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미술관 어검당 소장 도검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경인미술관 어검당 소장 도검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청 태종 홍타이지(皇太極·1626~1643)는 1636년 국호를 ‘후금’(1616~1636)에서 ‘청(淸)’으로 바꿨다. 1636년(인조 14년) 홍타이지는 조선을 침략해(병자호란) 조선에 ‘삼전도의 굴욕’을 안긴다. 현재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은 ‘청 황실의 아침’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3월 1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에서 단연 관심을 끄는 전시품은 청 태종 홍타이지가 전쟁터에서 사용했던 칼이다. 우리에게 굴욕을 안겼던 적의 수장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 칼을 사용했을까. 실제 전문가들은 조선 후기 청과 조선, 그리고 이웃 일본의 검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다른 특징을 키워온 것으로 지적한다.

2013년 12월부터 네이버에 연재되기 시작한 웹툰 ‘칼부림’(작가 고일권)은 이런 조선 검의 특징과 정체성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조선의 칼이 같은 시기 청과 일본의 검과 어떻게 다른지가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17세기 초 인조반정에서 시작해 현재 이괄의 난(1624)까지를 다루었고 앞으로 병자호란까지 이야기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괄의 난에 참여한 주인공(함이)이 후금의 누루하치 호위병으로 들어가 앞으로의 스토리 전개에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칼부림’의 구독자는 10만명 정도로 꽤 인기 있는 웹툰에 속한다.

칼의 진화 홍타이지의 칼

칼은 싸움에 이기기 위해 변화 발전을 거듭해왔다. 죽고 사는 일을 결정하는 수단이기에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변해왔다고 볼 수 있다. ‘칼부림’의 고일권(35) 작가는 칼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칼로 공격을 해야 할 때가 가장 취약한 순간이다. 자기의 모든 것을 가져다 바쳐야 하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목숨을 내던지고 들어가야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이 곧 칼이다.”

고 작가는 재수 끝에 희망하던 대학 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했지만, 만화를 그리고 싶어 학교를 그만두고 웹툰을 그리기 시작했다. 군 복무 시 진중문고에서 빌린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며 머릿속으로 ‘칼부림’이라는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번 웹툰에서 인조반정 이후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것은 그 시대에 대한 나름의 통찰 덕분이다.

“당시는 국제정세가 냉혹하고 날카롭게 부딪쳤던 시대로 조선이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때였다. 가장 국력이 약하던 시대, 위기를 뛰어넘으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있던 시대였다.”

고 작가의 설명이다. 바로 이러한 시대를 통찰력 있게 담기 위해 제목을 ‘칼부림’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고 작가는 “당시 칼은 활보다 주력은 아니었지만 흔히 무력(武力)을 이야기할 때 칼을 간다고 하지 활을 당긴다고는 하지 않는다. 칼과 칼이 부딪치고 살과 뼈를 베는 작품 분위기에는 ‘칼부림’이라는 제목이 적절했다”고 했다.

호국검, 의검, 수양검, 신검

‘칼부림’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고증이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특히 칼 고증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조혁상(44) 홍익대 교양과 교수(경인미술관 어검당 수석연구원)의 자문을 바탕으로 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칼부림’에는 조선의 검뿐만 아니라 조선에 투항한 일본 ‘항왜(降倭)’의 검, 만주족 군사들의 검 등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지난 1월 7일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만난 조 교수는 “처음에는 세세한 디테일에서 문제가 있었다”며 “‘코등이(칼자루에서 손을 보호하는 장식)’와 손잡이, 칼집과 ‘띠돈(칼집을 회전시키기 위한 장식)’ 그리고 칼날의 형태가 작가의 자의적인 상상력에 의해 그려진 경우가 있어서 이를 바로잡았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성균관대를 다닐 때 한문학과의 명물이었다. ‘시대의 협객’을 자처하며 평소에도 칼을 둘러메고 다니면서 검술 수련에 전념했다. 오래전 공중파 방송에 출연해 전통 무술을 연마하는 모습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사학위 역시 조선 후기 도검(刀劍)에 대한 문학 작품 연구였다.

