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림 세움 대표가 백선애 작가의 작품인 세움의 마스코트 인형을 안고 있다. 작은 곰인형은 ‘세우미’라고 부르는 비밀친구다. 수감자 자녀 가정방문을 갈 때 선물로 가져가거나 출소하는 부모에게 아이들 선물용으로 가져가게 한다. 곰인형은 자원봉사자들이 만든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이경림 세움 대표가 백선애 작가의 작품인 세움의 마스코트 인형을 안고 있다. 작은 곰인형은 ‘세우미’라고 부르는 비밀친구다. 수감자 자녀 가정방문을 갈 때 선물로 가져가거나 출소하는 부모에게 아이들 선물용으로 가져가게 한다. 곰인형은 자원봉사자들이 만든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네 잘못이 아니야.”

이 한마디가 한 명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누구보다 이 말이 절실히 필요한 아이들이 있다. 수감자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가장 취약한 환경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이중의 굴레에 갇혀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시선은 수감자와 그 자녀들을 동일시한다. 부모의 잘못은 그대로 자녀들에게 덧씌워져 ‘죄인의 자식’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시달려야 한다.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아이들, 제2의 피해자이면서 숨은 피해자들이다. 그동안 이들의 고통을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제도나 사회적 지원도 이들을 외면해왔다. 이들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민 사람은 이경림(55)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대표이다. 2015년 설립된 ‘세움’이 이들의 비밀친구를 자처하고, 이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높여온 덕에 세상은 조금씩 수감자 자녀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13세 미만을 대상으로 성학대를 받은 아이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할 때였습니다. 편부와 살던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가 쉼터에 왔어요. 트럭에 야채를 싣고 다니며 장사를 하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냈는데 무학이라 운전면허증도 없다 보니 뺑소니를 친 겁니다. 합의할 돈이 없어 교도소에 들어가면서 딸을 친구한테 맡겼는데 그곳에서 성학대를 당한 겁니다. 부모 잘못으로 아이들이 2차, 3차 피해를 당하는구나. 수감자 자녀들이 우리 사회의 숨은 피해자들이구나. 그때부터 수감자 자녀들의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이경림 대표가 ‘세움’을 세운 배경이다. 사단법인 ‘세움’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 벽면에 포스터 액자가 몇 개 붙어 있었다. 포스터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당신의 아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부모를 보고 자녀를 판단하지 마세요’.

가장 절실한 0.5%의 아이들

‘세움’은 ‘수감자 자녀가 당당하게 사는 세상’을 미션으로 내걸고 있다. 이 대표는 “세움을 처음 시작하고 수감자 자녀에 대한 자료나 통계가 너무 없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현황 파악이 안 된 상태였다. ‘세움’의 활동은 국가인권위를 움직였고, 2017년 처음 실태조사에 나섰다. 세움이 국가인권위의 용역을 받아 전국 53개의 교도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감자의 19세 미만 미성년 자녀의 수는 연간 5만4000여명에 달했다. 이는 우리나라 19세 미만 인구의 0.5%에 해당한다. 수감자 4명 중 1명은 미성년 자녀가 있었다. 이 중 만 12세 미만이 59%에 달했다.

부모의 잘못으로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가장 먼저 생존권을 위협받는다. 부모가 수감되면서 아이들은 한쪽 부모가 없어지거나, 원래 한부모가정인 경우는 아예 보호자가 없어진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감자 자녀 3명 중 1명은 조부모, 친척, 시설에 맡겨지거나 아이들끼리 살고 있었다. 생계를 직접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많다. 수감자 가정의 기초생활수급 비율은 11.7%로 우리나라 가구 평균인 2.3%의 5배에 달했다.

주변의 차가운 시선도 아이들에게는 상처다. “부모처럼 살지 말라”는 이웃의 충고가, “같이 놀지 말라”는 친구 부모들의 말이 비수가 돼서 날아온다. 동정의 시선도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는 마찬가지다.

학업을 지속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혹은 친구들의 시선이 불편해서 학교를 멀리하게 된다. 진로에 대해 의논할 사람도 없다 보니 혼자 고민하다 꿈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정신적인 고통은 수감자의 자녀들이 가장 많이 겪는 문제이다. 믿었던 부모에 대해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는 반면 부모의 잘못이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됐다는 죄책감을 갖기도 한다. 원망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는 양가감정에 시달린다.

