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는 사람이 무척 소박하고 정다웠다. 50세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는 청년 같은 모습이었다. 영화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 그와의 인터뷰가 끝난 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전 회장 필립 버크는 필자에게 “봉이 참 훌륭하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올해 칸영화제서 영화 ‘기생충’으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지금 미국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다. ‘기생충’이 외국어영화와 감독 및 각본상 부문에서 2020년도 골든글로브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LA영화비평가협회도 ‘기생충’을 올해 최우수작품으로, 봉준호와 송강호를 최우수 감독과 최우수 조연으로 뽑았다. ‘기생충’은 이 여세를 몰아 내년 1월에 발표될 오스카상 후보에서도 외국어영화상은 물론이고 작품, 감독 및 각본상 후보에도 오를 가능성이 있다. ‘기생충’은 오스카상 국제극영화(과거 외국어영화)와 주제가상 예비후보에는 오른 상태다.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는 사실 ‘기생충’ 미국 개봉 1주일 전인 지난 10월 4일 LA 비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그동안 ‘기생충’의 반응을 지켜보느라 아껴뒀던 내용인데 연말 미국의 봉준호 붐을 타고 뒤늦게 인터뷰 내용을 전한다.

봉준호 감독과 필자는 서로 구면이어서 인터뷰장에서 반갑게 포옹했다. 가끔 영어를 구사했지만 통역을 대동하고 나온 봉 감독은 인터뷰 내내 유머를 섞어가며 활기차고 자세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그가 자랑스러웠다.

- 영화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온 것인가. “나도 대학생 때 영화의 기우처럼 큰 저택에 사는 부잣집 중학생 아들의 가정교사로 일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2층에 있는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사우나를 구경시켜줬는데 그걸 보면서 남의 사생활을 완전히 엿보는 기분을 느꼈었다. 마치 부잣집에 침투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 친구들을 하나씩 데리고 이 집에 침투하면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하고 상상을 했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아이디어가 됐다.”

- 영화는 한국의 경제적 계급구조에 관한 것이기도 한데. “처음에 김씨네가 부자인 박 사장 집에 들어갔을 때는 자기들도 부자가 되겠다는 의도는 없었다. 다만 직업을 갖기 위해서였다. 김씨네는 게으른 패배자들이 아니고 완전히 정상적이요 영리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직업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영화 마지막에 기우는 ‘내가 아버지를 위해 이 집을 살 거야’라고 말한다. 참 서글픈 말이다. 이미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계산을 해봤는데 평균 월급을 받는 젊은이가 그 같은 집을 사려면 547년이 걸린다. 그래서 그 대사를 쓸 때 매우 슬프고 착잡한 심정이었다. 이것이 전 세계적인 사회현상이라고 생각한다.”

- 왜 김씨네는 막노동이라도 해서 정직하게 살 생각은 안 하고 거짓과 기만으로 편히 살려고 하는가. “김씨네가 처음부터 부잣집에 침투할 완벽한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니다. 그냥 기우가 처음에 가정교사로 그 집에 들어가다 보니 안락한 기회가 자기 앞에 펼쳐져 있었던 것뿐이다. 김씨네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다만 자기들 앞에 제공된 기회에 쉽게 유혹당했을 뿐이다. 이 영화에는 악인이 없다. 다만 정상적인 사람들도 벼랑에 몰리다 보면 이런 유혹에 쉽게 빠지게 마련이다. 나는 영화에서 악인들이 아닌 정상적인 사람들도 비극적 사건에 휘말려들 수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 황금종려상은 어디에 보관했는가. 보험이라도 들었는지. “부엌과 거실 경계에 놔뒀다. 내 집은 안전해 보험에 들 필요가 없다.”

- 영화는 사회비평 드라마요 블랙코미디인데 두 장르의 균형을 어떻게 맞췄는가.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데 대답을 모르겠다. 난 그런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장르를 섞는 것이 2시간 내내 한 형태로 진행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 그것이 장르이건 분위기이건 간에 난 여러 가지 요소를 동시에 엮는 것이 편하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영화란 감정에 바탕을 둔 것이다. 감정이란 늘 복합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 칸영화제 대상을 받고 이어 여러 영화제에서 호응을 얻었는데. “처음 칸에 영화를 제출했을 때 매우 초조했다. 이 영화는 영어로 된 ‘설국열차’와 ‘옥자’에 이은 첫 한국어 영화다. 따라서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또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칸에 이어 호주와 독일, 캐나다 등 모든 곳에서 다 같이 호응을 받았다. 그제야 안심이 됐다. 그리고 왜 전 세계의 반응이 비슷할까 하고 생각을 했다. 그 답은 부자와 빈자의 얘기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같은 반응을 보고 우리가 현재 하나의 거대한 자본주의 국가에 살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우리는 매일 자본주의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3일 LA 비벌리힐스 힐튼호텔에서 열린 ‘2019 할리우드 필름 어워즈’에서 필름메이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3일 LA 비벌리힐스 힐튼호텔에서 열린 ‘2019 할리우드 필름 어워즈’에서 필름메이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 ⓒphoto 뉴시스

