠었다. 시내 한복판 산악가이드 사무실 중년 여직원도, 호텔 남자 주인도 궁금한 것을 물어볼 때마다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응해주었다.
   
   
   2차대전 군인들의 작전 도로
   
   5일 차는 일정 중 거리가 가장 긴 날. 이날 숙소인 알라냐 발세시아(1180m)까지 20㎞가 넘는 거리다. 동이 틀 즈음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뜻밖에 길이 반듯하다. 옛날부터 산 양쪽 주민들이 교류와 교역을 위해 길을 닦아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이 작전과 보급을 위해 축대를 쌓아 길을 만든 덕분이다.
   
   오후 2시경 투를로 고갯마루(Colle del Turlo·2738m)에 올라선다. 알프스는 맑으면 맑은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개성 넘치는 풍광을 보여준다. 비를 몰고 온 구름안개가 잔물결처럼 일렁이는 골짜기 풍광은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투를로 고개 너머는 깎아지른 급사면. 하지만 지그재그로 잘 닦인 길을 따라 쉽게 내려서고 해발 2200m대에 닿자 새로운 풍광이 반겨준다. 커다란 넓적돌로 지붕을 얹은 알프스 전형의 가옥과 염소 떼에 묻혀 젖을 짜는 목부가 알프스에 와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거대한 빙하를 가슴에 품은 몬테로사 최정상 두포우르슈피체(Dufourspitz·4634m)가 가슴을 뛰게 한다.
   
   6일째는 케이블카로 이동하는 날. 알라냐에서 산마을 스타팔(1825m)을 거쳐 프라세이(Frachey·1600m)까지 이어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베타포르카 고개(2672m) 너머 중간 정류장까지 간 다음 2㎞ 남짓 걸어가면 산장들이 자리한 레시(Resy·2072m)에 도착한다. 이틀 거리를 한나절에 이동하는 셈이다.
   
   
▲ 트레킹 첫날 유로파휘테로 향하는 일행을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던 알프스 최고의 미봉 마테호른. 맨 왼쪽 설봉은 몬테로사와 이어진 브라이트호른이다.

   구름 뒤에 숨은 마테호른이 눈앞에
   
   산길에서 본 풍광도 멋지지만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알프스 풍경도 새롭다. 입체적으로 산을 조망하고, 또 발밑으로 걸어가는 트레커들을 보는 즐거움도 새로웠다. 오후 1시경 도착한 레시는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주거지로 한때 호밀, 보리, 콩, 채소 등을 재배하는 농가가 있었으나 지금은 트레커를 상대하는 산장 2개가 있을 뿐이다. 프라세이(Rifugio Guide di Frachey), 페라로(Rifugio GB Ferraro) 등 1931년 이 산에서 목숨을 잃은 로컬 알피니스트 두 사람의 이름을 붙인 산장들이다. 소문대로 아오스타(Aosta) 계곡으로 떨어지는 낙조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풍광이었다.
   
   트레킹 7일 차, 해발 2981m 높이의 안부(Col Nord des Cimes Blanches)를 거쳐 리프트 관리용 비포장길을 따라 테오둘산장(Theodul Hutte)까지 고도 1300m를 높이는 날이다. 멋진 날, 환상적인 날이었다. 계곡을 거슬러 오를 때는 얼룩소들이 푸르른 방목지에서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광이 마음을 사로잡고, 테라스형 초원에 올라설 즈음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 그란드 토우르날린(Grand Tournalin·3379m) 북릉은 돌로미티풍의 몽환적인 풍광으로 가슴 설레게 했다.
   
   옥빛 빙하호(Grand Lac)와 브라이트호른 일원의 만년설산이 어우러진 멋진 풍광에 감탄하며 3000m대 리프트 지역에 올라설 즈음, 구름 뒤에 숨었던 마테호른이 모습을 드러내며 가슴을 뛰게 했다.
   
   이튿날은 8일 차, TMR 마지막 날이자 체르마트로 회귀하는 날이다. 하지만 곧장 내려가는 편안한 길 대신 빙하와 스키슬로프를 따라 트로케너스테그(Trockener steg·2989m)로 내려가 케이블카로 마테호른 글레이셔 파라다이스(3883m·Klein Matterhorn)로 올라간 다음 만년설산인 브라이트호른(Breithorn·4159m)을 오른다.
   
   브라이트호른은 케이블카 터미널과 표고 차가 267m밖에 나지 않는 설봉이지만 거대한 설원과 설사면으로 이어지는 눈길을 오르는 즐거움과 360도로 펼쳐지는 조망이 빼어났다. 가장 눈길을 끄는 산은 역시 동쪽 마테호른과 북쪽 몬테로사였다. 마테호른이 날카롭고 세련된 모습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몬테로사는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자태를 보여주었다. 8일간 그 품에 안겨 지냈다는 생각이 들자 또다시 행복감이 한없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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