“학교 못 다녔을 때는 아빠가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은 제가 그때 아빠를 지켜주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게 됐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때 제가 좀 잘했어야 하는데.”

“다 제 잘못이죠. 제가 그때 집에만 있었으면, 제가 잘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세움의 실태조사에서 이런 호소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리적 불안은 분노로 표출되고 비행의 길로 빠지기도 한다. 범죄의 대물림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다. 부모의 수감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이 충격받을까 봐 지방이나 외국에 갔다는 핑계를 대지만 어느날 갑자기 아빠가 혹은 엄마가 사라진 자녀의 입장에서는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나쁜 상상과 함께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 대표가 만난 아이들은 이런 문제들에 복합적으로 노출돼 있었다. “빈곤한 상황에서 한쪽 부모의 수감으로 경제적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리적 위축으로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불면증,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 일은 ‘세움’이 아니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수감자 자녀들이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돼주겠다는 생각으로 ‘세움’을 세우고 이 대표는 막막했다. 수감자 자녀들을 어디서 만나야 할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교도소 몇 곳에 수감자 자녀 연결을 부탁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형식적이었다. 그러다 군산교도소의 한 교도관이 “진짜 필요한 일이다”면서 일일이 수감자들의 가정조사를 해서 미성년 자녀들을 연결해주었다. 그렇게 만나기 시작한 수감자 가족들의 구구절절 사연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이 대표는 그렇다고 아이들을 도움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원치 않는다. 이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세움’이 꾸준히 하고 있는 일 중 하나가 인식개선캠페인이다. 거리 캠페인, 전시, 포스터 공모전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숨죽이고 있는 수감자의 자녀들을 봐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의 시선은 아직도 싸늘하다. 세움 관련 기사가 나가면 악플이 줄줄이 달리고, 거리로 나가 캠페인을 벌이다 보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거나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피해자 자녀도 못 돕는데 왜 범죄자 자녀를 도와야 해?”

“니 자식이 귀하면 죄를 짓지 말아야지.”

둘 중 한 명은 이런 반응을 보이고 절반은 “이런 아이들이 있었지, 미처 몰랐다”는 반응이라고 한다. 이 대표는 “수감자 자녀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절반의 사람들을 점점 늘려가는 것이 세움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이 법무부에 제안해 여주교도소에 만든 아동친화접견실. ‘세움’의 매뉴얼에 따라 전국 교도소가 쇠창살을 사이에 둔 면회실 대신 집 같은 분위기의 면회실에서 자녀를 만날 수 있도록 바뀌고 있는 중이다. 오른쪽 사진은 아동친화접견실로 바꾸기 전 청주여자교도소 접견실 모습. ⓒphoto 세움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이 법무부에 제안해 여주교도소에 만든 아동친화접견실. ‘세움’의 매뉴얼에 따라 전국 교도소가 쇠창살을 사이에 둔 면회실 대신 집 같은 분위기의 면회실에서 자녀를 만날 수 있도록 바뀌고 있는 중이다. 오른쪽 사진은 아동친화접견실로 바꾸기 전 청주여자교도소 접견실 모습. ⓒphoto 세움

교도소의 색깔을 바꾸다

‘세움’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 이외에도 지난 4년 동안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중 하나가 교도소 내 면회실을 확 바꾼 것이다. 그동안 아이들이 부모를 만나기 위해서는 철창을 사이에 두거나 삭막한 가족접견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세움은 법무부에 아동친화적 가족접견실을 제안해 리모델링 시범사업을 따냈다. 경기도 여주교도소에 첫선을 보인 가족접견실은 마치 평범한 가정집을 옮겨온 것처럼 깜짝 변신했다. 딱딱한 사무공간 같았던 회색 공간은 노랑, 초록의 밝은 컬러로 바뀌었다. 문을 열면 마치 집에 온 것처럼 삼각지붕 모양의 문이 나타난다. 이 대표가 ‘신의 한 수’였다고 자랑을 했다. 신을 벗고 온돌에 올라서면 거실처럼 꾸민 공간에서 아이들이 책도 읽고 뒹굴 수 있다. 어느 날 접견실 밖으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 교도관들이 발걸음을 멈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여주교도소 가족접견실을 모델로 설치 매뉴얼을 만들었다. 법무부는 매뉴얼에 따라 전국 교도소들을 순차적으로 바꿔갈 계획이다. 지난해부터는 정책이 바뀌어 가족접견을 늘리고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우선적으로 만날 수 있게 했다. 일본 교정본부에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견학을 다녀갔다.

