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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94호] 2020.02.10

라파엘로 사후 500년… 밀라노서 부활한 르네상스 정신

▲ 라파엘로의 초기 대표작 ‘성모 마리아의 결혼식’.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에 전시 중이다.
이탈리아 북부의 밀라노는 속세의 천국이라고 할 만하다. 패션이나 음식에 관한 한 이탈리아 최고의 도시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시각에서 즐기던 밀라노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다른 면모로 눈에 들어온다. 최근의 관심사는 이탈리아 공산당과 파시즘의 행적이다. 흥미롭게도 밀라노는 이탈리아 공산당과 파시즘의 원조 격인 도시다. 문화와 지성이 번뜩이는 부자 도시가 공산당과 파시즘의 본거지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우리 식으로 하면 ‘강남좌파 증후군’이라고나 할까? 밀라노 곳곳에 드리워진 ‘역사의 코드’를 통해 공산당과 파시즘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이 쏠쏠한 재미다.
   
   
   고향 우르비노 비롯 세계 곳곳서 특별전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 사후 500주기 이벤트는 무솔리니의 행적을 훑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소식이다. “무솔리니는 항상 무식하게 그려진다. 500년 만에 ‘부활한’ 라파엘로에게 무솔리니 초상화를 성화 속 인물처럼 그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카페에서 만난 한 이탈리아인이 던진 말이다. 무솔리니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히틀러처럼 완전히 배척하지도 않는다는 80대 노인이다. 처음에는 지난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사후 500주기’와 혼동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젊든 늙었든 나이만 보고 상대를 평가하는 것은 편견의 극치다. 바로 다음날 이탈리아 신문을 보고서 반성해야만 했다. 노인의 말대로 전 세계 곳곳에서 사후 500주기 기념 라파엘로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 아닌가. 라파엘로 고향인 우르비노(Urbino)에서부터 로마, 워싱턴, 보스턴, 베를린, 런던에서도 사후 500주기 특별전이 예정돼 있다고 한다. 밀라노의 경우, 비디오 특별전과 더불어 라파엘로 이벤트도 이미 진행 중이라고 한다. 곧바로 무솔리니에서 라파엘로로 방향을 틀었다.
   
   ‘장르의 서열(Hierarchy of Genres)’.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19세기 말 인상주의 이전의 상황이지만,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전부 동급의 화가가 아니다. 그림 수준 이전에, 주제나 소재에 따라 화가의 격이 정해진다. 크게 다음과 같은 6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역사화(History Painting): 바이블에 근거한 성화와 그리스 신화에 관한 그림, 초상화(Portrait Painting): 개인의 얼굴이나 역사 속 인물화, 장르화(Genre Painting):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관한 그림, 풍경화(Landscape): 자연 속 풍경에 관한 그림, 동물화(Animal Painting) 네덜란드 화가들이 즐겨 그린 동물을 소재로 한 그림, 정물화(Still Life): 생활도구나 일상품에 관한 그림’.
   
   현대적 관점에서 본다면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이 장르의 서열이다. 그림을 손으로 그리는 재능 수준이 아니라 성(聖)과 문학의 연장선에 있는 예술로 해석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눈앞의 모습을 그대로 잘 그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귀로만 들은 바이블이나 전설 속의 얘기를 나름대로 재구성해 성스럽고도 품격 있게 그려내는 작업을 예술의 가치이자 의미로 풀이했다.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따먹은 뒤 신이 어떤 식으로 대응했을지에 대한 성화를 창의적·독자적으로 표현하는 식의 예술이다. 너무 튀어도 안되지만, 너무 천편일률적이어도 안된다. 얼굴을 그리는 초상화도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과 개성이 묻어나는지가 중요하다. 깊은 내면을 읽을 수 있는 ‘모나리자’ 초상화 같은 것이 대표적인 본보기다. 주관식 예술이 장르 서열상 맨 위에 있는 셈이다. 풍경화·동물화·정물화는 그냥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객관식 예술로 처리됐다.
   
