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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80호]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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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육의 그림 속 시간여행]스테인드글라스가 절로 들어간 까닭은?

조정육  미술칼럼니스트 

▲ 임종로. ‘수월관음도’. 180×200㎝. 스테인드글라스. 2017. 광주 무각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은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종교예술품인 것 같다. 모든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그 아름다움의 표현은 봄날의 꽃바람처럼 감미로울 수도 있고, 비 오는 날 맨발로 자갈밭을 걸을 때처럼 불편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아름다움의 세계는 인간의 재주를 끝까지 밀어붙여야 도달할 수 있는 지점에 있다. 종교예술품은 여기에 신심이라는 요소를 한 방울 떨어뜨린 결과물이다. 신심의 무게는 예술성의 총량에서 아주 미미한 비율을 차지한다. 그 농도는 매우 적어 행여 그 흔적을 찾을라 치면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볍게 날아가버린다. 그러나 신심의 날갯짓이 감상자의 눈에 도달했을 때는 엄청난 위력을 지닌 토네이도가 된다. 때로는 감상자에게 토네이도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미친다. 신심이 젖어든 예술품은 지고의 영성(靈性)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성의 세계는 궁극(窮極)의 세계다. 궁극은 내 종교를 남 앞에서 시끄럽게 전파하는 대신 소곤거린다. 때론 침묵할 수도 있다. 궁극은 신앙생활의 최고 수준에 진입한 자만이 토로할 수 있는 경건한 자기 고백이다. 궁극에 도달한 사람은 아시시의 성인 성 프란체스코처럼 기도한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가져오게 하는 자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다. 궁극에 도달한 사람은 극락정토를 건설한 법장비구처럼 중생을 위한 큰 서원(誓願)을 세운다.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에 지옥과 아귀와 축생의 삼악도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로 시작하는 48가지의 위대한 소원이다. 궁극에 도달한 사람은 가장 위대한 실천이 영성적인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도구가 되겠다는 기도이고 부처로 살겠다는 서원이다. 이런 기도를 신 앞에서 드릴 때 종교가 되고, 붓과 선율을 통하면 예술이 된다. 추상적인 경전의 내용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예술작품을 통해 신도들에게 전달된다. 감상자는 혹은 신도는 신 앞에 봉헌된 작품을 통해 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물론 침묵으로 색칠된 작가의 신앙고백까지 듣게 된다.
   
