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전시돼 있는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 2차대전 당시 미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모습이다. 하지만 이 폐허 속에서도 ‘최후의 만찬’은 훼손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원 안이 ‘최후의 만찬’이 걸려 있던 공간이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전시돼 있는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 2차대전 당시 미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모습이다. 하지만 이 폐허 속에서도 ‘최후의 만찬’은 훼손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원 안이 ‘최후의 만찬’이 걸려 있던 공간이다.

‘최후의 만찬(Ultima Cena)’.

모두에게 친숙한 성화(聖畫)다. 대부분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으로 알고 있을 듯하다. 당연하지만 ‘최후의 만찬’은 다빈치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유럽 교회나 뮤지엄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는, 근세 이전 유럽 화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관심을 가진 성화의 주제다. 개인적으로 이미 수백 점은 접했을 듯하지만, 화가의 수준이나 구도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는 전부 비슷하게 와닿았다. 중·고등학교 당시 새겨진 ‘최후의 만찬’에 대한 이미지가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특히 ‘최후의 만찬=배신자 가롯 유다’다.

지식을 채우기는 어려워도 지혜로 버티는 것이 장년이다. ‘최후의 만찬’에 드리워진 다른 관점이 포착됐다. 무대는 베네치아의 작은 교회, 2018년 1월의 일이다. 텅 빈 교회에 들어가 이것저것 살피는 동안 뭔가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최후의 만찬’ 유화 두 점이 정문 내부벽 양쪽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가로 2m, 세로 1m 정도 크기의 유화로 16세기 작품이다. 둘 다 화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유대인에게 체포되기 직전에 행한, 12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 그림이다. 13명이 큰 식탁에 둘러 앉아 있다는 점에서 보통 크게 제작된다.

베네치아 작은 교회의 ‘최후의 만찬’ 두 점

베네치아 교회에서 만난 ‘최후의 만찬’은 평범한 구도로 그려진, 원근법이 서툰 유화다. 전체적으로 보면 동일한 화가가 그린 것도 아니다. 두 성화를 대하는 순간 기본적인 의문이 하나 일었다. 아무리 유명한 주제라지만 ‘최후의 만찬’을 두 점이나 동시에 내건 교회를 본 적이 없다. 크기가 다른 그림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같은 규모에다 비슷한 구도의 큰 그림을 대칭 구도로 걸어둔다는 것도 이상하다. 유명 화가라면 이해가 가지만, 누가 그렸는지도 모를 그림을 왜 두 점이나 동시에 걸어뒀을까? 비슷하게 보이지만 두 성화 속에 드리워진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겨울 베네치아의 밤은 오후 4시부터 시작된다. 두 유화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갈 때까지 꼼꼼히 관찰했지만 답을 찾아낼 수 없었다.

‘최후의 만찬’ 두 그림에 대한 ‘나름대로의 단서’를 발견한 것은 지난해 4월이다. 장소는 역시 베네치아로, 다빈치 사후 5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시회가 무대였다. 주간조선 2559호에 기고하기도 했지만, 당시 특별전의 주된 관심사는 ‘L’Uomo Vitruviano’란 스케치다. 영어로 ‘Vitruvian Man’, 한국어로 ‘인체비례도’로 번역되는 다빈치의 작품이다. 외부로 전시되지 않는 귀한 그림이기에 거의 매일 찾아가 보고 또 봤다. 베네치아 거주증명서가 있으면 지역 내 전시관을 거의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최후의 만찬’을 위한 다빈치의 데생용 스케치는 특별전시회에서 발견한 ‘예상 밖’ 수확 중 하나다. A4 크기 종이 위에 그려진 작은 스케치를 통해, 잊고 있었던 두 점의 ‘최후의 만찬’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특별전시회를 나서는 즉시 베네치아의 작은 교회로 다시 달려갔다.