수감자 자녀들을 위한 ‘세움’의 지원 사업은 ‘배움, 틔움, 채움, 이음’ 4가지로 나뉜다. ‘배움’은 부모가 출소할 때까지 초등학생 월 5만원, 중고생 월 7만원의 장학금을 준다. ‘틔움’은 생계비·주거비 등 긴급지원이 필요한 위기가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최대 500만원까지 지원한다. ‘채움’을 통해서는 심리·정서적 안정을 돕고 상담을 지원한다. 멘토를 연결해주고 해외캠프, 청소년 동아리 활동 등을 진행하고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지방까지 가정방문을 다닌다. 최근에는 수감자 자녀뿐 아니라 양육자들의 상담 신청이 늘고 있다. ‘이음’을 통해서는 접견비 지원, 동행 접견 등 가족을 이어주며 가족관계 회복을 돕고 있다. 긴급구호를 위한 쉼터 마련에도 나섰다. 직원은 6명에 멘토·자원봉사 15명이 함께하고 있다. 설립 5년이 안 된 탓에 정기후원 회원은 300여명에 불과하다. 다행히 아산나눔재단 파트너십 등에서 기금을 받아 단체를 꾸려왔지만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일반 후원자를 늘리는 것이 과제다.

세상을 향한 ‘세움’의 외침은 조금씩 메아리가 돼서 돌아오고 있다. 지난해 법무부 국감에 처음으로 수용자(수감자의 법적용어) 자녀 지원에 대한 문제가 올라왔다. 그리고 지난 10월 24일 시행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에 법안 2개가 포함됐다. ‘자녀 면회는 차단막이 없는 곳에서 해야 한다’는 것과 ‘신입 수용자가 들어왔을 때 아동보호가 필요한지를 조사하고, 요청이 있을 때는 지자체장에게 알려줘야 한다’이다. 수감자 자녀들이 부모를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온 이 대표는 “가족관계가 잘 유지되고 돌아갈 곳이 있어야 재범률도 줄고 교정이 된다”고 말했다. ‘세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구속 후 자녀 접견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비율이 70%에 달했다.

비밀친구가 돼줄게

‘세움’의 가장 큰 역할은 수감자 자녀들의 ‘비밀친구’가 돼주는 것이다. 몽골로 중·고등학생을 데리고 캠프를 갔을 때의 일이다. 한 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아버지가 교도소에 간 사연을 고백했다. 그러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부모 이야기를 너도나도 쏟아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구나. 나보다 힘든 아이들이 있구나. 서로에게 위로를 받은 거죠. 한 학생이 일어서서 90도로 절을 하더라고요. ‘세움’에 고맙다고.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명만 있어도 살 수 있다고 하잖아요. 아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이 대표는 다양한 자조모임을 만들려고 한다면서 “시간이 지나고 이 아이들이 커서 비밀친구인 ‘세움’이 있어서 힘든 시기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30년 가까이 소외된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해왔다. 시작은 1992년 서울 금천구에 있는 달동네 쪽방촌이었다.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쪽방촌의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공용우물,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면서 단칸방에 온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 함께 살면서 학교도 못 가는 아이들을 공부방에 불러 함께 놀아주다 빈곤아동을 돕는 ‘부스러기 사랑나눔회’에 들어가 23년을 일했다. 쪽방촌에서 교도소까지 힘든 길을 걸어온 것은 자신의 일에 공감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 교도소에 갔을 때는 겁나고 눈도 마주치지 못했는데 이젠 나들이 가듯 교도소를 간다. 매달 신입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세움’의 활동을 소개하고, 자녀를 만나는 것은 당신들의 권리라고 알려주고 온다. 한 재소자는 가루 비타민 두 개를 편지봉투에 고이 넣어 자신의 아이들을 잘 봐달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범죄자가 아니라 한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로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은 자꾸 성과와 효과를 따지는데 ‘세움’을 통해 수감자 가족들이 그 순간만이라도 힘과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면서 덧붙였다. “자살을 하려던 엄마가 다시 힘을 얻고 ‘세움’이 있어서 숨통이 트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가장 혁신적인 것은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영혼, 한 가족을 살린 것이 가장 큰 임팩트 아닐까요.”

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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