조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조선 도검의 이미지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나라를 지키는 호국검(護國劒), 사대부의 의로움을 상징하는 의검(義劒), 군자들의 정신수양 기물인 수양검(修養劒), 괴물들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신검(神劍) 등이다. 이 중 호국검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무사의 칼, 의검은 간신을 베고 악인을 징벌하는 사대부의 칼이다.

수양검은 올바른 정신을 수양하는 군자의 칼이고, 신검은 귀신과 괴수를 격멸하는 신성한 칼이다. 이러한 조선 도검의 이미지는 다양한 문학 작품 속에서 혼재되어 나타나는데, 무엇보다도 도검을 사용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것이 도검의 정체성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 사용자에 따라 도검의 효용성이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때로는 살상의 무기로, 때로는 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때로는 수신의 도구로 각각 다르게 쓰이게 된다는 것이다.

조 교수가 자문하고 있는 웹툰 ‘칼부림’은 정통 사극의 스토리 전개 방식을 따르고 있다. 지금까지는 인조반정 이후 이괄의 난을 다루었는데 왕을 내쫓으려는 쿠데타 세력도, 이를 진압하는 장수들도 모두 자신들이 의롭다고 이야기하는 점이 흥미롭다. 모두가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라고 주장한다. 서로 상대방을 향해 칼을 들었지만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의검’이고 ‘호국검’이라고 주장하는 격이다.

 ⓒphoto 웹툰 ‘칼부림’
ⓒphoto 웹툰 ‘칼부림’

일본 영향으로 예도에서 쌍수도로

조 교수에 따르면, 조선시대 검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용맹함의 상징이다. 칼 장식에 쓰이는 애자(睚眦)가 이를 보여준다. 애자는 용의 아홉 마리 새끼 중 피와 살육을 좋아하는 이무기를 뜻한다. 천성이 죽이기를 좋아한다. 조 교수는 “조선 칼의 특성을 많이 묻는데, ‘살상무기’라는 기본적 속성은 모든 칼이 동일하다”며 “전쟁을 치르면서 전략적 상황에 따라 살상력을 키우기 위해 형태가 변해왔다”고 지적했다.

조선 도검은 대체로 칼의 길이가 중국이나 일본보다 짧다. 한 손 사용을 기본으로 하되, 양손 사용도 겸할 수 있는 형태가 많았다. 대부분 날이 한쪽에만 있는 환도(環刀)를 썼기 때문에 조선의 칼은 흔히 환도라고도 불린다. 칼집에 달린 고리도 둥근 모양이었다. 또 칼을 찼을 때 칼집의 방향을 바꿀 수 있게 하는 패용(佩用) 장식인 ‘띠돈’도 사용됐다.

조선 검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손잡이와 날이 길어졌다. 본래 조선의 칼은 주력 무기가 아니었다. 활이 주력이었고 칼은 보조수단이었다. 오히려 주력 무기인 활을 사용할 때 칼을 차고 있으면 번거로웠다. 그래서 칼이 상대적으로 짧아졌다. 이는 백병전(白兵戰)에 특화되어 있던 일본의 검이 주력 무기로 대접받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런 조선의 칼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일본의 영향을 받아 길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선 전기에는 한 손으로 쓰는 ‘편수도’나, 한 손과 양손을 번갈아 쓰는 ‘예도’ 등이 주로 쓰였다.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양손으로 쓸 수 있도록 손잡이가 길어진 ‘쌍수도’가 함께 쓰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 조총이 보급되면서 다시 ‘쌍수도’보다 짧고 가벼운 ‘예도’를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 조 교수의 설명이다.

일본 도검 ‘하몬’ 무늬로 구분

웹툰 ‘칼부림’에서는 조선 환도가 17세기 일본도의 영향을 받은 모습이 잘 반영되어 있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쌍수도’가 등장하고, 손에서 칼이 잘 미끄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일본도 식의 칼 손잡이 매듭을 사용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작가는 일본도의 영향을 받은 환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작품 속 조선의 검을 예도보다 조금 긴 쌍수도의 느낌으로 그렸다고 했다.