   
▲ 라파엘로가 바티칸 ‘라파엘 룸’에 그린 벽화 ‘아테네 학당’의 밑그림 데생화가 밀라노 암브로시아나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왼쪽 인물은 라파엘로의 평생 애인이었던 마르가리타 루티로 추정된다.

   르네상스 3대 예술가 중 최고봉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장르의 서열은 예술계의 상식이었다. 그 같은 기준으로 보면, 인류가 낳은 예술가들 모두를 뛰어넘는 최정상의 예술가가 라파엘로다. 보통 르네상스 3대 예술가라고 하면, 라파엘로와 더불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꼽힌다. 하지만 장르의 서열로 본다면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라파엘로는 장르 서열상 최정상인, 역사화의 ‘원조’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라파엘로 작품의 대부분은 성화와 신화로 집약된다. 장르화·풍경화·동물화·정물화에 손을 댄 적조차 없다.
   
   1520년 세상을 뜬 라파엘로 시대로 돌아가보자. 누가 그림을 수주하고, 누가 돈과 재료를 제공할 수 있었을까? 성직자, 왕, 귀족, 나아가 부자 정도로 국한된다. 보통 사람들은 그림은커녕 글자도 이해하지 못했던, 생존에 매달리던 시대였다. 라파엘로는 단순히 성화·신화에 능한 손재주 화가에 그치지 않는다. 지배계층의 의도와 논리를 이해한 것은 물론, 르네상스 당시의 시대정신을 확대 전파한 고전주의 예술의 ‘화신’ 그 자체였다. 이방인으로 떠돌다가 이국 프랑스에서 객사한 다빈치나, 평생 거의 혼자 지내면서 지배계층의 생각보다 자신의 예술세계에 빠져든 미켈란젤로의 행적과는 전혀 달랐다. 라파엘로는 예술과 시대적 감각, 처세에 탁월한 장르 서열의 최고봉이었다.
   
   지금 밀라노에서 라파엘로의 흔적은 크게 두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암브로시아나 미술관(Pinacoteca Ambrosiana)과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Brera)이다. 직선으로 1㎞ 정도 떨어진 두 미술관은 밀라노 필수 방문지다. 17세기 초 건립된 암브로시아나는 원래 밀라노 추기경의 개인 예술품 보관소였다. 다빈치가 그린 초상화 ‘음악가(Musician)’와 함께 빌 게이츠가 10억달러에 구입했다는 ‘다빈치 노트’의 일부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라파엘로가 바티칸 ‘라파엘 룸(Stanze di Raffaello)’에 그린 벽화 ‘아테네 학당(The School of Athens)’의 밑그림 데생화도 여기에 보관돼 있다. 라파엘로가 26살 때 그린 작품이다. 브레라에는 라파엘로가 21살 때 그린 유화들과 ‘성모 마리아의 결혼식(The Marriage of the Virgin)’이 전시돼 있다. 르네상스 예술작품의 특징인 원근법을 강조한 성화로, 라파엘로에 관심을 갖는다면 연구대상 제1호로 삼을 만한 작품이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어딘가에서 한번쯤 봤을 명화들이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이미 세상을 뜬 동일한 예술가의 작품들을 관람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떠오른다. 어릴 때부터 말년까지의 작품을 순차적으로 대하는 자세, 거꾸로 말년에서부터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 아니면 나이에 관계없이 당장 눈에 보이거나 좋아하는 작품을 따라가는 임의 관람법. 각자 장단점이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 가능하면 어릴 때부터 말년까지 순차적으로 관람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모차르트에서 보듯, 5살 때 작곡한 피아노곡에서부터 시작해 숨지기 직전 만든 레퀴엠(Requiem)으로 향하는 식이다. 따라서 21세 때 그린 브레라 유화가 26살 때의 작품 암브로시아나보다 먼저다. 밀라노 곳곳에 있는 미술관들의 특징이지만, 로마나 파리와 비교할 때 그렇게 크지 않다. 그렇지만 작다고도 할 수 없는 아담한 규모로 느껴진다.
   
