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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08호]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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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코로나19시대, 세계 각국의 베스트셀러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silkroad100@gmail.com

▲ 마스크를 쓴 고객이 로마의 한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다. photo 뉴시스
“실생활에 활용될 언어적 센스와 표현법이 주된 내용이다.”
   
   나폴리에 사는 이탈리아 친구와 소셜미디어로 대화하던 중 들은 얘기다. 언어학자 파울로 볼자키엘로(Paolo Borzacchiello)가 쓴 요즘 이탈리아의 최고 베스트셀러 ‘마음을 안정시키고 최적의 말을 사용하자(Stai calmo e usa le parole giuste nel giusto)’에 관한 얘기였다. 원래 2년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판매가 급상승했다고 한다. 왜 팔리냐고 물어봤더니 이런 대답이었다. “흔히들 오해하는데, 이탈리아 문화 문명의 출발점은 문학이다. 조각이나 미술품이 아니다. 13세기 단테가 있었기에 르네상스가 시작됐고, 뒤이어 16세기 영국 셰익스피어, 18세기 독일 괴테가 등장했다. 단테가 살았던 시대는 물론 소설 ‘신곡(La Divina Commedia)’에도 나오지만, 전염병은 위대한 작가 탄생의 배경이자 기원이다. 말과 글을 다듬는 것이 전염병이 닥칠 때 행하는 이탈리아인의 버릇이라고나 할까?”
   
   대화가 끝나는 순간 아마존닷컴에 들어가 어떤 책인지 살펴봤다. ‘안 된다(Not)’는 말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최적의 표현 방법과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언어습관 등 넓게 보면 커뮤니케이션 개발서로 보인다. 그러나 특별한 목적 없이 인간의 품격을 높이려는, 스스로 묻고 답한다는 점에서 교양서다. 학교와 직장에서 대화나 비즈니스에 활용될 100가지 대화법 등등 요즘 판치는 실용서와는 전혀 다르다. 아름답게 표현하고 여유와 감동을 자아낼 언어학적 관점의 훈련서라 하는 것이 맞는다. 너무도 이탈리아다운 베스트셀러로 느껴진다.
   
   바이러스 덕분에 출판계가 호황이라고 한다. 교보문고, 영풍문고와 같은 대형서점의 경우 온라인 서적 판매 증가에 힘입어 매출이 10~30% 정도 증가했다고 한다. 인터넷은 2020년 이전과 이후의 전염병을 구별 짓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다. 전부는 아니지만, 인터넷 덕분에 격리 상태에서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데 독서가 대표적이다. 책은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 모두 함께’가 사라진 이상, 별수 없이 책에 손이 가게 된다. 독서 붐은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상시와 다른 성격의 책이 바이러스 시대 베스트셀러다. 당연하지만, 베스트셀러는 그 나라와 사회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증거다. 바이러스 시대 베스트셀러는 시대정신만이 아니라 나라와 사회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유전자가 무엇인지도 보여준다. 언어학 교양서가 단테의 나라에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전염병 비상 상황을 방증하는 시대정신이자, 국가 국민의 유전자로서의 베스트셀러다. 이웃 일본부터 살펴보자.
   
   일본은 독서대국이다. 서점 수도 많지만, 매달 문고판 신서(新書) 형식의 책들이 수백 권씩 쏟아진다. 가볍고 싸고 작은 사이즈의, 트렌드에 맞춘 책들이다. 오타쿠(オタク) 관심사에 맞춘 책들이 워낙 많아서 판단하기 어렵지만, 먼저 아마존 전자서적 1위 책을 통해 흐름을 잡아 보자. 이미 2개월째 인기를 누리는 중이지만 ‘하루 1쪽씩 읽는 것만으로도 체득할 수 있는 세계의 교양(1日 1ページ, 読むだけで身につく世界の教養)’이란 책이 전염병 시대 넘버원 베스트셀러다. 역사·문학·예술·과학·음악·철학·종교 등 7개 영역 교양개발서다. 과학 편에 실린 ‘블랙홀’에서 보듯, 특정 주제에 대한 답과 의미를 1쪽에 설명한 책이다. 전부 3권으로 된 시리즈물로, 한 권에 2365엔에 달하는 비싼 책이다. 원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시리즈물로, 4월 말까지 150만부가 팔렸다. 독자층이 남녀노소 골고루 퍼져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 인기가 계속될 전망이다. 전염병 시대 트렌드와 국민 국가의 유전자란 관점에서 보면, 일본과 일본인에게 너무도 딱 떨어지는 베스트셀러다. 쉬는 틈을 이용한 자기개발 교재이자, 빠르고 능률적이며 한꺼번에 전부 습득할 수 있는 실용서이기 때문이다. 옷과 생활도구 정리라는 화두로 미니멀리즘(Minimalism) 무대의 글로벌 스타로 뜬 인물이 곤도 마리에(近藤麻理惠)다. 깊이나 감동과는 무관한, 세상을 살아가는 매뉴얼과 생활규범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나라가 일본이다.
   
