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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82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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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샴페인 성지 랭스를 가다

▲ 랭스 지하의 샴페인 저장소.
프랑스 랭스(Reims)로의 여행은 벨기에에서 시작됐다. 원래 브뤼셀을 출발해 룩셈부르크로 바로 가려 했지만 산길로만 달린다는 얘기를 듣고 단념했다. 세계 미식의 핵(核)에 해당하는 지역을 자동차 안에서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큰 도시는 아니더라도 중간중간 지역특산물을 맛볼 수 있는 길로 달리고 싶었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랭스에 들렀다가 룩셈부르크로 가는 루트다. 브뤼셀을 중심으로 250㎞ 남쪽이 랭스, 200㎞ 동남쪽이 룩셈부르크다. 랭스에 들렀다가 곧장 동쪽으로 달려가면 룩셈부르크다.
   
   벨기에~프랑스~룩셈부르크로 이어지는 3개 나라를 거치는 길이지만 자동차로 3시간 거리에 불과한 ‘코앞의 도시’들이다. 물가가 비싼 프랑스지만 벨기에나 룩셈부르크에 비하면 싸다. 주말이 되면 벨기에·룩셈부르크 사람들이 이웃동네 가듯 국경을 넘어 프랑스 쇼핑에 나설 정도다. 사실 국경이라고 해도 여권 검사는 물론 국경 경비도 없다. 나라를 알리는 간판만 하나 달랑 서 있을 뿐 이국적 분위기를 느낄 만한 요소가 전혀 없다. 역사적으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프랑스 문화권에 속한다.
   
   
   돔페리뇽의 특별한 위상
   
   랭스를 거쳐 가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너무도 당연히 ‘샴페인’ 때문이다. 샴페인이란 이름은 랭스를 에워싼 지역의 지명이다. 영어로는 샴페인이지만 프랑스어로는 샹파뉴다. 이 샹파뉴 지방의 샴페인 수도가 랭스다.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샴페인도 랭스에서 만들어진다. 모엣&샹동(MOЁT & CHANDON)의 돔페리뇽(Dom Prignon)이 대표적이다. 샴페인의 왕인 돔페리뇽은 여성들의 평생 꿈이라는 에르메스(Hermes) 핸드백 버킨(Birkin)이나 켈리(Kelly)에 비견된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돔페리뇽 자체가 랭스 방문 이유는 아니다. 왜 프랑스 샴페인은 다른 스파클링 와인에 비해 가격이 ‘엄청’ 비싼지, 왜 샴페인이 최고급 축하파티의 간판주로 등장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랭스로 향한 가장 큰 이유다. 개인적으로 돔페리뇽에 대한 기억은 15년 전 랭스 첫 방문 당시 마신 20㏄ 시음이 전부다. 고가의 모엣&샹동 와이너리 투어에 참가하면서 얻어마신 샴페인이다. ‘여우의 신포도’일 듯하지만, 특별히 인상에 남는 것도 없고 최하 200달러에서 시작하는 비싼 가격 때문에 이후 찾을 일도 없었다. 그렇지만 돔페리뇽만이 갖는 ‘특별한 위상’은 결코 지워지지 않았다.
   
   일본 TV방송을 통해 얻게 된 이미지일 듯하지만, 필자에게 비친 돔페리뇽의 이미지는 ‘호스트바’로 연결된다. 여성 손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꽃미남 청년 수십 명이 박수를 치면서 함께 마시는 호스트바 이벤트 전용 와인이 돔페리뇽이다. 샴페인 잔 100여개를 피라미드식으로 쌓아올린 뒤 위에서부터 한꺼번에 붓는 퍼포먼스다. 보통 한 병에 100만엔 정도의 가격이니 한자리에서 1000만엔 정도 쓰는 셈이다. 내게 ‘특별한 위상’은 우아한 품격과 무관한, 벼락부자 이미지에 불과하다. 당연하지만 중국도 빠질 수 없다. 최근에는 돔페리뇽 피라미드 이벤트가 중국까지 확산됐다고 한다.
   
   노트르담(Notre-Dame) 대성당은 자동차로 프랑스 도시에 들어갈 경우 좌표에 해당한다. 목적지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을 때 일단 노트르담으로 가면 도시 중심을 만나게 된다. 이탈리아는 두오모(Duomo)가 도시 중심으로, 프랑스 노트르담과 같은 좌표 역할을 한다. 종교적·정치적 중심지로서의 두오모다. 노트르담은 직역하자면 ‘Our Lady’, 즉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지칭한다. 불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그러하듯, 신이나 예수가 아닌 마리아가 중심인 곳이 노트르담이다. 이탈리아어 두오모는 직역하면 교회란 의미다. 같은 가톨릭 문화권이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믿는 종교나 신앙의 기준이 다르다.
   