   
▲ 라파엘로의 초상화로 추정되는 작품.

   ‘성모 마리아의 결혼식’ 코드
   
   브레라의 유화 ‘성모 마리아의 결혼식’은 라파엘로의 초기 작품이다. 페루지아(Perugia)에 있는 예술 장인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밑에서 그림을 배우던 시기에 그린, 가로 121㎝ 세로 174㎝의 중형 그림이다. 원래 스승인 페루지노에게 주문했지만, 라파엘로가 대신 그렸다고 한다. 페루지노도 비슷한 그림을 남기고 있다. ‘성모 마리아의 결혼식’은 보는 즉시 순결함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깨끗하고 청결한 분위기와 함께 뒤에 들어선 제단을 통해 하늘이 직접 마리아의 결혼을 주관한다는 느낌이 든다. 붉은 상의와 푸른 드레스를 입은 성모의 권위가 드리워져 있다. 맨발로 선 예수의 아버지 요셉이 마리아에게 반지를 끼우고 있다. 성화지만, 결코 무겁지 않고 담백하다. 교회가 아닌, 신혼집에 걸어둔다 해도 어울릴 듯하다. 항상 강조하지만, 명화일수록 주변을 360도 관찰하면서 큐레이터가 숨긴 ‘코드’를 찾아내야만 한다. 라파엘로 그림은 좌우 두 개의 유화를 호위하고 있다. 오른쪽은 어린 예수와 어머니 성화, 왼쪽에는 십자가형에 처해지기 직전 유대인에게 당한 고문을 묘사한 유화다. 결혼식, 어린 예수, 십자가 고통에 처해지는 3부작 예수의 일생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셈이다. ‘성모 마리아의 결혼식’은 그림으로서만이 아니라 피아노 연주곡으로도 작곡돼 선보였다. 1858년 프란츠 리스트가 그림을 본 뒤 얻은 영감으로 만든, ‘스포사리지오(Sposalizio)’라는 제목의 독주곡이다.
   
   라파엘로는 1483년 4월 마르케(Marche) 지방 우르비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현지에서 이미 유명한 예술가였다. 중세 때 예술가는 예술을 직업으로 하는 노동자라 보면 된다. 오늘날 예술가들의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무관한 ‘먹고살기에 바쁜’ 하층민이었다. 라파엘로는 그나마 아버지 덕분에 별 고생 없이 자랐지만 8살 때 어머니, 11살 때 아버지를 잃으면서 고아가 된다. 경제적으로 다시 어려워진 것은 물론이다. 생존을 위해 예술 장인 페루지노 밑에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덕에 일찍부터 스승을 능가하는 실력을 과시한다. ‘성모 마리아의 결혼식’은 화가 라파엘로의 출발점이었다. 진위 여부가 논의 중이지만, 스승 페루지노가 제자 라파엘로를 흉내 내 베낀 그림도 있다고 한다.
   
   브레라에서 암브로시아나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곧바로 ‘아테네 학당’ 데생화 전시관으로 갔다. 데생화는 가로 500㎝, 세로 770㎝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이다. 전시관이 따로 들어서 있다. 어두운 전시관 내에 옅은 불빛에 드리워진 데생화가 눈에 들어온다. 데생화 ‘아테네 학당’은 4개의 방으로 구성된 바티칸 라파엘 룸 가운데 첫 번째인 ‘세그나투르(Room of the Segnatur)’의 벽화 밑그림에 해당한다. 데생화를 벽에 붙인 뒤 데생한 윤곽을 작은 바늘로 뚫어 흰 분말을 뿌리는데, 데생화를 떼어내면 그림의 윤곽으로만 남은 흰 분말이 보인다. 벽에다 곧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흰 분말을 기초로 다시 재현해 그 위에 색상을 입혀 완성하는 식이다. 라파엘로는 1차 데생화에서부터 완벽함을 추구한 예술가다. 대충 윤곽만 잡고 다시 벽화를 그리면서 자세히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정밀 묘사를 한 뒤 풀어나갔다. 따라서 데생화 ‘아테네 학당’도 벽화에 버금가는 긴장과 정밀도를 느낄 수 있다.
   