   
   200만부 팔린 일본의 ‘공기를 읽는 뇌’
   
   아마존 전자서적에는 안 잡히지만, 전염병 시대 일본을 보여주는 베스트셀러로 ‘공기를 읽는 뇌(空気を読む脳)’라는 신서도 화제다. 4월 말 기준으로 200만부가 팔린, 여성 정신의학자 나카노 노부코(中野信子)가 쓴 책이다. 왜 엘리트일수록 알아서 기는가(일본어로 손탁·忖度), 칭찬하는 교육이 실패를 숨기는 요인, 부유층은 많아도 대부호가 없는 이유, 추하게 이기는 것보다 아름답게 지는 것을 선택하는 심리 등 일본론에 집중한 책이다.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일본론에 집착하는 곳이 일본이다. 자화자찬으로 흐르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나라와 일본을 비교하고 객관화하는 수단으로서의 일본론이 주류다.
   
   ‘공기를 읽는 뇌’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3월 초다. 전염병이란 상황에 ‘딱 맞춘’ 너무도 일본적인 베스트셀러라는 점에서 놀랐다. 일본은 공기의 나라다. 카리스마나 개인이 아닌, 평균 일본인의 정서에 기초한 집단 속의 공기가 중요하다. 한국의 ‘분위기’에 비견될 개념이지만, 집단 차원에다 위에서 밑에까지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일본에서는 불평 불만을 통해 상황을 지체하거나 악화시키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 공기의 흐름이 어디로 가는지 파악하면서 모두 그쪽 방향으로 재빨리 움직인다. 늦으면 자기만 손해고, 사실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전염병 시대를 맞아 일본의 오늘과 내일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떤 공기를 통해 전염병 비상시국을 극복할지, 바이러스 대재앙에 맞서는 조직 내에서의 행동요령은 무엇일지…. 그런 구체적인 답을 얻기 위한 공기론 베스트셀러가 ‘공기를 읽는 뇌’다. 여성 정신의학자가 펼치는 일본론이 2020년 전염병 대응 행동지침서로 활용된다는 의미다.
   
   2020년 5월 미국 출판계를 달구는 베스트셀러는 ‘영광과 오욕(The Splendid and the Vile)’이다. 아마존닷컴 논픽션 부문 1위로, 전염병 시국 미국의 독보적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현재 미국에서 오프라인 신간 출판은 거의 중단된 상태다. 출판 공장이 멈췄기 때문이다. 대신 온라인 전용 아마존닷컴 킨들에서 무려 17.69달러에 팔리는 고가의 책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디즈니랜드 만화작가로 활동한 에릭 라슨(Eric Larson)이 쓴, 역사에 기초한 스토리텔링 소설이다. 부제로 ‘처칠 가족 그리고 런던 공습 당시의 저항에 관한 스토리(A Saga of Churchill, Family, and Defiance During the Blitz)’란 긴 타이틀을 달고 있다.
   
   
▲ (왼쪽부터) 이탈리아의 베스트셀러인 언어학자 파울로 볼자키엘로가 쓴 ‘마음을 안정시키고 최적의 말을 사용하자’. 미국의 베스트셀러인 2차 대전 당시 처칠의 리더십을 다룬 ‘영광과 오욕’. 일본의 베스트셀러인 ‘하루 1쪽씩 읽는 것만으로도 체득할 수 있는 세계의 교양’과 ‘공기를 읽는 뇌’.

   처칠 리더십 다룬 미국 소설 ‘영광과 오욕’
   
   제목에서 보듯,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공습 기간 중 펼쳐진 윈스턴 처칠 총리와 그의 가족에 관한 얘기다. 처칠의 재임 기간은 1940년 5월부터 1945년 7월까지 5년2개월이다. 소설은 처칠이 총리로 임명된 직후부터 정확히 1년간에 걸친 비상상황을 다루고 있다. 가스마스크 착용이 일상적이던 시기로, 군사적·경제적으로 영국의 고립이 굳어지던 시기다. 1939년 10월 폴란드, 1940년 6월 프랑스가 독일에 넘어간다. 같은 게르만 민족의 북유럽은 히틀러의 무혈입성 땅이다. 섬나라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부분이 독일과 이탈리아 수중에 들어갔을 때 등판한 구원투수가 처칠이다. 미국이 유럽 전쟁에 미군을 투입한 것은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 이후, 즉 1941년 12월 7일 이후다.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 전선 불개입을 내세워 제3자로 방관했던 인물이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흥미로운 가정이지만, 만약 진주만 공격이 없었다면 미국의 유럽 참전이 없었을 수도 있다. 유럽 전체가 전체주의 체제로 변했을지 모른다.
   
   ‘영광과 오욕’은 무려 546쪽에 달하는 두꺼운 소설이다. 그러나 손을 대는 순간 빨려들어가는 마법의 책이다. 재미는 기본이고 현장감과 긴장감이 넘친다. 처칠 바로 옆에서 비상상황에 대응하는 느낌이다. 중·고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하루종일 책 한 권에 매달렸다. 에릭 라슨은 간단히 얘기해 미국판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라 보면 된다. 역사적 사건을 자료와 증언을 통해 재조명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에 기초한 스토리텔링으로 재미를 더한다. 전반적인 상황과 배경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런 환경에서 창조된 말이나 감정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한다. 만화작가라는 경력에서 보듯, 글로 이뤄지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시각적 차원의 현장감을 준다.
   