   랭스 노트르담은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건물 자체도 대단하지만 역사적으로도 남다르다. 무려 33명의 프랑스 왕 대관식이 이뤄진 곳이다. 간단히 말해 프랑스 역사를 증거하는 현장이다. 왕의 대관식은 축하파티로 이어진다. 초대형 이벤트나 축하파티에 샴페인이 반드시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랭스와 샴페인이 왕가의 품격을 드높인 상징으로 떠오른 것은 물론이다. 프랑스는 왕, 이탈리아는 교황과 관련된 물건이 최고급으로 인정받는다. 최하 1000만원 선에서 출발한다는 에르메스 가방은 프랑스 왕가를 위한 말(馬)안장을 만들던 장인이 기원이다.
   
   
▲ 포메리 지하 샴페인 저장소.(위) 포메리 샴페인의 역사인 세계 최대 와인 저장 오크통.

   곳곳에서 와인 테이스팅
   
   랭스는 인구 20만 정도의 중규모 도시다. 파리나 브뤼셀과 달리 아직 이민 문제가 본격화되지 않은 듯하다. 도시 전체가 깨끗하다. 난민캠프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주변의 삼엄한 테러경비와 달리 무장경찰도 없다. 노트르담에서 걸어 1분 거리에 있는 중앙광장(Place Royale)에는 면류관을 쓴 루이 15세 입상이 들어서 있다. 랭스 샴페인을 물 마시듯 사랑한 왕이다. 고대 로마의 흔적만 남아 있던 한물간 도시를 샴페인 부자마을로 진화시켜준 은인이다.
   
   때마침 주말이라 도시 전체가 사람들로 넘친다. 샴페인 도시답게 와인 테이스팅도 곳곳에서 열린다. 중심가 관광객 안내소에서는 무료 시음회가 열렸다. 의외로 사람이 없길래 끼어들었다. 20유로짜리 저가 샴페인이었지만 잔 속에서 부서지는 포말을 보면 ‘역시’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크기의 작은 포말들이 천천히 수직으로 올라오는 것이 샴페인의 진수다. 포말 크기가 다르고 너무 클 경우 올라오다가 중간에 터지는데 이는 숙성 상태가 양호하지 않다는 의미다. 놀란 것은 랭스의 국제화다. 15년 전만 해도 프랑스어만 통하던 곳이었지만 시음회 진행요원 모두 영어를 구사한다. 샴페인 지역 시음회 직원들의 경우 프랑스어·영어·러시아어·스페인어 정도는 기본이라고 한다. 유럽연합(EU) 대학생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확보한 유학생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프랑스 최고급 문화의 상징이 샴페인이라고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글로벌 시대의 합작물이 된 듯하다.
   
   투어를 의무화한 곳이 아니면 투어 여행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떼로 몰려다닌다는 것은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좋아하고 흥미가 가는 곳이 있어도 일행의 흐름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샴페인 와이너리 투어도 그 같은 논리에 따라야만 한다. 그러나 고맙게도 비휴가철 영어 투어에 들어가면 소수 투어를 즐길 수 있다. 두세 명 태운 시내관광 버스라고나 할까. 와이너리 투어로 정한 곳은 포메리 샴페인(www.champagnepommery.com) 셀러다. 1858년 문을 연, 노포 브랜드다. 샴페인을 10등급으로 나눌 경우 1등급 모엣&샹동을 잇는 2등급 수준이다. 1년에 무려 550만병을 배출하는 대량 생산지로 가격은 최하 20유로에서 수백 유로까지 다양하다. 포메리로 결정한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포메리 와이너리의 크기다. 모엣&샹동 와이너리는 랭스에서 30㎞ 떨어진 시골에 있다. 포메리 셀러는 랭스 노트르담에서 불과 3㎞ 떨어진 도심 내 공간이다. 크기 면에서 도시 내 와이너리 투어 가운데 가장 크다. 둘째는 포메리가 자랑하는 역사 때문이다. 샴페인 역사상 처음으로 브루트(Brut), 즉 담백한 드라이(Dry) 맛을 창조해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 1869년 당시 포메리 샴페인 공장.

   대중화의 역사 불과 150여년
   
   샴페인이 대중상업화에 성공한 것은 불과 150여년 전인 19세기 중엽부터다. 원래 교회 의식용으로 활용된, 예수의 피라는 의미를 담았던 샴페인은 왕, 귀족, 성직자의 전유물이었다. 1789년 혁명 후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체가 평화기에 들어서던 19세기 중엽부터 랭스 샴페인이 유럽 각지로 팔려나간다. 제정러시아 귀족들이 가장 큰 구매자다. 당시 샴페인 맛은 21세기와 전혀 다른 달콤한 맛이 대세였다. 잔도 지금처럼 길쭉한 것이 아닌 넓적한 접시 모양이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설탕으로 버무려진 숙성된 사이다 맛이었다. 샴페인은 샤도네이(Chardonnay) 와인 속에 설탕을 넣어 숙성시킨다. 포도는 반드시 샴페인 지방에서 수확한 것에 한한다. 샴페인 외 지역의 포도로 만들 경우 스파클링 와인이란 이름만 달 뿐 샴페인 브랜드를 ‘절대로’ 달 수 없다.
   
