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진미인 대방어 회. ⓒphoto 허만갑
겨울의 진미인 대방어 회. ⓒphoto 허만갑

오늘 저녁 우리 집 식탁에 방어가 왔다. 대방어 중짜 3만5000원, 배달료 3000원까지 3만8000원을 지불하니 아파트 상가 횟집 수족관에 있던 방어가 연홍색 속살만 담겨 문 앞까지 배달되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이 녀석은 횟집 수족관에서 오늘 아침까지 헤엄치고 있었다. 커다란 원통형 수족관에는 가을 내내 참돔, 전어, 오징어가 들락날락하더니 11월부터는 방어만 보였다. 값싼 중방어 없이 8~10㎏ 대방어로만 수족관을 채운 횟집 주인의 배포가 남달라 보였는데 그 큰 방어들이 하루이틀 만에 소진되고 새 방어들로 채워지는 걸 보고 파주운정 지역의 방어 소비량이 이 정도 수준이었나 싶어 내심 놀랐다.

우리 동네뿐이랴. 지금 온 나라가 방어 열풍이다. 너도나도 찾다 보니 방어 값이 껑충 뛰었다. 신문에는 제주 방어가 풍년이라 위판가가 작년보다 떨어졌다는데, 우리 동네 횟집 주인 말로는 방어 가격이 더 올랐다는 것이다. 뉴스에는 동해 방어가 풍작을 이뤄 제주 방어의 판로가 위축됐다는데, 미사리 횟집에 동해 방어가 없어서 인천항으로 들어온 제주 방어를 사서 쓴다니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를 일이다. 에라, 아무려면 어떤가. 방어가 돈을 물고 다니는 고급 횟감이 된 덕에 옛날엔 제주도나 가야 맛볼 수 있던 겨울 방어를 집에서 전화 한 통으로 맛볼 수 있으니 그것으로 감사할 일이다.

대방어 기준 5㎏에서 8㎏으로 상승

방어 열풍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선회 기호가 많이 달라졌다. 과거엔 광어나 돔처럼 식감이 좋은 흰살생선만 찾았는데 지금은 풍미가 좋은 붉은살생선의 인기가 높아졌다. 생선회 소비량이 늘면서 회맛의 안목도 높아지고 기호도 다양해진 덕이다.

특히 방어의 위상 변화는 상전벽해 수준이다. 옛날엔 방어를 살이 무르고 느끼하다고 잘 먹지 않았다. 지금도 남해안에선 방어가 큰 인기가 없다. 방어의 최대 소비지역은 수도권이다. 왜 남쪽 바닷가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 방어가 서울에선 고급 횟감이 되었나. 그 이유는 중방어와 대방어, 여름 방어와 겨울 방어의 맛 차이 때문이다.

방어는 크기와 계절에 따라 맛의 차이가 극명한 물고기다. 원래 방어는 5㎏을 기준으로 중방어와 대방어로 나눠 가격 차이를 뒀다. 작으면 맛이 없고 클수록 맛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방어의 기준이 8㎏이 되었다. 사람들이 점점 대방어만 찾다 보니 수도권 횟집에서 특대방어만 주문했고 그래서 8㎏이 새 기준이 된 것이다. 하지만 대방어라도 여름에는 가격이 형성되지 않는다. 여름 방어는 살이 푸석푸석하고 방어사상충이라는 벌레가 있어서 잘 먹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방어는 전국에서 잡히지만 겨울철에 대형급이 많이 잡히는 제주도 방어만 상품화했고 중소방어가 주로 어획되는 남해에선 여전히 ‘방어는 맛없는 물고기’다. 올겨울 제주 방어 어획량이 늘었다는 보도가 사실인데도 서울에서 받는 제주산 대방어 값이 오른 이유는 작년보다 방어 씨알이 잘아져서 돈이 되는 대방어 어획량은 오히려 줄었기 때문이다.

