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주말 동안 내리 도올 김용옥의 책을 3권 읽었다. 인식과 지혜를 넓혀주는 책들이다”라고 말했다. 도올은 누구보다 열렬한 대통령 옹호자다. 따라서 저자나 그 책들의 내용을 지적하며 “그런 책들이나 읽나?”라는 혹평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도자가 어렵사리 짬을 내어 이런저런 책을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아예 이참에 독서를 즐긴다는 대통령이 연말연초에 읽어볼 만한 책을 소개해보면 어떨까 싶다. 마침 마땅한 신간이 하나 있다. 바로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강남좌파2’(2019)다.

강남좌파라는 말은 다소 비아냥조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제는 쿨하게 “상위 20%에 속하는 좌파는 다 강남좌파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재정의다. 이 기준에 따르면, 현 집권세력의 중추인 386세력은 예외 없이 강남좌파다. 따라서 이 책은 대통령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한나절만 시간을 내면 충분한 부피다.

저자는 이미 전작 ‘강남좌파’(2011)를 통해 강남좌파 문제가 엘리트주의 문제라고 진단한 바 있다.(본지 제2572호 본란 참조) 민주화 이후에는 대부분 ‘있는’ 자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강남우파가 해먹든 강남좌파가 해먹든’ 정치가 그들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것이 전작의 결론이다. 이로 인해 대다수 중하층은 아예 정치에서 배제되고 말았다.

조국(曺國) 파동을 겪으며 구상된 ‘강남좌파2’는 단순한 현상 분석을 넘어 그 대안까지 제시한다. 강남좌파가 지금처럼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1 대 99 사회를 부르짖기만 하면 개혁은커녕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그것이 이 책에 ‘왜 정치는 불평등을 악화시킬까’라는 부제를 붙인 이유다. 그 대안으로, 저자는 사회를 20 대 80으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그래야 강남좌파도 자신에 대한 솔직한 성찰과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강남좌파는 젊어서부터 1 대 99 사회론을 신봉했다. 오로지 상위 1%만 문제다. 99%는 피해자다. 강남좌파 자신도 피해자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불평등이 아주 심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상위 1%에 대한 소득집중도는 그리 높지 않다. 반면 차상위 9%에 대한 소득집중도가 유독 높다. 즉 상위 1%보다 차상위 9%에 대한 소득집중이 더 문제다. 조금 늘려 잡자면 상위 20%에 대한 ‘과도한’ 소득집중이 불평등의 핵심 요인인 것이다.

더구나 상위 1%와 바로 아래 상층은 겉으론 싸우지만 암묵적으로는 협력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규직 노조와 자본이 연대해서 하청과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구조로, 1% 대 99%가 아니라, 20%가 80%를 착취하는 사회다.” 더구나 우리는 무턱대고 기대수준이 높아, 상위 10~20% 안에 들면서도 상당수가 빈곤하다고 불평한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무턱대고 1 대 99만 외치면, ‘가짜’ 피해자만 양산되고 ‘진짜’ 개혁과제는 물밑으로 잠복되고 만다.

그럼에도 강남좌파는 민노총 등 상위 10%와 연대하여 최상위 1%를 공격하는 데 골몰한다. 이로써 그들은 겉으로 선명하게 정의로운 척하면서, 속으로는 ‘피해자’인 자신들의 기득권은 고스란히 고수한다. 그들의 행동은 한마디로 ‘약자 코스프레’이자 ‘진보 코스프레’일 뿐이다. 더구나 상위 1%의 길목을 든든히 지켜주는 방파제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사실 강남좌파는 수사적인 진보를 전투적으로 드러내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1 대 99 사회론은 바로 그런 투쟁적 기질과도 잘 어울린다. 그들은 의욕에 충만한 나머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세상’ 중심으로 사고한다. 실제로 정의롭기보다 정의롭게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정의를 현실적으로 정착시키는 데에는 무관심하고 또한 무능하다.

또한 그들은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대의와 조직보위를 절대시하는 습성을 뿌리 깊게 체화했다. 조국 사태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조국 문제를 과도한 진영논리로 포장하다가 낭패를 당했다. 그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검찰개혁에 정권의 명운을 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바람에 정작 절실한 민생개혁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실제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대폭인상 등은 여전히 불안하게 표류하고 있다. 이런 민생개혁은 결코 민주화투쟁처럼 할 수 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만 해도 정규직의 양보나 희생 없이 무조건적 정규직화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선악의 문제도 아니요, 승패의 문제도 아니다. 다양한 이해충돌의 문제요, 승패를 초월하는 공존의 문제다. 그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근저에는 뿌리 깊은 도덕적 우월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민주화투쟁에서 시련과 희생을 감수했다. 당연히 도덕적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그러나 동시에 “실패의 경험 없는 승리에 대한 확신,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강고한 투쟁력, 타협하기 어려운 상명하복의 교조적 문화, 다른 목소리를 포용하지 않는 적대적 계파주의”가 자리 잡았다.

특히 정·관계에 진출한 386은 대부분 막강한 학벌자본을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인맥의 혜택을 누리며, 예외 없이 강남좌파로 입신하게 되었다. 그들의 도덕적 자부심은 민주화투쟁에는 강력한 무기였으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시대에는 상대와의 타협을 죄악시하며, 정치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중하층을 배려하는 (민생) 정책들은 보수파와의 타협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인데도,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힌 진보주의자들은)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할 그런 수고와 고생을 건너뛰고 상대편이 아닌 대중을 향해 ‘저들은 나쁜 사람들이래요’라고 폭로하는 데만 열을 올린다.… 그들은 타협을 보수화 또는 우경화로 보거나, 추악하게 생각하는 고질병을 앓는다.”

현 집권세력의 핵심은 386 강남좌파다. 누가 보아도 그들은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다. 만약 그들이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우리 사회를 1 대 99의 틀로 인식하는 한, 개혁대상은 1%에 불과하다. 자신을 비롯하여 상위 10~20%는 ‘과도한’ 이익을 누리면서도 여전히 피해자로 남게 된다. 그러면서 암묵적으로 1%와 공모관계를 맺지만, 이런 현실은 애써 외면한다. 결국 피해자 코스프레가 지속되고 개혁은 오로지 재벌개혁으로 쪼그라들고 만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무엇보다 인식의 대전환이 절실하다. 그것은 1 대 99의 틀을 버리고 20 대 80의 틀로 사회를 바라보는 일이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이 개혁의 주체이지만, 동시에 가혹한 자기희생을 감당해야 할 개혁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솔직한 자기성찰이 가능하다. 더구나 그동안 물밑에 잠복되었던, 민생과 치명적으로 관련된 생동적인 개혁과제들이 선명하게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재벌개혁은 물론, 공공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등등이다.

20 대 80 사회에서는 재벌은 물론, 강남좌파든 강남우파든 민노총이든 공직사회든 예외 없이 개혁의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지금처럼 1 대 99 사회 운운하며 재벌 욕이나 하고 달콤하게 현실에 안주하면, 언젠가 터질 폭탄만 점점 키울 뿐이다.

“지난 주말에 강준만 교수의 ‘강남좌파2’를 읽었다. 인식과 지혜를 넓혀주는 책이다.” 대통령의 이런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상상해본다. 민초들에게 이보다 더 큰 새해 선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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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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