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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짱 의사의 4개국 어학연수 도전기]  페루 리마, 스페인어 편 – 코로나 비상사태의 세가지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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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01호]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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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짱 의사의 4개국 어학연수 도전기]페루 리마, 스페인어 편 – 코로나 비상사태의 세가지 미션

리마= 글·사진 김원곤  서울대 흉부외과 명예교수 

▲ 식품점, 약국, 은행을 제외하고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 시내 전체가 황량하기 짝이 없다.(왼쪽) 미라플로레스를 관통하는 시내 고속도로에도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오른쪽)
페루 리마에 입성해 성공적으로 어학연수 생활에 정착하나 싶었는데, 1주일 만에 코로나19로 인한 국가비상사태가 전격적으로 선포됐다. 현지시각으로 지난 3월 15일 저녁 생방송을 통해 페루 마르틴 비스카라 대통령은 긴급명령을 발령했다. 대통령의 발표문 내용은 15일간 전 국경 폐쇄와 전 국민의 사회적 격리가 핵심이었다. 즉 비상사태 기간 중 식품과 약품의 공급 그리고 금융 등에 관계되는 시설을 제외하고는 모든 상점을 닫게 하고 국내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수단도 차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발표를 접하고 주페루 한국대사관에서는 긴급공지를 통해 출국을 원하는 한국인의 경우 그다음 날인 16일 자정 전까지 출국을 권고했지만 대부분 여행객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말장난에 불과했다.
   
   나는 어차피 3개월 체류를 예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출국 고민은 없었지만 문제는 어학연수였다. 어학원 폐쇄가 불 보듯 뻔한데 큰일이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행히 학원은 발 빠르게 온라인으로 수업 방식을 전환했다. 그러나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인지라 또 걱정이 앞섰다. 필자가 컴퓨터를 처음 접한 것은 1980년대 초,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전공의 시절이었다. 당시 흉부외과 학회 월례 집담회에 초청된 외부 강사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개념 차이를 설명하던 장면이 지금까지 기억에 생생하다. 비슷한 시기에 흉부외과 의국에 컴퓨터라는 것이 처음 들어왔지만 다들 활용법을 몰라 한동안 게임용으로 사용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미션 1. 온라인 강의실 들어가기
   
   아무튼 우리 세대에게 컴퓨터는 편리함보다는 스트레스의 존재다.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프로그램은 어떻게 설치해야 하나 막막해하는 내게 어학원 직원은 자신이 이야기한 대로만 하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설치할 수 있다고 다독였다. 그러나 필자는 과거의 무수한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전문가에게 간단한 것이지, 비전문가에게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학원 직원에게 지금 숙소로 가서 노트북을 바로 가지고 올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5G 속도로 숙소로 달려가 노트북을 가져왔다. 아니나 다를까 시스템이 달라서 그런지 그 직원도 프로그램을 쉽게 설치하지 못했다. 결국 다른 직원들이 긴급 투입돼서야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설명만 듣고 숙소로 돌아갔더라면 큰 낭패를 당할 뻔했다. 어학원은 그날 오전까지만 근무하고 바로 보름간 폐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설치한 프로그램을 통해 담당 선생님과 직접 화상 테스트까지 마치고 나니 비로소 안심이 됐다.
   
   숙소로 돌아와 이메일을 뒤늦게 체크해 보니 지난 밤중에 어학원 측으로부터 ‘긴급 내용’ 제목의 메일이 와 있었다. 방금 어학원에 가서 들은 내용과 비슷했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은 했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71명 정도 되는 상황(3월 15일 기준)에서 이런 전격적인 조치는 생각지 못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메일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바로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우리 어학원 측에서는 우리가 고용하고 있는 교사들이 이번 사태로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신속하게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으니 협조를 부탁합니다.(Sincewe don’t want our employees to lose their salaries as a result of this outbreak, we are working as fast as we can to convert all in-person scheduled lessons to online lessons so that our instructors continue their work with their students online.)’
   
