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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77호]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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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전시장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 아버지가 쓴 일기와 편지를 읽는 내방객들. photo 멜기세덱출판사
‘아비란 연탄 같은 거지/ 숨구멍이 불구멍이지/ 달동네든 지하 단칸방이든/ 그 집,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한숨을 불길로 뿜어 올리지/ 헉헉대던 불구멍 탓에/ 아비는 쉬이 부서지지/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지’.
   - ‘연탄’, 시인 이정록 (‘진심, 아버지를 읽다展’ 전시작품 중에서)
   
   “이런 게 진짜 문학작품 아닌가요.” 김정현 작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오래 홀로 지내다 돌아가신 어느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일기 한 대목 앞에서였다. ‘시래기를 삶았다. 된장국을 끓이려고. 어머니 생각이 난다.(2월 11일)’ ‘재석이(막내아들)에게서 성적표와 카세트가 소포로 왔다. 성적표를 보니 마음이 몹시 아팠다. 성적이 과히 좋지 않았다. 그것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되어 허전하고 맥이 풀렸다. 내가 뒷바라지를 잘해서 재석이가 아르바이트하느라 시간만 안 뺏겼다면 얼마든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2월 14일)’.
   
   한 자, 한 자 단정히 써내려간 글들을 읽다 보니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아버지도 누군가의 아들이었는데, 우리들은 그저 나의 아버지로만 살아주길 바랐구나.’ 일기장으로 그려지는 한 남자의 삶이 슬프고 존경스러웠다.
   
   지난 9월 27일 부산수영 하나님의 교회를 찾았다. 특별한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이하 하나님의 교회) 주최, 멜기세덱출판사 주관으로 열리고 있는 ‘진심, 아버지를 읽다展’(이하 아버지전)이다.
   
   아버지전은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展’(이하 어머니전)의 후속 전시회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최한 어머니전은 2013년 6월 첫 전시를 시작해 77만명 이상이 관람했다. 아버지전은 지난 2월 28일 서울시 관악구 낙성대역 인근에 위치한 서울관악 하나님의 교회 특설전시장에서 첫선을 보였다. 지금까지 4만여명이 관람했다. 연장 요청 때문에 전시 기간을 늘렸다. 서울관악 하나님의 교회에 가면 올해 말까지 아버지전을 볼 수 있다.
   
   
   서울·부산 하나님의 교회에서 열려
   
   9월부터는 부산에서도 만날 수 있다. 9월 26일부터 12월 31일까지 부산시 수영구에 자리한 부산수영 하나님의 교회 특설전시장에서 열린다. 아버지와 관련한 사진, 글, 영상, 소품 등 187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1948년생인 아버지가 평생 소중하게 간직해온 초등학교 졸업앨범, 아버지가 결혼할 때 장모님에게 선물로 받은 286 노트북 등 소품 하나하나에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평범한 우리 아버지들의 특별했던 삶의 기록들이다.
   
   전시 제목의 ‘읽다’는 ‘읽다(read)’와 ‘이해하다(understand)’의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다양한 전시품을 보고 읽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면에 숨겨진 아버지의 진심까지 헤아려 가족애를 도탑게 하길 바라는 마음이 제목에 녹아 있다.
   
   부산은 영화 ‘국제시장’을 낳은 도시다. 1400만명 이상이 관람한 ‘국제시장’은 산업화의 주역인 아버지 세대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파독 광부로 갔다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실제 아버지들의 삶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장에도 그 궤적이 생생히 재현되어 있다. 파독 광부들이 당시 쓴 일기장, 한국의 가족에게 쓴 편지, 베트남에서 딸에게 쓴 엽서 등 소중한 기록들이다. 전시장에는 ‘국제시장’의 실제 모델인 권이종 아프리카아시아 난민교육후원회장도 다녀갔다. 권 회장은 전시회를 관람한 뒤 “아버지에 대해서 이렇게 전문적으로 준비한 전시회는 국내에 없을 것 같다”며 “모든 국민이 다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람 이후 파독 광부 시절부터 소중히 간직해온 개인 소장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평범한 아버지들의 특별했던 삶의 기록들
   
   아버지전의 주 전시장은 총 5개의 테마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관의 제목은 우리 아버지들의 언어를 뜻한다.
   
   1관 “아버지 왔다”, 2관 “나는 됐다”, 3관 “….”, 4관 “아비란 그런 거지”, 5관 “잃은 자를 찾아왔노라”이다.
   
