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자 통역가인 샤론 최(한국명 최성재)는 지난 2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영화감독 봉준호의 통역을 전담하면서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샤론 최는 처음으로 미국의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에 긴 여정을 담담하게 풀어낸 글을 실었다.

“‘가면증후군(Impostor Syndrome)’과 싸웠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사람의 말을 잘못 옮길 수 있다는 불안감과 싸웠다. 유일한 치유법은 무대 뒤에서 10초간 명상을 가지며 ‘사람들이 보는 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의 글에 등장하는 ‘가면증후군’은 낯선 단어다. 여기서 ‘가면’은 얼굴을 가린 물건이라기보다 거짓으로 꾸민 모습을 뜻하는 바에 가깝다. 즉 가면증후군이란 자신의 성공이 노력이나 실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운으로 얻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며, 언젠가는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불안해하는 심리를 일컫는다. 지난해 12월 전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부인 미셸 오바마도 가면증후군에 대한 연설을 했다.

미셸 오바마는 “내 말을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가면증후군 증상은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우리 모두는 자신의 능력과 힘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성공한 두 여성이 가면증후군 증상을 고백한 것은 특이할 만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가면증후군은 성공한 여성에게서 더 많이 관찰된다. 맨 처음 가면증후군에 대한 연구 논문이 발표된 것은 1978년인데, 미국의 심리학자 폴린 로즈 클랜스와 수전 임스가 함께 쓴 논문의 제목은 ‘성공한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가면증후군’이었다.

가면증후군을 앓는 심리를 간단하게 풀어보자면 ‘내가 뭐라고!’라는 자기 불신(不信)이다. 2011년 국제행동과학지에 실린 심리학자 자루완 사쿨쿠의 논문 ‘가면증후군’을 보면 약 70%의 사람들이 평생에 걸쳐 한 번은 가면증후군을 앓는다고 설명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칭찬에 박한 주변 환경, 계속해서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게 만드는 분위기, 완벽함을 요구하고 더 큰 성취를 바라는 압박감 같은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자신이 어떤 집단을 대표한다고 생각할 때 더 쉽게 가면증후군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성 과학자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의 심리학자 밸러리 영은 책 ‘여자는 왜 자신의 성공을 우연이라 말할까’에서 여성 과학자가 동일한 연구보조금과 성과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남성 과학자보다 2.5배 더 많은 성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스웨덴 면역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여성들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더 많고 높은 성취를 이뤄내야 하지만, 반면에 그 성취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은 미덕(美德)이 아니라는 사회적 분위기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성공한 사람이 두드러지게 주목받는 상황이라면 더 그렇다.

말하자면 여성들에게 가면증후군이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제가 성공한 건 독하거나 강인해서가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을 뿐이죠.” 이건 단지 수사적인 말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성공한 여성은 성공의 이유를 가족과 연인, 친구에게 돌리며 자신의 역할을 과소평가한다. 꼭 여성만이 아니다. 유색인종, 소수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성향이다.

그러나 이런 가면증후군은 겸손이나 배려심과는 다른 문제다. 영국 배우 리즈 스미스가 “스스로를 작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심리적으로 좋지 않다”고 말한 것처럼 가면증후군에서 벗어나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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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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