제주 방어의 위상에 최근 도전장을 내민 것이 동해 방어다. 동해에선 과거 중방어나 소방어만 잡혔는데 몇 년 전부터 10㎏ 안팎의 대방어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동해 먼바다의 수중산 왕돌짬에서 제주에서도 보기 드문 20㎏짜리 방어가 지깅(배에서 하는 루어낚시의 일종)에 잡히기도 했다. 어부와 낚시인들은 해수온이 상승하면서 대방어가 동해까지 유입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새로 주목받는 동해 방어

동해 방어가 주목받으면서 새로운 논쟁거리가 생겼는데, 제주 방어와 동해 방어 중 어떤 게 더 맛있냐는 거다. 실거래가는 동해 방어가 조금 더 비싸다. 그런데 그게 맛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생선의 가격은 맛보다 희소성이나 유통비용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동해 방어를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맛 논쟁에 끼어들 자격은 없지만 지금껏 지켜봐온 여러 지역별 맛 논쟁은 결국 ‘내 고장의 것이 가장 맛있다’는 주장이었다. 제주 사람들은 제주 방어가 맛있다고 하고 동해 사람들은 동해 방어가 맛있다고 하는데 제주 사람들이 동해 방어를 먹어봤을 리 없고 그건 동해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생선회의 맛은 조업시기, 영양상태, 운송기간, 요리사의 솜씨, 먹는 사람의 공복감 등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달라지므로 딱 한 번 먹어보고 어떤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없다. 특히 방어는 무리를 지어 대양을 회유하는 물고기라서 10월에 동해에 나타났던 어군이 12월에 제주도로 내려갈 수 있다. 또 최근에는 울진에서 잡은 중방어를 통영 가두리에서 대방어로 키워 출하하는데, 이 방어는 동해 방어인가 남해 방어인가? 우럭이나 감성돔처럼 한 지역에 터 잡고 사는 고기라면 몰라도 방어, 갈치, 고등어 같은 회유어에서 지역별 맛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방어와 혼동되는 부시리의 맛

맛 논쟁이 나왔으니 방어 얘기에 꼭 따라다니는 부시리도 짚어보자. 방어와 부시리는 어부들도 혼동할 정도로 똑같이 생겼다. 둘 다 대형종으로 최대 30㎏ 이상 자란다. 맛도 비슷하다. 논란은 방어와 부시리 중 어떤 게 더 맛있냐는 거다. 그런데 이 논쟁은 겨울에만 벌어진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부시리가 더 맛있다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다만 겨울이 오면 “방어가 오히려 더 맛있어진다” “무슨 소리냐 그래도 부시리가 낫다”는 설전이 오간다. 나는 양쪽을 다 먹어봤는데, 입맛에 지조가 없는지 방어를 먹을 땐 방어가 더 맛있는 것 같고 부시리를 먹을 땐 부시리가 더 맛있는 것 같다. 결국 취향의 차이일 뿐 다 맛있다. 특히 항간에 떠도는 ‘여름 부시리, 겨울 방어’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부시리가 가장 맛있는 계절도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도양단 식의 구분과 서열 매기기를 너무 좋아해서 탈이다.

확실한 건 봄에서 가을엔 부시리가 비싸지만 겨울에는 방어가 더 비싸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겨울이 오면 횟집에서 부시리를 방어라고 속여서 팔기도 한다. 얼마 전엔 술먹방 유튜브 ‘애주가TV’에서 대방어 안주를 시켰는데 부시리를 배달했다고 해서 논란이 일었다. 알고 보니 대방어가 아닌 중방어를 보낸 것이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방어를 주문했는데 부시리가 왔다면? 부시리가 더 맛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겨울 방어를 맛보고 싶어서 시켰으니 방어로 바꿔달라고 했을 것이다.

