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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이스탄불에서 한 달 살기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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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79호]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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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스탄불에서 한 달 살기의 매력

▲ 보스포루스해협의 석양. photo 뉴시스
여행지에서 부딪히게 되는 현지에 대한 인식은 상향·하향·동격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아무런 ‘편견’ 없이 그냥 솔직히 보고 즐기는 것이 여행이라지만 자연스럽게 한국과 비교하며 그 나라의 수준을 가늠하게 된다. 모든 것을 아래로 내려보거나 무조건 머리를 숙이는 눈높이가 아니다. 스스로 면밀히 비교해 상중하의 눈높이를 갖게 된다. 보통은 문화, 문명, 역사, 전통, 시민의식, 세계관이 눈높이의 기준이 될 듯하다. 요즘에는 ‘돈’, 즉 국민소득이 얼마냐에 따라 눈높이를 결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주관적 판단이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야말로 눈높이를 결정하는 최대요인이라 믿는다. 인간의 품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나라는 우러러보일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 ‘식(食)’은 눈높이 가늠 무대이자 현장이다. 의식주 가운데 먹는 것은 하루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다. 관광객에게 익숙하지 않은 현지인 전용 식당에 가보자. 맛·청결·가격도 중요하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종업원을 대하는 식당 주인의 자세, 종업원들의 손님에 대한 태도다. 가난한 나라라 해서 품격이 없고, 부자 나라라고 해서 예의가 넘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어제가 그러했듯이, 어려울수록 서로 돕고 살아가는 나라도 많다. 그 나라의 수준과 현지인의 세계관을 하나로 압축한 공간에서 느끼는 품격과 예의다.
   
   언제부턴가 가지 말아야 할 여행지를 하나둘 정리하는 버릇이 생겼지만, 눈높이가 밑으로 향하는 나라는 멀리할 수밖에 없다. 좋은 것만 봐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이다. 인간의 품격, 인간에 대한 예의가 무시되는 곳까지 가서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거의 한 세대에 걸쳐 세계 125개국을 돌아다니면서 인간의 품격과 예의에 근거한 나름대로의 눈높이 리스트가 있다. 터키는 이 중 최고봉에 올라선 나라 다. 유럽으로부터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세계적으로 뭐 하나 제대로 내놓을 만한 것이 없는 신흥개발도상국이지만, 인간의 품격과 예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르다. ‘특별하고도 순수한’ 나라, 사람이 아름다운 나라가 터키다. 해외 이민이나 해외 거주지를 추천해달라고 할 때 가장 먼저 권하는 나라가 터키이기도 하다. 대부분 의외로 받아들이지만, 깊이 파면 팔수록 애정과 존경이 넘칠 수밖에 없는 곳이다.
   
   터키라고 하면 곧바로 이스탄불을 떠올린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스탄불=소매치기’로 통한다. ‘소매치기 주의’는 터키를 여행하는 한국인이 가장 먼저 듣는 말이기도 하다. 1978년 개봉한 영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Midnight Express)’ 때문인지 ‘이스탄불=동성애 천국’이란 이미지도 강하다. 물론 이스탄불에도 동성애자들이 있지만 뉴욕·로마·파리·바르셀로나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패션쇼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모델의 얼굴이 아니다. 모델의 몸에 걸친 옷이 패션쇼의 주인공이다. ‘터키=이스탄불=소매치기=동성애 천국’으로 대하는 시각은, 모델 얼굴만 보고 온 패션쇼에 비견될 수 있다.
   