   우리 같으면 ‘학생들이 귀중한 공부 기회를 잃지 않게 해드리기 위해…’ 등의 표현을 했을 것 같은데 강사들의 월급을 먼저 중요한 사유로 내건 것이 한국과 페루의 문화 차이로 여겨져 흥미로웠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다음 날부터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미리 테스트를 했지만 과연 화면이 제대로 열릴지 조마조마했다. 내게는 페루의 비상사태 선언보다 온라인 강의실 입장이 더 비상사태로 여겨졌다. 어학원에서 배운 대로 준비된 버튼을 클릭하니 에리카 선생님이 ‘짠’ 하고 나타났다. 체면 때문에 차마 말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에리카의 얼굴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온라인 수업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익숙해지니 교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시로 다른 인터넷 화면을 띄워가면서 설명과 토론을 이어가니 효율적이었다. 화면 한쪽 칠판에 필기도 할 수 있어 은퇴 교수에게는 신세계였다.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후 페루의 확진자는 계속 늘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인 3월 22일에는 총 환자 수가 363명, 사망자도 5명을 기록하고 있다. 페루 정부는 18일 추가 대책으로 저녁 8시부터 아침 5시까지 전면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빈곤층이 많은 페루 국민들에게는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정작 생계수단이 없어지는 것이 문제다. 페루 정부는 비상사태 기간 중 취약층에 대해 한 가구당 380솔(약 14만원)씩 지원금 보조를 발표했지만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1 아파트 1층에 마련된 힘나시오(gimnasion)
2 바나나 잎에 싸여 있는 타말.
3 세코데카르네(소고기찜)
4 차우파(페루식 퓨전 볶음밥)
5 옥수수를 튀긴 칸치타.

   미션 2. 비상시국에도 운동은 계속된다
   
   가장 중요한 어학 공부 문제가 해결되자, 다음 미션은 운동 문제 해결이었다. 필자의 운동에 대한 열정과 성과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소개된 바 있지만, 사실 운동만큼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분야도 많지 않다. 각고의 노력을 통해 몸을 만드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를 계속 지켜나간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과제이다. 오리든 백조든 우아한 자태를 위해 물 밑의 발은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특히 근육운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바로 펌핑감(pumping) 때문이다. 펌핑은 ‘운동 직후에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으로 사전적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근육운동을 하면 그 부위의 근육들은 산소 및 영양분의 공급과 이산화탄소 및 젖산의 배출을 위해 더 많은 피돌기를 필요로 한다. 이런 식으로 근육으로 몰려든 피들은 마치 물풍선의 물과 같은 역할을 해 해당 부위를 부풀게 한다. 이때 느끼는 짜릿한 쾌감이 바로 ‘펌핑’감이다. 근육이 피로 충만하기 때문에 학술적으로는 ‘충혈(hyperemia)’ 현상이라고도 표현한다.
   
   펌핑감은 근육을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운동을 지속하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달리기에서 러너스하이와 비슷한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근육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던 사람이 4~5일 이상 운동을 쉬게 되면 근육이 축 처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지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필자의 리마 숙소에는 펌핑감에 대한 금단 증상을 해결해줄 장소가 있다. 아파트 1층에 주민들을 위한 공동 헬스센터, 스페인식으로 부르면 힘나시오(gimnasio)가 있다. 공동 힘나시오지만 서너 차례 이용해본 결과 이용자는 필자밖에 없는 것 같았다. 15일간의 국가비상사태에도 숙소의 힘나시오를 생각하면 힘이 났다. 다음 날 아파트 경비에게 힘나시오 열쇠를 요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경비는 비상사태 기간 동안 힘나시오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용객도 거의 없어 다른 사람들과 접촉 위험성도 없다고 항변을 했지만 다중 이용시설의 폐쇄를 명령한 규정 때문에 자기들도 어쩔 수 없으니 양해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떼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나는 아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로 운동용 고무밴드다. 제대로 된 운동기구에 비할 바는 안 되지만 이런 비상상황에서는 꽤 요긴하다. 방에서 웬만한 운동을 다 소화할 수 있지만 이왕이면 신선한 바깥 공기도 마실 겸 집 앞 도로변 벤치를 활용해 보기로 했다. 요즘 리마는 가을 초입으로 아침 기온이 22도 정도에 습기도 별로 없어 쾌적하다. 인적 없는 새벽 시간을 이용하니 산책로가 전부 개인 운동장 같다. 맑은 새소리가 음악 효과까지 넣어주니 비상시국에 기대하지 못한 행복이다.
   
   
▲ 고무밴드와 벤치를 이용하면 이두, 삼두, 대흉근 등 여러 가지 운동을 소화할 수 있다. 새벽 6시가 채 안 된 시간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한적하면서 운치 있다.