   
   아름다움의 세계는 동서(東西)가 없다
   
   임종로(50) 작가가 제작한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스테인드글라스다. 서양의 대성당에서나 볼 수 있던 재료로 한국의 전통을 상징하는 불화(佛畵)를 제작했다. 스테인드글라스와 불화라니. 불협화음이 아닐까 싶었는데 의외로 아주 잘 어울린다. 마치 원래부터 불화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었어야 하는 것처럼 안성맞춤이다. 특히 이 작품의 원본이 되는 일본의 가가미진자(鏡神社)의 ‘수월관음도’를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아쉬움이 매우 컸는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는 원본 이미지를 스테인드글라스로 치환하면서 원본에서 훼손된 부분까지 복원해 완성도를 높였다. 감상자들은 동서양의 다른 재료로 만든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그 차이점과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임종로의 ‘수월관음도’는 광주의 무각사 대웅전 지하에 설치되어 있다. 무각사는 과거에 상무대의 군 법당이었는데 상무대가 이전하자 새롭게 민간의 품으로 돌아왔다. 무각사는 2014년에 낡고 비좁던 전각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중창불사를 하면서 1층 대웅전은 전통식으로, 그 아래 반지하에 있는 지장전은 현대식으로 꾸몄다.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 중창불사의 키워드였다. 임종로의 스테인드글라스 ‘수월관음도’는 지장전에 모셔져 있다. 그 외에도 ‘지장보살도’ ‘아미타팔대보살도’ ‘지장시왕도’ 등과 지장보살님의 머리 위 연꽃 문양의 천개(天蓋)도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했다. 장소가 반지하인 까닭에 다른 작품들은 모두 인공불빛을 사용했지만 천개에는 자연채광이 쏟아져 스테인드글라스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 천개를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비록 자연채광은 아니지만 은은한 조명을 받아 불국토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절에는 무조건 전통적인 불화를 걸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주지스님의 혜안이 놀랍다. 과거만 고수하던 절에도 새 바람이 부는 것 같아 숨통이 트였다. 설법전에는 황영성 작가의 서양화 ‘반야심경’도 걸려 있다.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는 ‘채색된(Stained)+유리(Glass)’라는 뜻이다. 여러 가지 색이 염색된 유리 제품을 뜻한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에 의해 완성된다. 빛의 밝기에 따라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해 들어오는 색색의 빛도 달라진다. 작가의 손에 의해 회화적인 표현과 조각적인 조형을 건축물에 표현하는 예술이다. 스테인드글라스의 회화적인 표현은 색채에 대한 감각과 유리라는 재료의 물리적인 특성을 잘 알고 그것을 건축에 접목시켜야 하는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임종로 작가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곳에서도 인정해주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에 회화적인 표현을 적용할 수 있는 작가로는 전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유명하다. 현재도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 더 많이 주문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유럽미술사를 보면 스테인드글라스는 로마네스크양식에서 시작해 고딕양식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후 부침을 거듭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20세기 초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로마네스크(Romanesque)양식’은 ‘로마식’이라는 뜻으로 11세기부터 12세기 중엽의 유럽 미술을 일컫는다. 고대 로마의 건축처럼 아치 위주의 넓은 폭을 지닌 건축이 주류를 이룬다. 로마네스크양식 다음으로는 고딕양식이 뒤따른다. 프랑스 파리 북쪽에 있는 생 드니 대성당은 1140년경에 지어졌는데 로마네스크양식과 고딕양식의 과도기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아치 등의 건축 구조는 로마네스크양식이면서 정면은 수직선이 강조되는 등 고딕양식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교회 창문을 고딕양식의 트레이드마크인 스테인드글라스로 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고딕(Gothic)양식’은 ‘고트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 속에는 고트족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즉 고트족 같은 야만인들이 만든 ‘괴물 같고 추악한 양식’이라는 뜻이다. 고트족은 원래 스칸디나비아 남부에 살던 민족이다. 그들은 살기 좋은 터전을 찾아 남하를 거듭해 이탈리아와 로마까지 내려왔는데 어느 순간 ‘감히’ 로마를 위협할 정도로 세력이 커졌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로마인들은 로마 지역 이외의 민족을 상당히 무시했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땅에서 멀어지는 순서대로 종족의 등급을 매겼다. 갈리아족이 살던 중부유럽은 2등급, 앵글로색슨족이나 게르만족이 살던 북부유럽은 3등급으로 매기는 식이었다. 스칸디나비아의 고트족은 3등급에도 속하지 못한 변방인이었다. 그런데 북유럽에서 온 촌뜨기가 로마와 맞짱을 뜰 정도로 자신감이 붙자 로마네스크양식을 따르는 대신 그들만의 양식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고딕양식이다. 유럽에서 로마의 미술은 가장 조화롭고 이상적인 고전 문화를 상징한다. 그 완벽한 고전 문화를 파괴하고 낯설고 괴이한 형식의 건축을 만들었으니 소위 고딕양식은 족보도 없는 북쪽 오랑캐들의 근본 없는 바바리안(barbarian)의 건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고딕에 대한 험담은 역사에서 주도권을 뺏긴 사람들의 자기 비하에 불과했다. 고딕이라는 말을 15세기의 르네상스시대에 이탈리아 작가들이 만든 것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13~14세기 프랑스에서는 고딕양식을 폄하하는 대신 새로운 미감을 가진 현대적인 건축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했다. 생 드니 대성당에 고딕양식이 도입된 이후 이 대담한 물줄기는 샤르트르 대성당, 랭스 대성당, 아미앵 대성당 등 파죽지세로 퍼져나갔다. 물론 고딕 건물에는 예외 없이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되었다. 올 초에 화재로 사라진 노트르담 대성당도 고딕양식이었다. 교회 건축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쓴 이유는 세상의 빛인 하느님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색색의 유리에서 반사되어 나온 오묘한 빛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의 온몸을 휘감을 때 그 사람은 마치 천상에 있는 듯한 충만감을 느낄 것이다. 교회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선택한 이유는 또 있다. 600도의 고온에 구운 스테인드글라스는 태양열이나 습도에도 변색되거나 변형되지 않고 천 년 이상을 버틸 수 있다. 재료 자체가 종교의 특성인 영원성을 보여주는 데 가장 적절하다. 석탑과 불상의 재료로 돌이 많이 선택된 이유도 그 영원성 때문이다. 종교적인 홍보나 전교에 최고의 소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 김우문(金祐文). ‘수월관음도’. 430×254㎝, 비단에 채색. 고려 1310년.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

