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관 오늘은 2차 대전 말기 독일을 배경으로 한 ‘조조 래빗’(Jojo Rabbit·감독 타이카 와이티티·2019)을 다루고자 합니다.

배종옥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풍자적 요소와 코미디 색채가 가미되어 영화는 밝고 경쾌합니다.

신용관 지난 2월 제92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편집상, 여우조연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각색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배종옥 나치를 다루는 방식도 진화하는 것 같아요. 전에는 ‘소피의 선택’(감독 앨런 J. 파큘라·1982)이나 ‘쉰들러 리스트’(감독 스티븐 스필버그·1993)처럼 무겁고 진지하게 그리는 작품이 많았지요.

신용관 ‘쉰들러 리스트’는 일부러 화면을 흑백으로 처리하기도 했고요.

배종옥 그런데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감독 마크 허만·2008) 같은 영화는 가스실을 소재로 한 끔찍한 이야기인데도 무척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거든요. 이번 ‘조조 래빗’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신용관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 분)와 단둘이 살고 있는 10살 소년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분)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독일 소년단에 입단합니다. 자신이 동경하는 나치와 히틀러같이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요.

배종옥 캠프에서 훈련을 받던 중 선배 단원들이 살아 있는 토끼를 건네며 목을 비틀어 죽이라고 강요하지만 어쩔 줄 몰라하다가 토끼를 풀어줍니다. 이 때문에 겁쟁이 취급을 받게 되지요. 영화 제목이 ‘조조 래빗’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신용관 상심한 조조에게 상상 속 친구인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 분)가 나타나 다시 용기를 내게 북돋아 줍니다. 하지만 수류탄 던지는 훈련을 하다가 다쳐 얼굴과 다리에 상처를 입지요.

배종옥 배가 볼록 나오고 수다스러운 이 히틀러는 영화에 수시로 등장하는데 감독이 직접 역할을 맡아 능청스러운 연기를 펼칩니다.

신용관 와이티티 감독은 판타지 액션영화인 ‘토르: 라그나로크’(2017)의 연출자입니다. 아버지는 마오리족이고 어머니는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나치의 만행을 너무 희화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폴리네시아계 유대인이 히틀러 역을 맡는 것만큼 히틀러를 제대로 모욕하는 일이 있을까?”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배종옥 조조는 외부에서 주입된 나치의 이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순진한 아이입니다. 캠프에서 사귄 단짝 ‘요키’(아치 예이츠 분)에게 “너는 나의 두 번째 친구”라고 말할 정도로 히틀러를 좋아하지요.

신용관 어느 날 조조는 집 벽장 안에 몰래 숨어서 살고 있는 의문의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 분)를 우연히 발견합니다. 그녀는 독감으로 죽은, 조조의 누나 ‘잉거’와 친구인 17살 유대인이었고 조조의 엄마가 숨겨주고 있었던 거지요.

배종옥 조조와 엘사는 처음에는 서로에게 반감을 갖지만 점점 친해지지요. 조조는 엘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대인에 대한 세뇌된 공포와 혐오를 거두기 시작합니다.

신용관 조조의 변화가 가능했던 데는 엄마 로지의 역할이 컸지요. 반(反)나치 활동을 하고 있는 로지는 사랑의 힘을 믿고 춤을 사랑하는 멋진 여성입니다.

배종옥 그녀는 “너는 너무 조숙해. 매일 정치와 전쟁 얘기만 하고. 나무에 오르고 떨어지고 할 나이에”라며 아들을 염려하지요. “삶은 신의 선물이야. 즐겨야지. 자유로운 사람들은 춤을 추는 거야”라며 조조의 손을 이끌기도 하고요.

신용관 저로서는 영화의 주된 주제와 별도로, ‘조조 래빗’이 부모가 아이를 어떤 자세로 교육하고 양육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벽난로 숯 검댕으로 얼굴 수염을 칠한 뒤 아빠 흉내를 내는 1인2역(아빠와 엄마)을 하면서 아이에게 조언을 하고 잘못에 대해 사과도 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배종옥 “식탁은 중립 지대야. 스위스라고”처럼 암울한 상황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모습도 보기 좋더군요.

신용관 아들과 자전거를 타다가 청년 귀환병들을 태운 트럭이 지나가자 “집에 온 걸 환영해. 집에 가서 어머니께 키스해드려”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짠하더군요. 스칼렛 요한슨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었지요.

배종옥 원래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데 사람들은 그녀가 연기를 잘 한다는 느낌을 그다지 못 받아온 거지요. 배우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영화들이 따로 있거든요. ‘어벤져스’ 같은 영화에서는 연기력이 돋보이기 힘들잖습니까.

신용관 스칼렛 요한슨이 영화를 잘 고르는 듯해요. 이번 아카데미에서 그녀는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감독 노아 바움백·2019)로 여우주연상 후보로도 지명됐으니 연기에 제대로 물이 오른 거지요.

배종옥 영화가 전체적으로 밝은색 톤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꽤 컬러풀하기도 하고요. 스칼렛 요한슨의 의상도 아기자기하게 아주 독특하더군요.

신용관 그런 밝은 톤과 블랙 유머를 통해 전쟁의 참혹성을 재기발랄하게 풍자하고, 그와 동시에 사랑이나 인류애 등 사람으로서 견지해야 할 것들을 따뜻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조조 역을 맡은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는데 연기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배종옥 첫 연기라니 대단하네요. 엘사와의 교감이 진행되면서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태도가 달라져 가는 모습을 참 잘 표현했거든요. 감독이 많이 지도를 했을 겁니다. 전체적으로 연기자들의 호흡이 좋더군요. 신스틸러라 부를 만한 ‘요키’ 역의 아치 예이츠, 조조의 소년단 단장인 ‘클렌젠도프’ 역을 맡은 샘 록웰의 연기 모두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게 아주 적절했습니다.

신용관 음악 얘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독일 국민들의 나치즘에 대한 광신을 보여주는 영화의 오프닝에서는 비틀스의 1964년 히트곡 ‘I Want To Hold Your Hand’의 독일어 버전이 흐르는 가운데 나치식 경례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배종옥 깜짝 놀랐어요. ‘1930년대 흑백 자료 화면에 어째서 비틀스 음악이 나오는 거지?’ 하면서요. 다른 시대인데 음악과 화면이 너무나 잘 맞더군요.(웃음)

신용관 영화가 적절한 호흡으로 잘 진행되다가 조조와 엘사의 관계를 다루는 중간 부분에서 다소 긴장도가 떨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배종옥 저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게슈타포들이 조조의 집에 갑자기 들이닥치고 엘사가 조조의 누이인 척하는 장면에서 다시금 관객의 시선을 확 낚아채고 있지요.

신용관 역사적 비극을 너무 가볍게 다뤘다는 비난이 일부 있었습니다.

배종옥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를 또다시 보여주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조조 래빗’의 영화적 터치는 가볍게 보일지 몰라도 그 저변에 흐르는 메시지는 감독이 깊이 있게 잘 다루고 있습니다. 주제의식을 잘 견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신용관 저는 마지막에 조조가 상상 속의 친구 히틀러와 결별하는 장면이 다소 급작스럽다는 인상을 받긴 했습니다. 제 별점은 ★★★★. 한 줄 정리는 “가족애(愛)가 비극 속에서도 미소를 짓게 만든다.”

배종옥 저는 ★★★★☆. “하마터면 놓칠 뻔한 수작.”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배종옥 영화배우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