   1관으로 가는 길, 대문이 보인다. 투박한 페인트칠의 청록색 철문이 정겹다. 대문을 열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아버지 왔다” 하며 퇴근하는 아버지를 만날 것 같다. 대문엔 ‘金永秀(김영수)’라는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달려 있다. ‘김영수’는 해방둥이 세대에 가장 흔했던 이름이다. 전시장엔 추억 속 아버지를 그린 시와 수필, 사진이 걸려 있다. 그중 만화가 이현세씨의 수필이 눈에 띄었다. 15년 전 조선일보에 실린 글이다. 여섯 살 때 친구들과 불장난을 하다 불이 번져 이웃의 집이 타버렸는데, 어른들에게 혼날 일이 무서워 숨어 있는 사이 이씨가 모든 죄를 뒤집어썼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매질을 하며, 불을 낸 것보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 게 더 큰 잘못이라고 했단다. 그리고 화재로 집을 잃은 이웃에게 집과 낟가리를 넘겨주고 온 가족이 이사를 갔다는 내용이었다. 인생이 무엇인지 삶으로 가르쳐준 아버지는 이씨가 아홉 살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2관 “나는 됐다”의 주제는 ‘희생’이다. 아버지 세대의 유품을 만날 수 있다. 군데군데 홈이 파진 안전모, 흙이 묻은 작업복…. 파독 광부 파견(1963), 베트남전 참전(1964~1973), 중동 건설 붐(1970~1980년대), 외환위기(1997) 등 굵직한 시대사에 얽힌 개인 소장품들이다. ‘정호가 훌륭한 사람이 되면 아버지는 훌륭한 아버지가 되겠지요.’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국의 일터에서 자식들에게 쓴 엽서가 눈물겹다.
   
   3관 “….”의 주제는 ‘진심’이다. 일제강점기에 파락호, 구두쇠라는 오명에도 침묵했던 아버지였는데 후에 알고 보니 몰래 독립운동자금을 댔다는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경북 안동 일대에서 ‘파락호’로 유명했던 김용환씨의 딸이 아버지를 기리는 글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홀로 자신들을 기르던 아버지, 살면서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 아버지가 큰아들이 입대하던 날, 말을 잇지 못하고 아들의 입대 길을 한없이 따라왔다는 구운회씨의 글 앞에서 관람객들은 오래 머물렀다.
   
   4관 “아비란 그런 거지”의 주제는 ‘사랑’이다. 막내딸과 손주의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 임종 전까지 비누 만들기에 몰두한 아버지의 사연을 만날 수 있다. 투병 중인 아버지가 살아서 마지막으로 만들어준 비누를 딸은 차마 쓸 수 없었다. 그 아버지가 비누를 만들기 위해 쓰시던 도구와 사랑이 담긴 비누가 관람객들을 반긴다. 제목 그대로 ‘특별한 유산’이다. 관람객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며 언젠가 자신이 사준 샌들을 발견한 딸의 뒤늦은 눈물도 슬프다. 얼마나 아껴 신었는지 깨끗한 샌들엔 자식의 이름이 큼지막히 적혀 있었다.
   
   5관 “잃은 자를 찾아왔노라”에서는 성경 속에 담긴 부성애를 느낄 수 있는 성경 문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회장을 나와 문득 헤아려 보니 아버지가 처음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 당신의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 어렸다. 아버지 없이 세상에 온 사람은 없을 텐데, 하루 중 얼마의 시간을 아버지를 생각하는 데 쓰고 있는 걸까. 전시회장에서 만난 아버지들은 그런 자식들에게도 “괜찮다”며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손편지로 감사의 마음 전할 수 있어
   
   주 전시장 관람 후에는 ‘영상문학관’ ‘포토존’ ‘진심우체국’ ‘통계로 보는 진심’ ‘북카페’ 등이 마련된 부대행사장(3층)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영상문학관에서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벌판’ 등의 영상물을 상영한다. 부성애를 주제로 해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영상물이다. 함께 관람한 가족이나 지인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해 바로 사진을 받아 간직할 수 있는 포토존도 있다. 행사장에 비치된 엽서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진심우체국에 있는 빨간 우체통에 넣으면 주최 측에서 무료로 편지를 전달해준다.
   
   아버지전은 서울·부산에 이어 전시 지역을 계속 확대할 예정이다. 전시회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이고 토요일은 휴관한다. 관람 문의는 서울 전시 (02)885-9267, 부산 전시 (051)751-0636으로 하면 된다.
   

   소설 ‘아버지’ 김정현 작가가 보는 아버지전
   

김정현 소설가

소설 ‘아버지’의 주인공 ‘한정수’는 1996년 독자들과 처음 만났다. 50대에 췌장암으로 가족의 곁을 떠나야 했던 그의 안타깝고 서글픈 죽음은 많은 독자들을 눈물짓게 했고, 아버지를 돌아보게 했다. 사실 한정수는 제대로 울분 한번 토해내지 못한, 시쳇말로 좀 ‘찌질한’ 남자였다.
   
