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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94호]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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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통신]‘페인 앤 글로리’ 출연 안토니오 반데라스

LA= 글·사진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안토니오 반데라스(59)는 선글라스를 끼고 인터뷰장에 나와 “멋지게 보이려고 검은 안경을 낀 것이 아니라 눈이 감염돼 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질문을 경청하면서 종종 큰 제스처를 써가며 악센트가 있는 발음으로 유머를 섞어 진솔하게 대답했다. 진지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현재 한국에서 상영 중인 ‘페인 앤 글로리’에 출연해 작년 5월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탔다. 이 영화는 ‘토크 투 허’와 ‘올 어바웃 마이 마더’ 같은 영화를 만든 스페인의 세계적인 명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자전적 얘기를 다룬 작품이다.
   
   - ‘페인 앤 글로리’를 만들면서 도전적이었던 점은 무엇인가. “현존하는 사람을 연기한다는 것은 언제나 도전적인 일이다. 특히 그 사람이 영화를 감독한다면 더 하기가 힘들고 그 사람이 친구일 경우는 더더욱 도전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은 큰 기쁨이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나는 알모도바르에 대해 긴장감을 느꼈는데 대립적인 것이라기보다 창조적 긴장감이었다. 영화에 나오면서 나는 왜 알모도바르가 이 시점에 이 영화를 만들려고 했고, 또 왜 나로 하여금 자신을 연기하게 하려는가에 대해 심각히 생각했다. 그래서 과거 배우로서 내가 가졌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백지에서 시작했다. 완전히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기 위해서였다.”
   
   - 영화에서 주인공이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키는데 당신이 직접 겪은 심장마비 경험이 연기에 어떤 도움이라도 됐는가. “배우란 자기 경험을 먹고사는 직업이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영화의 인물을 묘사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난 2년 반 전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수술을 받은 뒤 진실로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나를 배우가 되게 한 추진력 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술 후 나는 모든 것에 대해 매우 감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전에는 울지 않았는데 이젠 영화를 보면 걷잡을 수 없이 운다. 알모도바르가 즉각적으로 이를 파악하고 내게 과거의 남성적인 면을 보여주는 대신 감정적인 면을 수용해 역에 한껏 이용하라고 조언해줬다. 그 덕분에 과거와는 달리 새 인물을 표현할 수 있었다.”
   
   - 당신은 향수를 만들어 파는데 그 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23년 전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다가 스페인으로 돌아갔을 때 과거 연극무대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들이 내게 향수 제조·판매를 함께하자고 건의했다. 처음에는 전연 그럴 의도가 없다고 말했는데도 그들이 하도 졸라 ‘그럼 너희들이 향수를 만들면 내 이름과 얼굴을 빌려주겠다’고 응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우정에서 시작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일이 크게 성공했다. 이젠 나도 이름과 얼굴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 향수를 선전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우리 것 외에 다른 제품은 쓰지 않는다.”
   
▲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연기한 스페인 명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photo 뉴시스

   - 오는 8월에 60세가 되는 소감은. “기분 좋다. 마침내 그날이 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난 내 생애와 내가 한 일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진짜 좋은 일은 그날부터 올지 모른다. 난 죽을 때까지 늘 진짜 좋은 일은 앞으로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병적인 낙관론자이다. 59세 생일 때는 친구 20명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보냈다.”
   