- 영화를 만들 때 별 고생은 없었는가. “난 운이 좋아 한국에서 영화를 찍을 때 영화계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전체 촬영기간은 74일이었는데 제작자와 투자자들로부터 적극적인 후원을 받았다. 그들은 제작 후반 작업 땐 전혀 간섭을 안 했다. 완전히 자유로워 책임감이 더 막중했다. 이런 지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관객들에게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 여행할 때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가. “거의 하루 종일 뭘 먹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 식당에 관해 많이 조사한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나 혼자 조사한다. 세트에 있을 때도 차려놓는 점심이 매우 중요하다. 배고픈 사람은 나이기 때문에 먹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 영화의 인물들을 모두 처음부터 구상했는가. “첫 아이디어는 2013년에 구상했다. 그 후 4년간은 영화의 기본 줄거리를 생각하고 썼다. 14쪽의 줄거리를 쓴 것이 2015년이다. 그땐 김씨네와 박 사장네 두 가족밖에 없었다. 세 번째인 박 사장네 지하실의 두 부부는 각본이 완성되기 3개월 전에 착상했다. 그들로 인해 영화의 후반부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그들을 착상하고 큰 행복감을 느꼈다. 그 두 부부에 대한 아이디어는 운전을 하다가 차를 멈추고 메모를 했다. 각본을 쓸 때 뜻밖의 새 인물들이 떠오를 때가 가장 행복하다.”

- 각본을 쓸 때 감정적이 되는가. “좀 쑥스러운 얘기지만 난 각본을 쓸 때 매우 감정적이 된다. 혼자서 하는 작업으로 보통 밤늦게 글을 쓰는데 그때 매우 감정적이 되곤 한다. 새벽 2시께 대사를 쓰면서 내가 쓴 글을 보고 울기도 한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그 대사를 읽어보면 실망이 크다.”

- 아시안 감독들 중에 누굴 좋아하는가. “난 일본 공포영화의 거장 기요시 구로사와의 열렬한 팬이다. 한국 감독으론 1960~1970년대 활약하다 작고한 거장 김기영을 좋아하는데 ‘기생충’은 그의 영화 ‘하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DVD로 나왔으니 모두 보기를 권한다. 대학생 때는 대만 감독인 에드워드 양과 호우샤오셴의 열렬한 팬이었다. 대학생 때 시네마클럽에서 많은 우수한 아시안 영화들을 공부했다.”

- 몇 살 때 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했는가. “11살이나 12살 때였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때 결심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영화광으로 지나칠 정도로 많은 영화를 봤다. 그땐 물론 한국에 인터넷이나 DVD가 없어 TV로 나오는 영화들을 봤다. 난 7살 때부터 알프레드 히치콕의 열성팬이었다. 그의 서스펜스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내게 거의 큰 타격과 같은 충격을 줬던 또 다른 영화가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공포의 보수’다. 8살 때 TV로 본 기억이 나는데 영화를 보면서 너무나 불안하고 긴장이 돼 화장실에도 갈 수가 없었다. 이들 영화에 서서히 매료당하면서 과연 카메라 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며 누가 이런 작품들을 만드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 생각에 잠도 못 잤다. 그리고 여러 감독들의 이름을 암기해가면서 나도 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 당신 영화의 여자들은 강한 반면 남자들은 다소 무기력하게 보이는데. “내 영화 속 남자들이 종종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때론 바보 같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다. 어쩌면 그들은 날 닮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박 사장 집 지하실의 부부만 해도 난 그들을 부부라기보다 보호하고 보호받는 모자처럼 묘사하려고 했다. 가난한 김씨네도 마찬가지다. 그들 가족 중에 가장 영리한 사람은 딸인 기정이다. 그리고 기정의 어머니도 육체적으로 매우 강한 운동선수 출신이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내겐 가장 자연스러웠다. ‘옥자’의 경우에도 어린 소녀 미자가 비록 작기는 하지만 아주 강하고 거침이 없다. 난 그런 느낌을 즐긴다.”

- 이 영화는 일종의 주인과 하인들을 상징하는 ‘위층, 아래층’ 얘기인데 한국에서의 빈부 격차는 얼마나 심한가. “한국은 지금 줄기차게 발전하는 부자 나라다. 나라가 부해지면 부유해질수록 상대적으로 빈부 격차도 더 큰 폭으로 커지게 마련이다. 못사는 사람들은 따라서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가 다 겪는 현상이다. ‘위층, 아래층’ 얘기를 했으니 말인데, 이 영화를 김씨네 가장(송강호 분)의 견해에서 고찰하자면, 위층으로 올라오려고 시도했으나 아래층에 처박히고 만 남자와 그를 아래층에서 빼내주겠다고 약속하는 아들의 얘기다. 그러나 과연 아들이 약속을 지키게 될지는 심히 의문이다.”

-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을 좋아하는가. 히치콕의 가장 훌륭한 영화는 어느 것인가. “‘시민 케인’은 매우 아름답고 훌륭한 영화이나 내가 좋아하는 웰스의 영화는 ‘터치 오브 이블’이다. 내가 좋아하는 히치콕 영화는 한두 편이 아니다. ‘버티고’ ‘스트레인저스 온 어 트레인’ ‘사보타지’ ‘39계단’ ‘사이코’ 그리고 그의 생애 후기 영화 ‘프렌지’ 등이 다 좋다. 난 히치콕 얘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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