   고려시대의 대표작 수월관음도
   
   임종로가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수월관음도’는 일본 가가미진자에 있는 1310년 작 고려시대의 불화 ‘수월관음도’를 모본으로 했다. 가가미진자의 ‘수월관음도’는 중앙에 수월관음이 앉아 있고 오른쪽 구석에는 아이처럼 작은 선재동자가 수월관음을 향해 합장하고 서 있다. 바위 앞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이 보이고, 뒤로는 대나무가 서 있다. 수월관음의 머리 위로는 물방울 같은 두광(頭光)이, 몸 주위에는 거신광(擧身光)이 둘러쳐져 있다. 두광이나 거신광은 부처나 보살의 머리와 온몸에서 나온 빛을 말한다. 그림에서 관음보살은 바위 위에 반가부좌로 앉아 있는데 발 아래에는 산호와 연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화기(畵記)에 의하면 이 작품은 1310년 5월에 왕숙비(王叔妃)의 발원으로 제작되었고 내반종사(內班從事) 김우문 등 4인이 그렸다고 되어 있어 왕실에서 발원한 불화임을 알 수 있다. 1310년은 고려 26대왕 충선왕(忠宣王)이 재위하던 때이다.
   
   가가미진자의 ‘수월관음도’는 그 규모로 보나 화려함으로 보나 예술성에 있어 고려불화 중 단연 최고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9년에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전시한 적이 있다. 그때 필자도 가서 직접 봤는데 그 크기와 화려함과 정교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고려불화는 권문세족들의 개인 원당(願堂)에 실내봉안용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크기가 대부분 세로 120㎝에 가로 80㎝ 내외로 작다. 그런데 가가미진자의 ‘수월관음도’는 세로 420㎝에 가로 250㎝인 대작이다. 고려불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작품이라서 괘불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괘불은 야외에서 개최되는 법회에 사용하는 대형 불화를 일컫는다. 대부분의 수월관음도가 우향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좌향을 하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수월관음은 관음보살의 별칭이다. 관음보살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준말로 자비의 상징이다. ‘세상의 소리를 듣는 보살’이라는 칭호에서 의미하는 바와 같이 고통받는 중생들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거나 암송하기만 해도 그 소리를 듣고 곧바로 달려가 구원해주는 보살이다. ‘수월관음도’는 ‘화엄경’의 ‘입법계품’을 근거로 제작되었다. 선재동자가 보살도를 구하기 위해 53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니던 중 28번째로 보타락가산에 계시는 관음보살을 찾아가 친견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선지식이란 지금으로 치면 ‘멘토’ 정도가 될 것이다. 관음보살을 굳이 수월관음이라 특정해서 부른 이유는 관음보살이 선재동자에게 가르침을 베푼 곳이 달이 비치는 물가이기 때문이다. 수월관음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맑은 물이 있는 곳마다 두루 비추듯, 고난에 처한 중생의 부름에 보문시현(普門示現)하여 모두 구제해주는 자비심을 표현한 것이다. 보문시현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하여 나타나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가르침을 청한 멘토가 스님, 왕, 뱃사공, 창녀 등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선재동자는 이 모든 선지식들에게 한결같이 공손한 자세로 가르침을 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관음신앙이 성행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고난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그저 입버릇처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했다. 관음신앙의 성행은 무수히 많은 관음보살의 그림과 조각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임종로 작가에 의해 스테인드글라스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전통의 끈질긴 생명력을 본다.
   
   
   삼교도 귀결점은 똑같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는 종교 간의 벽을 허무는 데 앞장섰던 법정 스님의 원력에 따라 특이한 ‘관세음보살상’이 세워져 있다. 가톨릭미술가협회장을 맡은 조각가 최종태의 작품이다. 얼핏 보면 관음보살상이 아니라 영락없는 성모마리아상이다. 다만 머리에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에서 볼 수 있는 삼산관을 쓰고 있어 관음보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 영성적인 사람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면 관음보살이든 성모마리아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지 종교 간의 차이나 이질적인 양식의 거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3등급에도 속하지 못한 고트족의 성당이 하느님의 빛을 가장 잘 전달해주는 성소가 된 것이 그 진리를 증명한다. 고려 말엽의 학자인 이곡(李穀)은 이렇게 말했다. ‘구천(九泉)에 영결하고 나면 찾아뵐 길이 없는데/ 삼교(三敎)도 귀결은 같으니 어찌 차이가 있으리오.’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강조하는 점에 있어서는 유교나 불교나 도교가 모두 일치한다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은 종교예술품이다. 그 세계를 우리 시대의 작가가 열어가고 있으니 우리는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복 받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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