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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80호]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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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암스테르담 벽화를 찾아서

▲ 암스테르담 거리의 이동식 벽화. 축구 영웅으로 추앙받는 요한 크루이프의 젊은 시절 초상화다.
1인당 1.3대. 네덜란드인 1명이 갖고 있는 자전거 평균 숫자다. 1700만 인구의 네덜란드에는 무려 2250만대의 자전거가 있다.(2018년 5월 기준) 자전거 보유대국 2위인 덴마크의 1인당 보유대수(0.8대)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많다. 필자의 눈에는 자전거 중독자로 들끓는 나라가 네덜란드다. 수도 암스테르담은 그중에서도 최악의 중독 공간이다. 개인용뿐만 아니라 공유 자전거도 넘친다. 새벽, 낮, 심야 할 것 없이 남녀노소 전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멀리서 보면 쓰나미로 비칠 정도다. 자동차용 도로에서도 사실상 자전거가 우선이다.
   
   지난 9월 초 네덜란드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네덜란드에서의 자전거 여행을 고려했었다. 국토 대부분이 평지라는 이점 때문이다. 그러나 암스테르담 자전거 중독자들을 본 순간 마음이 변했다. 엄청난 자전거를 헤치고 나갈 만한 자신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전거 보관도 문제다. 길에 엄청 깔려 있기 때문에 자칫 어디에 보관했는지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결론은 언제나처럼 도보다. 다른 도시에서처럼, 튼튼한 다리로 암스테르담을 구석구석 살펴나갔다.
   
   
   지하철역과 이동식 벽화가 주 무대
   
   암스테르담은 4번째 방문이다. 잠시 머물다가 스쳐 지나가는 식이었다. 아예 작정을 하고 1주일간 머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장 큰 관심사는 사후(死後) 350주기를 맞은 렘브란트 특별전이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지만, 고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궁금했다. 렘브란트는 미술가 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17세기는 네덜란드의 국력과 국위가 전 세계 톱에 올랐던 시대다. 이른바 네덜란드 황금기(Golden Age)다. 1648년 독립 이후 해양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전 세계 최대의 금융 무역 도시에 오른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국력은 급속히 추락한다. 영국과의 전쟁, 프랑스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인해 17세기 황금기는 과거형으로 사라진다. 렘브란트는 1606년에 태어나 1669년까지 생존했다. 주된 거주지는 암스테르담이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수많은 그림에서 보듯, 당대 최고의 초상화 전문 인기 화가였다. 17세기 네덜란드는 귀족·성직자가 아니라 보통 시민이 주도한 프로테스탄트 공화국 체제다. 렘브란트의 활동 시기는 보통 시민조차 초상화를 구입할 정도로 풍요로웠던 시대다. 사후 350주기 기념 특별전은 렘브란트는 물론, 황금기 당시의 꿈과 영광에 대한 추억 되살리기 이벤트라 볼 수도 있다.
   
   도보여행이 그러하듯,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새로운 흥밋거리가 눈에 띈다. 렘브란트와 고흐 그림을 찾아 암스테르담 미술관을 전전하는 동안 다른 차원의 예술세계가 나타난다. 스트리트아트(Street Art), 즉 거리벽화다. 세계적 화가가 넘치는 도시까지 가서 왜 거리벽화 탐험에 나서느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뮤지컬과 오페라에 비견된다고나 할까? 오페라는 ‘전통’ ‘역사’ ‘고가(高價)’ ‘찬란’의 대명사다. 뮤지컬의 경우 재미는 있겠지만, 깊이라는 면에서 보면 한참 아래다. 그러나 뮤지컬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젊음 때문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오페라는 꼰대가 즐기는 예술이다. 펄펄 뛰는, 땀 냄새가 밴 젊음의 예술은 역시 뮤지컬이다. 정장 차림의 오페라에 맞서는, 티셔츠와 청바지의 반란이다. 필자는 오페라를 무시하는 청바지족과는 무관하다. 오페라도 좋지만 뮤지컬도 좋아하고, 렘브란트·고흐도 좋지만 스트리트아트도 좋아한다. ‘함께’라는 양다리 예술관을 갖고 있다. 거리벽화는 어제가 아닌, 지금 당장을 가늠하는 증거다. 네덜란드의 오늘과 내일은 렘브란트·고흐가 아닌, 무명의 청춘들이 표현한 거리벽화에 있다. 특히 전문 예술가가 아닌, 현지의 평범한 젊은이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징표가 바로 거리벽화다.
   