방어를 우리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본인이다. 일본 사람들은 참치, 고등어, 전갱이 같은 붉은살생선을 초밥의 재료로 즐겨 먹는데 그중에서도 겨울엔 방어를 최고로 친다. 일본에선 세밑에 온 가족이 모여 방어회를 먹는 게 일종의 전통 풍습이다. 재미있는 건 일본에서도 평소엔 부시리가 비싸지만 겨울엔 방어가 더 비싸진다는 것이다. 12월이면 일본 낚시인들이 방어를 낚으러 제주도로 많이 온다. 가파도나 마라도에서 지깅으로 낚는데 “일본 방어보다 제주 방어가 더 힘이 좋고 맛도 좋다”고 칭찬한다. 한국 방어의 맛을 음미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니 듣기 좋으라고 하는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드디어 비닐랩을 벗겼다. 그래, 이거지! 겨울만 되면 달라지는 방어의 때깔! 월동에 대비해 불포화지방을 축적하여 퍼석퍼석하던 살이 탱탱해지고 붉은살에 살짝 분홍기가 돈다. 뱃살에는 벌써 마블링 무늬가 생겼다.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방어는 최고의 맛을 품는다. 여기엔 아무런 인공의 맛이 가미되지 않았다. 오롯이 자연의 선물이다. 육류와 생선이 다른 점은 육류는 최고급이라도 결국 사료로 키운 것이지만 생선은 가장 싼 것도 자연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방어를 맛있게 먹기 위해 지켜야 할 주의사항이 있다. 상추나 깻잎에 회를 싸지 말 것. 잘게 다진 뼈회(세꼬시)나 비린내가 강한 민물고기 회를 먹을 때는 쌈을 싸서 먹기도 하지만, 회 본연의 맛이 채소 맛에 가리기 때문에 바닷고기 회는 그냥 먹는 것이 좋다. 하지만 채소가 전혀 없으면 느끼할 수 있는데 그때는 양파를 썰어서 조금씩 곁들여 먹으면 좋다.

지난 11월 진도 먼 바다 수중 암초인 복사초에서 낚인 12㎏·1m급 방어(위)와 방어 내장탕. ⓒphoto 낚시춘추
지난 11월 진도 먼 바다 수중 암초인 복사초에서 낚인 12㎏·1m급 방어(위)와 방어 내장탕. ⓒphoto 낚시춘추

쌈간장 곁들여야 최고의 맛

방어회는 두툼하게 썰어야 식감이 살아난다. 등살은 8~10㎜, 뱃살은 6~8㎜ 두께가 적당하다. 그리고 작게 토막 내지 말고 넓적넓적하게 썰어야 맛있다. 입에 넣으면 회가 혀를 완전히 덮을 정도로 넓어야 씹을 때 침샘이 사방에서 분비되어 더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대방어는 살점이 커서 중방어보다 더 넓게 썰어내기 편하다. 등살은 붉은색인데 근육질이라 담백하고, 뱃살은 연분홍색인데 지방질이라 고소하다. 등살과 뱃살을 번갈아 먹으며 각각의 맛을 음미해본다.

소스는 일본식 회간장과 한국식 초고추장이 다 어울린다. 하지만 나는 제주도에서 쌈간장에 방어회를 찍어 먹어본 후로 늘 그것을 즐긴다. 쌈간장은 곤드레밥이나 콩나물밥에 부어서 비벼 먹는 그 간장이다. 의외로 붉은살생선과 잘 어울린다. 간장에 파, 마늘, 청양고추, 고춧가루, 참기름을 넣고 듬뿍 찍어도 짜지 않게 매실액으로 간을 조절한다. 방어회를 쌈간장에 살짝 적신 다음 뒤집어서 그 위에 고추냉이와 초고추장을 찍어서 올려준다. 식힌 밥알을 조금 얹어서 먹으면 초밥을 먹는 듯한 달콤한 뒷맛도 느낄 수 있다. 뱃살 한 점을 둥글게 집어서 밥알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입에 넣고 천천히 씹어보았다. 행복하다! 이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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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갑 낚시칼럼니스트·전 낚시춘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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