조선의 도검은 형태상 단병기(短兵器)와 장병기(長兵器)로도 나뉜다. 쌍수도(雙手刀·전장 약 90~100㎝)와 예도(銳刀·약 80㎝), 서양의 샤브르처럼 날폭이 얇은 박도(薄刀·약 60~70㎝), 호신용 나이프인 단도(短刀·약 30~50㎝) 등이 대표적인 단병기로 분류된다. 날이 도신 양쪽에 있고 중국 도검처럼 한 손으로 사용하는 화식검(華式劒·약 80~90㎝)이나 지팡이나 횃대 형태인 호신 및 암살용 암장검(暗藏劒·약 80~120㎝)도 단병기에 속한다. 반면 길이가 약 180㎝ 내외인 장병기의 경우 군용 제식 무기인 월도(月刀)와 협도(挾刀), 민간에서 제작된 귀두도(鬼頭刀) 등이 포함된다.

일본 도검은 중세 이래 계속된 내전으로 인해 우리나라나 중국에 비해 실전 무기로서의 기능적 요소가 가장 발달한 편이다. 양손 사용을 기본으로 하는데 날이 하나인 칼이 주력이다. 웹툰에서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항복한 이른바 ‘항왜’들이 사용하던 일본도 ‘가타나’가 자주 등장한다. 가타나의 전체 길이는 1m 정도이고, 칼날 길이만 대략 70~80㎝이다. 가타나는 허리띠에 칼집을 끼워서 사용하는데 도검들이 보통 칼날을 아래로 향하게 착용하는 것과는 달리 가타나는 칼날이 위로 향하게 착용한다. 일본도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칼날에 나타나는 하몬이라는 무늬다. 담금질을 할 때 부위별로 다른 냉각속도를 가지며 생겨나는 일종의 경계선이다. 웹툰에 등장하는 일본도에도 이러한 하몬이 그려져 있는데, 작가는 조선의 환도와 일본도를 하몬으로 구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도검은 조선과 일본의 도검과는 어떻게 다를까. 중국 도검은 한 손 사용이 기본인데 양손을 사용하는 도검들도 존재했다. 허리에 거는 고리 형식으로 착용하므로, 칼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다소 불편했다. 만주족의 칼은 패도(佩刀·허리에 차는 칼)라고 많이 불렸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홍타이지의 실전 어용검을 보면 칼날 길이 75㎝, 날 폭 4㎝, 칼자루 길이 15㎝이고 한 손으로 쓰는 편수도이다. 칼에 파인 홈인 혈조가 있다.

‘부러진 칼’의 정신

조 교수에 따르면, 조선 칼의 정신은 강재항(姜再恒·1689~1756)의 ‘김응하전(金應河傳)’에 잘 그려져 있다고 한다. ‘김응하전’은 명나라의 요청으로 후금을 치기 위해 출병한 조선군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의 좌영장(左營將)이었던 김응하(1580~1619)의 행적을 다룬 작품이다.

“응하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음을 알고,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로 버드나무에 기대고서는 적 수십, 수백 명을 활로 쏘아 죽였다. 그러자 적이 감히 공격해 오지 못하고 에워싸고서 응하에게 활을 쏘아댔는데, 화살이 쏟아지는 것이 마치 고슴도치와 같았으나, 응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화살이 다하자 차고 있던 검을 빼어 들고는 적을 치기 시작하여 다시 수십, 수백 명을 죽였다.(중략) 그가 다시 검을 빼어 적을 쳤는데, 검이 모두 세 번이나 부러졌지만 응하는 반만 남은 검을 잡고서도 적을 향해 내리치니, 적들이 오히려 감히 가까이 올 수 없었다.”

이렇듯 ‘부러진 칼’을 잡고도 기죽지 않고 내리치는 것이 조선 무인의 정신이었다는 것이다.

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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