전혀 다른 의미를 전하는 두 그림

4할대 야구 타자 눈에 비친 야구공이라고나 할까? 투수가 아무리 빨리 던져도, 타자의 눈에는 눈사람 얼굴 크기의 공이 천천히 들어온다고 한다. 빠르고 정확한 눈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최선의 실력을 보여주려는 노력과 자세가 결집될 때 나타나는 특별한 경지다. 교회에 들어가 두 성화를 접하는 순간, 눈사람 얼굴 크기의 야구공을 발견했다. 두 성화를 통해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뭔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똑같은 주제와 구도, 크기라지만 양쪽 ‘최후의 만찬’이 전혀 다르게 비친다. 왼쪽은 예수가 ‘이 자리에 나를 배신한 인물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을, 오른쪽은 예수가 자신의 피와 살을 ‘포도주와 빵’에 비유하는 장면으로 느껴졌다. 왼쪽은 배신과 고통을, 오른쪽은 희생과 사랑의 메시지라는 것이 너무도 확연하게 와닿는다. 신의 자식을 은(銀) 30개로 팔아넘긴 유다, 곧 닥칠 슬픈 운명조차 초월한 채 인간 모두에게 축복을 내린 예수. 바로 두 점의 그림 속에 깃든 코드(Code)다. 배신자 유다가 ‘죄악과 비극으로서의 과거’라면, 예수의 포도주와 빵은 ‘희망과 구원으로서의 미래’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배신과 용서, 불신과 축복, 과거와 미래가 각각의 그림 속에 배어 있다. ‘최후의 만찬=배신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 점의 그림을 통해 확인한 셈이다. 교회 관계자가 왜 같은 주제의 그림을 두 점이나 걸어뒀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일본인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말 중에 ‘고토다마(言靈)’라는 단어가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한국식 속담처럼, 입밖으로 내뱉은 말 하나하나에 혼령이 있다는 의미다. 대화나 소통으로서만이 아닌, 오늘과 내일의 삶을 가늠하는 나침반이다. 뱉어진 말에 따른 최후의 결과가, 남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되돌아온다는 점도 ‘고토다마’가 가진 행간(行間)의 의미다. 남을 욕하거나 저주할 경우, 언젠가 돌고 돌아 자기에게 큰 화로 밀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인의 일상생활 속에서 상대에 대한 욕이 드문 이유이기도 하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그림을 통한 ‘고토다마’를 절감시켜준 증거이자 모델이다. 당연하지만, 그림은 글이나 말로 재번역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좋다 나쁘다는 1차원적 느낌도 있지만, 왜 좋은지 왜 나쁜지에 대한 언어 차원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 성화 ‘최후의 만찬’을 보면서 어떤 식의 언어적 해석이 가능할까? ‘최후의 만찬’이 의미하는 고토다마, 즉 말의 씨앗은 무엇일까?

‘최후의 만찬’은 한 번에 30명씩 줄을 지어 들어가 단 900초 관람만 허락된다.
‘최후의 만찬’은 한 번에 30명씩 줄을 지어 들어가 단 900초 관람만 허락된다.

코로나19 사태 전 다시 만난 ‘최후의 만찬’

천하의 명화에 대한 실례지만, 전혀 ‘얼떨결’에 접한 것이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지난 1월 밀라노에 갔을 때다. 중심지 피나코테카(Pinacoteca Ambrosiana) 뮤지엄에 들어가려다 ‘밀라노 시티 할인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앞에서 기다리던 미국에서 온 중년 여성이 보여준 겨울 한정판 특별 할인권이다. “38유로에 밀라노 뮤지엄 5개와 공공교통을 한 달간 이용할 수 있다.” 피나코테카 뮤지엄 티켓 하나에 15유로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 싸다. 곧바로 시티 할인권을 파는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 교회로 향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전시된 유명한 교회다.

