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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짱 의사의 4개국 어학연수 도전기]  미식천국의 기이한 요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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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06호] 20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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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짱 의사의 4개국 어학연수 도전기]미식천국의 기이한 요리들

리마= 글·사진 김원곤  서울대 흉부외과 명예교수 

리마에서의 생활도 어느덧 두 달 정도가 되다 보니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중 하나가 약국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약국은 국가 비상사태 시 슈퍼마켓이나 은행과 함께 합법적으로 문을 열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어서 더욱 눈에 띈다. 특히 유동인구와 외국인 왕래가 잦은 미라플로레스 지역의 약국 밀도는 가히 한 집 건너 하나라고 표현할 정도다. 개인 약국이 아닌 체인형 약국이 상권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거의 모두가 ‘미파르마(Mifarma)’와 ‘잉카파르마(Inkafarma)’라는 두 대형 약국 체인에 속해 있다.
   
   그동안 약국을 이용할 기회가 없어 왜 페루에 약국이 이렇게 많은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온라인 수업 중 어학원 선생님과 대화하다가 우연히 그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페루에서는 법규상 수면제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의사 처방 없이도 거의 모든 종류의 약품을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2000년에 들어서야 의약분업 제도를 공식 도입했지만 페루의 경우 과거 우리나라와 비교해 병원 수준이 열악한 데다 접근성마저 떨어지기 때문에 약국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제도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자가진단을 내리고 자가 처방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꽤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필자도 시험 삼아 약국에 들러 물어보니 웬만한 전문 의약품들을 모두 갖추고 즉석에서 판매하고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페루 약국은 약품뿐만 아니라 칫솔, 치약, 구강 가글액, 비누, 심지어 아기 기저귀나 손톱깎이 등 간단한 여행용품까지 모두 판다. 필자가 방문한 한 약국에서는 콜라 등 각종 음료수까지 팔고 있었다. 약국에 잡화점을 더한 형식인데, 엄연히 슈퍼마켓에서 다 팔고 있는 제품들을 왜 약국에서 또 파느냐고 물으니 복잡한 슈퍼마켓을 피해 간편하고 빨리 구입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각 약국마다 방문객들과의 일정 거리 유지를 위해 상담 창구 앞에 리본 줄을 길게 설치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잡화점’ 약국과 요금 흥정하는 택시
   
   약국과 함께 필자는 페루의 택시에 또 한번 놀랐다. 그동안 꽤 많은 나라를 여행해 봤지만 공식적으로 택시미터기를 갖추지 않은 나라는 페루가 처음이었다. 이 때문에 페루에서는 택시를 탈 때마다 요금을 흥정하고 타야만 한다. 택시미터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금을 흥정하는 일부 후진국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현지인들에게 왜 이런 이상한 시스템이 정착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습관이 되어서 전혀 불편한 점을 모르고 지내는데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다들 모른다는 답변이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또 한 가지는 페루가 ‘미식의 천국’이라는 것이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8~2019년 세계 레스토랑 평가 조사’에 의하면, 남미의 ‘베스트 50 레스토랑’ 중 페루 레스토랑이 무려 8개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중 두 레스토랑은 각각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이 두 레스토랑은 2018년, 2019년 두 해 연속 세계 10대 레스토랑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 때문에 ‘마이도(Maido)’ ‘센트럴(Central)’ ‘아스트리드 이 가스통(Astrid y Gaston)’ 등의 리마 유명 레스토랑들은 세계 미식가들의 필수 순방지가 되고 있을 정도다.
   
   
▲ 카우사(Causa)

   남미 베스트 50 레스토랑 중 페루가 8개
   
   사실 페루의 요리가 이런 국제적 인정을 받게 된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페루의 관광산업이 오늘날처럼 활성화되지 않아 자기들의 음식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외부인의 객관적 평가를 받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맛과는 관계없이 음식을 내놓는 모양새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일단 시각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당시 페루의 중상류층은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는 프랑스 식당으로 초대하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페루의 요리 대통령’으로까지 일컬어지는 가스통 아쿠리오(Gaston Acurio·1967~)를 필두로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Virgilio martinez), 미츠하루 쓰무라(Mitsuharu Tsumura·1977~)와 같은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셰프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페루 요리는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기존의 페루 요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이를 국제적인 미각에 맞게 개발하여 페루 요리를 일약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오늘날 페루 요리가 세계적인 위상을 차지하기까지에는 흔히 3가지 요인이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우선 다양한 음식 문화에 기반한다. 페루는 스페인의 정복 이전부터 광활한 영토를 통치했던 잉카제국의 영향으로 다양한 형태의 요리가 존재하였다. 여기에다 스페인 진출 이후에는 스페인 음식 이외에 그들이 가져온 아랍식 향신료들과 흑인 노예들의 음식 문화가 혼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세기 들어 중국인 이민이 본격화하면서 ‘치파(chifa)’라고 불리는 중국식 퓨전 음식도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이와 함께 ‘세비체’로 대표되는 일본 요리의 영향과 이탈리아 음식 문화의 영향도 가미되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들의 요리 문화가 뒤섞이면서 오늘날 페루 요리의 깊이를 만드는 토양이 되었다.
   