   미션 3. 레스토랑 못지않은 슈퍼 음식
   
   어학과 운동이 해결됐으니 다음은 생존에 가장 중요한 음식 문제가 남았다. 비상사태 기간에도 다행히 식품점은 문을 열 수 있게 했다. 숙소에서 가까운 슈퍼가 공사로 문을 닫아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오발로(ovalo)라고 하는 교통 중심 지역까지 가야 했다. 리마 최고의 부촌인 미라플로레스의 중심가로 들어가는 길목이어서인지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지나가는 차량 검문을 하고 있었는데, 쇼핑백을 들고 지나가는 필자에게는 별반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시내는 약국, 은행, 식품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 데다 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어 을씨년스러웠다. 오전 9시에서 오후 1시까지 온라인 수업을 받은 후 산책 삼아 매일 슈퍼 나들이를 했다. 슈퍼도 처음에는 사재기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지만 날이 갈수록 안정이 돼가는 것 같았다.
   
   우리 세대 남자들이 그렇듯 필자도 요리라고는 해본 적이 없다. 출국 전 아내에게 달걀 요리, 고기 굽는 법 등 속성 요리 강습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와보니 하루 4시간 스페인어 공부, 기타 외국어 공부 1시간, 운동 1시간과 남은 시간은 집필활동을 하다 보니 생각만큼 여유 시간이 나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요리에 도전할 의욕이 생길 텐데 오로지 생존을 위해 생소한 부엌에 발을 들여놓게 되진 않았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슈퍼에서 완제품을 사서 먹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편리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현지 특유의 음식들을 즐길 수 있는 기회였다. 사실 비상사태 선언 전 혹시나 해서 비상식량으로 라면을 잔뜩 비축해놓긴 했으나 정작 라면을 먹을 틈이 없다.
   
   우선 아침식사용으로 유용한 것이 우미타(humita)와 타말(tamal)이라는 음식이다. 둘 다 옥수수를 잘게 간 뒤 여러 가지 양념들을 넣고 바나나 또는 옥수수 잎으로 싸 솥에 찐다. 차이점은 타말에는 돼지고기가 들어간다. 타말은 이곳 사람들도 아침식사용으로 많이 먹는다. 우미타는 간식용으로 더 활용된다고 한다. 둘 다 중남미 마트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는 보편적인 음식이다. 우리 돈으로 2000원 전후인데 요즘 내 아침을 든든하게 해주고 있다.
   
   아침식사의 또 다른 옵션은 퀴노아(quinoa) 시리얼이다. 퀴노아(현지 스페인어로는 퀴누아·quinua)는 ‘수퍼푸드의 나라’로 알려진 페루에서도 대표적인 수퍼푸드로 꼽히는 곡물이다. 딸기·초콜릿·바닐라 맛 등 다양한 시리얼 제품이 간편하면서도 건강까지 챙겨줄 것 같다.
   
   점심·저녁식사(페루는 쌀이 주식이다. 빵은 주로 아침식사로만 먹는다)로는 식도락을 즐기듯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다. 밥 생각이 나면 차우파(chaufa)라 불리는 중국식 볶음밥을 사먹기도 하고, 통닭구이도 좋은 끼니가 된다. 한국의 소고기찜과 비슷한 세코데카르네(seco de carne)라는 것도 있는데 우리 돈으로 5000원 정도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빡빡한 일정의 하루 미션을 완수한 저녁, 술 한잔이 없을 수 없다. 이곳에서 술안주로 기가 막힌 두 가지를 발견했다. 칸치타(canchita)라는 이름으로 페루의 특산 옥수수를 튀긴 것이다. 칸치타는 페루의 국민간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웬만한 음식점에 가면 항상 서비스로 나온다. 필자도 한 레스토랑에서 처음 맛본 후 슈퍼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기쁜 나머지 몇 통을 사들고 왔다. 또 하나는 돼지발 요리인 치차론(chicharrón de la pierna)이다. 치차론은 한때 국내 언론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데, 족발 부위를 돼지기름으로 바싹 튀긴 것이다. 바삭바삭하면서 깊은 맛이 아주 매력적이다. 맥주와 궁합이 잘 맞는다. 가격도 저렴해서 몇천원이면 푸짐하다. 밖은 코로나19로 난리인데 이렇듯 집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즐기고 있다. 매사가 궁즉통(窮則通)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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