   데생화 ‘아테네 학당’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 그림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플라톤은 하늘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하늘의 신과 땅의 인간이란 의미다. 이상을 갖되 현실적으로 행동하라는 뜻으로도 통한다. 두 사람의 주변에는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철학자들과 신들이 묘사돼 있다. 그림 속 등장인물은 30명이 넘는다. 중간의 두 명과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주변 몇몇 철학자는 분명하지만, 누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한 명씩 살펴보면서 누구인지를 나름대로 발견하는 것이 ‘아테네 학당’을 즐기는 매력 중 하나다.
   
   
   ‘아테네 학당’ 데생화 속 인물 찾기
   
   ‘아테네 학당’은 그림의 수준만이 아니라 라파엘로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그림 속의 등장인물 두 명이 좋은 예다. 먼저 그림 왼쪽 아랫부분에 흰 옷을 입은 채 정면을 응시하며 서 있는 긴 머리의 인물이다. 교황을 위해 싸운 16세기 용병대장 ‘프란체스코 마리아 1세’라는 주장과, 라파엘로의 평생 애인인 ‘마르가리타 루티(Margarita Luti)’라는 설로 나뉜다. 누구든 완벽한 미와 지로 표현된, 사실상 라파엘로가 가장 정성을 들인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주관적 판단이지만, 적어도 라파엘로가 가장 사랑했던 여성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라파엘로는 당시로서는 아주 드물게 누드 여성 모델을 고용해 그림을 그린 인물이다. 수많은 여성들과의 성적 관계도 남달랐던 인물이다. 한창 물이 오르던 37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성병인 매독이 죽음의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찍부터 고아가 된 탓에 여성들과의 성적 관계를 통해 모성애를 되돌리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
   
   두 번째는 완벽한 미의 인물 오른편에 앉아 있는 턱수염 인물이다. 팔에 머리를 괸 채 앉아 있다. 그리스 자연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란 주장도 있지만, 미켈란젤로라는 분석이 더 많다.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와 더불어 바티칸 벽화에 손을 댄 인물이다. 라파엘로보다 8살이 더 많기도 하고, 전혀 다른 캐릭터이기에 일하는 동안 단 한 번 스쳐 지나갔을 뿐, 서로 말도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라파엘로는 주변 모든 것을 빨아들여 자신의 작품으로 만드는 예술가다. 따라서 라파엘로의 많은 작품들은 르네상스 당대 예술가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재창조하는 식으로도 이뤄졌다. 물론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도 모방의 대상이었다. 사실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가 자신의 작품을 베낀다고 불평한 적도 있었다. 라파엘로와 비교해 볼 때 미켈란젤로는 정반대 캐릭터의 예술가다. 주변을 무시하고 아예 혼자서 창조해 나가는 은둔 고립형 예술가다. 그런 각도에서 본다면, ‘아테네 학당’ 속 팔을 괸 인물은 영감을 준 미켈란젤로에 대한 감사와 사죄의 뜻이 반영된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라파엘로 작품의 특징이지만, 특별히 대단하게 뛰어난 그림이 없다. ‘라파엘로의 최고 작품’을 물으면 답하기가 궁해진다. 그림 전부가 조화와 평화에 기초한 깊고도 편안한 그림이다. 신만을 의식한 무거운 그림이 아니다. 흐르는 물이나 눈에 안 보이는 공기와 같은 그림이라고나 할까? 올해는 유럽 어디엘 가도 라파엘로 특별전을 접할 수 있다. 조화와 평화에 기초한 르네상스 시대정신의 진수를 재음미할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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