   
   세계 5000종 중 3000종 감자가 페루에
   
   다양한 자연환경도 중요한 기반이다. 국토면적이 남한의 약 13배의 크기이자 한반도의 6배인 페루는 크게 해안지역(costa), 산악지역(sierra), 밀림지역(selva) 등 3개 지역으로 나뉜다. 각 지역마다 기후, 토양 등 자연환경이 완전히 달라 그만큼 다양한 식재료가 생산되고, 이는 다채로운 페루 요리의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엄청난 종류의 감자도 페루 요리의 기반이 되고 있다. 세상에는 약 5000종의 감자가 있는데 페루에는 이 중 3000종 정도가 있다고 하니 절반이 넘게 있는 셈이다. 이들은 종류에 따라 각각의 색깔, 모양, 식감을 가지고 있어 페루 요리의 다양성에 깊이를 더해 준다. 이런 감자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페루에서는 매년 5월 30일을 감자의 날로 정해 놓고 기념하고 있을 정도다.
   
   현재 페루에서는 강제적 사회 격리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식당들은 영업을 할 수가 없지만, 그 대신 영업이 허가되는 5개 대형 슈퍼마켓에서는 서로 경쟁적으로 많은 조리 음식들을 팔고 있다.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오히려 식당에서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종류의 페루 음식들을 맛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한마디로 ‘페루 음식’이라고 하지만 워낙 종류가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필자가 직접 경험한 전통 음식 위주로 소개해 보겠다.
   
   일단 전채요리다. 세계의 모든 요리 강국과 마찬가지로 페루에도 다양한 전채요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굳이 둘을 꼽으라면 ‘카우사’와 ‘파파 아 라 우안카이나’를 선택하게 된다. 카우사(Causa)는 다진 감자에 아보카도와 참치를 중간에 넣는 형태가 리마 스타일 카우사라고 해서 가장 전통적인 것이다. 다진 감자의 농밀한 맛과 아보카도, 참치의 조화가 기가 막히게 어우러져 훌륭한 맛을 선사한다. 스페인어 카우사는 영어로는 ‘cause’, 우리말로는 ‘대의(명분)’ 정도에 해당한다. 그래서 과거 스페인 독립 투쟁 과정의 주역이었던 산마르틴 장군의 군사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리마 시내에서 팔기 시작한 것이 유래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름과 관련한 두 번째 설은 과거 칠레와의 태평양전쟁(아시아에서의 태평양전쟁과는 다르다) 중 역시 군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시장 상인들이 팔기 시작한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 페루 2대 대형 약국 체인 미파르마와 잉카파르마.

   국과 찌개에 해당하는 칼도와 소파
   
   파파 아 라 우안카이나(Papa a la Huancaina)는 글자 그대로는 ‘우안카이나 지방 스타일로 만든 감자 요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안카이나는 같은 이름의 지역에서 개발된 노란색의 양념(살사)을 말하는데, 이 살사는 워낙 유명해 슈퍼에서 살사만 단독으로 조리된 형태나 분말 형태로 팔기도 한다.
   
   페루의 주 요리로는 스튜의 일종인 기소(guiso)를 빼놓을 수 없다. 스페인어로 된 요리 용어를 접할 때 흔히 혼동하는 단어들은 칼도(caldo), 소파(sopa), 기소(guiso) 등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칼도는 우리의 국에 해당하고 소파는 찌개 정도로 볼 수 있다. 스튜로 번역되는 기소는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덮밥 요리 소스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항상 쌀밥과 함께 서빙되는데 처음부터 밥 위에 얹어 나오는 것이 아니고 따로 서빙된다. 물기가 많은 순서로 따지자면 칼도, 소파, 기소의 순서가 된다.
   
   기소는 정말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고 그만큼 종류도 많다. 관광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것이 있는가 하면 주로 현지인들이 가정식으로만 먹는 것도 있다. 필자가 직접 맛본 대표적인 기소 중 우선 아히 데 가이나(Aj de Gallina)가 있다. 기소 중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아 관광지 식당 메뉴에서 흔히 볼 수 있고 그만큼 맛도 뛰어난 요리다. 가늘게 찢은 닭고기에다 노란 고추를 주재료로 한 살사를 섞은 것이다. 요리 이름 그대로 암탉(Gallina)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쌀밥은 보통 끝이 잘린 피라미드 형태로 서빙되는데, 페루와 멕시코 등지에서 발견되는 고대 피라미드도 이집트와 달리 모두 끝이 잘린 형태라는 것이 흥미롭다.
   