   - 당신이 영화에서 알모도바르 역을 한 것처럼 다른 배우가 당신을 연기하는 것을 보고 싶은가. “내 삶이 얘깃거리가 되는지 모르겠다. 좋은 배우들은 많지만 난 내 삶이 그들에 의해 표현될 만큼 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렇게 지속되기를 바란다. 난 내 삶이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극적이길 원치 않는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만 생기길 바란다. 난 요즘 연극에 몰두하고 있다. 그리고 심장마비 결과에 대해 신경을 쓴다. 연극을 위해 남부 스페인에 극장을 하나 샀다. 거기에 시간과 돈을 쏟아붓고 있다. 예능학교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거기서 공부한 몇몇 학생들은 벌써 무대에 섰다. 내가 배우로서 얻은 경험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는 일은 아주 만족스러운 것이다. 그것이 내 생애 일어난 일들 중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영화를 비롯해 무엇이든지 내 흥미를 자극하지 못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 당신은 피카소 역도 했는데 그것과 페드로 알모도바르 역 중 어느 것이 더 하기 힘들었는가. “둘 다 복잡한 역으로 서로 다르다. 피카소 역을 한 것이 알모도바르 역을 해내는 데 좋은 훈련이 됐는지도 모른다. 피카소 역은 그의 삶을 충실하게 따른 것인 반면, 알모도바르 역은 그가 경험한 모든 것을 반드시 사실 그대로 표현한 것은 아니었다. 알모도바르 역은 사실 외에도 그가 하고 싶어 했지만 하지 못한 말이나 행동을 첨가했다. 영화에서 궁극적으로 알모도바르가 하고자 하는 일은 가족과 어머니, 친구와 연인들과의 화해다. 우린 모두 등에 비참함과 위대함, 그리고 고통과 영광을 짊어지고 다니는데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알모도바르는 영화를 만들면서 무척 감정적이 되었다. 이 영화는 나와 알모도바르의 여덟 번째 작품인데 그 어느 영화보다 더 심오하고 감정적이며 복잡다단한 경험을 했다.”
   
   - 영화에서 남자 애인과 격정적인 키스를 한 경험은 어땠나. “나는 역을 맡을 때마다 나 자신과 타협을 모색한다. 우린 영화에서 폭력과 피와 범죄가 묘사되는 것은 용인하면서 동성애자들이 키스하는 것에 대해선 대경실색을 하는데 그런 도덕성이란 참으로 위선적이다. 난 동성애자 역을 할 때마다 그들에 대한 존경과 위엄 그리고 이해를 갖고 표현하려고 한다. 우린 동성애를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그런 연기를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 장면을 해내는 것보다는 내가 맡은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에 대해 더 신경을 쓴다.”
   
▲ 영화 ‘페인 앤 글로리’의 한 장면.

   - 어렸을 때의 삶은 어땠는가. “극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좋았다. 아주 어렸을 때 독재정부하에서 자랐는데 그때는 잘 몰랐다. 내가 어렸을 때 자란 고장은 세상일에 대해 무지하다시피 한 곳이었다. 내가 15세 때 독재자 프랑코가 죽었다. 그때서야 세상 돌아가는 일과 우리가 얼마나 자유를 속박받으면서 살았던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페인이 민주화되어가는 과정과 함께 나도 어른이 되는 과정을 밟았다. 좋은 어머니와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내 어릴 때 삶은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은 평온한 것이었다.”
   
   -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가. “특히 어머니의 나에 대한 기대를 생각하곤 한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내전의 끔찍한 참상을 보고 자라 공포에 시달리면서 살았다. 그래서 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나도 안전한 직업인 은행원이 되길 바랐다. 주말에는 쉬고 아내와 함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휴가 때면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어머니의 꿈이었다. 난 그런 바람을 잘 이해한다. 그러나 난 나대로의 꿈을 추구했다. 그래서 나에 대해 서로 다른 꿈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와 맞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나온 영화 ‘에비타’가 런던에서 개봉됐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레드 카펫을 걸으면서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기뻤다. 내 부모들은 그런 만족과 행복을 지닌 채 세상을 떠났다.”
   
   - 심장마비로 인해 수술을 받은 뒤 삶에 어떤 변화라도 왔는가.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난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직 죽음만이 확실한 것이고 나머지는 다 상대적이다. 죽음처럼 확실하다는 세금마저도 그렇다.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때 난 ‘아이고 하느님, 이젠 죽는구나. 이제 그만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나를 놓아버리면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감정에 대항해 다퉜다.”
   
   - 당신이 마드리드에 살던 1980년대 초는 알모도바르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때이자 스페인에 민주주의가 꽃피기 시작할 때인데 그 시절이 지금과 어떻게 다른가. “그 당시는 정치인이나 영화인들이 모두 과거의 잘못을 용서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노력할 때였다. 과거를 청산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린 그때보다 더 혼돈된 삶을 살고 있다. 스페인의 문제는 비단 스페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스페인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을 표방하고 있다. 사람들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좌냐 우냐 극단적인 것을 선택하고 있다. 우린 중간을 잃고 있다. 모든 것을 새로 건설하려던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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