당시 필자의 일정 속에 다빈치 참관은 아예 없었다. 지난해 사후 500주기 기념식에 즈음해 세계 곳곳에서 다빈치를 만났고, ‘최후의 만찬’ 참관을 하기까지 인파를 헤집고 나갈 ‘통관절차’도 마음에 걸렸다. 한 번에 30명씩 줄을 지어 들어가 900초 관람만 허락되는 곳이 ‘최후의 만찬’ 전시장이다. 그나마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여름철에는 한 달 이상 기다린 뒤에야 관람이 가능하다.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에는 이미 몇 번이나 들렀기에, ‘최후의 만찬’보다 다른 뮤지엄을 우선시했다. 그러나 표를 구입하는 순간 마음이 달라졌다. 교회 티켓 창구에서 38유로를 주자, “25분 뒤 ‘최후의 만찬’ 관람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겨울 할인권의 특권이지만, ‘최후의 만찬’ 관람이 영순위로 허락된다고 한다. 복잡한 절차가 사라진 이상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다른 관람객 30명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 ‘최후의 만찬’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3년 2월이었다. 그동안 내부 시설과 장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관람 공간에 들어가는 도중, 무려 4개에 달하는 특수 안전문을 거쳐야만 한다. 사방팔방 감시카메라다.

언제부턴가 다빈치의 모든 것이 컬트(cult), 즉 신흥종교 사원으로 둔갑한 듯하다. 안으로 들어서자 멀리 ‘최후의 만찬’이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예수의 모습이 흐릿하게 와닿는다. 뿌연 안개에 휩싸인 느낌이라고 할까? 예전과 달리 촬영도 가능하다. 관람객 모두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이미 7년 전이지만, 당시 주목했던 부분은 예수의 입(口)과 만찬 음식이었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지만, 예수가 입을 연 채 뭔가 전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화 대부분에서 볼 수 있는, 굳게 닫힌 입술의 침묵형 예수와 전혀 다르다. 더불어, 뱀장어 요리가 식탁 위에 올라 있을 것이란 추정도 했다. 다빈치도 평소에 좋아했던, 15세기 인기 음식이 뱀장어 요리다.

2020년 다시 만난 ‘최후의 만찬’은 어제의 기억과는 전혀 다르게 와닿았다. 그림을 본 순간, 베네치아에서 만났던 두 점의 ‘최후의 만찬’부터 떠올랐다. 밀라노 다빈치의 그림은 베네치아 교회 왼쪽에 걸려 있던 ‘배신과 고통’으로서의 만찬 장면에 해당한다. 배신자에 대한 예수의 슬픔이 열린 입을 통해 울려 퍼진다. 곧이어 모든 제자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누구입니까, 잘못 아시는 겁니다, 저입니까, 배신자는 당장 나서라.” 배신자 유다는 돈주머니를 쥔 채 예수의 왼쪽 세 번째 의자에 앉아 있다. 보통 등을 진 채, 다른 제자들과 분리해서 묘사되는 식의 구도가 아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는 ‘최후의 만찬’이 이뤄지는 동안 배신자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누가 배신자인지 밝히라고 제자들이 다그치지만, 끝내 유다를 호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다에게 떡을 주며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요한복음 13장 27절)고 속삭였다. 예수의 속삭임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 제자도 없었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요한복음 13장 29절)

‘최후의 만찬’ 맞은편에 전시돼 있는 조반니 도나토 다 몬토르파노의 벽화 ‘십자가 처형’. 2차대전 폭격 당시 ‘최후의 만찬’과 함께 훼손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최후의 만찬’ 맞은편에 전시돼 있는 조반니 도나토 다 몬토르파노의 벽화 ‘십자가 처형’. 2차대전 폭격 당시 ‘최후의 만찬’과 함께 훼손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폐허서 살아남은 두 그림의 메시지