   피칸테 데 카르네(Picante de Carne)는 주로 가정식 요리로 깍둑썰기한 소고기와 감자를 함께 넣고 끓인 기소가 이용된다. 글자 그대로의 해석은 ‘매운 소고기 스튜’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으로는 전혀 맵지 않다. 양파를 넣는 경우도 있다. 카우카우(Cau Cau)는 소곱창과 감자를 주재료로 한 기소로, 흔히 완두콩도 같이 넣는다. 독특한 이름의 이 스튜는 구미 국가 출신들에게는 흔쾌히 도전하기 힘든 이미지와 맛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는 맞을 것으로 생각된다. 찬파이나타(Chanfainata)는 소허파와 감자를 주재료로 양파, 향신료 등을 섞어 만든 기소다. 앞서 소개한 카우카우에서의 곱창이 허파로 바뀐 비슷한 성격의 기소라고 할 수 있는데 필자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 간이 잡화점을 겸하고 있는 약국의 내부 모습.

   스튜를 뜻하는 ‘기소’의 천국
   
   오유키토(Olluquito)는 쿠스코 지역의 산악 지방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기소다. 원래는 오유코(olluco)라는 감자류 식물과 말린 야마고기를 섞어서 만드는 요리인데, 리마에서는 야마고기 대신 닭고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감자와는 다른 식감으로 오유코의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카라풀카(Carapulca)는 말린 감자를 주재료로 하는 안데스산맥 지역의 전통 기소다. 여러 종류의 고기를 같이 넣을 수가 있다. 세코 데 레스(Seco de Res)는 지명도로 따지면 앞서 소개한 아히 데 가이나와 쌍벽을 이루는 유명한 기소다. 소고기를 약한 불로 서서히 삶아서 마치 우리나라의 소고기 찜과 같은 맛을 낸다. 국적에 관계없이 외국 관광객들의 인기 메뉴 중 하나다.
   
   프레홀레스 콘 토시노(Frejoles con Tocino)는 강낭콩(Frejol)을 주재료로 베이컨을 섞어서 만든 기소다. 강낭콩의 구수한 맛에다 베이컨의 짭짤한 맛이 꽤 멋들어진 조화를 이룬다.
   
   에스토파도(Estofado)는 기소와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 페루 현지인들도 기소와 동일한 요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에스토파도는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약한 불로 끓인다는 점과 외부에서의 수분 보충 없이 재료 자체의 수분을 이용하기 위해 뚜껑을 반드시 덮고 요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아주 섬세한 미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맛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다.
   
   필자가 맛본 에스카베체라는 요리도 독특하다. 에스카베체는 일반적으로 식재료를 식초에 보관하는 방법을 말하는데 페루식 생선 에스카베체(escabeche peruano de pescado)는 식초에 절인 생선을 양파와 허브 등을 섞어 튀긴 것이다.
   
   이밖에도 페루에는 정말 특이한 요리들이 많다. 쿠이(기니피그) 요리, 수리(애벌레) 요리, 소심장 요리, 닭피 요리 등 외부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기이하기 짝이 없는 요리들이 존재한다. 이 중 안티쿠초(Anticucho)는 페루 요리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 중 하나로 소심장을 꼬치에 꽂아 구워서 먹는 요리다. 길거리 음식으로도 유명하지만 일급 레스토랑에서도 팔고 있다.
   
   상그레시타(Sangresita de Pollo)는 닭피를 먼저 삶은 뒤 양파, 마늘, 고추, 향신료, 소금, 후추 등을 함께 섞고 볶은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페루 서민 음식으로 우리나라 선지에 비해 꼬들하고 짭짤하면서 향신료 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필자는 이 요리를 어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소개받았는데 사실 처음에는 닭피를 있는 그대로 요리재료로 쓴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소의 피를 그대로 삶아 먹는다는 우리나라 선지 이야기를 듣고는 그 선생님도 놀랐다. 닭피든 소피든 결국 익숙함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페루의 후식도 그 특성상 종류가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는 가장 페루적인 후식 2가지를 소개하겠다. 마사모라 모라다(mazamorra morada)는 페루의 대표 디저트로 불릴 만하다. 자색 옥수수와 사과를 주재료로 파인애플, 감자 전분, 설탕 등을 첨가하는데 상큼 달콤한 맛에 사과의 씹히는 식감이 일품이다. 피카로네스(picarones)는 밀가루 반죽에 호박 또는 고구마를 섞어 만든 도넛 모양의 디저트로 사탕수수에서 얻어진 꿀을 발라 서빙한다. 전형적인 길거리 음식으로 일반 슈퍼에서는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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