   잊기 쉬운데 터키는 천년왕국 비잔틴을 멸망시킨 뒤 20세기 초까지 대제국을 경영한 오스만투르크의 후예다. 17세기 말 국력이 최정점에 달했을 때의 영토는 중동, 동유럽, 북아프리카 전체에 이어졌다. 700년 대제국의 후예로 고대 로마를 능가한 글로벌 국가가 터키의 근본이다. 100여년 전 역사라지만, 대제국의 피와 전통은 지금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터키에서의 장기거주는 매년 치르는 연례행사다. 매년 11월과 3월을 전후해 장소를 바꾸며 두 번씩 머문다. 수도 이스탄불과 동부 아나톨리아 지방을 주로 찾는다. 전부 합쳐 연중 두 달 가까이 머문다. 필자가 따로 소유한 집은 없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 언제 들러도 좋을, 믿을 만한 거주지는 많다. 터키는 그중 하나다. 이스탄불과 에게해(海)에 인접한 고대도시 쿠사다시(Kusadasi)도 대표적인 필자의 거주지다. 이스탄불에서의 장기체류는 약 7년 전부터 시작됐다. 매년 들르지만 갈 때마다 새롭다. 이스탄불에 빠지게 된 이유는 비잔틴에 있다. 유럽 역사의 중심은 그리스·로마에서 시작된다. 이스탄불은 그리스는 물론 로마로 연결되는 도시다.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바로 이스탄불의 어제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리스·로마에 관심이 있다면 아니 유럽 역사의 어제와 오늘을 알고 싶다면 이스탄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슬람권의 대형(大兄)이 아니라 유럽사의 일부로서 일단 관심이 간다. 그러나 이스탄불에 도착하는 순간, 동과 서를 연결한 대제국 오스만투르크, 나아가 터키만의 독자적인 매력에도 빨려들어간다. 이슬람이 얼마나 청빈하고 소박한 종교인지도 알게 된다. 더불어 터키인이 보여주는 품격과 예의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물론이다.
   
   
▲ 이스탄불 모스크

   세계 최고의 경관, 옥탑 호텔방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 두 개 권역으로 나뉘어 있다. 필자가 거주지로 삼은 곳은 유럽권 내의 구(舊)도시 술탄아메트(Sultanahmet) 지역이다. 매년 찾아가지만, 1박 25유로로 5층 꼭대기 옥탑 호텔방에 묵는다. 화장실도 아래로 내려가야 하고 샤워실도 따로 없지만 필자가 아끼는 세계 최고 경관의 방이다. 눈앞에 보스포루스해협이 길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방향이 동서(東西)로 이어진 곳이기 때문에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스탄불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일출·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술탄아메트 옥탑방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가 진 뒤에는 달이 연출하는 신비한 세레나데가 이어진다. 하늘과 바닷속에 드리워진 두 개의 달이 하루 5번씩 울려퍼지는 코란의 기도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성(聖)과 영(靈)의 공간이다.
   
   이스탄불에 장기체류할 경우 어떤 일과들로 채울 수 있을까. 항상 강조하지만 ‘크고 넓은’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도 깊게’가 답이다. 다른 모든 도시가 그러하듯 장기체류할 경우 도보여행이 기본이다. 버스나 트램(Tram)도 좋지만, 가능하면 하루 종일 걸으면서 하나씩 살펴보는 것이 좋다. 700년 대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은 주변국 모두의 흔적이 남아 있는 타임슬립(Time Slip) 공간이기도 하다. 비잔틴의 번영과 영화는 기본이다. 중동 전체와 북아프리카, 동유럽, 나아가 에게해 그리스와 지중해 로마의 어제도 이스탄불 곳곳에 남아 있다. 어떻게, 얼마나, 어디에서 찾을지는 각자의 능력과 호기심의 정도에 달려 있다.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일단 커피는 필자가 권하고 싶은 영순위 소재다. 20세기 이전의 이스탄불은 세계 커피의 핵에 해당한다. 전 세계 커피가 이스탄불에 몰려들었다. 커피의 출발점은 에티오피아와 예멘이다. 오스만투르크 점령지에서 각종 희귀한 커피가 술탄에게 제공됐다. 18세기 당시 최대 교역국 베네치아 외교관이 술탄 전용 고급 음료에 눈독을 들이면서 유럽으로 전달된다. 원래 커피는 입맛이 아닌 혼을 자극하는 종교적 차원에서 시작됐다. 최고 번화가 탁심(Taksim) 지역이 중심이지만 이스탄불 곳곳을 뒤지면서 커피의 어제와 오늘, 동과 서의 차이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커피 점(占)’이다. 커피를 마신 뒤 남은 잔 속의 흔적을 통한 운명 감정이다. 영어가 가능한 터키인과 함께 가서 커피 점을 경험해 보길 권한다. 이슬람권의 운명관·세계관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갈라타 다리(Galata Bridge)는 체류기간 중 하루도 빠짐없이 들르는 일상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이스탄불 최고(最古)의 다리로, 왕복 6차선에다 길이가 490m에 달한다. 이스탄불을 터키의 머리라고 할 때 이마 한가운데 부분이 갈라타다. 다리 밑에는 보스포루스와 에게해에서 잡은 해산물 레스토랑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구운 고등어 샌드위치와 1달러 전후의 신선한 스트리트푸드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옆의 그랜드바자르(Grand Bazaar)를 비롯해 모스크와 비잔틴의 흔적, 그리고 터키인들의 일상을 120% 느낄 수 있다. 바쁘고 시끄럽고 지저분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생존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품격이 넘쳐나는 공간이다. 그냥 갈라타 근처에 가서 서 있는 것만으로도 화장이나 성형과 무관한 민낯 터키의 매력을 절감할 수 있다.
   