   운하를 중심으로 한 암스테르담은 대부분의 공간이 유네스코(UNESCO)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포함된다. 건물주가 승낙을 한다 해도 마음대로 벽화를 그릴 수 없다. 몰래 그리고 도망칠 수도 없다. 필자의 경험이지만, 네덜란드는 인권대국인 동시에 경찰국가에 가깝다. 도시에 경찰 한 명 안 보이지만, 자동차 운전 위반사항은 귀신처럼 알아낸다. 보안용 카메라가 구석구석 들어서 있다. 따라서 인류문화의 보고인 도심부에서의 벽화 그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교외로 나가면 있겠지만, 도심부는 거의 전멸 상태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기발하고 교묘하게도, 암스테르담 특유의 방식에 의한 벽화가 곳곳에 들어서 있다. 먼저 지하철역 주변의 담벼락이다. 세계문화유산과 무관한 곳이기에 벽화 영순위 공간으로 활용된다. 두 번째는 이동식 벽화다. 푸드트럭과 같은 자동차, 간이화장실, 임시천막과 같은 공간이 벽화의 캔버스다.
   
   
▲ 존 레넌과 오노 요코를 그린 암스테르담의 벽화. 암스테르담 힐튼호텔은 존 레넌과 오노 요코가 벌인 ‘베드인’ 이벤트의 무대였다.

   도심 곳곳을 장식한 축구 영웅의 벽화
   
   스포츠 분야는 거리벽화를 유럽권과 미국권으로 양분할 경우 나타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유럽에서 스포츠라고 하면 축구가 99%다. 미국 벽화에서는 축구를 소재로 삼은 것이 거의 제로다. 뉴욕 곳곳을 전부 돌아다녀 봤지만, 축구에 관한 벽화는 ‘단 하나’도 보질 못했다. 유럽은 서부·중부·동부 할 것 없이, 축구가 거리벽화의 주요 테마이자 소재다. 암스테르담 곳곳에서 발견했지만, 동양인이라면 전혀 낯선 인물에 관한 벽화 하나가 있다. 필자도 이곳저곳에 그려진 똑같은 인물벽화를 통해 뒤늦게 알아챈 인물이다.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라는 축구스타로, 유럽의 펠레라고 보면 된다. 현역이 아니라, 2016년 세상을 뜬 어제의 인물이다. 사실 유럽축구역사통계협회(IFFHS)가 발표한 20세기 축구스타 목록에 따르면 세계 1위 스타가 펠레, 2위가 크루이프다. 1947년생으로, 한국의 손기정 정도로 추앙받는다. 1974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가 독일에 2 대 1로 석패할 당시 공격수다. 당시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20세기 후반 네덜란드가 월드컵 강자로 오를 때의 1등 공신인 셈이다. 이후 감독이자 프로축구 경영자로 변신, 네덜란드 축구의 상징으로 활약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장례식이 거의 국장(國葬) 수준으로 치러졌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실내축구경기장인 ‘암스테르담 아레나’는 올해부터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로 개명했다. 네덜란드에서 장발에다 훤칠한 키의 미남형 축구선수 벽화 그림을 본다면 99%가 크루이프다. 물론 초면의 네덜란드인이라도 크루이프 얘기를 꺼내는 순간, 바로 친구가 될 수 있다.
   
   평화 메시지는 전 세계 거리벽화의 주된 테마 중 하나다. 21세기 들어 희미해지고 있지만, 전후 암스테르담은 세계평화의 성지로 통했다. 출발점은 1969년 3월 20일이다. 비틀스 멤버인 존 레넌과 일본의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가 결혼한 날이다. 현재도 남아 있는 암스테르담 힐튼호텔 스위트룸이 결혼장소였다. 그 유명한 ‘베드인(Bed-In)’ 이벤트다. 당시 존 레넌은 18세기 볼프강 모차르트에 비견할 만한 음악스타였다. 더불어 정치적 메신저로서는 ‘달라이 라마+프란치스코 교황+넬슨 만델라’ 같은 위상에 서 있었다. 전 세계 미디어가 결혼식 중계에 들어갔다. ‘베드인’ 이벤트는 결혼식 후 1주일 동안,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두 사람의 침대 위에서 벌어졌다. 결혼식을 활용한 베트남전쟁 반대가 이벤트의 진짜 목적이었다. 침대 위 큰 창문에 ‘Hair Peace, Bed Peace’란 포스터가 장식됐다. 21세기 평화주의자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노래와 명언도 남긴다. 자작곡 ‘이매진(Imagine)’과, 반전 슬로건의 대명사인 ‘워 이즈 오버-이프 유 원트 잇(War is over-If you want it)’이다.
   