‘반드시’라고 말할 수 있지만, 유럽에서 통하는 세계적 명화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아시아에서 흔히 잣대로 통용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같은 명화가 아니다. 얼마나 위대한지를 비교·객관화할 수 있는 또 다른 예술작품이 명화 근처에 반드시 들어서 있다. 그걸 발견할지 여부는 각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는 좋은 예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반대편 벽에 걸린 ‘가나의 결혼식(The Wedding at Cana)’이 없다면 ‘모나리자’의 가치와 위상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탈리아 화가 베로네세(Paolo Verenese)의 초대형 작품이다. 상위 15도 각도에서 ‘모나리자’를 아래로 정면 응시하는 인물이 ‘가나의 결혼식’ 속의 예수다. 인터넷 속 사진만 보고 미술평론에 나서는 것이 대세인 듯한데 현란한 사진만 보고 미식평론에 나서는 식이다. 현장의 360도 공간 속에서 체험하는 것이 좋다. 명화 자체만이 아니라 전시관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적 관점에서 감상할 수 있다.

조반니 도나토 다 몬토르파노(Giovanni Donato da Montorfano)가 그린 벽화 ‘십자가 처형(Crucification)’은 다빈치의 명화가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줄 증거다. ‘최후의 만찬’ 맞은편 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1460년대 초 작품으로,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제작할 시기와 일치한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 아래서 경쟁하듯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관람객 모두 다빈치에 빠져 있는 동안, 반대편 몬토르파노 그림을 ‘독점하듯’ 살펴봤다.

예수가 다른 죄인 두 명과 함께 공개 처형되는 장면이다. 입은 열려 있다. 조롱하며 고문하는 십자가 밑 사람들에게 뭔가 말하는 듯하다. “아버지여, 이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누가복음 23장 34절) 긴 머리의 막달레나 마리아는 십자가를 붙잡고 흐느끼고 있다. 예수가 부활한 뒤 가장 먼저 만난 인물이 마리아다. 자신의 부활을 가장 먼저 전하고 싶었던 인물이 마리아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왜 ‘십자가 처형’ 벽화가 ‘최후의 만찬’ 맞은편에 들어서 있을까? 아니 거꾸로 생각해서 왜 몬토르파노 벽화 맞은편에 다빈치 그림이 들어서 있을까? 관람이 끝난 뒤 묻고 또 물었지만, 뚜렷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흐릿하게나마 가닥을 잡은 것은 1개월 뒤, 코로나19 사태 이후다. 이탈리아 전체가 유령도시로 변했다는 뉴스를 접한 3월 중순, 밀라노가 걱정이 됐다. ‘최후의 만찬’ 전시장을 비롯한 모든 뮤지엄이 문을 닫은 상태다. 24시간 사람들로 북적이던 밀라노 대성당은 18세기 그림 속 도시처럼 황량하게 변했다. ‘부활’은 음울한 역병 도시를 보면서 떠오른 단상이다. 2차 세계대전 미군 공습 당시, 산타마리아 교회 대부분이 처참하게 날아갔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교회 식당으로 사용된 건물 안에 보관돼 있던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 처형’ 벽화만은 살아남았다. 슬픈 배신으로 채워진 ‘최후의 만찬’, 잔인한 죽음으로 끝난 ‘십자가 처형’. 부활은 바로 다빈치와 몬토르파노 벽화 속 사건 뒤에 나타날, 예수의 마지막 행적이자 기적에 해당한다. 부활이란 인류의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이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 처형’인 셈이다.

‘최후의 만찬’의 ‘고토다마’, 즉 말의 씨앗은 부활이란 한 단어로 압축될지 모르겠다. 고통과 배신에 이어 희생과 사랑으로 이어진 것이 ‘최후의 만찬’이다. ‘십자가 처형’을 통해 인류 전체가 죄인으로 추락하지만, 결국은 예수의 부활로 모든 것이 용서된다. 우연일지 필연일지 모르겠지만, 유럽 전체를 통틀어 전염병 피해가 가장 극심한 곳이 밀라노다. 중국발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세운다고 해도, ‘최후의 만찬’은 계속될 것이다. 당장은 배신자의 사악한 웃음소리만 들리겠지만, 결국은 사랑과 희생 그리고 부활이 이뤄질 것이다. 악의 종말, 코로나19 박멸을 전 세계 모두에게 선포하기 위한 증거가 바로 ‘최후의 만찬’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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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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