   포메리는 주된 판매처를 영국의 보통 시민에 맞췄다. 시장조사 끝에 단맛이 아닌 드라이한 맛이 팔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설탕을 줄일 경우 숙성 기간은 더 늘어난다. 1874년 첫선을 보인 포메리 샴페인은 폭발적으로 팔려나간다. 이른바 ‘가벼운 미소(Smiling Lightness)’라는 별명을 가진 드라이 샴페인의 탄생이다. 이후 다른 샴페인 회사에서도 따라가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브루트=포메리’라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포메리 투어의 현장은 빌라 드모아젤(Villa Demoiselle)와이너리다. 랭스를 대표하는 샴페인 도로, 앙리 바스니에(Henry Vasnier)에 접해 있다. 앙리 바스니에는 포메리를 드라이 샴페인의 선구자로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샴페인의 영국 수출 길을 튼 랭스 와인 비즈니스의 대부이기도 하다.
   
   드모아젤 주변은 고급 와인매장에서나 볼 수 있는 세계적 브랜드로 둘러싸여 있다.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 테탱저(Taittinger)는 포메리 이웃 와이너리다. 드모아젤로 들어가자 시설의 크기가 엄청나다. 투어 참가자가 1년에 120만명에 달한다(2018년 기준)고 한다. 초대형 철장 출입문에서 투어현장 건물까지 거리가 무려 100m 정도다. 투어현장은 백설공주 성(城)을 연상시키는 고깔형 건축이다. 걸어가는 도중 초현대판 입체조각물을 만날 수 있다. 첫인상은 샴페인이 아닌, 조각 전시관으로 와닿는다.
   
   투어현장으로 들어가자 넓은 실내공간이 펼쳐진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8m 높이의 오크통이다. 무려 10만병을 보관할 수 있는(Grand Foudre) 샴페인 저장통이다.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St. Louis)에서 열린 세계박람회 출품작이라고 한다. 고깔모자를 쓴 자유의 여신이 위에 있고, 미국 여인이 프랑스 여인으로부터 포메리 샴페인을 받아 마시는 장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디언 모자를 쓴 스핑크스가 미국 여인을 받쳐주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본다면 인종차별로 몰릴 작품이지만, 20세기 초 프랑스가 갖고 있던 미국에 대한 이미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랭스를 내려다보는 포도밭. 수킬로미터에 걸쳐 끝없이 이어져 있다.

   미로 같은 지하터널 곳곳이 뮤지엄
   
   와인 투어는 75분에 걸친 35유로짜리 코스로 정했다. 포메리 샴페인 2잔을 시음할 수 있다. 25유로 투어코스는 60분에 샴페인 1잔만이 제공된다. 운 좋게 필자와 안내원을 포함해 참가자 5명이 전부다. 투어는 샴페인 저장소인 지하 와인 셀러를 돌면서 이뤄진다. 지상에서 지하 셀러까지 계단을 따라 무려 30m나 내려간다. 75분 코스가 증명하듯 엄청 길고도 넓은 지하터널이다. 양쪽에 샴페인 셀러가 길게 이어져 있다. 랭스 지하 셀러는 한 군데가 아닌, 다른 샴페인 회사 지하터널로도 통한다. 미로처럼 얽힌 지하도로로 길이가 무려 200㎞에 이른다. 강도가 약한 석회암이기 때문에 파내기가 쉽다고 한다. 원래 고대 로마 때부터 음식저장소로 활용돼왔지만 본격적으로 파기 시작한 것은 두 번의 세계대전 기간 중이다. 랭스는 독일이 파리 점령을 위해 ‘반드시’ 들러야만 하는 길목이다. 필사적으로 방어선을 치는 과정에서 지하터널 200㎞가 완성된 것이다. 트럭이 지나갈 정도의 초대형 터널도 많다. 평균온도가 섭씨 13도이기 때문에 현재 대부분 와인 셀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왜 샴페인이 최고급의 상징으로 떠올랐을까. 프랑스 왕 대관식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랭스 시민이 갖는 독특한 세계관도 이유 중 하나일 듯하다. 포메리 와인 셀러에서 봤듯이 어두컴컴한 지하터널조차 예술품으로 장식돼 있다. 초현대식 비디오 입체작품에서부터 고대 로마 당시의 대리석 조각에 이르기까지 터널 곳곳이 뮤지엄이다. 맛으로서가 아니라 역사·문화·품격으로 통하는 멋으로서의 포메리 샴페인이다. 랭스는 1902년 전 세계 초유의 비행기쇼를 개최한 곳이다. 과학기술의 전위병이던 전 세계 비행기를 불러 속도·거리 면에서의 우승자를 가려 고액의 상금을 안겨줬다. ‘샴페인=고급문화’인 동시에 ‘샴페인=최첨단’이란 이미지를 창출한 것이다. 최고급 자동차 경주에 샴페인이 반드시 등장하는 것도 똑같은 이유다. 샴페인을 세계 최고 상품으로 만들려는 치밀한 전략에 기초한 이벤트다. 물론 랭스 샴페인 회사 모두가 협심단결해서 그 같은 가치를 창조해낸 것이다. 모엣&샹동은 나폴레옹에게 군자금을 지원한 혁명지 브랜드로 유명하다. 호스트바와 무관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돔페리뇽 한 병을 구입하는 것이 역사·문화·멋으로서의 프랑스에 대한 예의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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