   성실한 데다 크게 돌부리에 걸리지 않은 작은 운으로 그럭저럭 계단을 밟아 오른 보통의 사내. 의지나 욕망이 강했다면 그 좌절의 울분으로 크게 불거질 수도 있었겠지만 기껏 중독에까지는 이르지 않은 음주 습벽이 꼭 집어낼 수 있는 흠이었으니 존재감이 뚜렷한 인생도 아니었다. 1970·1980·1990년대 그 열띤 대한민국에서 이웃과 비교하고, 비교되고, 성공이 꿈이라 여기는 가족의 눈이라면 당연히 답답하고, 무능하거나 부족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가장이기도 했다. 그런 보잘것없는 남자의 죽음에 왜 그토록 많은 독자들은 눈물지었을까.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작아 보이고, 아버지가 고독하고 처량하다니!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을 맞닥트리며 당황하고 안쓰러운 것은 인지상정이었을 테니 말이다.
   
   만약 한정수의 병이 췌장암이 아니었거나 요즘처럼 의학이 발달했더라면 작가는 분명 그를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한정수는 아내 ‘영신’이 시작한 작은 매장에서 시키지 않아도 궂은일들을 처리하며 술도 끊지 않았을까. 아니면 친구들과 어울려 등산을 하며 이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술 냄새를 풍겨 딸 ‘지원’과 아들 ‘희원’에게 핀잔을 들을 수도 있었을 테고. 그렇더라도 얼마나 보기 좋았겠는가!
   
   하지만 우리 아버지들의 운명은, 혹은 세상은, 한정수에게 여지없었듯 참으로 가혹했다. 1997년 12월 폭풍처럼 들이닥친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체제. 하루아침에 딛고 섰던 발판이 요동치는 세상에서 그들은 발버둥 쳤다.
   
   
   아버지의 조건(작자 미상)
   
   하느님이 만드신, 산처럼 힘세고/ 나무처럼 멋있고/ 여름 햇살처럼 따뜻하고/ 고요한 바다처럼 침착하고/ 자연처럼 관대한 영혼을 지니고/ 밤처럼 다독일 줄 알고/ 역사의 지혜를 깨닫고/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강하고/ 봄날 아침처럼 기쁘고/ 영원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 하느님은 이 모든 걸 주시고/ 더 이상 추가할 게 없을 때/ 당신의 걸작품이 완성되었다는 걸 아셨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를 ‘아버지’라 불렀다.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날 양아들로 여겨주시는 분이 건네준 글로 지금도 책상머리에 붙어 있다. 고개를 들면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슬며시 눈길을 돌리지만 가끔 곱씹어 읽어본다. ‘하느님, 어찌 이토록 가혹하십니까? 저 많은 걸 모두 주셔서 아버지가 된 것일 텐데 저에게는 지금 어느 것 하나도 없습니다!’ 참으로 무겁고 두려운 글에 신음처럼 중얼거리면서도 여태껏 떼어낼 생각은 한번도 못 했다. 아니, 않았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되면서 그 이름이 내 종교가 된 듯싶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종교, 신은 누구일까.
   
   자식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어떤 분노가 치밀어도 마지막 절제와 인내는 떠오르는 자식 얼굴 때문이다. 희망은 못 주더라도 절망은 주지 말아야지. 덤은 못 주더라도 짐을 얹어주지는 말자. 조금이라도 덜 창피하자. 서운한 마음을 갖지 말자….
   
   원고청탁을 받고 부산의 교회에서 열리고 있는 ‘진심, 아버지를 읽다展’을 찾았다. 성공하고 잘난 아버지는 아니지만 어디서나 마주치는 일상의 평범한 그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등 뒤 지게 위에 딸을 앉히고 논두렁을 걷는 아버지, 그 사진의 제목은 ‘산’이다. 감히 ‘산’이라니, 그런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는 됐다.” 누구나 가장 많이 들었을 그 뚝뚝한 한마디가 글이 되니 저릿하다. 비뚤어진 글씨체의 짧은 일기, 그이들의 손때 묻은 여러 소품들…. 마침내 ‘신부 입장’이라는 제목의 평범한 사진 한 장에 울컥했다. 면사포를 쓴 딸의 손을 잡은 머리숱 텅 빈 아버지의 뒷모습. 역시 아버지는 등 뒤에서 보아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인가 보다.
   
   아버지의 전면은 믿기 조심스럽다. 하느님이 주셨다는 저 무거운 ‘아버지의 조건’을 갖춰 보이려면 분장을 하고 조명을 밝혔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실제 성공의 분장 혹은 가면이 벗겨져 자식의 희망을 빼앗고 세상에 분노를 주는 경우를 여럿 보지 않았던가. 아무리 읽어봐도 하느님의 조건에 성공이나 탐욕은 없는데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거짓까지 더한다면 자식의 속골병을 어찌하려는 것인지….
   
   조건은 두렵고 현실은 가혹한 아버지의 운명. 그래도 욕심을 가르치지 않아 헛되지 않게 하고, 미움을 입에 담아 갈등을 부추기지 않고, 서로를 다독여 사랑하게 하고, 아버지가 되어 기쁘기를 바라니, 아버지로서 내 뒷모습을 가다듬어야 하리라. 굽은 등이 되지 않으려 반듯하게 걷고,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도록 인내하고 삼가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리라, ‘진심, 아버지를 읽다展’에서 다시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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