   
01 갈라타 다리 위의 낚시족들.
02 전 세계에서 가장 귀하고 깊은 맛의 터키 꿀. 보통 1L에 10달러 전후다.
03 번화가 탁심의 커피 전문 거리. 젊은이들의 광장이기도 하다. photo 유민호

   높이 40m 갈라타 다리 위의 공중낚시
   
   낚시는 이스탄불에서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다. 필자는 평소에는 낚시와 무관하다. 그러나 이스탄불에 가는 즉시 낚시에 빠져든다. 낚시 그 자체가 아니라 낚시를 에워싼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다. 바로 갈라타 다리 위에서의 공중낚시다. 낚시 갈 때는 반드시 친구인 후세인에게 전화를 걸어 동행한다. 갑자기 전화를 걸어 낚시 동행을 요청해도 100% 오케이다. 그러나 조건이 하나 있다. 시력이 나빠 피하고 싶지만 심야 낚시가 후세인의 조건이다. 유목민인 몽골인이 그러하듯 터키인도 시력이 남다르다. 안경 쓴 터키인은 1000명 중 1명 정도라고 알고 있다.
   
   높이 40m 갈라타 다리 위에서 바다로 낚시를 드리운 풍경은 터키의 ‘국가적’ 이미지 중 하나다. 낮은 물론이고 새벽 심지어 심야 3~4시에 가도 낚시꾼들로 붐빈다. 밤이 되면 편도 3차선 중 바깥쪽 1차선은 아예 낚시꾼들의 주차장으로 변한다. 낚시도구가 없어도 3달러 정도면 최신장비를 전부 빌릴 수 있다. 낚싯밥은 물론 낚시에 관한 모든 것들을 다리 위에서 구입할 수 있다. 그냥 회로 쳐서 먹어도 될 만한 신선한 새우가 낚싯밥 중 하나다. 이슬람권에서 새우는 먹을 수 없는 불경스러운 음식이다. 풍선 터뜨리기, 사격 등 500원짜리 각종 놀이도 다리 위에서 펼쳐진다.
   
   ‘향’ ‘꿀’ ‘비누’는 터키에서 반드시 구입하는 물건들이다. 당연히 전부 천연 유기농 제품이다. 줄이고 버리는 생활을 고집하면서도 향, 꿀, 비누에 대한 욕(欲)은 주체하기 어렵다. 필자의 주관적 평가이자 핑계지만 이 세 가지 물건은 신과 바로 연결될 수 있는 자연의 결정체다. 진짜 가치에 비해 너무도 저평가돼 있는 물건들이 이스탄불 곳곳에 널려 있다.
   
   필자가 자랑하는 취미 중 하나가 이스탄불 향 사모으기인데 이스탄불 향은 전 세계 향의 중심이다. 이슬람권 문화의 특징이지만 오일로 된 액체형 향이 기본이다. 원액인 셈이다. 이스탄불에는 중동·아프리카·인도에서 넘어온 귀하고도 희귀한 오일 향들이 넘친다. 비슷한 제품이라도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좋은 오일 향을 구하려면 정통 이슬람 주거지역에 가야 한다.
   
   히잡(Hijab)보다 부르카(Burqa)를 쓴 여성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오일 향의 가장 큰 기능이자 목적은 모스크에서의 기도에 있다. 신에게 바치는 지상의 선물이 오일 향이다.
   
   터키에 가면 하루에 차이(Cay) 5잔은 기본이다. 하루 23잔까지 마신 적도 있다. 거의 대부분 초면인 터키인으로부터 얻어 마셨다. 길에서 잠시 대화를 나눈다 해도 곧바로 차이를 주문해 대접한다. 한 잔에 200원 정도지만, 그 어떤 환대보다도 기쁘고 아름답다. 현지인들과 어울려 튤립형 잔에 가득 채워진 터키식 홍차를 얼마나 많이 마시느냐가 품과 격의 도시 이스탄불을 얼마나 이해하고 사랑하는지를 가늠하는 증거일 듯하다.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그리운 도시, 바로 이스탄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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