   소설 ‘영광과 오욕’에서의 핵심은 처칠이 보여준 강인한 리더십이다. 독일의 공습이 거의 매일 이뤄지면서 영국인 4만4000명이 희생됐다. 고립무원 상태인 것은 물론 무기도 병사도 절대부족이다.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적당한 선에서 나치와 타협하라는 여론도 일어난다. 평화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처칠은 그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평화 여론을 잠재운, 나치에 맞선 결사항전은 지중해 바다에서 시작됐다. 처칠은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 해군이 영국 침략의 선봉대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 우방인 프랑스에 영국 공격에 나서지 말라고 요청했지만, 철저히 무시된다. 결론은 프랑스 해군 공격이다. 처칠이 총리로 일한 지 3개월 만인 1940년 7월 3일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다. 프랑스 대형전함 브르타뉴(Bretagne)를 비롯한 5척을 수장시킨, 그 유명한 ‘메르스엘케비르 해전(Attack on Mers-el-Kébir)’이다. 프랑스령 알제리 바다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영국의 기습공격으로 프랑스 주력 해군이 사실상 궤멸된, 유럽판 진주만 기습공격에 해당하는 사건이다. 당시 프랑스 해군 1297명이 전함과 함께 수장됐다. 해전 부분은 소설 전체를 통틀어 하이라이트이다. 영국이 과거 우방 프랑스를 공격했다는 것은, 도저히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치 점령하의 괴뢰정권이지만, 독일의 편에 선 이상 영국의 공격 대상이라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타협은 없다. 처칠은 프랑스 전함 공격을 명령한 주인공이다. 소설 속에 그려진 당시 해전 상황을 요약 정리해 보자.
   
   ‘영국 전함의 36개 포문이 일제히 열렸다. 프랑스에 대한 공격은 전부 10분 정도에 걸쳐 이뤄졌다. 프랑스가 자랑하던 전함 브르타뉴가 불길에 휩싸이면서, 1297명의 해군 병력도 수장됐다. 통계적으로 말하자면 1분에 130명이 희생된 셈이다. 영국의 압승이 런던에 전달됐다. 당시 분위기를 처칠의 딸 메리(Mary)가 일기에 적고 있다. “아버지는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는 말만 연발했다. ‘우방이던 프랑스에 그 정도까지의 피해를 입힐 필요가 있었는지…’라며 깊은 슬픔에 빠졌다.”
   
   다음 날 7월 4일, 처칠은 의회에 가서 해전 상황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낱낱이 밝혔다. 너무도 슬픈 사건이었지만, 자신이 결정한 모든 것을 의회, 국민, 미국, 세계 그리고 역사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의회는 여야 구별 없이 처칠의 결단에 박수를 보냈다. 처칠은 눈물을 흘리며 인사를 했다. 나치에 대한 결사항전이 처칠과 의회, 영국인 모두에게 숙명으로 와닿은 날이다. 군사적 지원에 한정되지만, 곧바로 미국 루스벨트가 무기 제공을 약속했다.’
   
   
   코로나19 이후 미국은 어디로
   
   2020년 5월 미국의 베스트셀러가 ‘영광과 오욕’이란 점은 너무도 흥미롭다. 소설 속 내용으로 유추하자면 ‘독일의 영국 공습=코로나19 대재앙’에 비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립무원 상태에서 국난을 극복한 처칠과 같은 지도자를 갈망하는 심리가 소설을 통해 드러났다고도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칠에 비교될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정치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외견상 트럼프는 처칠과 비슷한 지도자로 통한다. 고집불통에다 예측불가능하고, 뭔가 거칠고 시끄러운 점이 공통분모다. 처칠이 등판할 당시, 반대파가 많았다는 점도 비슷하다. 트럼프가 처칠이 될지 여부는 아직 모른다. 마스크를 쓰고 안 쓰고가 아니라, 전염병 이후 몰려올 경제적·외교적·군사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트럼프 리더십의 진수는 전염병 이후가 될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처칠의 강력한 리더십이 우방인 프랑스를 공격한 데서부터 출발했다는 점이다. 2020년으로 치자면, 미국이 일본을 공격하는 식이다. 당시 영국 국민은 우방 프랑스 공격을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자기 목숨이 위험한 상태에서는 친구도 칠 수 있다는 의미다. 전쟁의 본질인 것이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미국도 상황이 된다면 똑같은 판단을 내릴 것이다. 아니 더할 것이다. 20세기 프랑스 전함을 격침시킨 영국처럼, 21세기 중국발 코로나19에 맞선 미국의 상상 밖 행동도 전망된다. 소설 ‘영광과 오욕’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것은, 어제의 우방조차도 공격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굳어진 아름다운 나라로서의 ‘미국(美國)’이 아닌, 무섭고도 갈피를 잡기 어려운 나라 미국(迷國)인 셈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미국은 어디로 흘러갈지, 베스트셀러 소설 ‘영광과 오욕’을 통해 갈피를 잡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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