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은 외부용역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정규직화를 약속했고, 법원도 그들의 지위가 불법 파견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화 방안을 내놓았고 대상자 중 상당수는 이를 수용했다. 반면 민노총 소속 수납원들은 본사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여전히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수납원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운 일자리다. 문제는 이들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으로 거의 모든 산업현장에서 아예 인간이 필요 없을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가 있다. 바로 제리 카플란의 ‘인간은 필요 없다’(Humans Need Not Apply·2015)이다. 부제는 ‘인공지능 시대의 부와 노동에 관한 가이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AI)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로봇이나 기구가 인간이 수행하던 작업을 대신했다. 다만 그것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 이것이 이른바 자동화(automation)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이런 자동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자신의 판단으로 움직일 줄 알아야 ‘지능’이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이란,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는 인공적인 시스템을 가리킨다.

인공지능이라는 개념 자체는 이미 50~60년 전에 등장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의사결정을 대신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한동안 문화적으로 배척되었다. 또한 컴퓨터 성능이 열악하고 데이터가 부족한 탓에 기술적 진척을 보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에 이런 장애들이 하나하나 제거됨에 따라 인공지능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토대를 마련했다.

오늘날 인간 두뇌의 신경망을 응용하여 설계된 인공지능에 엄청난 데이터가 입력되고, 이런 과정을 대용량의 컴퓨터 시스템이 지원한다. 그 결과 인공지능은 다양한 데이터(사례)를 수집·분석·축적·응용하여 새로운 정보를 스스로 판단할 줄 알게 되었다. 이런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통해 인공지능은 스스로 ‘알아서’ 작업을 수행하는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적용 범위는 단순히 수납원, 운전사, 조립공 등 블루칼라의 업무에 머물지 않는다. 의사, 법조인, 회계사 등 최상층 화이트칼라의 업무도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인공지능은 잠도 자지 않고 지칠 줄도 모른다. 말 그대로 ‘초인적으로’ 학습과 경험을 반복한다. 비록 섬세함과 완성도가 다소 미흡할지라도 필요한 작업을 사람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빠르게 수행한다. 그리고 섬세함과 완성도도 점점 더 높여가고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 하면 흔히 로봇을 연상한다. 하지만 그것은 의인화를 선호하는 인간의 습성 탓이다. 실제로 인공지능은 로봇처럼 사람 또는 지체(肢體)의 모습을 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인식, 판단, 작동 등 주요 구성요소들을 한군데 모아둘 필요도 없다. 그것들을 네트워크 이곳저곳에 분산해 두어도 무방하다. 이미 우리는 일상적으로 유무형의 인공지능에 영향을 받고 있다. 유튜브가 우리에게 맞춤 영상을 제공하는 것도 일례(一例)다.

이런 인공지능의 확산은 다양한 리스크와 윤리적 문제를 야기한다. 예를 들어 초단타 주식 매매는 동일 시간대에 다양한 가격을 순식간에 인지하여, 신속하게 사고팔아 가격 간의 차액을 챙기는 기법이다. 인간은 기껏해야 10분의 1초에 한 번 거래를 할 수 있다. 반면 인공지능은 10분의 1초에 무려 10만번을 거래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이익 추구가 윤리적일까. 하지만 오늘날 주식시장은 이미 인공지능의 대결장이 되었다. 거기에 ‘인간은 필요 없다’.

인공지능은 능력만 있을 뿐 마음(mind)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질주한다. 따라서 인공지능끼리 충돌하면 새로운 유형의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회사에 대해서는 법적 인격을 부여하여 독자적인 책임을 묻는다. 만약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하여 상당히 자율적으로 움직일 경우 그것에 대해 독자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인공지능 시대의 사회적 부작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로, 막후에서 다양한 인공지능 시스템을 보유, 운용하는 부자들에게 부가 더욱 쏠릴 가능성이 있다. 현재 미국에서 상위 1%가 전체 부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부가 더욱 극소수에게 더욱 극단적으로 편중될 우려가 있다. 전체 부가 아무리 늘어나도 절대다수는 더욱 빈곤해질 수도 있다.

둘째로, 일자리의 소멸이다. 앞으로 수십 년 내에 현재 일자리의 거의 절반이 아예 사라질 전망이다. 과거에는 일자리가 사라지더라도 서서히 사라지며,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났다. 즉 충분히 적응할 만했다. 반면 오늘날의 변화는 너무 급격한 탓에 미처 적응하기 어렵다. 더구나 자동화의 타깃이 블루칼라였다면, 인공지능은 모든 직종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실업 문제와 불평등 문제는 이미 전 세계적인 골칫거리다. 이런 문제들이 인공지능으로 인해 더욱 심화될 소지가 있다. 하지만 저자는 미래가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를 따지지 않는다. 대신에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여 혜택을 골고루 향유하게 만들 수 있느냐에 주목한다. 그는 국가의 직접적 개입보다 시장원리에 충실한 해법을 고민한다.

우선 실업 문제부터 살펴보자. 인공지능 시대에는 수많은 일자리뿐만 아니라 관련 기술도 급속히 사라진다. 따라서 기존의 일자리에서 밀려난 잉여 노동자들이 교육이나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신속하게 습득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자는 여기에 소요되는 막대한 교육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직업 대출(job mortgage)’ 제도를 제안한다.

기업이 개인에게 어떤 특정 기술을 습득하면 채용을 고려하겠다는 의향서를 발행한다. 개인은 이것을 담보로 관련 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적절한 교육기관을 찾아가 해당 기술을 습득한다. 취업을 하면 대출을 상환하고 취업을 못 하면 상환이 유예된다. 이를 통해 비용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교육기관은 기업이 꼭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가르치게 된다.

다음으로, 저자는 불평등에 대한 대책으로 공익지수(Public Benefit Index) 제도를 제안한다. 공익지수란 기업의 주식이 소수에 의해 독과점되었는지, 또는 다수에 의해 널리 분점되었는지를 지수화한 값이다. 이 지표에 따라 법인세 등을 차등화하여 인공지능의 과실이 되도록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보완책이 거론된다.

인공지능의 도래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만약 우리가 적절한 공공정책을 신속하게 마련하지 못하면 다음 세대들은 오랫동안 부적응과 빈곤으로 고통받게 된다. 저자는 직업 대출, 공익지수 등을 비롯해 다양한 시장친화적인 해법을 모색한다. 반면 부자 증세와 같은 개입 방식에는 소극적이다. 그러나 앞으로 국가의 역할을 놓고 벌어질 논란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벌써부터 로봇세(稅), 부유세, 기본소득보장 등 다양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는 톨게이트 수납원의 정규직화 방법을 놓고 진을 빼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자동화의 도래로 이미 ‘소멸된’ 일자리다. 진작에 출구전략이 필요했다. 이제는 전통적인 자동화를 뛰어넘어 인공지능이라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닥쳐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온통 과거와의 씨름에만 골몰하고 있다. 지금처럼 미래를 외면한 시대도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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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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