   
1. 렘브란트의 그림 ‘야경’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상.
2. 암스테르담 거리를 수놓는 이동식 벽화는 푸드트럭, 간이화장실 등이 이용된다.
3. 암스테르담 지하철역의 벽화.

   존 레넌의 베드인 이벤트가 열린 힐튼호텔
   
   암스테르담에 가자마자 힐튼호텔에 들렀다. 큰마음 먹고 존 레넌이 머물렀던 702호 예약도 고려했지만, 이미 줄을 이은 손님들로 만원이라고 한다. 물론 1박에 600유로 이상하는 숙박비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힐튼호텔은 당시 이벤트 덕분에 1960년대 반전히피들의 평화성지로 통한다. 호텔바에서는 존 레넌 칵테일도 팔고 있다. 올해는 베드인 이벤트가 벌어진 지 50년째다. 덕분에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50년 전 그림자가 암스테르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당시의 베드인 이벤트를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들이 이동식 벽화 곳곳에 들어서 있다. 작은 사진이나 그림도 있지만, 인상 깊었던 것은 이동식 화장실에 그려진 베드인 이벤트 재연이다. 언뜻 보면, 존 레넌의 모습이 예수처럼 비친다.
   
   지하철역은 암스테르담 벽화의 보고다. 지하철역의 벽화는 유럽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모든 도시마다 나름대로의 독특한 개성이 있다. 암스테르담의 경우 한마디로 말해 추상화다. 초현실주의라고나 할까? 느낌으로 읽고 생각하는 예술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다, 한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 흥미롭게도 지하철 역사를 돌아다니며 벽화 순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열린 뮤지엄의 현장으로 이해한다고나 할까? 전부 진지한 표정으로 인솔자의 설명이나 해석에 귀를 기울인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인류 예술의 출발점은 동굴에서 시작됐다. 원시인의 손바닥 그림에서 시작해 동물 그림으로 이어진 것이 인류 예술사의 시발점이다. 암스테르담 지하철역 벽화는 원시인의 눈을 추상적으로 바꾼 것일 수도 있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도 좋지만 청년들의 ‘지금 당장’ 세계관이 밴 한국 지하철 벽화는 어떨까?
   
   술과 쓰레기에 관한 경고는 2019년 가을 암스테르담을 대표하는 공공 포스터다. ‘거리에 쓰레기를 버릴 경우 140유로,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실 경우 95유로’라는 포고문이다. 술보다 쓰레기 투기 벌금이 더 많다. 네덜란드인에게 물어보니까 ‘버리거나 마신 뒤’ 벌금형에 처해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단순 경고성으로, 2017년부터 나붙기 시작한 포스터라고 한다. 암스테르담은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나라다. 걸어다니면서 마리화나를 피울 정도다. 필자도 직접 봤지만, 지하철 안에서 음주는 물론 식사도 하는 판이다. 불법이라고 하지만, 단속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없다. 유럽 청년이 보는 암스테르담은 마리화나와 술의 해방구다. 네덜란드는 섹스용 인형을 의미하는 ‘더치 와이프(Dutch Wife)’라는 말의 탄생지다. 섹스 천국이 암스테르담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네덜란드인이 믿는 평화라는 개념이 50년 전 존 레넌과는 달라진 느낌이다. 전쟁·폭력·기아로부터의 자유와 평화가 아니라 인간적 본능에 기초한, 욕(欲)을 보장하고 극대화시켜주는 환경으로서의 평화다.
   
   네덜란드는 자타가 인정하고 찬미하는 인권대국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암스테르담=배설의 도시’로 변했다는 것이 현지의 불만이다. 이민자 급증은 네덜란드인들이 화를 내는 가장 큰 이유다. 아직까지 거리벽화에서는 불만이나 불안이 표출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극우정당의 약진이 남다른 나라가 네덜란드다. 몇 년 뒤 다시 들를 경우 어떤 주제와 소재의 벽화가 그려져 있을까? 현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분명한 것은, 프랑스·독일·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는 벽화가 늘어나게 될 것이란 점이다. 바로 이민자를 둘러싼 공방이다. 50년 전의 존 레넌이 다시 돌아온다면 과연 어떤 식의 이벤트를 기획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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